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심생멸문
(ㄷ)생멸상
㉡ 생멸의 뜻
◇別記◇
識性自性 欲見種種色相 是名四種因緣水流處 藏識轉識浪生
식성을 자성으로 삼고 온갖 색상을 보려 한다. 이들을 네 가지 종류의 인연들이라고 하니, 그것은 물이 흐르는 장식에서 전식의 파도가 생기는 것이다고 하셨다.
범부가 범부 자신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해악덩어리는 자기 눈으로 직접 뭘 봤다는 것과 뭘 들었다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세상을 보면 얼마나 보며 들으면 얼마나 듣겠는가. 설령 봤다고 해도 그 눈으로 어떻게 봤겠으며 뭘 들었다고 해도 그 귀로 얼마큼 들었겠는가. 다 하루살이 자기 수준만큼 보고 자기 기준만큼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눈으로 뭘 봤다고 해도 그 사실성이 보장되지 않고 뭘 들었다고 해도 그 정확성이 없다. 모두 다 자기 그릇만큼만 보고 듣는다.
그래서 장자가 하루살이에게 겨울과 얼음을 말하지 말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언급하지 말며, 비뚤어진 선비에게 도를 설하지 말라고 했다.
인간들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무엇이든 믿고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믿을 수 있는 물증을 내어놓으라고 한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물증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수표가 가짜수표인 것처럼 어른들이 물증으로 받은 세상의 증명이론은 전부가 가짜다.
그 이유는 識性을 자성으로 여기고 세상을 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識性은 자기들 기준이다. 그것은 진짜 잣대가 아니다. 진짜 잣대는 智性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갖고 쓰는 識性의 잣대는 이미 틀렸다. 그래서 안식의 폐해는 중생을 죽음의 세계로 집어넣는다. 이것이 세 번째의 안식작용이다.
그런데도 범부는 자기들의 눈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보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다 일단 보고자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음 생애를 끌어오는 죄업을 만드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이 네 번째의 인식작용이다.
불나비가 왜 불을 보고 끊임없이 달려드는지 아시는가. 불나비 눈에는 그 불이 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범부도 끊임없이 가짜의 세상에 도전한다. 그 결과 불나비처럼 마지막에는 불에 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藏識장식은 우리의 마음 전체다. 거기에 부처와 중생이 들어 있다. 안식의 작용은 그 장식 속에서 요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식에서 전식의 파도가 생기는 것이다고 하셨다.
출처: 대승기신론 해동소혈맥기5_공파스님역해_운주사
카페 게시글
언론속의 원효센터
대승기신론해동소 혈맥기 5권_생멸상_생멸의 뜻p312~
다음검색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
어떤 것들이 네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자심에 身根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시세래로 허망하게 색의 경계를 분별하고 훈습하여 집착하고 희론하여 왔기 때문이다.
셋째는 識의 자성과 그 體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넷째 여러 가지 색상 보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자기가 싼 배설물을 주물고 사는 범부들.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