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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ayer That I Forgot
잊고 있던 기도문
Lord, protect our doubts, because Doubt is a way of praying.
It is Doubt that makes us grow because it forces us to look fearlessly at the many answers that exist to one question.
And in order for this to be possible. . .
주여. 우리의 의심을 지켜주소서.
의심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의심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의 문제에 대한 많은 답들과
두려움 없이 마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Lord, protect our decisions, because making Decisions is a way of praying. Give us the courage, after our doubts,
to be able to choose between one road and another.
May our YES always be a YES, and our NO always be a NO.
Once we have chosen our road,
may we never look back nor allow our soul to be eaten away by remorse.
And in order for this to be possible...
주여, 우리의 결정을 지켜 주소서.
결정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의심을 이기고, 이 길과 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소서. 우리의 긍정이 늘 긍정 이도록,
우리의 부정이 늘 부정 이도록 하소서.
한번 결정한 길은 뒤돌아 보지 않도록,
후회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Lord, protect our actions, because Action is a way of praying.
May our daily bread be the result of the very best that we carry within us. May we, through work and Action, share a little of the love we receive.
And in order for this to be possible. . .
주여, 우리의 행동을 지켜주소서.
행동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우리가 맺는 가장 좋은 열매가 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Lord, protect our dreams, because to Dream is a way of praying.
Make sure that, regardless of our age or our circumstances,
we are capable of keeping alight in our heart the sacred flame
of hope and perseverance. And in order for this to be possible. . .
주여, 우리의 꿈을 지켜주소서. 꿈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나이와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가슴속에 성스러운 희망과
인내의 불씨를 품게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Lord, give us enthusiasm, because Enthusiasm is a way of praying.
It is what binds us to the Heavens and to Earth, to grownups, and to children; it is what tells us that our desires are important and deserve our best efforts. It is Enthusiasm that reaffirms to us that everything is
possible, as long as we are totally committed to what we are doing.
And in order for this to be possible...
주여, 우리에게 열정을 주소서. 열정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를 하늘과 땅, 어른이나 어린아이들과 결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열정은 우리의 욕구가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우어 줍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열정은 재삼 확인해줍니다. 그러기 위하여….
Lord, protect us, because Life is the only way
we have of making manifest Your miracle.
May the earth continue to transform seeds into wheat,
may we continue to transmute wheat into bread.
And this is only possible if we have Love; therefore,
do not leave us in solitude.
Always give us Your company,
and the company of men and women who have doubts,
who act and dream and feel enthusiasm,
and who live each day as if it were totally dedicated to
Your glory. Amen.
주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생명은 우리가 당신의 기적을 다시 펼쳐 보일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까지 그랬듯 땅이 씨앗을 낟알로 여물게 하시고,
밀알을 빵으로 만들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외롭게 하지 마소서.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시며,
의심하고 행동하고 꿈과 열정을 품은 사람들,
매일 매일 당신께 영광 돌리는 삶을 이들과 더불어 함께 하소서.
아멘.
Statutes for the New Millennium
새 천년을 위한 법률
1 We are all different, and should do what we can to remain so.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를 행해야 한다.
2 Each human being was given two possibilities:
action and contemplation. Both lead to the same place.
누구에게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행동과 사유가 그것이다.
행동과 사유는 우리를 같은 곳으로 이끈다.
3 Each human being was given two qualities:
power and the gift. Power directs us towards our destiny;
the gift obliges us to share with others what is best in us.
누구나 두 가지 자질을 가지고 있다. 힘과 재능이 그것이다.
힘은 우리가 운명과 조우하도록 이끌어 주고,
재능은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타인과 나누게 한다.
4 Each human being was given a virtue: the ability to choose.
Anyone who fails to use this virtue transforms it into a curse,
and others will choose for them.
사람은 누구나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화를 불러오고,
선택의 기회는 타인에게 넘어간다.
5 Each human being has his or her own sexual identity and should be able to exercise that identity without guilt as long as they do not force that sexual identity on others.
모든 사람은 성적 정체성을 지닌다.
타인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는 한,
죄의식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6 Every human being has a personal legend to be fulfilled,
and this is our reason for being in the world.
This personal legend manifests itself in our enthusiasm for the task.
누구에게나 이뤄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고,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자아의 신화는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을 통해 구현된다.
7 One can abandon one’s personal legend for a time,
as long as one does not forget about it entirely
and returns to it as soon as possible.
신화의 실현을 잠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그 길에서 벗어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야 한다.
8 Every man has a feminine side, and every woman a masculine side.
It is important to use discipline with intuition,
and to use intuition with objectivity.
모든 남성에겐 여성적인 면이, 모든 여성에겐 남성적인 면이 있다.
원칙을 직관적으로 활용하고,
직관을 객관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9 Every human being should know two languages:
the language of society and the language of signs.
One serves to communicate with other people,
the other serves to understand God’s messages.
모든 이들이 두 가지 언어를 숙지해야 한다.
사회의 언어와 표지의 언어가 그것이다.
하나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10 Every human being has the right to search for happiness,
and by ‘happiness’ is meant something that makes that individual feel content, not necessarily something that makes other people feel content.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이란 나 자신이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
꼭 타인이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1 1 Every human being should keep alive within them the sacred flame of madness, but should behave as a normal person.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광기의 성스러운 불씨를 지니되,
행동은 평범한 사람처럼 해야 한다.
12 Only the following items should be considered to be grave faults:
not respecting another’s rights; allowing oneself to be paralysed by fear; feeling guilty; believing that one does not deserve the good or ill that happens in one’s life; being a coward.
We will love our enemies, but not make alliances with them.
They were placed in our path in order to test our sword,
and we should, out of respect for them, struggle against them.
We will choose our enemies.
다만 다음 행동들은 심각한 과오가 될 수 있다.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것.
가책에 시달릴 행동을 하는 것.
남들에겐 좋은 일만 일어나는 데 자신에게는 나쁜 일만 일어난다고 믿는 것.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것.
적을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의 행동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검을 시험하기 위해 우리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다.
그들을 존중해서라도 주저 없이 대항해 싸워야 한다.
누가 적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정한다.
13 All religions lead to the same God, and all deserve the same respect.
Anyone who chooses a religion is also choosing a collective way of worshipping and sharing the mysteries.
Nevertheless, that person is the only one responsible for his or
her actions along the way and has no right to shift responsibility for any personal decisions on to that religion.
모든 종교는 우리를 같은 신에게로 인도한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똑같이, 거룩하다.
종교를 선택할 때는 신을 경배하고
그 신비를 나누는 방식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그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종교에 미룰 권리가 없다.
14 It is hereby decreed that the wall separating the sacred and the profane be torn down.
From now on, everything is sacred.
이로써 우리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지 않는다.
15 Everything that is done in the present affects the future in the form of consequence and affects the past in the form of redemption.
현재의 모든 행동과 사건은 '결과'라는 형태로
미래에 영향을 미치며,
'반성'이라는 형태로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1 6 All statutes to the contrary are revoked.
이와 반대되는 모든 것은 무효다.
he Warrior and Faith
기도하라, 모든 것이 헛될지라도
Henry James compares experience to a kind of huge spider’s web suspended in the chamber of consciousness and capable of trapping not only what is necessary, but every air-borne particle as well.
헨리 제임스는 경험을 의식의 방에 걸려 있는
거대한 거미줄에 비유한 바 있다.
필요한 것 만 걸리는 게 아니고 공기중의 먼지처럼
미세한 것들까지 다 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Often what we call ‘experience’ is merely the sum of our defeats.
Thus we look ahead with the fear of someone who has already made a lot of mistakes in life and we lack the courage to take the next step.
우리가 '경험'이라 부르는 것들은 실패의 합계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지른 듯
두려움에 가득 차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디딜 용기를 내지 못한다.
At such moments, it is good to remember the words of Lord Salisbury:
‘If you believe the doctors, nothing is wholesome: if you believe the theologians, nothing is innocent: if you believe the soldiers, nothing is safe.’
그럴 때마다 솔즈베리 경의 말을 기억하자.
'의사들 말만 믿으면 위생적인 게 없고,
신학자들 말만 믿으면 죄 아닌 게 없으며,
군인들 말만 믿으면 안전한 곳은 없다.'
It is important to accept one’s passions,
and not to lose one’s enthusiasm for conquests.
They are part of life, and bring joy to all who participate in them.
The warrior of light never loses sight of what endures,
nor of bonds forged over time. He knows how to distinguish
between the transient and the enduring.
자기 안의 열정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감동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은 삶을 이루는 한 부분이고,
그것을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빛의 전사는 오래 지속 되는 것.
오랜 세월을 통해 쌓아온 관계를 결코 소홀이 하지 않는다.
그는 한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구별할 줄 안다.
There comes a moment, however, when his passions suddenly disappear. Despite all his knowledge, he allows himself to be overwhelmed by
despair: from one moment to the next, his faith is not what it was,
things do not happen as he dreamed they would, tragedies occur in unfair and unexpected ways, and he begins to believe that his prayers are not being heeded. He continues to pray and to attend religious services,
but he cannot deceive himself; his heart does not respond as it once did,
and the words seem meaningless.
그러나 돌연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러하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빛의 전사는 절망에 빠져든다.
시시각각 그의 믿음은 변질되고,
일은 그가 꿈꾸던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부당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비극이 일어나고,
그는 자신의 기도가 충분치 않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단히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마음은 전처럼 반응하지 않고 말들은 공허하다.
At such a moment, there is only one possible path to follow:
keep practising. Say your prayers out of duty or fear,
or for some other reason, but keep praying.
Keep on, even if all seems in vain.
그렇다면 이제 남은 길은 한 가지다.
계속 기도하라.
의무감에서든 두려움에서든, 그 어떤 이유로도 상관없다.
그저 계속 기도하라.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더라도 기도하라.
The angel in charge of receiving your words,
and who is also responsible for the joy of faith,
has wandered off somewhere.
However, he will soon be back and will only know where to find you
if he or she hears a prayer or a request from your lips.
우리의 말을 수신하고 믿음의 기쁨을 관장하는 천사가 잠시 소풍을 간 것 뿐이다. 그러나 천사는 곧 돌아올 것이고, 그가 우리를 찾아내려면 늘 입술에 기도나 간청의 말을 올리고 있어야 한다.
According to legend, after an exhausting morning session of prayer in the monastery of Piedra, the novice asked the abbot if prayers brought God closer to mankind.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피에트라 수도원의 긴 아침 기도가 끝난 후
풋내기 수사가 수도원장에게 물었다.
'기도를 통해 인간 존재가 신에게 가까워 질 수 있습니까?'
‘I’m going to reply with another question,’ said the abbot.
'답하는 대신 하나 묻겠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Will all the prayers you say make the sun rise tomorrow?’
'기도가 내일 아침 해를 뜨게 하겠느냐?'
‘Of course not! The sun rises in obedience to a universal law.’
그럴리가 없잖습니까. 해가 뜨는 건 우주의 섭리니까요.'
‘Well, there’s the answer to your question. God is close to us regardless of how much we' The novice was shocked.
'그 말 속에 네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신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가 와는 상관없이'
풋네기 수사는 충격을 받았다.
‘Are you saying that our prayers are useless?’
'말씀인 즉, 우리의 기도가 쓸모 없다는 겁니까?'
‘Absolutely not. If you don’t wake up early enough,
you will never get to see the sunrise.
And although God is always close, if you don’t pray,
you will never manage to feel His presence.’
'절대 그런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해돋이를 볼 수 없듯.
신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Watch and pray: that should be the warrior of light’s motto.
If he only watches, he will start to see ghosts where they don’t exist.
If he only prays, he will not have time to carry out the work that the world so desperately needs.
지켜보고 기도하는 것. 빛의 전사가 늘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지켜보기만 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헛것을 보게 되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온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명을 완수할 시간이 없다.
According to another legend, this time from the Verba Seniorum,
the abbot pastor used to say that Abbot John had prayed so much that he need no longer worry - all his passions had been vanquished.
The abbot pastor’s words reached the ears of one of the wise men in the Monastery of Sceta. He called together the novices after supper.
[베르바 세니오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수도원장 요한이 기도를 통해 근심과 번뇌에서 벗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스케티스의 현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 현자는 형제들을 불러모으고 이야기했다.
*AD 3~5세기에 깨달음을 찾아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가 신 앞에 홀로 단독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사막 교부들의 수행과 깨달음을 담은 지혜의 보고. 국내 출간 제목은 [깨달음](규장).
‘You may have heard it said that Abbot John has no more temptations to conquer,’ he said.
'들었느냐. 수도원장 요한이 모든 세속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However, a lack of struggle weakens the soul. Let us ask the Lord to send Abbot John a great temptation, and if he manages to conquer it, let us ask the Lord to send him another, and another. And when he is once more struggling against temptations, let us pray that he may
never say: “Lord, remove this demon from me.” Let us pray that he asks: “Lord, give me strength to confront evil.’”
'투쟁할 상대가 없으면 영혼도 약해지는 법. 그러니 우리 모두 수도원장에게 강한 유혹을 내려주십사 신께 기도하자. 그가 유혹을 물리치면, 더 큰 유혹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자. 그가 그 유혹을 또다시 이겨내면,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주여, 제게서 사탄을 물리쳐 주소서.'
대신 그가 주께 이렇게 청하기를 기도하자.
'주여, 제게 악을 물리 칠 힘을 주소서'라고.
Transitory Glory
보이지 않는 책
Sic transit gloria mundi.
시크 트란시트 글로리아 문디
That is how St Paul defines the human condition in one of his
Epistles: ‘Thus passes away the glory of the world.’ And yet, knowing this, we all set off in search of recognition for our work. Why? One of Brazil’s greatest poets, Vinicius de Moraes,
says in the words to a song:
사도서간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처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세속의 영광은 덧없다'고. 그러나 사람들은 덧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왜일까?
브라질의 유명한 시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E no entanto e preciso cantar,
mais que nunca e preciso cantar.
[And meanwhile, we must sing,
more than ever, we must sing.]
그럼에도 우리는 노래해야만 하네
그 어느 때보다 더, 노래해야만 하네
Gertrude Stein said that, ‘Arose is a rose is a rose’, but Vinicius de Moraes says only that we must sing. Brilliant. He gives no explanations, no justifications, and uses no metaphors.
근사하지 않은가. 이시는 미국의 작가 거투루트 스타인의 마음과 같은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 그렇게 모라이스는 우리가 단지 노래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설명도, 정당화도, 은유도 사용하지 않는다.
When I stood for the Brazilian Academy of Letters,
I went through the ritual of getting in touch with
the other members, and one academician, Jo sue Montello,
said something rather similar.
He told me: ‘Everyone has a duty to follow the road that passes through his or her village.’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원장에 취임하자 마자 나는 제일 처음 회원들을 하나하나 방문했다.
그때 호수에 몬델루라는 회원이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사는 마을을 지나는 길을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Why? What is there along that road?
What is the force that propels us far from the comfort of all that is familiar and makes us face challenges, even though we know that the glory of the world will pass away?
I believe that this impulse is the search for the meaning of life.
어째서일까? 그래서, 그 길에서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익숙한 안락함을 떨치고 도전에 응하도록 우리를 충동질하는
이 힘은 무엇일까?
지상에서의 삶이 덧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충동 덕분에 우리가 삶의 의미를 좇게 된다고
확신한다.
For many years, I sought a definitive answer to this question in books,
in art, in science, in the many dangerous and comfortable roads I have travelled. I found many answers, some of
which lasted me for years, and others that failed to withstand even a single day’s analysis; and yet none of them was strong enough for me to be able to say: this is the meaning of life.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그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찾아왔다.
책을 읽고, 예술과 학문을 탐구하고, 험한 길이든 편한 길이든
내가 발 디딘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그 답을 구했다.
그리고 많은 답을 찾아냈다.
어떤 것은 몇 년이 흘러도 유효했고,
어떤 것은 단 하루도 넘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보다 더 강렬한 답을 찾은 적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삶의 의미다.'
Now I am convinced that the answer will never be vouchsafed to us in this life, but that,
at the end, when we stand once more before the Creator, we will understand each opportunity
that was offered to us, which we either accepted or rejected.
이제 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창조주 앞에 다시 서는 날, 우리가 잡거나 놓친 기회들을
깨닫게 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리라.
In a sermon of 1890, the pastor Henry Drummond speaks of this encounter with the Creator. He says:
1980년의 한 설교에서 목회자 헨리 드루먼드는 창조주와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The test of man then is not, ‘How have I believed?’
but ‘How have I loved?’ The final test of religion is not religiousness,
but love: not what I have done, not what I have believed,
not what I have achieved, but how I have discharged the common charities of life. Sins of commission in that awful indictment are not even referred to. By what we have not done, by sins of omission , we are judged. It could not be otherwise. For the withholding of love is the negation of the Spirit of Christ, the proof that we never knew Him,
that for us
He lived in vain.
그 순간 인간 존재가 당면하는 가장 큰 질문은
'얼마나 열심히 믿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입니다.
종교의 궁극적 질문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믿었느냐,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얼마나 사랑에 인색했느냐는 것입니다.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추궁 당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헤아리는 것은 우리가 행한 잘못이 아니라,
행하지 않는 선善입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을 내 안에만 가두어 두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혼을 부정한 것이고,
우리가 진정 그를 알지 못했고,
그가 우리에게 베푼 사랑이 무의미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The glory of the world is transitory, and we cannot measure our lives by it, only by the decision we make to follow our personal legend, to believe in our utopias, and to fight for them.
지상에서의 영광은 덧없다. 그것은 우리 삶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자아의 신화를 이룰 것인지,
자신의 유토피아를 믿고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는지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Each of us is the protagonist of our own life, and often it is the anonymous heroes who leave the most enduring marks.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공이다.
또한, 가장 오래갈 발자취를 남기는 이들은
때때로 익명의 영웅들이기도 하다.
A Japanese legend tells how a certain monk, filled with enthusiasm for the beauty of the Chinese book, the Tao te Ching, decided to raise enough money to translate and publish it in
his own language. This took him ten years.
Meanwhile, his country was devastated by a terrible plague,
and the monk decided to use the money he had raised to relieve the suffering of those who were ill. However, as soon as the
situation stabilized, he again set about collecting the money he needed to translate and publish the Tao. Another ten years passed,
and he was just about to publish the book when a tidal
wave left hundreds of people homeless.
The monk again spent the money he had collected,
this time on rebuilding the homes of
those who had lost everything. Another ten years passed;
he collected more money and, finally,
the Japanese people were able to read the Tao te Ching.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깊이 감동한 한 일본 승려가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 출간하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웠다. 그가 [도덕경]을
번역하고 인쇄하는데 필요한 돈을 모으기까지는 꼬박 십여 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무렵, 나라에 역병이 창궐했다. 승려는 모은 돈을 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쓰고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시 십 년 후 책을 인쇄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생겨났다. 승려는 집 잃은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돈을 기부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십 년 동안 돈을 모아 원력을 이루었고,
드디어 일본인들은 [도덕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Wise men say that, in fact, this monk published three editions of the Tao : two invisible and one in print. He believed in his utopia, he fought the good fight, he kept faith with his objective, but he never forgot to look after his fellow human beings. That is how it should be for all of us - sometimes the invisible books, born out of our generosity towards other
people, are as important as those that fill our libraries.
현자들은 말한다.
그 승려는 [도덕경]을 세 권 펴냈다고. 두 권은 보이지 않는 책이고, 한 권은 보이는 책이다. 그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믿었고,
선한 싸움을 계속했고, 목표를 향한 신념을 잃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를 잘 보여준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책, 타인을 향한 관용으로 이루어진 책이
서재에 꽂혀 있는 그 어느 책보다도 중요하다.
The Art of the Sword
마음의 소리
Many centuries ago, in the days of the Samurai, a book was written in Japan about the spiritual art of the sword: Impassive Understanding,
also known as The Treatise of Tahlan, which was the name of its author (who was both a fencing master and a Zen monk). I have adapted a few sections below:
수세기 전 일본 막부 시절, 검도의 정신수련에 대한 한 권의 비전이 씌어졌다.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이라는 이 책을 쓴 저자는 검의 달인이자 선승이었다. 그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Keeping calm.
Anyone who understands the meaning of life knows that things have neither a beginning nor an end, and that there is, therefore, no point in worrying.
고요함을 유지하라.
무릇 삶의 의미를 터득한 자는 모든 일에 끝도 시작도 없음을 알 것이니, 근심할 필요가 없다.
Fight for what you believe in without trying to prove anything to anyone; maintain the same silent calm of
someone who has had the courage to choose his own destiny.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싸우라.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과시하려 하지 말라.
스스로 사명을 선택한 자의 고요함을 유지하라.
This applies to both love and war.
Allowing your heart to be present.
이는 사랑과 전쟁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현존하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Anyone who trusts in his powers of seduction,
in his ability to say the right thing at the right time,
in the correct use of the body, becomes deaf to the ‘voice of the heart’.
This can only be heard when we are in complete harmony with the
world around us, and never when we judge ourselves to be the centre of the universe.
자신의 매력을 과신하고 적재적소에 들어맞는 말을 할 줄 알고 몸을 정확하게 사용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마음의 소리'에 소홀하기 쉽다.
마음의 소리는 우리를 둘러싼 주위와 온전한 조화를 이룰 때만
들리는 법.
자기 중심으로 사고하는 자는 절대 그것을 들을 수 없다.
This applies to both love and war.
Learning to be the other person.
이는 사랑과 전쟁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라.
We are so focused on what we judge to be the best
attitude that we forget something very important:
in order to attain our objectives, we need other people.
It is necessary, therefore, not only to observe the world,
but to imagine ourselves into the skins of other people,
and to learn how to follow their thoughts.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을 최상의 태도를 유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종종 중요한 것을 망각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법.
그러므로 세상을 똑바로 보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This applies to both love and war.
Finding the right master.
이는 사랑과 전쟁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참 스승을 찾으라.
Our path will always cross that of other people who, out of
love or pride, want to teach us something.
How can we distinguish the friend from the manipulator?
The answer is simple: the true teacher is not the one who teaches us the ideal path, but the one who shows us the many ways of reaching the road we need to travel if we are to find our destiny.
Once we have found that road, the teacher cannot help us anymore,
because its challenges are unique.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동기가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든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떻게 참 벗과 협잡꾼을 구별할 것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참 스승은 우리 앞에 이상적인 길을 제시 하지 않는다.
그는 목적에 도달할 길을 찾는 방법을 보여준다.
길을 찾으면 스승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
도전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This applies to neither love nor war,
but unless we understand it, we will never get anywhere.
이는 사랑과 전쟁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곳에도 도달할 수 없다.
Escaping from threats.
위협에서 벗어나라.
We often think that the ideal attitude is that of giving up one’s
life for a dream.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In order to achieve a dream, we need
to preserve our life, and we must, therefore,
know how to avoid those things that threaten us.
우리는 종종 꿈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진실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지키고
위험을 피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The more we plan our steps, the more chance there is that we will go wrong, because we are failing to take into consideration four things:
other people, life’s teachings, passion, and calm.
계획한 바에 다가설수록 실수의 위험은 높아진다.
타인, 삶의 교훈, 열정, 고요함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부터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The more we feel we are in control of things,
the farther off we are from controlling anything.
A threat does not issue any warning,
and a swift reaction cannot be planned like a Sunday afternoon walk.
모든 것을 잘 제어하고 있다고 믿을수록 방심하게 된다.
위험은 경고 없이 다가온다.
갑작스런 대응은 일요일 낮의 산책처럼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Therefore, if you want to be in harmony with your love or with your fight, learn to react rapidly. Through educated observation, do not allow your supposed experience of life to transform you into a machine.
그러니, 사랑이나 전쟁에서 조화를 이루고 싶거든
신속히 반응하는 법을 익혀라.
통찰력을 키움으로써,
쌓아온 경험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실수를 피하라.
Use that experience to listen always to ‘the voice of the heart’.
Even if you do not agree with what that voice is saying,
respect it and follow its advice:
it knows when to act and when to avoid action.
경험을 늘 '마음의 소리'를 듣는 데 활용하라.
설사 그 소리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존중하고 그 조언을 따르라.
마음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있다.
This applies to both love and war.
이는 사랑과 전쟁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The Art of Withdrawal
물러나는 기술
A warrior of light who trusts too much in his intelligence will end up underestimating the power of his opponent.
자신의 총명함을 과신하는 빛의 전사는
결국 상대방의 힘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It is important not to forget that, sometimes,
strength is more effective than strategy.
When we are confronted by a certain kind of violence, no amount of brilliance, argument, intelligence, or charm can avert tragedy.
가끔은 힘이 전술보다 효율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민함이나 토론, 지능, 매력으로도 비극을 막을 수 없는 전투가
있게 마련이다.
That is why the warrior never underestimates brute force.
When it proves too violent, he withdraws from the battlefield until his enemy has exhausted himself.
그러므로 빛의 전사는 결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폭력의 도가 지나칠 경우 그는 적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전장에서 물러나 있다.
However, be very clear about one thing: a warrior of light is never cowardly. Flight might be an excellent form of defence,
but it cannot be used when one is very afraid.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빛의 전사는 어떤 경우에도 비겁하지 않다.
도주는 세련된 방어 수단이지만,
두려움이 클 때 사용할 방법은 아니다.
When in doubt, the warrior prefers to face defeat and then lick his wounds, because he knows that, if he flees, he is giving to the aggressor greater power than he deserves.
자신의 마음에 추호라도 비겁함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면,
전사는 패배를 마주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편을 택한다.
도피하면 실제로 적이 가진 것 보다
더 많은 힘을 그에게 실어주게 되는 까닭이다.
The warrior of light can heal the physical suffering,
but will be eternally pursued by his spiritual weakness.
In difficult and painful times, the warrior faces overwhelming odds with
heroism, resignation, and courage.
그는 알고 있다. 육신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영혼의 나약함은 끝내 떨칠 수 없다는 것을.
어렵고 고통스런 시기에 전사는 영웅심과 인내심, 용기가 뒤섞인,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에 직면한다.
In order to reach the necessary state of mind (since he is entering a battle in which he is at a disadvantage and could suffer greatly),
the warrior of light needs to know exactly what might harm him.
승리의 가능성이 낮고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 전투를 준비하는
전사는, 필요한 정신상태에 이르기 위해 자신이 물리치려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Okakura Kakuzo says in his book on the Japanese tea ceremony:
‘We see the evil in others because we know the evil in ourselves.
We never forgive those who wound us because we believe that we would never be forgiven. We say the painful truth to others
because we want to hide it from ourselves.
We show our strength, so that no one can see our frailty.
That is why, whenever you judge your brother,
be aware that it is you who is in the dock.’
다도의 명인 오카쿠라 가쿠조는 이렇게 썼다.
"우리 안에 악마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타인 안의 악마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우리 역시 그런 경우 용서받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면의 고통스러운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것을 감추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강건함을 과시한다.
누구도 우리의 허약함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때,
피고석에 선 것은 우리 자신임을 깨달아라"
Sometimes, this awareness can avoid a fight that will only bring disadvantages.
Sometimes, however, there is no way out, only an unequal battle.
이런 사실을 되새김으로써 우리는 손실 뿐일 전쟁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불공평한 전쟁 외에 다른 길이 없을 때도 있다.
‘We know we are going to lose,
but our enemy and his violence leave us no alternative,
apart from cowardice, and that is of no interest to us.
At such a moment, it is necessary to accept destiny,
trying to keep in mind a text from the wonderful Bhagavad Gita
(Chapter II, 16 - 26 ):
패할 것이 자명하고, 적과 그가 휘두르는 폭력이 우리에게
오직 비겁함 말고는 다른 여지와 이득을 남기지 않을 때,
우리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 훌륭한 [바가바드기타] 2장 17절~26절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면서.
‘Man is not born, nor does he die.
Having come into existence, he will never cease to be,
because he is eternal and permanent.
‘Just as a man discards old clothes and puts on new clothes, so the soul discards the old body and puts on a new one.
'사람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한번 태어난 존재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나니,
그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
영혼도 늙은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입는다.
‘But the soul is indestructible; swords cannot pierce it,
fire cannot bum it, water cannot wet it, the wind cannot dry it.
It is beyond the power of all these things.
그러나 영혼은 허물 수가 없나니, 검으로 자를 수도 없고,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물로 적실 수도 없고,
바람으로 말릴 수도 없다.
영혼은 이 모든 것들의 힘을 초월한다.
‘Since man is always indestmctible,
he is always victorious (even in his defeats),
and that is why he should never be sad.’
사람이란 이처럼 허물 수 없는 것이니,
그는 (패배한 경우라도) 언제나 승리에 넘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Alone on the Road
오늘이 아름다운 이유
Life is like a great bicycle race, whose aim is to fulfil our personal legend, which, according to the ancient alchemists, is our true mission on earth.
삶이란 자신의 신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긴 자전거 경주와도 같은 것이다.
고대 연금술사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의 진정한 임무다.
We all set off together, sharing friendship and enthusiasm;
but as the race progresses, that initial happiness gives way to the real challenges: tiredness, boredom, doubts about our own abilities.
출발선상에서 우리는 나란히 서서 우정과 열정을 나눈다.
그러나 경주가 진행됨에 따라 최초의 행복은 빛을 잃고,
피곤과 권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등 정말 어려운 일들이
펼쳐진다.
We notice that a few friends have, in their hearts, already given up.
They are still cycling, but only because they cannot stop in the middle of the road.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몇몇 친구들이 사실은 목표를 포기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단지 길 한가운데서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There are more and more of them, pedalling along beside the support vehicle - also known as routine - talking amongst themselves, fulfilling their obligations, but oblivious to the beauties and challenges of the
road.
그들 중 상당수는 '틀에 박힌 일상'이라는 이름의 지원차량 곁에서 페달을 밟으며, 옆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길의 아름다움과 도전은 안중에도 없다.
We eventually leave them behind us, and then we come face to face with loneliness, with unfamiliar bends in the road, and mechanical problems with our bicycle. At a certain stage, after suffering a few falls with no one near at hand to help, we begin to ask ourselves if it’s really worth all the effort.
우리는 결국 그들을 뒤로하고 고독과 마주하게 된다.
낯선 길목이 나타나기도 하고, 자전거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넘어져도 가까이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 몇 차례 고생하고 나면,
이 모든 노력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자문하기도 한다.
Yes, it is. It’s just a question of not giving up.
Father Alan Jones says that in order to overcome these obstacles,
we need four invisible forces: love, death, power and time.
물론 거기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
그러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신학자이자 신부인 앨런 존스는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네 가지 보이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과 죽음, 힘과 시간이 그것이다.
We must love because we ourselves are loved by God.
We must have an awareness of death in order fully to understand life.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우리 역시 신에게서 사랑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인식해야 한다.
We must struggle in order to grow, but without allowing ourselves to be deceived by the power that is gained through that struggle,
because we know that such power is worthless.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투쟁의 과정을 통해 얻은 힘에 속지 말아야 한다.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으니까.
Finally, we must accept that our soul - even though it is eternal - is at this moment caught in the web of time, with all its opportunities and limitations.
마지막으로 우리 영혼이, 비록 영원 불멸하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은 시간이라는 그물에 갇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라는 그물에는 한계와 더불어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Therefore, on our solitary bicycle race,
we must behave as if time existed and do everything we can to value each second, to rest when necessary, but to keep cycling towards
the divine light, and not be put off by any moments of anxiety.
그러므로 고독한 자전거 경주가 계속되는 동안,
여유를 가지는 동시에 매 초를 소중히 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휴식을 취하고,
언제나 신의 빛이 비추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두려운 순간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These four forces cannot be treated as problems to be solved, because they are beyond anyone’s control. We must accept them, and let them teach us what we need to learn.
그 네 가지 힘을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것들은 누군가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고, 그것들로 하여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We live in a universe that is at once vast enough to enclose us,
and small enough to fit inside our heart.
우리는 우리를 모두 품을 만큼 넓고,
우리 마음속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우주 안에 거하고 있다.
In the soul of man is the soul of the world, the silence of wisdom.
사람의 영혼 속에는 세계의 혼과 지혜의 침묵이 깃들어 있다.
As we pedal towards our goal, we must make a point of asking ourselves: ‘What is beautiful about today?’
The sun might be shining, but if it happens to be raining, always remember that this only means that the dark clouds will soon have disappeared.
The clouds do disappear; but the sun remains the same,
and never goes away.
In moments of loneliness,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is.
목표를 향해 페달을 밟으며 우리는 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해가 보이는 날에도, 비가 내린다 해도 기억해야만 한다.
언젠가 먹구름은 사라지리라는 걸.
구름이 걷히면 언제나처럼 해는 그 자리에 나타난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외로울 때,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When things get hard, let us not forget that - independent of race, colour, social situation, beliefs, or culture - everyone has experienced exactly the same.
A lovely prayer written by the Egyptian Sufi master Dhu ‘1-Nun (d. ad 861) neatly sums up the attitude one needs to adopt at such times:
힘겨울 때면 잊지 말도록 하자.
인종, 피부색, 사회적 지위, 종교, 문화는 각각 달라도 모두가 똑같은 상황에 부딪힌다는 것을. 그런 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집트의 수피 제사장 둘 눈이 쓴 아름다운 기도문이 있다.
O God, when I listen to the voices of the animals,
to the sound of the trees, the murmur of the water,
the singing of the birds,
to the rushing of the wind or to the rumble of thunder,
I see in them evidence of Your unity;
I feel that You are supreme power,
supreme knowledge, supreme wisdom, supreme justice.
신이시여, 동물들의 소리에,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물결이 찰랑거리는 소리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바람이 부는 휘파람 소리에, 천둥 치는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저는 하나이신 당신이 존재하시는 증거를 봅니다.
저는 느낍니다. 당신은 가장 큰 힘, 전지전능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정의로우신 분 이라는 것을.
O God, I also recognize you in the difficulties I am experiencing now.
God, let Your satisfaction be my satisfaction, and let me be Your joy,
the joy that a Father takes in his child.
And let me remember You with calmness and determination,
even when it is hard for me to say: I love You.
신이시여,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고난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신이시여, 당신의 만족이 제 만족이게 하시고,
아비가 아들을 볼 때 기꺼워하듯 제가 당신의 기쁨이게 하소서.
고요함과 확신 속에서 당신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The Dangers Besetting the Spiritual Search
영성을 추구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
As people start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things of the spirit,
another phenomenon occurs: a feeling of intolerance towards the spiritual search of others. Every day, I receive magazines, e- mails, letters, and pamphlets, trying to prove that one path is better than another, and
containing a whole series of rules to follow in order to achieve ‘enlightenment’. Given the growing volume of such correspondence,
I have decided to write a little about what I consider
to be the dangers of this search.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타인의 영적 추구에 대해 옹졸해지는 것이다.
나는 매일 잡지와 이메일, 편지, 팸플릿 등을 받는다.
저마다 이 길이 저 길보다 낫다고 입증하려는 내용들이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따라야 할 일련의 규칙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런 정보들이 우후 죽순 늘어나는 까닭에 몇 가지 위험한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Myth 1 : The mind can cure everything
근거 없는 믿음 1. 마음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다.
This is not true, and I prefer to illustrate this particular myth with a story. Some years ago, a friend of mine - deeply involved in the spiritual search - began to feel feverish and ill. She spent the whole night trying to ‘mentalize’ her body, using all the techniques she knew, in order to cure herself purely with the power of the mind. The following day, her children, who were getting worried, urged her to go to the doctor, but she refused, saying that she was ‘purifying’ her spirit. Only when the situation became untenable did she agree to go to the hospital, where she had to have an emergency operation for appendicitis. So, be very careful:
it’s better sometimes to ask God to guide your doctor’s hands than to try to cure yourself alone.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이런 믿음에 대해 한 가지 일화를 예로 들어보겠다.
몇 년 전. 영적 추구에 심취해 있던 한 친구가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녀는 밤새 몸을 '심령화' 하느라 자신이 아는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순전히 정신의 힘만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걱정이 된 자녀들이 의사에게 가기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영혼을 '순화중'이라며 거부했다.
더는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그녀는 병원에 가는 것에 동의했고, 맹장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하기 바란다.
가끔은 신께 우리를 의사에게 안내해 달라고 부탁 드리는 편이
스스로 치유하는 것보다 낫다.
Myth 2 : Red meat drives away the divine light
근거 없는 믿음 2. 육식은 깨달음을 멀리하게 한다.
Obviously, if you belong to a certain religion, you will have to respect established rules - Jews and Muslims, for example, do not eat pork, and, in their case, this practice forms part of their faith.
당신이 특정 종교의 신자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그 종교가 정한 율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대교나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율법을 실천하는 것은 신앙의 일부다.
However, the world is being flooded with a wave of ‘purification through food’.
Radical vegetarians look at people who eat meat as if they had murdered the animal themselves; but, then, aren’t plants living things too?
Nature is a constant cycle of life and death and, one day,
we will be the ones going back into the earth to feed it.
오늘날 세계는 '음식을 통한 순화'의 물결로 넘쳐나고 있다.
급진적인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마치 그 동물을
직접 도살이라도 했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럼 식물에게는 생명이 없는가?
자연은 끊임없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고,
우리 역시 언젠가는 땅을 먹일 거름이 될 것이다.
So if you don’t belong to a religion that forbids certain foods,
eat whatever your organism needs.
그러니 특정 음식을 금지하는 종교에 속해 있지 않다면 당신의
신체기관이 요구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먹으라.
I would like to tell a story about the Russian magus Gurdjieff.
When he was young, he went to visit a great
teacher and, in order to impress him, he ate only vegetables.
러시아의 신비사상가 구르지예프는 젊은 시절
훌륭한 스승의 눈에 들려고 채식만을 고집했다.
One night, the teacher asked him why he kept to such a strict diet.
Gurdjieff replied: ‘In order to keep my body clean.’
그런데 어느 날 밤, 스승은 그에게 왜 그렇게 엄격한 식이요법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The teacher laughed and advised him to stop this practice at once.
If he continued, he would end up like a hothouse flower - very pure,
but incapable of withstanding the challenges of travelling and of life.
그의 대답에 스승은 크게 웃으며 당장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그렇게 계속 하다가는, 깨끗하기는 하지만 삶과 여행이 주는 도전을 감당할 수 없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될 거라고 말하면서.
As Jesus said: ‘It is not what goes into the mouth that defiles a man,
but what comes out of the mouth.’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Myth 3: God is sacrifice
근거 없는 믿음 3. 신의 본질은 희생이다.
Many people seek the path of sacrifice and self-immolation,
stating that we must suffer in this
world in order to find happiness in the next.
Now, if this world is a blessing from God,
why not try to enjoy to the full the delights that life offers us?
많은 사람들이 희생의 길을 찾는다.
다음 생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한다고 믿으며. 그러나 이 세상이 신에게 축복받은 곳이라면,
삶이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선사한 기쁨을 왜 누리려 하지 않는가?
We are very accustomed to the image of Christ nailed to the Cross;
but we forget that his Passion lasted only three days.
The rest of the time he spent travelling, meeting people, eating, drinking, and preaching his message of tolerance, so much so that his first miracle was, in a sense, ‘politically incorrect’,
for when the wine ran out at the Cana wedding,
he turned the water into wine.
He did this, I believe, to demonstrate to us all that there is nothing wrong with being happy, enjoying
yourself, joining in with the party, because God is much closer to us when we are with others.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의 고통이 단지 사흘에 불과했음을 곧잘 잊어버리고 만다.
마지막 사흘을 제외한 평생의 시간 동안 그는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마시고, 사랑의 말씀을 전하며 다녔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
그것이 그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이었고,
딱히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이런 기적을 행한 것은 행복하고,
즐기고, 노는 데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때, 신은 우리에게 더 가까워진다.
Mohammed said: ‘If we are unhappy, we bring unhappiness upon our friends also.’ Buddha, after a long period of trial and renunciation, was so weak that he almost drowned; when he was rescued by a shepherd, he understood that isolation and sacrifice distance us from the
miracle of life.
무함마드는 말했다.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친구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오랜 수도와 금욕에 지쳐 익사할 뻔했던 붓다는 양치기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후,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스스로 고립시키고 희생하는 것이 우리를 삶의 기적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깨달음을.
Myth 4: There is only one path to God
근거 없는 믿음 4. 신에게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다.
This is the most dangerous of all the myths,
for from it spring all the many explanations of the Great Mystery,
as well as religious strife and our tendency to judge our fellow men and
women. We can choose a religion (I, for example, am Catholic),
but we must understand that if our brother chooses a different religion,
he will eventually reach the same point of light that
we are seeking in our spiritual practices.
이것은 모든 근거 없는 믿음 중 가장 위험하다.
바로 거기서 모든 '위대한 신비'의 베일을 벗기려는 해석과 종교
전쟁과 우리 이웃을 멋대로 재단하는 잣대 따위가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내가 가톨릭 신자인 것도 나의 선택이다.
우리는 형제가 다른 종교를 선택했다 해도 이해해야 한다.
그도 결국은 우리가 영적 수련을 통해 찾고 있는 빛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니까.
Finally, it is worth remembering that we cannot shift
responsibility for our decisions onto priest, rabbi, or imam.
We are the ones who build the
road to paradise with each and every one of our actions.
마지막으로, 우리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사제나 랍비, 이맘*에게
미룰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각자의 행동을 통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닦는 사람들이니.
*아랍어로 '지도자' '모범이 될 사람'을 의미함
Some Final Prayers
마지막 기도문
Dhammapada (attributed to Buddha)
법구경
It would be better if, instead of a thousand words,
There was only one, a word that brought Peace.
It would be better if, instead of a thousand poems,
There was only one, a poem that revealed true Beauty
It would be better if, instead of a thousand songs,
There was only one, a song that spread Happiness.
의미 없는 천 마디의 말보다
마음에 평화를 부르는 한 마디 말이기를,
현란한 천 편의 시보다
영혼의 잠을 깨우는 단 한 줄의 시이기를,
귓가를 스쳐가는 천 곡의 노래보다
심금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이기를.
Mevlana Jelaluddin Rumi (thirteenth century)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
Outside, beyond what is right and wrong, there exists a vast field.
We will find each other there.
저 밖에, 옳고 그름 너머 광대한 들판이 존재하느니.
우리는 거기서 만나리라.
The Prophet Mohammed (seventh century)
선지자 무함마드
Oh, Allah, I turn to you because you know everything, even what is hidden.
If what I am doing is good for me and for my religion, for my life now and hereafter, then let that task be easy and blessed.
If what I am doing is bad for me and for my religion, for my life now and hereafter, remove me from that task.
오 알라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고 숨겨진 것도 아시나니
제게 가르쳐주소서.
지금 제가 행하는 일이 지금과 미래의 저 자신과 제 믿음과 제 삶에 유용한 것이라면, 이 일을 수월하게 하시고 축복하소서.
지금 제가 행하는 일이 지금과 미래의 저 자신과 제 믿음과 제 삶에 해로운 것이라면, 제게서 이 일을 거두소서.
Jesus of Nazareth (Matthew 7: 7-8)
나사렛 예수, 마태복음 7장 7~8절
Ask, and it will be given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it will be opened.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구할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Jewish Prayer for Peace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기도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And we shall beat our swords into ploughshares and ou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And none shall be afraid, for the mouth of the Lord of Hosts has spoken.
주의 길을 좇아 우리도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우리의 칼을 쟁기로 바꾸고, 우리의 창을 낫으로 바꾸자.
민족이 민족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고,
더는 전쟁에 대해 배우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니.
Lao Tsu, China (sixth century bc)
중국, 노자
If there is to be peace in the world,
the nations must live in peace.
If there is to be peace among nations,
the cities must not rise up against each other.
If there is to be peace in the cities,
neighbours must understand each other.
If there is to be peace among neighbours,
there must be harmony in the home.
If there is to be peace in the home,
we must each find our own heart.
세상에 평화가 오려면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부족들 간에 싸움이 없어야 한다.
부족들 간에 싸움이 그치려면, 이웃 간에 분란이 없어야 한다.
이웃 간에 분란이 없으려면,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각자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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