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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충성스런 여호와의 증인 소년병으로 성장하던 무렵...꽤 묘한 느낌을 주는 문장을 협회의 어느 서적에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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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의 게시록 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웠다18장 제105면 주의 날에 일어나는 지진들 : "이 성경 연구생들이 “주전”과 “주후” 사이에 0년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섭리라고 할 수 있다. 후에 연구 조사에 의하여...주전 606년을 기원전 607년으로 정정할 필요가 있게 되었을 때, 0년도 삭제되었다. 따라서 “주후 1914년”에 관한 예언은 여전히 정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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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분도 많으실테고 꽤 최근까지 주력교재로 존재했던 책.88년작. 계시록 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웠다 책의 한 각주입니다.
꽤 묘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었죠. 저게 대체 무슨소리던가요?
그러니까..1914년을 에언하는 근거인 2520년의 이방인의 때의 기간을 말하는 기점.기원전607년 이전에 협회는 기원년 오류로 기원전606년을 지정하였다.라는 뜻 아닙니까..
중학생시절이었지만 당시 꽤 드셌던 직선코스 선언의 시기..연대문제에 다들 관심많던 시절이었던탓도 있고.저 개인적으로도 관련해서 1914년의 대사건들에 맞춰진다는 연대기가 신기하기도 하던 시절이라..그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지나치기가 어려웟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실재한 역사를 기반으로 세워지는 1914년 연대기일텐데..점진적 이해에 따라 그 기점연대가 수정된다?
실재의 역사를 요리조리 수정해서 맞춘다는건 무슨 소릴까하는 생각이 드는순간이었습니다.
기원년 오류같은건 점진적 이해라기보다 그냥 상식의 결여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도 생겼고요..하지만 충성소년병의 특성대로 의문은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다시 충성스러운 마음을 그 자리에 채워넣었습니다.
실재 예루살렘 함락연대가 기원전607년은 커녕 그 20년쯤 후의 일이라는걸 알게된 이후론...그렇다면 1934년 또는 1935년엔 무슨 일없었나? 이런 심정을 가진적도 있었습니다.ㅎㅎㅎ 뭐..부질없는 일이었죠..
예..실재역사는 무참하게도..기원전 607년 팔레스타인엔 별 의미있는 사건이 없었던것입니다.
거기다가 협회는 허술하게도 기원전 606년이랬다가 기원전607년이랬다가 역사적 상식이라곤 전혀없이 기원년 오류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대강 미세조정후 자리잡은 종말론 연대기를 주장하던거였고요..
기원전606년을 '정'해놓았던 협회의 1914연대기..그래도 1차세계대전과 함께 한세기동안...수백만을 붙잡아놓는데 큰 실적을 세운 연대기임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의 연대기 구조로서도 607-537년의 70년을 성취시키지 못하는 연대기임을 앞서 논했었고..다시 그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좁은세계속의 시야로 허상의 자부심속에 사는 또 다른 충성스런 여호와의 증인회원의 문의는 딱..워치타워협회가 제공하는 역사에 대한 왜곡되고 파편화된 정보만 제공받은 결과입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그 좁은세계속 자부심과 세상에 대한 오해에 대해 연민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들 경험한바 아니었습니까..조직이 제공하는 정의를 한껏 배급받고 그에 고양될만큼 고양되던 서푼짜리 자부심..
이 회원의 경우엔 다른 증인들이 그다지 접근하지 않는 부분까지 그 배급을 더 충실히 받고있음에 더더욱 그런 자부심에 도취되어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무슨 배경과 생각으로 활동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뭏든..연대문제에 다른 증인들보다는 더 집중해있음은 눈에 띄는군요.물론 워치타워협회에서 제공하는 내용이상의 고찰을 할 생각은 안합니다.
그가 말하는 바..니산월의 해의 시작에 의한 설명을 독해하신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은분도 있을줄 압니다. 그래도 관심가진분이라면 파악이 되실것이라 생각됩니다.
간단히 이게 어떤 연대기를 말함인지 기본적인 고대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현대에 쓰는 1년12달의 역법은 그레고리력이라고 하는것입니다.16세기경 교황 그레고리우스13세가 이 그레고리력의 사용을 제정했다고 하죠. 이렇게 존재하게 된 우리의 역법과 그로부터 거의 2000년쯤 전의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의 역법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먼저 대조표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의 월력은 다음 도식과 같습니다.
바빌론 히브리 현대력에서의 대략의 변환시기
1.Nisanu(니사누월) 1.Nisan(니산월) 3월중순~4월중순
2.Aiaru(아야루월) 2.Iyyar(아야르월) 4월중순~5월중순
3.Simanu(시마누월) 3.Sivan(시완월) 5월중순~6월중순
4.Duzu(두즈월) 4.Tammuz(타무즈월) 6월중순~7월중순
5.Abu(아부월) 5.Ab(아브월) 7월중순~8월중순
6.Ululu(울루루월) 6.Elul(엘룰월) 8월중순~9월중순
7.Tashitu(타쉬리투월) 7.Tishri(티쉬리월) 9월중순~10월중순
8.Arahsmnu(아라시누월) 8.Heshvan(카시번월) 10월중순~11월중순
9.Kislimu(기슬리무월) 9.Kislev(기슬레브월) 11월중순~12월중순
10.Tebetu(테베투월) 10.Tebeth(데비월) 12월중순~1월중순
11.shabatu(사바투월) 11.Shebat(스밧월) 1월중순~2월중순
12.Addaru(아다루월) 12.Adar(아달월) 2월중순~3월중순
이 도식에서 보듯이..고대 유대의 월력은 그 명칭과 기간에서 메소포타미아/가나안의 영향을 받은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 월들로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그리고 유대는 한 해를 꾸려갔던것이죠.
여호와의 증인들에겐 니산월은 익숙한 달일것입니다. 보통 한해의 시작월을 서술할때 성경에 이 니산월을 기점으로 서술합니다.
따라서 예의 쿰이라는 증인회원분은 니산월시작을 일괄적용하여 607년 연대기와 느부갓네살의 통치년의 구성을 맞추려 한것입니다.
니산월이 곧 한해의 시작이므로 그 전의 일은 성경기자에게 있어 [작년]의 일이라는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측의 관련주장 전반은 다 동일합니다.
그러나...이들은 1914연대기에만 맞춘 연대기를 구성하면서 경전기록내의 여러가지 역사서술에 대한 고찰을 거의 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열왕기가 왕들의 통치년서술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것입니다.
열왕기상은 이점과 관련하여 꽤 중요한 서술을 합니다.
열왕기상 6:1-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둘째달 시브월..즉 위 도식에서 보실수 있는 아야르월을 말합니다. 이때 솔로몬성전이 건축되기 시작함을 말하는 기사입니다.
그리고 다시 열왕기는 성전완공에 대해 언급합니다.
열왕기상 6:38-제 십일년 불월 곧 팔월에..(성전이)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년이었더라
이 기록에서 성경의 달에 붙이는 순서를 알수 있습니다.
니산에서부터 달의 순서를 묘사하는것이죠. 이 열왕기상 6:38에선 불월 즉 위의 도식에서 보실수 있는 카쉬번월을 말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성전건축기간을 7년이라 서술합니다.통치년을 니산월력으로 서술한다면,솔로몬 성전건축기간은 어떻게 될까요
예.만 7년6개월간입니다. 이는 햇수로 8년이죠.
그러나 성경은 7년이라 말합니다.
어딘가 어색하게 보이는 이 부분은 사실 왕들의 통치년서술에 있어 열왕기가 티쉬리월로 그 시작을 말함을 본다면 쉬이 풀리는 문제입니다.
솔로몬 4년이 티쉬리월(현대력 9~10월) 즉 니산월을 1월로 봤을때는 7월에 시작되었다면..성전건축은 분명 햇수로 7년이 되기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익히 알려진 도표로 보시겠습니다.
니산월을 1월로 봤을때의 7월.그리고 현대의 달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하는 티쉬리월을 왕의 통치년 시작으로 본다면. 성전건축이 시작된 달 아야르월은 실재로는 솔로몬 통치4년의 8번째 달이 되는샘입니다.
이 솔로몬 성전건축기사에서 나타나는 티쉬리월 서술에 대해선 이미 일반화되다시피한 내용으로 매우 쉽게 관련 연구내용을 찾아보실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열왕기가 왕들의 통치년을 티쉬리월로 기록한다는점을 볼수 있는 구절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열왕하 22:3에서 요시야 그의 통치 18년에 성전수리를 시작합니다.(22:3) 그리고 그 18년에 성전수리가 끝나고 유월절 행사가 거행됩니다.(23:23)
요시야의 통치년이 니산월에 시작되었다면,니산1일부터 니산14일까지 2주일정도의 수리작업을 한후 유월절 의식을 지냈다는 의미가 될것입니다.
목수들과 건축가들이 고급 나무를 준비하여 성전을 보수했을것이고, 또 그 와중에 율법을 발견하여 사반의 낭독을 들었으며 여선지자 홀다의 조언으로 유다 장로들을 예루살렘에 모아 율법을 듣게 했고,바알의 우상들을 파했으며,바알의 제사장들을 제거했으며,게바에서 브엘세바까지 산당들을 제거하는등의 일이 이 기간동안 있었습니다.
현대의 중장비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광 통신기술도 없던 시절입니다. 모든게 인력에 의해 행해지던 시절에 이 모든일이 2주일동안에 가능했을까요.물론 상식적으로 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때 요시야의 통치년 18년은 니산월이 아니라..니산월보다는 앞서있었으며 적어도 몇개월의 기간동안 그런일이 있었던것으로 봐야 할것입니다.
요시야의 통치년이 티쉬리월(9월중순~10월중순)부터 서술되었다면..거의 6개월의 시간이 그 첫 유월절의식의 시간까지 주어집니다.
이 기록에서도 열왕기는 왕들의 통치년에 대해 티쉬리월을 시작으로 서술한다는점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의 통치년 티쉬리월 서술은 더 후기의 느헤미야에도 나타납니다.
느헤미야1:2-'아닥사스다왕 20년 기슬르월(현대력 11~12월중순/니산월로부터는 9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었더니'
여기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왕 아르타 크세르크세스를 섬기는 입장이죠.그리고 이때 기슬레브월이 아르타 크세르크세스왕 20년임을 서술합니다.
그리고 다시 느헤미야 2:1입니다.
느헤미야2:1-아닥사스다왕 20년 니산월(현대력3~4월 고대에 1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시간이 지나 다음 니산월이 되었는데...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의 통치년을 여전히 20년으로 서술합니다. 니산월을 왕의 통치년도 21년으로 서술하지 않고있는것입니다.
사실 니산월이 1월이라는점은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팔레스타인지역의 월력으로 공통된것이었으나..유독 이 유다인들은 왕의 통치년 서술에서는 분명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것입니다.
성경외적으로도 왕들의 통치년을 티쉬리월로 서술하는 남유다의 방식이 드러나는 기록은 이집트의 엘레판틴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파피루스입니다.
이들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남유다로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포함되어있으며 이들역시 당시 페르시아왕의 통치연도를 티쉬리~티쉬리역법으로 기록함을 보여줍니다.(S.H.Horn and L.H. Wood, "The Fifth Century Jewsh Calendar at Elephantine"-1954:1-20)
즉 남유다측의 기록은 왕의 통치기간은 티쉬리월력으로.한해의 시작월은 니산월로 기록하는 이중구조의 서술방식을 갖고있던것입니다.
티쉬리월력으로 서술되는 왕들의 통치년의 기록이라면...열왕기내의 기록들은 좀더 명확해집니다.
사실 여호와의 증인이 새로운 봉사년도 시작을 10월로 정한다고 하는 원리도 이 티쉬리월력에 의한것이죠.
이렇게 보면 열왕기하 24장에서 시드기야 원년과 느부갓네살 8년이 일치하는 시점에 대해 알수 있게 됩니다.
사실 바빌론 석판에선 느부갓네살은 제7년에 기슬레달에 '핫티'땅을 향해 출전하여 아달월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고 말합니다.(갈데아 연대기)
이는 바빌론측 기록은 니산월력을 통치년의 시작월로 서술하기때문인것입니다.그러니 니산월력에 의하면 열왕기하 24장은 시드기야 즉위원년시 느부갓네살은 7년으로 서술해야 했을것입니다.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남유다의 기록은 왕의 통치연도를 티쉬리월로 시작하기때문에 느부갓네살의 통치연도를 8년이라 서술하는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협회의 연대기대로 다시한번 시드기야와 느부갓네살의 통치년 구성을 확인해볼까요.
먼저 느부갓네살입니다.
기원전625년 8월 느부갓네살 즉위원년
기원전625년 9~10월 느부갓네살 1년
기원전624년 9~10월 느부갓네살 2년
기원전623년 9~10월 느부갓네살 3년
기원전622년 9~10월 느부갓네살 4년
기원전621년 9~10월 느부갓네살 5년
기원전620년 9~10월 느부갓네살 6년
기원전619년 9~10월 느부갓네살 7년
기원전618년 9~10월 느부갓네살 8년
기원전 617년 '아달월' 느부갓네살 8년 마지막달 (2월중순~3월중순) 예루살렘 함락과 여호야긴 유배
이렇게 티쉬리월력으로 볼때 열왕기의 기록은 매끄럽게 맞아들어갑니다.
. 앞서 서술했듯이 617년의 이 시점은 니산월력으로 볼땐 느부갓네살 7년이 됩니다.니산력으로는 느부 8년과 9년이 공존하는게 아니라 7년과 8년이 공존합니다.
그 회원님이 1년 밀려 쓰셨습니다...
혹시나 이게 무슨말인지 예의 그 옹호회원님이 파악 못할까봐 그 니산월력에 의한 느부갓네살 통치년 서술에 대해서도 올려둡니다.
기원전625년 8월 느부갓네살 즉위원년
기원전624년 3~4월 느부갓네살 1년
기원전623년 3~4월 느부갓네살 2년
기원전622년 3~4월 느부갓네살 3년
기원전621년 3~4월 느부갓네살 4년
기원전620년 3~4월 느부갓네살 5년
기원전619년 3~4월 느부갓네살 6년
기원전618년 3~4월 느부갓네살 7년
기원전 617년 '아달월' 느부갓네살 7년 마지막달 (2월중순~3월중순) 예루살렘 함락과 여호야긴 유배
예..기원전 617년에 니산눨력으로 계수되는 느부갓네살의 통치년은 8년과 9년이 아니라 7년과 8년이 공존하게 되는겁니다.
그리고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가 즉위합니다.그런데 성경은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르던 시기도 좀더 자세히 밝혀줍니다.
역대하 36:10입니다.'세초에' 느부갓네살이..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예루살렘 왕을 삼았더라
이 부분 '세초에'-르흐 트쉬바트 하 샤나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역에선 [해가 바뀔] .라고 되어있죠.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영역에선 at the turn of the year입니다.
이는 결국 니산월을 의미하는것입니다.협회의 연대기로 봐도 617년 아달월에 여호야긴은 끌려가고 다음달 니산월에 시드기야가 즉위한것이죠.
617년 3~4월경 시드기야가 유다왕에 즉위한것입니다.
티쉬리월력으로 보면 617년 9~10월 중순이 되면 그의 즉위 1년이 되겠죠.
617년 3~4월 시드기야 즉위 느부갓네살 8년
617년 9~10월 시드기야 1년 느부갓네살 9년
616년 9~10월 시드기야 2년 느부갓네살 10년
615년 9~10월 시드기야 3년 느부갓네살 11년
614년 9~10월 시드기야 4년 느부갓네살 12년
613년 9~10월 시드기야 5년 느부갓네살 13년
612년 9~10월 시드기야 6년 느부갓네살 14년
611년 9~10월 시드기야 7년 느부갓네살 15년
610년 9~10월 시드기야 8년 느부갓네살 16년
609년 9~10월 시드기야 9년 느부갓네살 17년
608년 9~10월 시드기야 10년 느부갓네살 18년
607년 9~10월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606년 7~8월 예루살렘 멸망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다섯째달 (아브월)
이렇게 되겠군요..
시드기야11년은 607년 9~10월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5째달: 그러니까 아브월(7~8월)에 시드기야의 유배와 함께 함락됩니다.즉..이렇게 보면 협회의 연대기로 보더라도606년 7~8월에 예루살렘은 멸망한다는것입니다.
문제는 예의 니산월력으로 보더라도...협회의 연대기에서 시드기야의 통치연대기로 보면 결국 607년에 안착이 안된다는것입니다.
다시 니산월력에 의한 시드기야의 통치년을 보겠습니다.
617년 3~4월 시드기야 니산월에 즉위(원년)
616년 3~4월 시드기야 1년
615년 3~4월 시드기야 2년
614년 3~4월 시드기야 3년
613년 3~4월 시드기야 4년
612년 3~4월 시드기야 5년
611년 3~4월 시드기야 6년
610년 3~4월 시드기야 7년
609년 3~4월 시드기야 8년
608년 3~4월 시드기야 9년
607년 3~4월 시드기야 10년
606년 3~4월 시드기야 11년-다섯째달 아브월( 현대력 7~8월중순) 예루살렘 멸망
이렇게 될것입니다...어떻게 봐도 구원받기 어려운 연대기같군요..
먼저번 글에서 이 월력까지를 다루게 될것으로 생각지 않았기에 포괄적 설명을 드리는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으나..다시한번 자세히 고대월력을 다루어 설명하게 되었군요.
이들 성구들이 설명하는대로라면, 열왕기가 왕들의 통치년 서술에 티쉬리월력을 사용한다는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리라 보입니다.
물론 에스겔의 경우에도 같은 원리로 티쉬리월력으로 설명했던것이구요.
..위에 설명했듯이 느부갓네살 연대기는 617년애 느부8년과 9년이 같이 성립되는게 아니라는걸 어느 협회의 옹호 회원은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니산월력으로 보더라도 617년엔 느부갓네살 7년과 8년이 공존하는것입니다.
물론 에스겔을 니산월력으로 설명하더라도 그 전의 열왕기와 역대기등의 서술이 확인해주는 연도들 보면 워치타워연대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항상 아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서 전체를 결론지으려 하더군요.. 워치타워협회의 수준을 넘지 않는 역사인식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니산월력이라 한들... 저 역대기의 시드기야 왕 즉위서술을 본다면 저 606년에 귀결되는 연대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것이겠죠.
처음에 606년의 기점을..그리고 기원년 오류로 인한 607년으로의 수정..그러나 전반적 성경연대연구에서 드러나는 고대력의 이해에 다시 뒤쳐지는 워치타워협회의 종말론 연대기.
아직도 이런 허상의 종말예언에 인생을 저당잡히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역사에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첫댓글 결국 워치타워 협회에게 원래 세우던 연대.기원전606년으로 돌아가 다시 연대교리를 세워보는건 어떠한가 권해봅니다.
그렇다면 유대귀환도 다시 원래의 연대대로 기원전536년으로 변경해야겠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것뿐입니다.
교리와 서책의 왔다갔다 이랬다 저랬다 수정역사가 곧 워치타워협회의 역사가 아닙니까..
다만 1차세계대전 발발1914년과 안맞는 문제가 발생하겠으나..1915년에 있던 사건들을 어떻게든 짜맞추면 얼마든지 충성증인들은 납득하리라 생각합니다.'점차 밝아지는 빛'이 무엇이든 그들은 토를 달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협회의 수뇌부 여러분이 그런 편리한 공학적 구조를 잘 만들어놓았으니 말입니다.
잘 정리된 글입니다. 보통은 인문학, 특히 신학의 경우 생계 때문에 잘 찾아보지 않게 되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진입 장벽 때문에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신학 지식은 종교 사기를 면하기 위해 권장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법률을 모르면, 사회에 대해 그저 술먹고 불평만 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어렵지만, 법률을 알면, 시야가 더 트이듯이. 글이 잘 정리가 되어 보기 좋게 되어있네요.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시한부 종말론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WLB) 파괴 및 과도한 기준에 시달리며 성격이 잔인하게 변하는 점, 자기 개발 및 교제에 소홀한 점 등을 사람들이 잘 극복하기 바랍니다.
많은 탈증분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노예로서의 '틀'과 관성에 의한 안정감을 넘어서야 다시금 더 큰 세상이 열리니 그 알껍질의 두려움을 잘 극복해나갔으면 합니다.
아직 다른자료들을 유심히 보느라 연대계산쪽은 잘모르지만 후에 꼭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성가득한 글 감사합니다
외람되지만, 너무 깊이 읽지는 마세요. 애초에 일곱 이레를 여기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무리한 적용입니다. 그 1년,20년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한부 종말론을 위해서 성구를 잘못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년 차이가 나도 워타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세대'안에 종말이 오는 결론이 나면 되니까, 그 정도 차이는 시한을 연장하면 그만이거든요. 시한부 종말. 애초에 그것을 위해서 전혀 관련없는 문구를 시대에 맞지 않게 무리한 적용을 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더 빠른 길이 될수도 있습니다. 더 큰 그림을 보세요.
@미마드레 일곱 이레의 적용이 결국 시한부 종말로 이어지므로, 그 중간 고리 자체가 연결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방법으로요. 시한부 종말 결론이 나면,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과도한 통제를 받아들이게 되는 마음의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이 그들의 시나리오니까요. 학술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이론에 왔다갔다 하기가 쉽습니다. 명백한 결론이 나기도 어렵구요. 학설은 항상 다수설 소수설이 있지, 법정처럼 뚜렷한 판례가 나오기가 좀 더 어렵습니다. 물론, 이성적 조사를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빠르고 큰 그림을 찾기를 권유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이 글은 70년의 적용에 주술처럼 묶이는 증인들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 분에겐 필요치 않은 글입니다..
@stairway stairway님의 의도와 수고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론으로서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워타의 거짓말과 이설(異說)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그 중 자기들에 맞는 이론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워타지만, 사실은 특정 주장 말고도 여러 견해가 존재하는 것을 밝히는 것도, 절대적 이론의 실체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니까요. 저는 조금 대중적이고 빠른 노선을 주로 채택하지만, stairway님의 수고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마드레 하긴 고대 월력까지를 다루어 전체 열왕연대기를 잡아내야 하는 이런정도의 심도를 아무리 탈증회원이라 하더라도 접근하기 부담스러울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 또래만 해도 이 연대문제에 상당히 관심들이 많았었죠..요즘의 증인들은 별 상관도 안한다는데..갠적으론 그런말 들으면
'아니 그럼 뭘 갖고 믿는다는거지?' 이렇게 느끼기도 합니다..그냥 부활하고 영생한다니까 그런줄 알고 믿는걸까요..
이제와서 객관화가 여기저기 가해지면서 더 모르겠다 싶은 상황들도 자꾸만 생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