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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신학이 왜 중요한가? 오늘 우리에게 왜 신학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인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신학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옥스퍼드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퇴임을 앞두고 들려주는 신학의 핵심!
“보통 그리스도인들과 신학은 아무 상관이 없다”, “신학은 성경에서 이탈한 듯 보인다”에서 “신학은 서양의 발명품이다”, “신학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하다”까지, 신학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날선 비판이 교회 안팎에 만연해 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맥그라스 교수는 신학을 향한 비판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한 자신의 경험도 이따금 털어놓으면서, 신학이 어떻게 우리가 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돕고, 우리의 안녕에 기여하며, 우리의 타고난 경이감에 불꽃을 일으키는지 검토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믿음과 사랑 안에서 자라도록 돕는 신학의 역할을 조명하며, 더 깊은 신앙을 추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풍성한 신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 저자 소개
알리스터 맥그리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으로 21세기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신학자. 1978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1년 같은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와 2013년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옥스퍼드 대학교의 위클리프 홀 학장이자 역사신학 교수로 지내다가 2008년 옥스퍼드 대학교를 떠나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과 선교학, 교육학을 가르치며, 신학·종교·문화 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2013년 앤드레아스 이드레오스 ‘과학 및 종교’ 석좌교수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복귀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의 과학과 종교 분과의 석좌교수이자 이안램지센터의 소장이다. 옥스퍼드에서 자연과학과 지성사, 기독교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과 신학의 상호작용에 관하여 폭넓게 연구하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도킨스의 망상』을 포함하여 신학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는 『신학이란 무엇인가』 등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또한 맥그래스는 그래셤 신학 교수이기도 하다. 이 자리는 당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신학의 공적인 참여를 촉진 하고자 1597년에 개설된 런던시의 공공 교수직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으나, 삶의 궁극적 질문들에 답해 줄 수 없는 과학의 한계와 자유주의 신학의 맹점을 깨달음과 동시에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마이클 그린 등의 저술과 강연을 통해 복음주의의 지적 광대함을 발견한 후 기독교로 회심했다. 대학 기간 내내 UCCF(영국 IVF)에서 활동했으며, 졸업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해 왔다. 자연과학에서 조직신학, 역사신학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한 독보적 복음주의 신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저서로는 『삶을 위한 신학』 『십자가란 무엇인가』 『과학신학』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이상 IVP),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변증』(국제제자훈련원),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새물결플러스), 『신학이란 무엇인가』 『C. S. 루이스』 『내 평생에 가는 길』(이상 복있는사람), 『도킨스의 신』(SFC), 『도킨스의 망상』(살림) 등이 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신학에 관해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몇 가지
1장 신학의 발견: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
상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신학│신앙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기│찰스 테일러: 새로운 (그러나 실재하는) 세계 상상하기
2장 ‘큰 그림’으로서의 신학
기독교 교리들: 홀로 떨어져 있는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큰 그림’: 상황을 하나로 엮어내기│신학적 의견 차이 이해하기│최상의 ‘큰 그림’ 찾기│도로시 세이어즈가 해설하는 성육신│신앙의 풍경을 지도로 그리다
3장 신학에 대한 다섯 가지 비판
신학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해서 연구할 가치가 없다│대다수의 보통 그리스도인들과 신학은 아무 상관이 없다│교회 생활에는 신학이 설 자리가 없다│신학은 성경에서 이탈한 듯 보인다│신학은 서양의 발명품이다
2부 신학이 중요한 이유: 지혜, 안녕, 경이
4장 지혜: 믿음의 깊이 발견하기
칼 포퍼: 세 개의 세계│지혜 안에서 자라감: 신약의 기초│과거의 지혜: 피상성을 없앨 해독제│깊이 더하기: 기독교 구원관을 지도로 그리기│연결하기: 신학,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믿음: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믿음의 어둠: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5장 안녕: 가치와 의미 분별하기
신학과 안녕: 등한시해왔던 ‘의미’의 중요성│연결: 정연하고 의미 있는 세계 발견하기│믿음: 기독교 현실관 안에 거하기│성육신의 중요성│우리 존재의 변화: 성육신 정확히 이해하기│중요한 존재 되기: 기독교와 인간의 가치│마음속 갈망: 충족감 찾기
6장 경이: 삶을 보는 시야 넓히기
경이가 왜 중요한가│주의: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고 존중하기│믿음의 지적 매력│하나님에 관해 말하기: 신비를 보존하다│실패할 수밖에 없는 확실성에 관한 탐구: 토마시 할리크, 믿음과 신비를 연구하다│삼위일체: 신비와 씨름하기│영광에 대한 경험: 신학, 예배, 영성
7장 결론: 신학을 중요하게 만들기
신학 교육에 관하여│신학과 신앙생활│신학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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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1971년, 옥스퍼드대학교 학부생으로서 기독교를 접하기 전까지 나는 신학이란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3년 뒤, C. S. 루이스(1898~1963)가 쓴 〈신학은 시인가?(Is theology poetry?)〉라는 글을 읽으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루이스는 아른아른한 토스카나 풍경처럼 감질날 만큼 어렴풋하되 탐날 만큼 매력 있는 무언가를 내게 살짝 보여주었다. 격조 높은 그의 산문을 곱씹다가 나는 내가 아는 세상 너머의 세계로 끌려가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 p.7
나는 신학이 보물 상자와 같다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신학은 우리의 신앙이 풍요로워지게 해주고, 우리에게 신앙의 가치와 목적을 성찰하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신학이 없다면, 기독교회는 한때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기독교 공동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공동체 안에 있는 일부에게도 시대에 뒤처져 무의미해진 기억과 습관을 지키는 관리자에 불과할 것이다.
--- p.18
신앙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토대로 특정한 방식으로 살겠다는 결정이자 판단이며 신념이다.
--- p.24
신학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기독교의 큰 그림은 그렇지 않았으면 뚜렷한 의미나 의의 없이 세상에 내던져지고 흩어져서 아무 상관 없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였을 생각과 경험에 형태와 표정을 부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이해(큰 그림)는 불확실함과 고통의 문제처럼 복잡한 사안들을 충분히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 p.37
무신론자였을 때 나는 단순하고 따분한 신조들을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조들이 사실은 우리를 불러서 자기들이 가리키는 바를 발견하고 만나게 하는 지도라는 것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 p.52
나는 신학을 ‘기독교 신앙이 깊이 사색하며 거주하는 곳’이라고 칭하고 싶다. 신학은 성경 그리고 성경 본문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오랜 기독교 전통에 기반을 두고 거기서 영양을 공급받는다.
--- p.81
놀랍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동기로 그리스도인 또는 교회의 일원이 되려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교회가 우리의 갈망이 바뀌는 곳이라는 점이다. 작은 선에서 최고의 선으로 갈망의 방향이 바뀐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로운 신자들에게 처음에는 이런 갈망이 없더라도 이 갈망이 그들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 p.84
회중 가운데 나이가 많은 몇몇 사람은 그 설교에 전혀 감명을 받지 못했고, 나중에 내게 괜스레 불만을 토로했다. 의심의 문제는 어떤가? 어려운 성경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그들의 불만은 그 설교가 피상적이라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진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지혜를 얻길 기대했는데, 정작 들은 것은 진부한 말들뿐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깊이 있는 게 필요하다오!”
--- pp.87~88
신학은 기독교 관점에서 무엇이 좋고 의미 있는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 ‘좋은’ 삶으로 안내하는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좋은’ 삶 또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문화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합의된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본질과 목표에 대한 이해, 즉 세계관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가 지적했듯이,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큰 그림이 없으면,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 p.115
이런 고찰은 필연적으로 신학 교육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신학 교육은 갈수록 기술관료를 기르는 과정, 이를테면 목회 및 설교 기술을 습득하고, 교단의 기업 문화를 전수받고, 사전에 정해진 신학적 결론을 배우는 과정처럼 비친다. 그러나 신학적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기술을 배우고 이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우리에겐 지도와 조언 역시 필요하다. 신학 교육은 신앙의 풍경을 발견하고,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은 사람들에게 배우고, 그들의 지혜를 개인적으로 흡수하여 우리의 비전으로 삼는 과정이어야 한다.
--- p.136
그러나 대다수 그리스도인이 삼위일체 교리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교리를 하나님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설교하러 나온 성직자들은 돌연 물의 삼중점(三重點)에 매료된 아마추어 물리학자가 된다. 삼중점이란 고체, 액체, 기체 3상(相)이 모두 평형을 이루어 공존하는 특정 온도와 압력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기독교 신론(神論)의 중심으로 여긴 이유를 이해하는 일과 이것이 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자연계에도 ‘셋이 하나’인 예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설교자들이 이렇게 안이한 허튼소리나 해대면, 이런 설교를 받아먹은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안에서 성장하기가 어렵다.
--- p.164
이 점을 지적한 사람이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자 새라 코클리(1951~)다. 그는 신학 지식에 바탕을 둔 영성 훈련(ask?sis)을 개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훈련 또는 연습은 신학적 원리를 구현할 뿐 아니라 이를 삶에 적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코클리는 ‘침묵 기도’가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에 주목한다. 침묵 기도는 ‘취약성’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하게 하고, 하나님과 신비롭게 연합하길 소망하며 자아와 욕망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 pp.169~170
🖋 출판사 서평
신학이 왜 중요한가? 오늘 우리에게 왜 신학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인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신학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옥스퍼드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퇴임을 앞두고 들려주는 신학의 핵심!
“보통 그리스도인들과 신학은 아무 상관이 없다”, “신학은 성경에서 이탈한 듯 보인다”에서 “신학은 서양의 발명품이다”, “신학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하다”까지, 신학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날선 비판이 교회 안팎에 만연해 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맥그라스 교수는 신학을 향해 던져지는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무신론자에서 회심한 자신의 경험과 신학 공부의 여정도 이따금 털어놓으면서, 신학이 어떻게 우리가 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돕고, 우리의 안녕에 기여하며, 우리의 타고난 경이감에 불꽃을 일으키는지 검토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믿음과 사랑 안에서 자라도록 돕는 신학의 역할을 조명하며, 더 깊은 신앙을 추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풍성한 신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도대체 신학은 무엇하는 학문인가?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저명한 역사신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깊이 탐구해온 신학자로서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저술활동을 이어왔다. 최신작 《신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신학이 도대체 어떤 학문인지, 그 요지는 무엇인지를 다룬다. 오랜 세월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가 보기에 신학은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와 삶의 기초가 되는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들은 풍성하고 귀중한 유산에 등을 돌릴 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상력을 매료시킬 능력마저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기독교회의 생명과 사역과 증언에 신학이 꼭 필요할 뿐 아니라, 교회가 더 광범위한 문화에 참여하는 데도 신학이 필수적”(14쪽)이라고 주장한다.
“옥스퍼드대학교 신학 교수직을 퇴임할 날이 그리 머지않은 지금, 그동안 내가 배운 것들을 조금 나누고 싶다. 물론,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에서 신학이 무엇인지를 탐구할 때, 말하자면 신앙 공동체 안팎의 사람들에게 왜 신학이 여전히 중요한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에 신학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신학이 지혜, 안녕, 경이로움에 관한 더 폭넓은 탐구와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를 탐구할 때 앞에서 제기한 우려들(과 그 밖의 다른 염려들)을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다.”(9-10쪽)
신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큰 그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흔히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개별 교리들을 이해하고 이에 통달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저자 역시 처음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구분된 각각의 칸 안에 교리가 하나씩 들어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신학은 “서로 무관한 신념들을 오목조목 이어놓은 조각보”보다는 “영성, 성경 연구, 변증, 윤리를 아우르는 서로 연결된 사상의 그물망”에 가깝다(37쪽). 신학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큰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이미 초기 그리스도인들부터가 현실을 꿰뚫는 원대한 비전을 믿었고, 그 큰 그림 속에 자신들을 위치시켰다.
신학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신학 자체에 주목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신학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령 기독교 신학은 ‘창조론’과 같은 기독교 교리에 관한 성찰을 제공하며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실은 기독교 신학은 우리가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 즉 “창조론이 제공하는 렌즈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22쪽).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세계를 현미경이 볼 수 있게 해주듯이 신학은 현실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며,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도록 돕는다.
“기독교는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우리를 큰 그림 안에 둔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는 우리가 어떻게 이 원대한 계획에 부합하는지 알아내도록 우리를 초대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는 우리가 이 큰 그림 안에 서 있음을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 우리의 의의와 가치를 이해하는 데 큰 그림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141쪽)
신학이 중요한 이유: 지혜, 안녕, 경이의 탐구
그에 따르면 신학은 복음의 핵심 주제들을 보존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며, 인간 실존을 둘러싼 중대한 질문들에 복음을 대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책의 2부에서는 어떻게 해서 신학이 우리로 하여금 지혜를 얻고 안녕(wellbeing)을 누리게 하는지, 경탄하는 능력을 일깨우는지를 하나하나 탐구한다. 예를 들어 4장에서는 왜 성경에서 ‘치유’ ‘보속’ ‘희생 제물’ ‘입양’과 같은 서로 다른 구원 은유가 나타나는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 비유들을 신학을 통해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지혜의 중요한 한 측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둡고 적대적일 때가 많은 세상을 여행할 때 사용할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신학의 모습을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예로 들어가면서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지혜로워지는 데 신학은 어떤 도움이 될까?
... 신학은 이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위치를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학은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고 그 목표를 이룰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85-86쪽) 이어지는 5장과 6장에서는 각각 ‘안녕’과 ‘경이’의 탐구에 신학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신학을 읽으며 신학이 우리의 삶과 유리된 어떤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C. S. 루이스부터 새라 코클리까지, 신학 공부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이 책에서는 성경과 교부들의 글에서 현대의 작품까지 풍부한 문헌들이 소개되며 다양한 신학자와 작가들이 호명는데,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현대의 저자들이다. 그중에는 그가 신학 공부의 길에서 가장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 C. S. 루이스를 비롯해 카를 바르트, 제임스 패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찰스 테일러처럼 잘 알려진 이들도 있지만, 공공철학자 메리 미즐리나 캐럴 해리슨, 체코의 가톨릭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처럼 다소 생소한 이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를 읽는 것만으로도 현대 신학사상의 주요한 흐름을 맛볼 수 있는데, 인용되는 학자들의 책을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교회는 다녀도 신학에는 의심과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 “신학에 호기심은 느끼지만 이해가 안 돼서 머리를 쥐어짜는 사람들, 모호하고 불확실해 보이는 일들을 어쩌면 저렇게 명백한 확신을 내뿜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자 씨름하는 사람들”(9쪽)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신앙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만 신학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신학교에서는 물론, 공동체의 독서 모임 등에서도 두루 읽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