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자신
도플갱어 Doppelganger는 독일다. doppel은 영어의 double, ganger는 영어의 goer로,
직역하면 '똑같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닮은 사람, 분신, 때로는 생령을 뜻한다.
도플갱어는 자신이 직접 마주치기도 하지만 타인이 무관한 장소에서 목격할 때도 있다.
세계 각처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 현상은 일반적으로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목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을 쏙 빼닮은 도플갱어와의 만남은 죽음의 전조라는 미신도 뿌리 깊다.
◆ 가지각색의 도플갱어 이야기
미국과 유럽의 도플갱어 관련 기록은 19세기 중반 이후 현저히 증가한다. 도플갱어의
유행에는 초자연 현상과 강령술의 높은 인기도 한몫했을 테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비롯하여 도스토옙스키, 데이비드 로런스, 에드거 앨런 포,
오스카 와일드 등의 작품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플갱어를 직접 목격한 사람 중에는 저명한 인물도 여럿 있다. 영국 시인 퍼시 비시 셸리
(1792~1822)는 자신의 도플갱어가 아내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자가)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얼마 후 도플갱어는 다시 나타나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셈이냐며 호통쳤다. 퍼시는 2주 뒤에 죽었다. 보트 전복 사고로 인한 익사였다.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도플갱어는 그의 서재에 급히 들어오더니 집필하던
소설의 다음 이야기를 받아쓰게 하고는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모파상은 선천성 매독이
악화하여 다량의 마약을 진통제로 복용했기 때문에 환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1809~1865)은 첫 대통령 선거 당시 거울에 비친
2명의 자신을 보았다. 영국 전함 빅토리아호의 사령관 조지 트라이언 중장(1832-1893)은
시리아 연안에서 함대훈련을 지휘하던 중에 발생한 충돌 사고로 선원 357명과 함께 바다에
수장되었다. 마침 같은 시간 그의 아내는 런던의 저택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초대객 여럿이
군복 차림의 중장을 방금 마주쳤다고 증언했다. 물론 사고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사례는 대부분 구전되었다. 셸리가 이렇게 말했다. 링컨에게 들었다. 하는 식이다.
직접 남긴 기록이 없으면 못 믿겠다고? 그런 사례도 있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가 자서전 《시와 진실》에 남긴 도플갱어
목격담이다. 젊은 괴테는 말을 타고 연인에게 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연회색 옷을 입은
도플갱어가 말을 타고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몹시 놀랐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8년 후 괴테는
같은 길을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말을 타고 지나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그때 만난 도플갱어와 똑같은 연회색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도플갱어 이야기는 가지각색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사실 유령 이야기에 비하면
그 수는 훨씬 적다. 왜일까? 자신이 자신을 봤을 때 느끼는 충격은 유령을 봤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기 때문 아닐까. 유령 따위를 봤을 때 보다 훨씬 무섭기 때문 아닐까.
- 황혜연 역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