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동안 779km, 길을 잃어 헤맨 20여km까지 합하면 얼추 800km를 함께 한 조가비다. 자세히 보면 생채기가 있다.
2024년 10월 15일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도착, 이틀 휴가를 즐긴 뒤 17일 아침 몽파르나스 역에서 열차 편으로 생장 피에드 포르로 갔다. 생장에서 다음날 18일 새벽 6시 길을 나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779km를 걸었다. 34일을 걸었고, 중간에 팜플로나 이틀, 부르고스 사흘, 레온 사흘 연박을 했다. 따라서 순례길에 머무른 날은 11월 24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달하기까지 40일이었다. 가장 짧게 걸은 날은 17km, 가장 길게 걸은 날은 38km, 평균 23km를 걸었다.
아내와 함께 해 행복한 길이었다. 33년의 결혼생활을 큰 사고 없이 견뎌준 아내에게 감사하는 여정이었다.
순례길을 마친 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여유롭게 사흘을 쉰 뒤 11월 29일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 딸과 합류한 뒤 포르투에서 사흘, 리스본에서 사흘을 머물다 12월 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해 다음날 인천공항에 돌아왔다.
떠나기 전부터 명태균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해 순례길 내내 명태균 게이트를 쫓아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고 12월 3일 비상계엄을 발동한 모지리 때문에 리스본에서도 국내 뉴스를 체크하며 관광하느라 무척 피로했다. 세상에 이런 여행을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귀국한 다음날, 부채감에 여의도로 달려가 탄핵 찬동 집회에 참석했다. 그 밤 장갑차에 맞서 계엄 해제 결의를 지켜낸 시민들에게 경의와 미안함을! 나약한 나는 남유럽의 따스한 겨울에 익숙해져 있다가 여의도 샛강 바람에 무릎과 다리에 구멍이 뚫린 듯한 한기를 느끼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늦게까지 젊은 여성들이 남아 여전히 케이팝 응원봉을 휘저으며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 반 부러움 반을 느꼈다.
왜 순례길인가
순례길을 다녀온 이들의 여행기를 적지 않이 봤는데 날짜 순으로 죽 나열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써야 할까 많이 생각했는데 같은 시기, 10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 순례길을 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들을 많이 해주는 것이 가장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순례길을 가면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보고 배우며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 조언해주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첫째 질문은 왜 순례길인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은 많은 외국인들, 상당히 많은 한국인들까지도 우리 부부에게 했던 질문,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이 길을 찾는가에 대해 답하는 것과 연결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깨닫거나 하는 것은 없다. 순례길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얘기는 속된 표현으로 헛소리에 가깝다. 그보다는 많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걸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길의 의미를 톺아보는 것이 순례길의 묘미였던 것 같다.
순례길을 걷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얘기되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시간 부자'들의 호사란 얘기다. 시간이 넉넉한 이들에게 이 길은 최적의 여정이다. 한 한국인 신부가 머물던 마을이 있다. 그 신부님이 그랬단다. "왜 그리 바쁘게 걸으려만 합니까? 제발 멈춰서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시고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시고 하지 왜 그리 바쁘게 짐을 꾸리시는 겁니까?"
우리 부부는 젊은이들에 견줘 시간이 넉넉한 편이었다. 해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넉넉하게 일정을 잡아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하루 30km씩, 40km씩 걷는 친구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느긋하게 걷고, 많이 쉬기로 했다.
매일 새로운 아침, 매일 새로운 저녁이 펼쳐졌다. 연박하는 경우를 제외하며 매일 잠자리가 바뀌어 매일 짐을 풀었다 쌌다 하는 피곤함이 따랐지만, 걷고 쉬며 바르(bar)에 들러 와인이나 맥주 들이키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스페인 음식 맛에 잘 적응해 맛있게 먹어댔다. 어떤 의미에서는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구나 싶을 정도로 단순한 일상을 이어갔다. 매일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에 길 위에 있었다. 달라진 풍경, 달라진 마을, 달라진 도시, 달라진 사람에 새로움을 느꼈다.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살가운 얘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는 각국 순례객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알베르게보다 개인 객실을 이용한 탓에다 언어 능력 때문에 한계가 있었지만 순례길에 나선 이들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순례길 마을과 주민들의 환대와 대접, 도움을 받고 보은하는 문화는 신선한 자극이 됐다.
여기에다 스페인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 가족적인 면모는 가을의 정취와 잘 어우러져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상세히 얘기하겠지만 사람들이 왜 순례길을 두 번, 세 번 찾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