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도
박한
늙은 아비와 늙은 아들이 목욕탕을 가네
아비는 늙은 아들의 목욕비를 내주고
때수건을 건내네
순서는 달라도
넥라인을 당겨 웃옷을 벗는 것이 꼭 닮았네
아들이 이중주차를 빼러 갔다 오는 사이
늙은 아비는 탕속에서 뒤통수가 횡하고
벗겼다 생각한 것들이
벗겨지고만 것이란 걸
난 여전히 발을 담가 보고서야 안다네
쭈그린 몸을 불리는 시간
알몸을 벗는 것이
이리 쓰라릴 일인가
닿지 않는 곳은 비워두고
물 온도를 맞추네
때수건을 쥐어짜네
기립성저혈압으로
넘어지는 해의 등이 유난히 벌겋네
우리 아버지 황혼처럼 저무네
거울과 유리병
밤새 거울을 읽는다
화재경보기와 수납장 밑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문장들
인덕션이 먼지자국으로 지워져 있다
후라이팬은 내 얼굴을 닮아
나도 모르게 코를 문지른다
거울 속에선 무엇도 아프지 않다
타오른 허기는 생략됐고
궁핍은 기도가 막힌 채 의식을 잃었다
방이 병이 되었을 때
거울을 덮고
세탁기에서 속옷을 꺼낸다
물을 적시는 유리병
거울 속에 못보던 손잡이가 생긴다
익숙해져야 한다.
진다고 다 아파야만 하는 건 아니므로…
어머닌 일 년이 넘도록 원인 모를 잇병을 앓고 저는 해지도록 한 곡만 연습 중입니다. 바람이 쌀쌀해지면 사람들은 어깨 위로 낯선 온도를 짊어집니다. 익숙해져야 합니다. 진다고 다 아파야만 하는 건 아니므로. 꽃이 지고, 별이 지면 빗질을 하고 솔질을 하고 잊혀진 만큼 손톱은 자랄 테니 흐르는 길 모두 별 끝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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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도 / 박한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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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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