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안태운
25.11.5.
해골이라는 듯 떠나간다
가면서 두 사람을 일깨우니
신수가 훤해졌다
유적지에서
사진을 주겠다고 정해놓은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본다 정말 줄 수 있나요?
그러자 떼어낸다고 하였다
걷다가 신발끈이 풀렸을 때 누가 나를 생각하는가 보다 하고 웃으며 옆사람들에게 말한다
어느새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활을 맞은 듯한 기분도 들고
촉과 오늬 사이로 들어앉는다는 느낌도 들고
떼어내면서 건네다
내 두 손은 낯설다
내 얼굴에 대본다
우리의 세계는 과연
손바닥처럼 작고 크군
시간
나는 날짜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고, 오늘은 2026년 2월 1일이고, 요 며칠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게도 매섭게 추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밖에 나오면 오후의 빛을 맞으면 따스함을 느끼는데, 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적어온 일기의 파편들을 읽고 있다. 2025년 11월 12일에 나는 이렇게 쓴다. “어제 나는 얼마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절로 눈 떠지는 순간이 있었고, 이는 올봄에 접한 어떤 장면을 접했기 때문인데 그때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은 불광천 물의 흐름을 따라서 가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서는 제방이 있었으므로 나는 조마조마하면서 거슬러 잘 넘어서 갈 수 있을까 못 넘는다면 그냥 제발 아래로 돌아가라 하는 심정이었는데, 어느 제방에 이르러서는 들어갔다가(빠졌다가) 내뱉어진 듯 허우적거리며 나왔다. 새끼 오리의 수를 세어보니 한 마리가 부족했다. 그 장면을 나뿐 아니라 거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산책자들 역시 측은하게 바라보았고. 어미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이제 제방을 산처럼 느낀다는 듯 남은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아래로 되돌아갔다. 그 이미지가 흘러들어서 절로 눈이 떠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적으면서는 ‘산처럼’이라고 표현한 것. 산처럼. 나는 공기를 읽고 싶다. 산처럼 자고 싶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산처럼 자고 싶다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 같아서, 나는 산처럼 자고 싶다고 지금 쓰고 있고, 산처럼이라는 직유는 그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더라도 납득이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산처럼 거닐었다. 산처럼 저며들었다. 산처럼 이울었다. 나는 산처럼 마음이 아팠다. 산처럼 내 엄마는 내 동생을 떠올렸다. 산처럼. 산처럼. 나는 타작마당까지 가보았다. 나는 우는 자그마한 몸 앞에서 서 있었다. 산처럼 그는 얼굴을 붉혔다. 네 춤은 산처럼 맑았다.” 2026년 12월 29일에는 산처럼 태국 빠이에 있었다. 나는 가수면 상태에서 어떤 말이든 지껄이고 있었고, 훗날 교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2026년 1월 9일에 나는 속리산 법주사에 가서 거기 돌로 된 것들에 붙어 있는 온갖 소원을 담은 기원 쪽지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 “남유하, 2020년 6월 1일생. 이루고 싶은 소망: 보름달이랑 놀고 싶어요.”
시간
서기 2025년 3월 22일에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가게 사장님은 식탁에 물병을 놓았다. 할머니가 물병에 손을 댄 뒤에 찬물은 못 마셔요, 말했다. 사장님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주며 너무 뜨거우니 조심히 섞어서 드시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마주하고서는 다른 장면을 떠올렸는데, 내 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때는 2022년 11월 16일이었고 극장에서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2022)을 보고 있던 중이었고, 영화 말미에 노인인 영화감독은 인터뷰를 하면서 포도주를 따라서 마시고 있었다. 사실 포도주라기보다는 포도 물에 가까웠다. 포도주 조금, 이후 물을 조금 더 부었기 때문에. 인터뷰이였으므로 그는 계속 입을 움직였다. 말을 하며 붉은 액체를 홀짝였고 술을 따랐고 이윽고 물을 부었으며 다시 홀짝이며 말을 했는데, 그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뭐가 그리 서글펐는지 눈물이 나왔던 듯도 하다. 그때 함께 영화를 봤던 S는 (홀짝이던 노인을 바라보며 훌쩍이던 내 모습을 포함하여) 이 모든 장면들에 대해 극장을 나오면서 내게 그 후에 다른 사람에게 또 몇 년이 흘러 다시 나에게 다시 말하며 상기했다. 1965년에 개봉된 영화에 문득 삽입된 할아버지의 얼굴과 자기소개. “에테 안드레, 마르부이 출신, 1903년 3월 25일생, 62세, 현재 직업은 영화 엑스트라”. 나는 할아버지 배우를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까.” 2023년 1월 7일에 적었다. 나는 연도와 날짜와 시각을 내내 적고 싶다. 집요하게 적어두며 기억하고 싶다. 나는 2025년 3월 21일 오후 3시에 1991년에 태어난 Y에게서 “팔십 년은 살아남은 사람의 눈동자로 세상을 보고 싶다. 침침한 세계에 가려진 것들까지도 보고 싶다”라는 문장을 문자로 받았다. 2023년이 시작되 얼마 후 나는 어슐러 K. 르 귄의 시를 종종 번역해왔다. 「Neko at Twenty」라는 시를 번역할 때는 한 단어에 대해서 궁리했다. 이 시는 1993년에 출간된 『No Boats』에 수록되었다고 알려진, 스무 살이 된 늙은 반려 고양이에 대한 것이다. 1993년이라면 어슐러가 64세일 때였다. 시의 첫 행은 “Old Moth”, 늙은 나방이다. 그의 반려묘가 꼭 나방 같았나. 아니, 그냥 나방이 아니라 늙은 나방인 것이고, 그는 나방의 늙음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 시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13행 문장인 “old furbones,”가 무슨 뜻일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훗날 챗지피티에 물어보게 된다. “furbone. 일반적인 영어 단어는 아니지만 시적인 조어입니다. 털과 뼈만 남은 상태.” 그리고 이 기억은 근래 읽었던 횔덜린에 대한 어떤 설명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시편들을 선하고 번역해 『생의 절반』으로 낸 박술의 해설에 따르면, 작가의 ‘최후기’라 불리는 대략 1830~40년대에 횔덜린은 튀빙겐 탑에 기거했는데 그곳의 명물이 되어 방문객들의 부탁에 응하여 즉석에서 시를 써줬다. 그 시에는 물론 (가명으로) 서명을 붙였고 날짜도 적었다. 그 날짜 중 가장 이른 것은 1648년이며, 가장 늦은 것은 1940년이라고 한다. 횔덜린은 1770년에 태어나 1843년에 죽었다. 나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햇살에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시를 좋아해서 몇몇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좋은 날씨에다 대고 하품을 하는 한 흑인 여성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 이 시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1933년 11월 1일”이라는 문장이 시에 포함되어 있어 날짜를 특정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일이지만, 1933년 11월 1일에 어딘가에서 그런 한가로운 풍경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2025년 3월 25일, 고운사의 연수전은 전소되었다. ‘연수’는 수명을 늘린다는 뜻으로, 영조(1694~1776)와 고종(1852~1919)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려 지은 건물인데, 기로소는 늙음을 예우하기 위한 기구로 국왕의 경우 60세가 넘으면 입소했고, 영조와 고종은 51세에 했다. 연수전은 1744년에 지어졌다가, 1904년에 다시 지었다. 2025년 봄에는 으레 인간의 실화로 생명체가 타들어갔다. 나는 계속해서 나열할 수도 있었다. 2022년 6월 8일의 일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오늘은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1927년생.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 송해 할아버지. 재령평야. 나무리벌. 옥토. 곡창지대. 1·4후퇴 때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거기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피란, 송해의 해는 바다 해, 바다 해.” 그즈음이라면 나는 어떤 장면들에 대해서 쓰고 있을 때였고, 그날 나는 전봉건의 시 「국어사전」의 어떤 문장도 필사했다고 적혀 있다. “‘청천강 흐린 새벽 어두운 갈대숲이 어리고, 희뜩희뜩 등 구부리고 그 구부린 등으로 고향 등지고 남으로 숨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스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여섯 개의 눈알이 어두운 갈대숲 사이에 떠오른다.’ 이런 장면들은 죽기 전까지도 영영 떠오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2025년 4월 12일 기준, 산불 사태 국민 성금은 1천 328억이며,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성금은 1천 290억 원이었다. 최근 나는 2025년 4월 16일을 지났다. 이날은 하루가 내내 의식되었고, 누구라도 그러하듯 11년 전 이날 내가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뉴스를 보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기억들. 2024년 9월 4일. “지난 일요일에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부채를 부쳐주는 할아버지, 웃는다. 더 나이가 든, 언뜻 조는 듯한 할아버지에게. 형뻘인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형아라니.” 2024년 9월 11일. “노인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들 같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