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거나 실패한 뒤에는 크고 작은 아픔이 따른다. 조심하지 않아 잘못하는 것이 실수, 일을 잘못해 그르치는 것이 실패다. 실수를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가수는 김흥국으로 '앗! 나의 실수'라는 깜찍한 유행어를 히트시켰다.
실수와 실패는 어쩌면 성공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성공의 빛은 실수와 실패의 그림자를 거느린다. 실수와 실패를 모르고는 성공할 수가 없다. '한 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격언이 그것을 증명한다.
쥐떼가 전하는 말
한 번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두 번 실수는 패가 망신에 이르기 쉽다. 실수와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같은 실수는 두 번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실패도 하루 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가지 신호가 온다. 그러한 신호를 잘 감지하기만 해도 대처 가능한 시간과 방법은 충분하다.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는 적나라한 우리 나라 속담이 그것을 증명한다.
똥구멍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가스인 방귀의 신호를 제대로 읽으면 낯선 곳에서도 큰 변을 당하지 않는다. 쾌적한 화장실에서 대변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지진이 나기 3∼4일 전에 지진을 감지해 위험을 대처하는 물고기도 있다. 홍수가 나기 전에는 쥐떼가 먼저 움직이므로 쥐새끼의 움직임을 보고도 홍수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없는 사람과 실패 없는 사람
실패도 성공 못지 않게 쓰임새가 많다. 실패가 없으면 당장 실을 감을 수가 없다. 실이 없는 사람은 '실 없는 사람',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 없는 사람이다. 실없는 사람과 실패 없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성공학이 있듯이 실패학도 있다. 노동 재해에 있어서 실패의 발생 확률을 연구한 하인리히는 1 : 29 : 300의 법칙을 완성했다. 즉 1건의 중대 재해 속에는 29건의 작은 정도의 재해가 있고, 그 속에는 인명 피해는 없지만 깜짝 놀랄 만한 300건의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학을 연구하는 일본의 하타무라 요타로는 '1건의 신문에 실릴 만한 설계 실패 속에는 29건의 소소한 클레임 정도의 실패가 있고, 그 속에는 300건의 클레임은 아니지만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미리 인식된 잠재적 실패가 있다'는 것을 연구했다. 그는 사회적 차원에서 실패를 살리는 시스템이 조직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실패학을 연구하고 전파한다.
한 번 실수로 패가 망신한 베어링스은행
한 번의 실패는 영국 최고의 은행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1995년 영국 최고(最古)의 은행인 베어링스를 파산시킨 사람은 나이 서른도 되지 않는 닉 리슨이었다. 런던의 빈민가 출신으로 고졸 학력인 닉 리슨은 베어링스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파견돼 고위험의 파생 금융 상품 거래에 손을 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1993년 닉 리슨은 싱가포르 지점 수익의 20%를 혼자서 벌어들이는 등 높은 수익을 올려 최고 경영자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몇 년 뒤 투자 실패로 14억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혀 2백32년 전통의 명문 베어링스은행을 도산시켰다.
불법 주식 거래로 은행을 파산시킨 닉 리슨은 3년6개월의 감옥 생활 끝에 석방됐다. 그는 유명 강사로 초빙을 받았다. 성공한 것이 아니라 실패했기 때문에. 14억달러짜리 거대한 실패 경험을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 혹은 수백만원의 강연료로, 아주 저렴하게 가름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기업체가 많고, 예방 주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비 생활에서의 실패 경험은 공공의 자산
인생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다. 소비 생활도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다. 실수와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실패한 소비자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의 실수와 실패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나의 실패는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에 이르지 않게 하는 신호등이다.
소비 생활에서의 실패의 연속 혹은 습관적 실패는 실패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소비 생활에서의 실수와 실패를 공공의 자산으로 만드는 시스템은 어떨까. 실패 사례의 은폐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소비자 참여주의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앗! 나의 실수'라고 말하는 김흥국의 멘트가 갑자기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