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이육사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제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장』 7호, 1939.8)
♣작품해설
이 시는 육사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갈등 의식이나 대결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 대신 수준 높은 서정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일제에 대한 투쟁으로 한
평생 살아온 육사였지만, 그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정서를 소유한 로맨티스트
였다. 이 낭만성이야말로 그의 저항의지를 더욱 뜨겁게 달구어 준 용광로 구
실을 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의 투쟁 의지가 포도송이
처럼 내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시각적 이미지의 시어 선택과 청·백의 색채의 대조로써 시적 분
위기를 선명하게 하고 있으며,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전통적 소재들을 이용
하여 정감 어린 고향의 이미지를 맑고 깨끗한 세계로 승화시킨 다음, 이런 순
수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어느 청포를 입은 ‘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
하고 있다.
이 시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시간적, 공간
적 배경에 유의해야 한다. 화자의 고장은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고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는 땅이다. 그 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
려 있는, 화해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일제 암흑기에 처해 있는 화자로서는
그 삶의 가능성이라 아직 ‘전설’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6연 10행의 이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2연의 첫째 단락에서 화자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고향의 칠월을 묘사한다.
여기서 ‘청포도’란 단순한 과일의 의미가 아니라, 한 마을의 뿌리와 유래를 의미
하는 것으로, 화자는 ‘청포도’를 통해 밝은 미래가 담고 있는 ‘전설’을 보고 있
다. ‘전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평화로운 삶의 이야기이자, 민족이
염원하는 희망으로 ‘주저리주저리’와 ‘알알이’라는 두 개의 부사로써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4연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그것을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올 어느 ‘손님’으로 표상된 광복의 세계라 할 수 있다.
3·4연의 둘째 단락에서 제시되고 있는 ‘청포를 입은 손님’은 ‘청포도’와 유추적
관계로, 그는 단순한 화자의 손님이 아니라, 어두운 역사와 함께 ‘고달픈 몸으로’
살고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
과 같은 존재로서,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런 인물로 대표
되는 조국의 광복을 표상한다.
5·6연의 셋째 단락에서 화자는 그 ‘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 아래 그를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를 맞아 누리는
행복의 기쁨을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이라는 함축된 구절로 제시하고 있
으며, 그러한 순간을 위해 ‘은쟁반’과 ‘모시 수건’과 같이 깨끗하고 정성그러운
기다림의 준비 과정을 그려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
려서’ 오는 조국 광복의 그 날, 잃어 버렸던 고향의 평화와 인간적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육사의 아름다운 소망과 굳은 의지를 드러내 준다. 육사는 이
러한 자신의 소망과 의지를 ‘청포도’라는 사물의 의탁하여 밝고 건강한 분위기와
서정성이 충만한 표현 방법으로써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이육사(李陸史)
본명 : 이원록(李元祿), 원삼(源三), 활(活)
1904년 : 경북 안동 출생
1915년 예안 보문의숙에서 수학
1925년 형 원기(源祺), 아우 원유(源裕)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
1926년 북경 행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에 연루, 대구 형무소에 3년간 투옥됨
이 때의 수인(囚人) 번호(264)를 자신의 아호로 삼음
1932년 북경의 조선군관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
1933년 조선군관학교 졸업 후 귀국, 이 때부터 일경의 감시하에 체포와 구금생활 반복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하여 등단
1943년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사망
시집 : 『육사시집』(유고시집,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