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가 집을 짓고
7/27(수) 잠 9:1-12
(잠 9:1)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잠 9: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잠 9:3)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잠 9:4)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잠 9: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잠 9: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잠 9: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잠 9: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 9: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잠 9: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잠 9:1-12 / [지혜가 부르거든] 지혜가 집을 짓는다. 기둥을 수도 없이 많이 세워 튼튼하게 집을 짓는다. 2) 아름답게 꾸며 놓은 그 집안에 온갖 짐승을 다 잡아 맛있게 요리해 놓고 침이 절로 넘어가는 포도주까지 곁들여 상을 차려 놓았다. 3) 여종들을 내보내어 손님들을 맞으라 한다. 마을 언덕 높은 곳에 올라가서 소리치라 이른다. 4)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이여, 우리 집으로들 오시오' 멍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손님으로 초청하라고 일렀다. 5) `여보시오, 어서 갑시다. 내가 차려 놓은 음식을 함께 듭시다. 내가 내놓은 포도주도 함께 듭시다. 6) 이제부터는 더 이상 어리석게 살지 맙시다. 멍청하게 살지 맙시다. 우리도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게 아니오? 세상 이치를 깨달아 슬기롭게 살아갑시다. 그래야 그 길이 복된 길이 아니겠소?' 7)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체 우쭐대는 자들은 아예 꾸짖을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런 자를 꾸짖었다가는 도리어 봉변을 당하기 일쑤이다. 못된 일만 꾸미고 돌아다니는 녀석을 꾸짖었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게 마련이다. 8) 그러니 잘난체하고 우쭐대는 것들을 꾸짖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그들이 너를 미워할까 두렵다. 세상은 묘해서, 슬기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꾸짖으면 오히려 그 사람이 고마워하고 너를 아낄 것이다. 9)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나무라면 그 사람은 더욱더 슬기롭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올바른 일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가르치면 더욱더 옳은 일에 힘쓸 것이다. 10)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느냐? 그거야 두말할 것도 없이 여호와 모시고 사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여호와를 무서워해야 하는 법. 거룩한 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는 것, 곧 그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11) 나 지혜를 네 것으로 삼으면 네 목숨이 길어지리라. 하늘이 내리신 천수를 다 누리고 살 수 있으리라. 12) 네가 진정으로 슬기롭게 살아간다면 그 슬기로움이 모든 사람들에게 덕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저만 잘난 듯이 살아가다가는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본문은 지혜로운 여인의 초청과 지혜를 흉내낸 미련한 여인의 초청을 비유로 말하며 지혜를 추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1-6) / 지혜는 일곱 기둥의 집을 짓고, 건축을 축하하는 큰 잔치의 초청장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여종을 보냅니다. 집을 건축한다는 의미는 우주의 창조에서부터 왕궁이나 성전의 건축, 학교의 교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왔습니다. 본 절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힘으로써 우주를 시작하고, 생명이 가득 차도록 우주를 보존하며, 지혜를 배우려는 자들에게 생명과 행복을 제공합니다. 일곱 기둥은 기능적인 것보다는 상징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기둥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방대한 크기의 건축물을 제시하며, 지혜의 활동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는 일은 우주적인 상징을 가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이해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잘 건축된 우주를 만든 창조자라는 것입니다. 건축 활동을 끝낼 때 지혜는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혼합하여 큰 잔치를 마련합니다. 고기와 포도주는 축제와 관련된 음식입니다.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 중 높은 곳에서 지혜 없는 자에게 자신의 풍요로운 잔치에 참여하여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과 명철을 얻으라고 초청합니다.
명철함과 거만함의 결과(7-12) / 지혜는 거만한 자를 징계하고 악인을 책망합니다. 징계라는 말은 훈련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공부, 묵상, 그리고 경건의 훈련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거만한 자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부도덕과 경솔함 때문에 지혜를 배울 수 없고 의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통하여 형성되는 갈망이나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의로운 자라 할지라도 별도의 가르침을 받고 지혜와 의를 평생 추구해야 합니다. 아무도 완전하고 완벽한 지식과 인격의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다시 지혜 있는 자에게 지혜를 추구하라는 초청을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즉 여호와가 창조주요 생명을 유지하고 지혜를 제공하는 자라는 확증을 통하여 지혜는 추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지혜는 자연적인 지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서 통찰력뿐만 아니라 인생의 날이 많아지고 생명을 더하게 할 것이요 거만한 자는 거만의 결과로 해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적용: 지혜와 어리석음과 거만의 차이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자세, 삶의 자세입니다.
호박벌은 몸길이가 평균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졌습니다. 그런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1초에 250번 날갯짓을 해서 하루 평균 2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곤충입니다. 체구에 비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입니다. 사실 호박벌은 날 수 없는 신체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몸통은 크고 뚱뚱한 데 비해, 날개는 작고 가벼워서 날기는커녕 떠 있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비행을 합니다.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호박벌의 비행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으겠다는 일념이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 설 교 >
지혜를 얻고 어리석음을 버려라
잠언 9:1-12 / 김두옥 목사
- 정말 긴~장마와 한여름의 무더운 계절이지만, 8월은 생애에 최고의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특히 올해는 세계적 재앙인 ‘코로나19’와 긴 장마의 7월을 지나고 새로이 시작하는 8월 첫날 주말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전염병과 긴 장마와 한 여름의 휴가시전이지만, 교회 행사에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 세계적 경제 펜데믹으로 인하여 많은 고난과 역경을 잘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찬양으로 넘쳐나게 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이 빨리 극복 되도록 주말을 잘 준비하고 거룩한 첫 주일 예배에 위로와 소망을 가져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문 이해와 요약 ◑◑◑
◗ 9장에서는 솔로몬은 계속해서 지혜를 귀부인으로 인격화하여 잘 묘사 해 왔습니다.
- 이러한 지혜의 인격화된 본문을 총 정리하는 것으로서,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창조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역하였던 지혜가 세상에 내려와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여기에서 지혜는 아주 훌륭하고 관대한 여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하는 지혜입니다.
- 말씀이신 하나님이 바로 이 지혜이시며, 아버지께서는 심판을 모두 그에게 위임하셨습니다.
- '지혜'라는 말은 여기서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지혜의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에게 찾아와 그들을 온전히 생명으로 초대합니다.
- 지혜와 음녀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제 각 절의 의미와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의 거처에 마음을 두고 거기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 그리고 2절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구원의 자리로 나올 것을 초청하십니다.
- 한편 6절에서 성도는 버릴 것을 버린 후에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 그리고 7절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그리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합니다.
- 또한 9절에서 겸손과 순종으로 지혜의 선순환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그리고 10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식될 때 인생은 비로소 지혜로워집니다.
- 본문의 마지막에 11절에서 성도는 참되고 온전한 장수의 복 보다 천국에서 누릴 영생을 사모해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앞에서 나온 음란에 대한 구절들과 함께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현 시대가 순간의 쾌락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 된 주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벗어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겸손으로 순종하면 플러스 인생 된다.(잠언9장 9,10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는 겸손과 순종으로 지혜의 선순환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9,10절을 살펴보면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먼저 지혜 있는 자란 7, 8절에서 언급한 거만한 자와 반대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의 소유자를 의미하는 말이며, 또한 지혜의 가치를 알고 지혜의 말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겸손함의 소유자를 말씀합니다.
- 그런데 솔로몬은 거만하고 악한 자들 즉 지혜가 없어 교만함에 빠진 인생을 깨우치지 말고 오히려 지혜를 가진 자들을 책망하고 교훈을 더하고 가르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사실 이것은 매우 잘못 된 논리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이것은 지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잘못 된 생각입니다.
- 무엇보다 지혜가 가르치는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 대한 경외는 하나님이 창조적 능력을 통해 일하시는 물절적, 도덕적 법칙과 우주의 기본 원칙에 순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보편적인 법칙들을 지배하시고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높이는 자세야말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근본 자세로 살아야 할 지혜입니다.
-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내야하는 것입니다.
- 잠언에서 어리석은 자와 거만과 교만한자 또한 미련한 자 와 우둔한 자는 한결같이 지혜의 말씀에 불순종으로 넘어지고 음녀에 빠지는 경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있었는데, 거룩하신 자를 안다는 것은 사변적인 아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겸손히 순종하고 경외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 그런즉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은 본 절의 앞부분에서 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동일한 말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신 지식을 알고 또 믿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 앞에 어떤 자세로 섬기고 있는지? 지혜는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 하는지? 그리고 지혜를 가진 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혜가 약속하는 축복은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겸손으로 순종하면 플러스 인생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하는 지혜는 자신의 거만과 교만을 내려 놓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7장6절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그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인간에게는 무익한 것이듯 지혜의 가치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거만하여 그것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귀한 지혜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무용지물이기에 내어 줄 필요조차 없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반면 지혜의 가치를 아는 자라면, 아무리 작은 지혜라 할지라도 분명 그것을 깨우치고 더욱 복되고 아름답게 사용할 것입니다.
- 그래서 그들에게는 더 많은 지혜, 더 온전한 가르침, 더 선하고 복된 소식을 전하고 그것으로 양육 받고 훈련을 통하여 연단 받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가끔 해외 토픽을 통해 고물상이나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과거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나 도자기, 악기 등의 가치가 드러나는 일들을 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 그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갔음에도 그 누구도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해 애물단지처럼 취급하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에 의해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 것입니다.
-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한다면, 수백억의 골동품을 들고서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물단지나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 그 지혜로운 말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그 가치를 발견하여 그것을 끄집어내어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사람처럼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지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전도서12장 11절에서 “지혜 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끊임없는 지혜의 성장을 이루는 지혜의 선순환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7장 24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교만과 거만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를 얻을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무지함 속에 머물게 함으로 결국 불순종으로 파멸에 이르는 악순환에 처하게 합니다.
- 그러나 겸손함으로 지혜에 순종하는 자는 받은 교훈에 교훈이 더해지고, 학식이 더해져서 더 큰 지혜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을 얻고 플러스 인생을 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언제나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항상 순종함으로 날마다 새롭게 성장하고,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혜의 종류
잠언 9:10
이제는 지혜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생활의 지혜가 있습니다. 처세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이 지혜는 학교 교육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의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배우는 지혜입니다. 경험에서 얻어지는 지혜입니다.
4년 전 동아일보(98. 11. 23)에 게재된 이야기입니다. 대신증권 목포지점 차장 31세 장○○씨는 연봉이 3,500만원이었는데 성과금으로는 50억을 받았다는 보도였습니다. 세금 20억을 제하고도 순수입이 30억원입니다. 하루에 2,000만원을 벌었다는 계산입니다. 그는 목포상고 졸업 후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는데 대신증권에는 85년에 입사한 후 89년부터 목포지점에 발령 받아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혜는 학력과 관계없습니다.
특히 믿음을 가진 우리는 생활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자가 됩니다. 먼저 가정에서는 지혜 있는 부모님, 지혜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 있는 며느리,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서도 지혜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칭찬 받는 자가 됩니다. 고임 받는 자가 됩니다.
저는 과천교회에서 시무한 25년 동안, 목회의 중심(Focus)을 전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일선전도대도 만들어졌고, 일년에 두 번씩 반드시 총동원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대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도목회는 신학대학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목회하면서 체득한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부흥해야 한다고 믿으니 방법이 나왔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전도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부목사나 전도사로 있었던 교역자들은 다른 임지로 가서 우리 과천교회에서 했던대로 합니다. 전도를 모든 목회의 우선 순위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양적 부흥입니다. 양육하면 질적 부흥이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배워서 내 것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우리 교회의 일선전도대에 와서 전도훈련을 받고 본 교회에서 적용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크게 열매를 맺지만 어떤 교회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가 없는 교회는 배운 대로 하지 않고 자기의 주관을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목회의 중심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 없는 사람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은 잘 하는데 자신은 잘 되지 않으면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잘 되는 사람의 원인과 내가 안되는 원인을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고집스럽게 계속 내 방식대로만 고수하면 안됩니다. '나는 왜 안되는가? 내 가게에는 왜 손님이 오지 않는가? 고객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등을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후 고칠 점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쳐야 합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 난 후 타 교회의 장점을 눈여겨보고 반드시 배우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적용해봅니다. 지금도 그런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변함 없습니다. 교구 목사님과 전도사님 여러분들은 '내게 맡겨진 교구나 교회학교를 어떻게 하면 부흥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은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20여년 전에 서울 시내에 있는 120여명 모이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서울시내 교회에 담임목사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을 때입니다. 목사 숫자는 많고 교회 숫자는 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8년을 시무하는 동안 교회에 부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출석교인이 여전히 120명입니다. 목사님은 교회 시무에 권태를 느꼈습니다. 교인들도 목사님의 목회에 권태를 느꼈습니다. 목사님은 사임을 했습니다. 나이는 이미 60세 중반을 넘겨버렸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다시 목회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입니다. 그 목사님은 문제를 파악하여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결국 교회부흥에 실패하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교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어느 부자가 회갑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잔치 며칠 전부터 냄새를 풍기며 음식준비에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잔칫날 당일이 되자 주인은 남자 하인들을 전부 오라고 하더니 오늘은 밖에 나올 생각하지 말고 창고에 들어가 하루 종일 가늘고 튼튼하게 새끼를 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창고 문을 밖에서 잠궈 버렸습니다. 그랬으니 하인들의 불평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무리 인권이 없던 시대라 할지라도 음식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하루종일 굶으면서 새끼를 꼬고 있으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한 쪽은 주인에게 무슨 뜻이 있나 보다 하고 지혜롭게 순종하는 사람과 불평하며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혼자 그러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선동합니다. 그래서 편당을 짓습니다. 그러나 저녁시간이 되었을 때 그 결과는 다릅니다. 주인은 창고 문을 열고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꼰 새끼에 엽전을 끼워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가지고 가거라"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새끼줄을 튼튼하고 길게 꼰 사람은 많은 돈을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며 게을리 일한 자들은 엽전 몇 개 달랑달랑 새끼 끝에 끼어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은 돈이 없어 가족들을 데리고 자유를 찾아 갈 수도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승리하고 성공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합니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세상이 얼마나 어려워졌습니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가 승리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기도할 때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욥기 28장 28절입니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시편 111편 10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잠언 9장 10절입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미가서 6장 9절입니다.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지혜가 많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지식도 그렇습니다. 세상 재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식은 참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재물은 죄악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혜는 교만의 무기가 됩니다. 참 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인간들이 불행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도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죄인 된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믿기만 하면 죄 씻음 받습니다. 깨끗하게 됩니다. 정결하게 됩니다. 눈과 같이 희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무리 세상 권세가 있어도 하나님을 모르면 참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닙니다. 큰 재물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죄짓는 도구로 사용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 지혜를 가진 자가 됩니다.
2003년도를 시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참 지혜이십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지혜이십니다. 참 지혜 되시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분들에게 전도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삶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지혜란?
잠 9:10-12 / 박경호 목사 (차타누가열린교회)
🎯잠언 9장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 For through me your days will be many, and years will be added to your life.
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 If you are wise, your wisdom will reward you; if you are a mocker, you alone will suffer."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잠언 9장 10절 말씀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종종 우리는 잠언에서 나타난 지혜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실 이런 이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혜롭다는 것이 똑똑하다, 지식이 많다, 두뇌 회전이 빠르다, 명석하다, 영민하다, 쉽게 알아듣는다는 등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거나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지혜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와 다릅니다. 이 단어는 신앙적인 배경과 상황 속에서 쓰여진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이 이해하는 지혜는 이 땅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과 위험과 위기를 예지하여 피할 수 있는 능력이나 혹은 좋은 선택과 바른 길을 알아내는 능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를 정의 하면 '지혜란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이 신적 선물로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적으로는 얻을 수 있거나 찾을 수 있거나 발견하거나 노력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의 뜻인 경건한 선택이란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가질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는 늘 신앙적인 면에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은혜로 설명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이 말하는 지혜란 의미를 알고 본문을 지혜라는 뜻을 대입해서 설명하면 이런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시작이다.'
이 말씀이 하고자 하는 것은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부터 그분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된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결정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 다음 내용들은 이 지혜를 더욱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의 하반절에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앞의 말의 반복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룩하신 자를 안다는 것입니다. 이 안다는 말은 지식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확신에서 나온 앎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 그를 알 수 없으며 그분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그분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없는 삶인 것입니다.
11절은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나 지혜로 인하여 너의 날들이 많아지고 너의 생명의 년수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혜 즉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복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복인지를 오늘날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날들이 많아지고 생명의 년들이 더해지는 것은 경건한 선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사는 복된 우리의 삶에 대한 내용이며 그분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신자들이 누리게 될 영생을 기대해도 좋은 것입니다.
12절 말씀은 지혜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만약 네가 지혜로우면 너는 네 자신을 위해 지혜롭다'라는 뜻인데, 이 말은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혜 즉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그 지혜가 자신의 영혼에 얼마나 유익을 주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만하면 홀로 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말은 지혜가 없는 자는 그 지혜 없음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며 자신에게 해롭게 될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약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자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부족하다는 말은 있어야 될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으면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경건한 삶을 요구하며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야고보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함은 분명히 주신다는 약속하에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확신 속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구하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후히 주신다는 것은 원어의 의미는 관대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지혜가 없음에 대하여 책망하거나 혼을 내거나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그분은 후하게 아낌없이 주시며 결코 꾸짖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선택의 능력을 키우십시오.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어떤 것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내 영혼을 위한 바른 선택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무관심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 채워져 영적 성숙에 이르는 삶이 되십시오.
구약의 지혜서(욥기,잠언,전도서)는 왜 쓰였을까?
잠 9:1-12 / 정병진 목사
구약성경은 모세오경, 역사서, 선지서, 시가서로 분류되는데, 시가서에는 지혜서(욥기,잠언,전도서)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왜 시가서 5권(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 가운데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만을 '지혜서'라고 부르는가? 그리고 잠언을 읽다보면 고대근동과 이집트의 지혜문학과도 일치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세상의 지혜문학과 성경의 지혜서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구약의 지혜서들이 들려주려고 애쓰는 음성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구약성경 가운데 지혜서가 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의 유익한 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구약성경 가운데 "지혜서"라는 책들이 있다. 여기에는 3권의 성경책 곧 "욥기, 잠언, 전도서"가 있다. 구약성경은 크게 "모세오경, 역사서, 선지서(예언서), 시가서"로 분류하는데, 그중에 지혜서는 네 번째 그룹인 '시가서' 안에 속한다. 네 번째 그룹인 시가서에는 5권의 책이 있으며, 그 책으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가 있다. 이것들 중에서 욥기과 잠언과 전도서 3권을 따로 "지혜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참고로, 로마카톨릭에서는 이 세 권의 성경책 외에도 두 권의 외경(지혜서와 집회서)를 더해서, 5권을 지혜서라고 포함시키고 있다. 오늘은 이것들 가운데 욥기, 잠언(마샬), 전도서(코헬렛)를 왜 지혜서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3권의 지혜서는 세상의 지혜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지혜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에게 지혜서는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2. 욥기, 잠언, 전도서를 왜 지혜서라고 부르는가?
'지혜서'라 함은 구약성경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참된 지혜들을 모아놓은 지혜의 문학책들을 일컫는 말로서,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푸는 열쇠로서 지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특히 구약성경 가운데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는 그러한 지혜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책 내용에도 "지혜(호크마)"라는 단어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시편의 일부도 지혜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시111:10).
3. 세상의 지혜서적들과 성경의 지혜서는 어떻게 다른가?
세상의 지혜서적들과 성경의 지혜서는 그 내용이 많은 부분에서 사실 겹친다. 다시 말해, 바벨론의 지혜서적들이나 이집트의 지혜서적들을 가져다가 성경의 잠언서와 비교해보면 대동소이한 교훈들이 많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지혜서적들과 성경에 있는 지혜서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그것은 단 한 가지 차이에서다. 그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며, 또한 지혜의 근본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에 있는 지혜서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첫째, 모든 지혜는 사실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며, 둘째로, 지혜서가 처음 등장한 것이 잠언서인데, 잠언서가 고대 근동지방과 이집트의 지혜를 통달한 솔로몬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는 B.C.10세기경 솔로몬이 왕위로 있을 때에 쓰여진 책이다. 그때에 세상의 지혜의 서적들이 대거 유대교 안으로 들어왔다. 이는 솔로몬이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긴 받았으나 고대 근동과 이집트에 있는 지혜서를 참조한 것은 사실이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대한 나라는 사실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러자 솔로몬은 기브온에 있는 산당으로 올라갔고 거기에서 일천 번의 번제제사를 드린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무엇을 줄 것인지 요청하라고 했을 때에 솔로몬은 "나는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 모르니, 백성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지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뿐만 아니라 덤으로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과 장수까지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때 솔로몬에게 지혜가 임하였고 그의 지혜는 놀랍게 나타났다. 그러자 그가 가진 지혜에 대한 소문은 주변국들로 퍼저나갔고 그것을 들으려고 스바의 여왕도 찾아온다. 그때 솔로몬은 이 세상에 속한 지혜의 책들도 접하게 되었고, 결국 솔로몬의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때 솔로몬이 깨달은 지혜는 무려 3천가지 종류나 되었다고 한다. 즉 그가 쓴 잠언이 3천개였던 것이다(왕상4:32). 그중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잠언의 말씀이 "잠언서(마샬)"에 포함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언서(마샬)"는 솔로몬의 제1잠언, 제2잠언, 제3잠언과 더불어, 현자들의 잠언 및 아굴과 르무엘의 잠언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쓰여있다. 그리고 그것 중에는 히스기야왕때에 신하들이 첨가한 것들이 있다고 쓰여있다(잠25:1).
그리고 구약성경 "전도서(코헬렛)"는 전도자인 솔로몬이 늘그막에 쓴 책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솔로몬의 유언집과도 같은 책인데,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았지만 다 헛되고 헛된 것들로서 바람잡는 것이었음을 고백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욥기"는 욥이 겪는 힘든 고통(이유 없는 재물의 상실, 이유없는 자식들의 사망, 이유없는 질병, 아내로부터 버림받음) 속에서 하나님은 그때 대체 무얼하고 계시며,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발원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서 욥은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밖에 안 되는 지혜를 소유한 자로서, 감히 하나님 안다고 무엇인가를 다 아는 것처럼 말했던 것을 회개한다.
4. 세상의 지혜든지 하나님이 주신 지혜든지 지혜를 소유한 자의 결과는 어떠한가?
이 세상의 지혜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든지, 사람이 지혜를 소유하게 되면 나타나는 결과는 딱 2가지다. 하나는 재물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지혜를 소유하게 되면, 재물이 뛰따라오게 되고 그것을 벌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통일왕국 때의 솔로몬왕의 경우이고(왕상10:14~29, 대하9:13~29), 이방인 중에는 에스겔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두로왕의 경우이다(겔28:2~5). 또 하나는 사람이 지혜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자들이 그렇다. 이 세상의 지혜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혜든지, 지혜를 소유하게 된 자는 복을 받는다(잠3:13,18). 그러면 그는 물질에 있어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며,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귀도 하나님 다음으로 지혜로운 자이므로, 사람에게 지혜가 임할 때에는 사탄마귀가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에게 마구 물질이 들어오고 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이 나타나게 되면 혹시 자기에게 사탄마귀가 치고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5. 이 세상의 지혜만을 알고 터득한 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인가?
지혜는 사실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 온 것이다(잠2:6, 욥12:13, 전2:26).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이시며 왕이신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지혜로 천지만물을 지으셨으며(시136:5, 잠3:19, 렘10:12, 51:15~16), 또한 인간을 지혜로운 존재로 창조하셨다(창1:26~27).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 곧 사람이 갖고 있는 밖으로 니타난 지혜든지, 아직까지 발현되지 아니한 내면의 지혜든지. 그 모든 지혜는 다 하나님께서부터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에게 온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지혜가 나타나서 재물이 풍성해지고 명예와 존숭을 받게 되면 사람은 교만해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교만의 본성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에, 지혜와 교만이 들어온 자는 마귀에게 속해버리게 된다. 또한 마귀가 자기의 지혜가 풍성함을 알고 자기가 하나님 되려다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람도 자기의 지혜가 풍성함을 알게 되면 그만 교만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어,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여러 지도들이 이러한 착각에 빠졌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단4장)과 두로왕(겔28장)의 경우가 있고, 로마의 황제들에 의하면 네로황제와 도미시안황제가 여기에 속한다.
6. 지혜서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유익을 주는가?
그렇다면, 성경에 지혜서들은 예수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어, 자신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그분만을 높이도록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읽었던 자들은 지혜가 자기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시며(마12:42), 그분이 지혜와 지식의 보화의 창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골2:3). 둘째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잠1:7,9:10,욥28:28,시111:10).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처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혜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겸손히 아뢰어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욥의 경우다. 지혜서는 말한다.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잠1:5).
7. 나오며
모든 지혜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지혜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탄마귀가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께 대항했다.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이길 것으로 잠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탄은 알게 되었다. 하늘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마귀는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너무나도 잘 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떨어뜨려놓은 이유도 인간이 자기이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지 마귀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ㄱ그러므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지혜 중의 지혜는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분의 지혜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의 지혜를 의지하는 자는 결국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기를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아니하다 깝죽거렸다가는 우리도 마귀처럼 심판을 받고 마귀가 갇히 영원한 감옥(지옥)갇힐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 인간이 가진 지혜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