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기행
십일월 셋째 토요일은 여느 주말과 달리 행선지가 멀리 잡혔다. 작년 가을 학생들과 강진 보성 일대로 남도 문학기행을 다녀온 적 있는데 그와 유사한 걸음이다. 올해는 그보다 조금 더 먼 군산이었다. 버스 한 대로 1학년이 다수였고 내가 수업에 드는 2학년도 몇 명 참여했다. 사서선생이 진행을 맡고 나는 보조 역할이다. 인문 역사와 지리에 해박한 교장이 동행해 마음이 든든했다.
평소 출근 시간대 교육단지 근처 충혼탑에서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단풍놀이 관광버스보다 시제 지내는 사람들의 이동으로 교통량이 혼잡할 때다. 음력 시월 보름 전후에 각 집안에서는 선산에서나 재실에서 조상님께 시사를 지낸다. 서부경남으로 통하는 남해고속도는 설과 추석도 혼잡하지만 추석 전 벌초 때와 단풍이 저무는 늦가을 시제 철 주말은 명절만큼 교통량이 늘어난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남해고속도를 달리다가 진주에서 대전 방향으로 각을 크게 틀어 산청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이어 지리산을 비켜 육십령을 넘어 찻길 노선은 익산으로 향해 바꾸었다. 장수를 거쳐 진안 마이산휴게소에 들렸다. 지척엔 신비한 마이산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국토 등줄기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횡축으로 달리니 고원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 생활권 주변에만 맴돈 나는 낯선 풍광이었다. 오래 전 선운사 기행이나 조카 예식장 걸음으로 전주를 다녀온 정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옆자리 교장은 팔도의 인문지리와 자연경관에 훤했다. 나는 나대로 익히고 삭힌 몇 조각 얘기로 간간이 말벗이 되었다. 어느새 우리가 탄 버스는 광활한 구릉과 농지들인 만경평야를 달려 군산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바다와 접한 군산이었다.
인문학 기행 - 군산 근대역사문화 기행 시간여행은 오전과 오후 여정이 달랐다. 오전은 고군산열도 투어였고 오후는 군산 근대문화유적지 탐방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연육교로 이어진 고군산열도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예전 새만금방조제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온 친구 얘기를 듣고 언젠가 그 둑을 걸어서 지나가볼 생각을 해놓고 있었던 길고 긴 방조제였다.
고군산도는 군산 바깥 서쪽 바다에 줄을 지어 형성된 수십여 개 유인도 무인도들이었다. 내가 사는 창원 근해 다도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날씨가 맑은 날이라 거기도 삼청(三靑)이었다. 바다와 섬과 하늘이 모두 푸른색이었다. 그 가운데 바다엔 양식장 부표가 하얗게 떴고 망주봉과 무녀도는 암반이 드러났다. 사장교로 놓인 선유대교를 지나 버스에서 내려 도보 산책을 나섰다.
장자교를 따라 걸으니 집라인을 즐기는 이들이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따라 건너편으로 쏟아졌다. 나는 평소 고소공포를 느껴 바라만 보아도 아찔했다. 그걸 타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함께 기행을 나선 우리 학생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한 번 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듯했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온 듯 백사장으로 내려가 사진을 남겼다.
방조제를 따라 비응항으로 나와 예약된 한식뷔페에서 깔끔한 점심을 들었다. 주인 배려로 아이들이 좋아할 돈가스가 덤으로 구워져 나오고 셀프로 라면도 끓여 먹었다. 나는 일제 강점기 미곡 수탈 현장에서 생산된 쌀 막걸리를 느긋하게 비웠다. 오후 일정은 관광이 아닌 학습으로 문화해설사가 동행한 군산 근배문화유적지 탐방이었다. 빠듯한 여정으로 세 시간 넘게 도보로 강행군했다.
진포해양공원으로 가서 부잔교(浮棧橋)부터 둘러봤다. 조수간만 차가 큰 서해에서 볼 수 있는 접안시설로 일제의 미곡 수탈 잔영이었다. 예전 진포답게 퇴역한 전함과 헬기가 눈길을 끓었다. 구 조선은행, 채만식 소설 등장인물상, 옛 세관, 근대역사박물관, 일본식 가옥, 일본식 사찰 동국사, 경암동 철길 등이었다. 귀로에 전주 근처에서 늦은 저녁으로 먹은 순두부찌개 맛은 일품이었다. 18.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