평사리 최참판 댁 (세트장)
남해를 벗어난 차는, 바다에서 멀어져 강을 따라올라
산과 산이 서로서로 한발짝씩 비켜나 만든, 천석지기 만석지기 들판에 다다릅니다.
이 높고 큰 산 사이에 이렇게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니요!
평사리 들판을 내려다보는 상춘객.
최참판 댁 대문에 들어서면, 누구나 입밖으로 "이리 오너라!"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발 아래, 소작인들과 민초들의 초가집을 두고 선 양반댁 고대광실 ...
그 문 앞에 서니, 착취와 억압의 역사는 잊히고,
고산준령에 허허벌판이 먼저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 옛날 정미소 입구?
평사리 최참판 댁은 소설 <토지>의 허구 세상을 재현한 세트장입니다.
입구에선 어른 1,000원의 입장료를 받습니다. 인공으로 조성된 민속촌입니다.
사극 <토지>가 촬영되었던 마을을 공원화하여 입장료까지 받는 상술이 좀 씁쓰름하긴 합니다만,
어디서 또 오래 전 이런 정미소 모양의 허름한 건물을 보겠습니까?
허구 속 세상이긴 하지만,
평사리 악양들판에 들어 앉았으니, 허구와 진실의 세상이 구분이 안 갑니다.
평사리 들판에 우뚝 선 나무들...
워낙 너른 들판에 돌올하게 우뚝 선지라,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나무들이 들판의 명물입니다.
마치 들판을 파수하는 장승처럼 평사리 들판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
평사리 들판에 봄이 오고 ...
평사리 들판에서 멀지 않은 화개, 화개에서 멀지 않은 쌍계사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쌍계사에선 언제나 절집 바로 아랫집인 '청운산장'에서 묵습니다.)
이튿날 아침을 해먹고 청학동과 삼성궁이 있는 묵계 지역으로 오르려는데,
하동읍 거쳐 먼길을 뺑 돌아가자니 지루할 듯하고,
평사리 들판 위 회남재를 넘자니, 아직 녹지 않았을 응달 얼음길이 걱정됩니다.
평사리 들판 입구에 주춤하던 차는 결국 들판 안쪽으로 깊숙이 차고 들어갑니다.
들판을 보며 ... 이만큼 봄이 왔으니 차도 고개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
회남재 오르는 길.
다랭이 논은 남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산과 산, 골과 골 사이, 사람들의 배고픔과 땅에 대한 애착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힘겹고도 팍팍하다는 다랭이논은 어디든 흘러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회남재에서.
청학동이 있는 묵계 쪽에서, 산물이 풍부한 악양 들판을 넘기 위해
지리산 빨치산들이 즐겨 넘었다는 회남재.
악양들판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 역사의 핏자욱은 모두 사라진 재 위에서 너털너털 걷습니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살짝씩 발을 디밀어 함께 쉬고 있는 회남재 ...
회남재에서 바라본 들판과 산.
저어기, 저건 ... 봄빛입니까, 겨울빛입니까?
차 한 잔 마시러 온 지난해 찻집...
오랜만에 찾은 나그네를 반기며 대문 앞에 크게 씌여있습니다.
"산에 와 차 마시는 그대가 신선이다!"
국화차며, 댓잎차며, 들판의 아무거나 차가 되는 집...
청학동에서.
식당과 현대식 옛집, 매표소와 휴게소로 가득찬 청학동에 이곳만이 초가집 한 채 눌러 앉았다.
그도 지은지 얼마 안되는 ...
남해에서, 섬진강으로, 악양들판으로 ...
바다와 강, 산을 넘나들다보니 ... 어느덧 봄의 땅에 와 있습니다.
크눌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