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충남 예산에있는 화순옹주 홍문을 찾아 보아고 저절로 머리가 숙여 졌다
홍문은 묘막터 정문 위에 “烈女綏祿大夫月城尉兼五衛都摠莩摠管 贈諡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 上之七年 癸卯一月十二日 特命旌閭(열녀수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공김한신배화순옹주지문 상지7년 계묘 1월12일 특명정려)”라고 판각되었다
(세상의 미련을 버리다. '화순옹주 홍문')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화순옹주(1720 ~ 1758)는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찬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비극에 가까웠다. 충남 예산에 있는 화순옹주 홍문은 그녀의 사후에 정조가 1783년에 열녀문을 세우면서 그녀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애도해주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화순옹주는 영조와 후궁인 정빈 이씨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로 언니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영조의 첫 아들인 효장세자는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불과 9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화순옹주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는 화순옹주를 낳고 나서 이듬해에 병으로 죽었으니 그녀가 의지할 곳은 아버지인 영조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궁궐생활을 하던 화순옹주는 1732년에 영의정 김홍경의 아들인 김한신과 백년 가약을 맺으며 다시금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화순옹주는 불임으로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행복은 39살의 젊은 나이에 김한신이 죽자 세상에 더이상 기댈 곳이 없었던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르게 된다. 이때 영조가 음식을 먹으라고 간절히 권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아 영조는 불효라 여겨 열녀문조차 내리지 않았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화순옹주 홍문에는 건물터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화순옹주는 기댈 혈육도 없었고 김한신이 죽자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한 경험을 다시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부러울 것 없는 왕실에서 태어났지만 실상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넬수 있는 가족이었다.
홍문은 묘막터 정문 위에 “烈女綏祿大夫月城尉兼五衛都摠莩摠管 贈諡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 上之七年 癸卯一月十二日 特命旌閭(열녀수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공김한신배화순옹주지문 상지7년 계묘 1월12일 특명정려)”라고 판각되었다
(세상의 미련을 버리다. '화순옹주 홍문')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화순옹주(1720 ~ 1758)는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찬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비극에 가까웠다. 충남 예산에 있는 화순옹주 홍문은 그녀의 사후에 정조가 1783년에 열녀문을 세우면서 그녀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애도해주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화순옹주는 영조와 후궁인 정빈 이씨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로 언니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영조의 첫 아들인 효장세자는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불과 9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화순옹주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는 화순옹주를 낳고 나서 이듬해에 병으로 죽었으니 그녀가 의지할 곳은 아버지인 영조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궁궐생활을 하던 화순옹주는 1732년에 영의정 김홍경의 아들인 김한신과 백년 가약을 맺으며 다시금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화순옹주는 불임으로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행복은 39살의 젊은 나이에 김한신이 죽자 세상에 더이상 기댈 곳이 없었던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르게 된다. 이때 영조가 음식을 먹으라고 간절히 권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아 영조는 불효라 여겨 열녀문조차 내리지 않았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화순옹주 홍문에는 건물터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화순옹주는 기댈 혈육도 없었고 김한신이 죽자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한 경험을 다시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부러울 것 없는 왕실에서 태어났지만 실상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넬수 있는 가족이었다.
첫댓글 교육자로 감사합니다 ..
맞습니다 ..
따뜻한 말이 제일이지요 ..
말 한마디가 천냥빛을 감는다고 한다는데 말조심해야지



뒤돌아보는글 잘 읽고 감니다 ... ^^
완당 김정희묘와 고택 근처에있는 .....지난번 저도 일행들과 다녀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