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의 한국언어지도
'벼'의 방언형은 크게 '베'계와 '나락'계로 나뉜다. '베'계는 간혹 표준어형인 '벼'로 실현되는 지역이 있고, 또는 '베'와 '벼'가 병존(竝存)하는 지역도 있으나 워낙 산발적이어서 '벼'의 세력은 거의 예외적이라 할 수준이고 거의 모든 지역이 '베'를 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나락'계도 제주도에서 '나록'으로 나타날 뿐 한결같이 '나락'으로 나타난다. '나락'은 일찍이 이덕무(李德懋)의 『寒竹堂涉筆』 <新羅方言>條에 '羅洛'으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은, 그리고 그 분포가 넓은 방언형이다.
'베'계와 '나락'계의 분포상의 특징은 두 어형이 완전히 남북으로 양분되어 분포한다는 점이다. '베'계가 경기, 강원, 충남북에 자리잡아 북부를 거느리고, '나락'이 그 나머지의 남부, 즉 경남북, 전남북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방언권(方言圈)을 나눌 때 중부방언권은 으레 들어가지만 전라도방언과 경상도방언을 묶어 남부방언권을 설정하는 수가 있는데 '벼'의 방언 분포는 그 중부방언권과 남부방언권을 가르는 대표적 예라 할 만하다.
다만 도계(道界)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외적인 곳이 있다. 전북의 <정읍>이 북부의 '베'를 쓰고, 남부 지역에 접해 있는 충남의 <금산>, 충북의 <보은, 옥천, 영동>이 남부계인 '나락'을 취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남북을 선명하게 양분하는 모습이어서 방언경계선을 긋기가 쉬운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벼'의 방언 분포에서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면 지역에 따라 '베'와 '나락'을 다 쓰되 그것들을 의미를 구별해 쓴다는 점이다. 즉 쌀을 찧기 전의 낟알 상태를 특별히 구별하여 '나락'이라 하고 '벼를 벤다, 벼농사, 볏단' 등 그 나머지 상태일 때는 '베'라고 하는 지역이 있는 것이다.
지도에 이를 구별하여 표시하였는데, 애초 질문지에서는 논에 있는 상태의 벼와 이삭에서 턴 후의 열매 상태의 벼를 별개 항목으로 물었던 것을 지도에서 두 질문의 결과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두 방언형의 접촉지대인 충남의 <논산, 대덕, 연기, 청양, 서산>과 충북의 <청원, 진천, 음성>, 그리고 강원도의 <원성, 영월, 삼척> 등이 그러한 지역에 해당한다. 길게 띠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전이지역(轉移地域)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으로 '베'와 '나락' 사이의 의미 분화는 그 전형적인 예의 하나라 할 만하다.(I-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