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5일 (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마르.8,1-10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 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 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 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 누어 주었다.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 라고 이르셨다.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 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작은 착오가 있었습니다. 본당 새 신자 분과 모임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분과장과 5시 40분에 성당에서 만나서 모임 장소로 가기로 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에게 시간 되는지 물어보니 시간 된다고 해서 직접 모임 장소로 6시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당일 아침 미사에서 분과장은 부주임 신부님에게 ‘신부님도 오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예 저도 갑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분과장님은 그때 부주임 신부님이 저랑 같이 온다고 말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전날 제게 들은 말이 있어서 약속 장소로 간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기다리다가 분과장에게 전화했더니 3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성당으로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분과장님은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행히 약속 장소가 성당에서 멀지 않아서 부주임 신부님이 와서 함께 갔습니다. 말은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것 같습니다.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본인의 생각대로 들으면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1992년이니 33년 전의 일입니다. 동창 신부님들과 진부령에 있는 스키장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동창 신부님 한 명은 일이 있어서 따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진부령으로 와야 하는데 오대산이 있는 ‘진부’로 갔습니다. 오대산의 진부는 설악산의 진부령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습니다. 늦은 밤 신부님은 택시 타고 진부령의 숙소로 왔습니다.
2004년이니 21년 전의 일입니다. 사목국 신부님들이 양평의 한화 콘도에서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신부님 한 명이 일이 있어서 따로 온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양평 한화 콘도에서 회의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 마침, 신부님이 전화했습니다. 방 호수가 몇 번인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705호라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705호는 없다며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은 용인 한화 콘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양평 한화 콘도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용인에서 양평까지 다시 와야 했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단순히 아담의 물리적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상태,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관해 묻는 말입니다. 오늘,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숨은 상황에서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께서는 이미 아담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단순히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려는 의도를 가지셨습니다. 이 질문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줍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하느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길을 잃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상징합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구약에서 시작되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구약의 아담이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뜨렸다면,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서 이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단절된 모든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을 대신 짊어진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의 질문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 봅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죄와 무관심 속에서 하느님과 멀어져 있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찾고 사랑하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단지 창세기의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평화와 기쁨의 시작입니다. 회개와 용서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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