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나해)
제1독서(다니 12,1-3)는 최후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느님을 잘 섬기던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마치 수난 받는 야훼의 종처럼 고난을 당하였지만(이사 53장), 현명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구원자들의 명부인 생명의 책에 기록될 것입니다(탈출 32,32-33; 시편 69,29). 또한 그들은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끌었기(정의의 스승들이기) 때문에 최후의 날에는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먼지 속에 잠들었다 할지라도 하느님께 성실했다면, 미카엘 대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예언합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에제키엘(37,1-14)과 마카베오(2마카 7,9)처럼 죽은 이들(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잘 알고 있었던 다니엘 예언자가 말하는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이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창공의 광채처럼, 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빛을 내면서 영원히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반대로, 하느님께 불성실함으로써 부끄럽게 살았던 이들은 수치와 치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부활사상이 보편적으로 퍼진 것은 아니지만, 다니엘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에 대한 계시를 정확하게 알아차렸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의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책임과 의무를 어떻게 실현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성실함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복음(마르 13,24-32)은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맞을 최후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부터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13,5.9.23.33.35), 재자들에게 깨어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13,37). 마르코 복음의 공동체는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에 관한 말씀은 물론 거짓 그리스도가 와서 사람들을 속일 것과 박해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이 로마를 상대로 싸웠던 전쟁(66-73년)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네로: 54~68년; 도미시아노: 81-96년)와 연계시켜 이해했습니다(13,7-11). 그래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의 날에 이루어진다는 재난(13장)을 유다인들과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황폐의 흉물”(다니 9,27)이 성전에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의 실현으로 생각했습니다. 황폐의 흉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셀레우코스 제국(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무서웠던 박해(기원전 167년 전후)를 뜻했는데, 그 재난이 재현되는 것으로서 여겼습니다.
제자들이 심판의 날이 언제 어떤 표징으로 나타나겠느냐고 묻자(13,4) 예수님께서는 비록 언제일지 모르지만 하느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제자들 가운데 볼 사람도 있을 텐데(9,1), 마치 무화과 나뭇잎이 돋아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누구든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황폐의 흉물이 나타나는 재난은 마치 빛에서 어둠이, 아랫물에서 윗물이, 마른 땅에서 아랫물이 분리되기 전처럼(창세 1장) 혼란으로 이어질 것인데, “하늘의 별들과 별자리들은 제빛을 내지 못하고 해는 떠올라도 어둡고 달도 제빛을 비추지 못하리라.”(이사 13,10; 34,4; 다니 7,13-14)는 예언과 같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느님의 진노가 펼쳐지는 심판의 날이 오는데, 그날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때에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시어 사방에 흩어져서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끌던 이들을 모아들일 것이라고 합니다(신명 30,4-5; 즈카 2,10).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사방에 흩어진 이들을 모아들이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이 나타나서 자기가 곧 그리스도라고 속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 즉 심판의 날에 오실 사람의 아들을 구분하는 원칙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이어야 합니다.
곧 다가온다고 하는 최후의 날에는 이 세상에서 별처럼 여겨지면서 위세를 떨던 이들이 흔들릴 텐데, 그때가 바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는 날”(13,2: 죽음의 날)이며,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일에 직접 개입하시는 날이라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는 날을 뜻합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가까이 와서 생명의 책에 기록된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게 거저 생명수를 주시려고 문을 두드리시겠다고 하십니다(묵시 3,20; 22,17-19). 또한 구름을 타고 오실 사람의 아들이란 세상을 심판할(요한 12,31) 빛이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말합니다. 그때에는 사람의 아들이 구원의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모으시고,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어둠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조심하고 깨어 있다가 빛이신 그리스도(말씀)를 따라가야만 빛 속에서 걸어갈 수 있고(이사 2,5),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12,35-36).
제2독서(히브 10,11-14.18)는 구약과 신약의 대사제가 봉헌하는 제사를 비교합니다.
히브리인(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구세주가 오시면 자기들의 마음에 새 법을 넣어주시고,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시며, 자기들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새롭게 알게 될 새 계약이 맺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날에 구세주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예레 31,31-34). 그런데도 이들은 새 계약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정의의 스승들이라 부르던 구약시대의 사제들이 제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렸어도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우리를 영원히 구원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구원되길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단 한 번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죄를 없애실 뿐만 아니라 옛 계약을 어긴 죄 값을 영원히 묻지 않으실 새 계약의 제사를 봉헌할 대사제로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옛 계약을 어긴 사람들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시고 새 계약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하느님의 보편적이며 결정적인 구원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신약의 대사제는 심판관으로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셔서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법을 넣어주시고, 인간의 생각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주실 것이며, 용서된 죄들에 대해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10,15-18).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잘 간직한 채 살라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들은 구원자들의 명부인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야 할 사람들이 게으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이라는 표현으로 안타까움과 걱정을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실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설 수 있지만, 한편으로, 심판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씩씩하게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성전 파괴)이 닥쳐올 것이지만,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다른 구세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이 이미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인다면 누가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해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깨어있는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때로는 개혁이 필요했고, 외적인 표시로 밝음과 빛을 뜻하는 흰색 옷을 입기도 했습니다(묵시 3,4-5). 그래서 흰색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께로 향하는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내적인 개혁의 의미로 하느님께서 지금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그 표징을 잘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세상 밖으로 도망칠 것이 아니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리스도라는 빛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라는 희망적인 권고입니다. 자기가 머무르는 곳에서 늘 빛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무서운 재난과 더불어 오시는 주님의 날에도 그분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늘 최후의 심판의 판결과 같습니다(히브 4,12). 빛이신 사람의 아들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2티모 3,15)가 될 것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으로 초대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을 거니는 이들에게 “성경은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2티모 3,16) 심판의 잣대가 될 것입니다. 구원의 말씀은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수는 망치와 같기”(예레 23,29) 때문입니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