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들에게 도움을 얻으러 왔지만 이들이 풍곡 청년들을 시켜 나를 위협하여 내 쫓으라는
지령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나를 폭행한 아이 하나가 쫓아옵니다.
나에게 모든 것이 들통이 났으니 동네사람들이 겁이난 것입니다.
"어서 가서 사과하라"
고 하여 한 아이가 쫓아온 것입니다.
"아까는 제가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
".........................."
나를 패 죽이려고 그렇게 심한 폭행을 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동안 개과천선을 하였단 말인가?
나는 집에 오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우리집 언덕을 오르는데 풍곡에 사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달려오다가 우리와 마주칩니다.
그 부인이 바로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지난 6월중순에 나이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귀여워"
라고 유혹한 부인입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내가 마당으로들어가 뜨락에 걸터 앉아 숨을 헐떡이자
"어떻게 된 일이세요?"
라고 부인이 묻습니다.
나는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하자 나를 폭행한 그의 아들이 벽에 꽂혀 있는 낫을 빼들고 휘두르자 그의 어머니가 말립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이쌔끼야 !"
그의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낫에 찔려 죽었을 것입니다.
부인은 마을로 올라가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요"
라고 하며 아들과 같이 마을로 올라갑니다.
나는 방을 들어와 한참 누워 있는데 숨쉬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지팡이를 짚고 6km를 걸어 풍곡으로 가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풍곡에 이르러 버스를 탑니다
그리고 가곡면서 내리고 파출소로 들어가 신고합니다
내가 쓰러질듯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경찰은
"지금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있어요?"
라고 묻기에
"못갑니다. 호산으로 나가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해요."
그러자 경찰은
"호산에 가면 주차장 옆의 `현대병원`에 입원하세요" 라고 합니다.
나는 경찰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호산에 들러 바로 옆에 있는 현대병원(개인)에 들어갑니다.
내가 들어가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제히 쳐다 봅니다.
의사가 나를 진찰하기에
"진단서 하나 써 주세요"
라고 하자 의사는 겨우 15일의 진단서를 떼 주는게 아닌가?
"아니 제가 15일이면 다 나을 상태인가요?"
라고 따지자 의사는
"에 지금으로 써는 그렇게 밖에 안 보입니다"
라고 얼버무립니다.
첫댓글 어쩜그리 야박하고 무려하기짝이 없을까요 아름답고 순박한 시골인심과는달리 산적패들이 우글대는 무서운곳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선생님 고생많이하셨네요
지금은 안그러겠죠
그때만해도 어두운구석이 많았죠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셨은까요 안타깝네요
손님과 나님 어서오세요 감사하니;다.
내가 전국의 오지마을을 다 돌아다녀 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다면
당시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은지 알 수가 있네요
덕풍 계곡에서의삶 지난 날 선배님께서
삶의 방에 올리신 글을 생각하며 그 때의 저와 오늘의 나를
돌아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어서오세요 박희정님 감사함니다.
제가 이런 글을 스지 안으면 영원히 묻혀집니다.
형광등등 선배님~
어래된 기억들 많이 하시네요.
멏번을 그런일이 있으셨네요.
그 전에도 그랬다고 쓰셨습니다.
필요없는 기억들 지워야 합니다.
멋진 기억들만 하세요.
어서오세요 샛별사랑님 아 님은 제 글을 많이 읽으셨군요
저는 한 카페에서만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카페에서도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파출소로신고하시기 까지의
고뇌도
좋은 시절이 왔으면 합니다
어서오세요 청담골님 감사합니다.
제가 나이가 많고 다리의 장애자이고
별별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이곳동네나 밖의 동네사람들은
인정머리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