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모처럼이라고 말하기도 예의가 아닌 근 4년만에 시요일 지인과의 만남.
그야말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거의 만나지지 못하다가, 더러 경조사가 있을 시에는 오갈 수도 있었겠지만
쥔장은 아예 그 코빅 시절엔 만남을 거절하는 중이었고 이제서야 기지개를 키는 중이다.
하여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정해진 이후로는 "시요일"이라 명명되어진 지인들을 만날 날을 무한히 기다렸다.
역시나 그리 한참 만에 만났어도 여전히 어제 만난 듯 징하게 기분좋은 가족같은 그들을 보며 절로 반가웠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운전대를 놓고 어쩌다 손에 쥐게 된 무료 버스 승차권을 한번 사용해 보겠다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된 쥔장의 행동에 얼마나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던지.
기본적으로 터미널까지는 그래도 차를 운전해야 해서 나가는 길자락에
금광저수지를 끼고 도는 자락자락마다 한풀 꺽인 그래도 여전히 자태를 뽐내는 벚꽃이 여전히 황홀지경이고
좀더 나아가 터미널로 가기 위한 도로가에는 메타세콰이어가 옅은 연두잎을 올리며 도열해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 혹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고나 할까?
암튼 그저 자가 운전이었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에 여전히 안성 버스로 평택역까지 가느라 소요된 1시간과
평택역에서 황사바람에 휘청거리며 전철을 기다리느라 소비한 이십여분과 금정역까지 가는 동안
16번의 정류장을 꼬박 지나쳐 드디어 내린 금정역에서 다른 지인을 기다리느라 맞써 싸운 추운 바람결에 그야말로 녹초.
쓸데 없는 시간낭비를 해버린 자신에게 대략난감의 부아가 치밀었다.
그냥 운전을 할 걸 그랬다 싶은 마음이 저 가슴 밑바닥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짜증이 확 일 즈음
저 멀리서 애정하는 시요일 지인이 짜잔하고 등장을 하니 얼마나 반갑던지....헌데 그곁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이번에는 보지 못할 거라 미뤄짐작하였던 또다른 지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괜찮으신 거에요? 외출이 가능하신 건가요? 많이 궁금했어요.....속사포같은 질문세례를 보내며 왈칵.
그 건강하고 유머러스하며 자신만의 개그철학을 가졌던 그 남자의 눈만 동그랗게 더 커진 채 핼쑥해진 모습을 보자니
전국 산하가 내발로 재편성된다 던 그의 창창함이 언제였던가 싶게 피골이 상접해진 그를 보며
그래도 육신의 아픔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별 것 아닌 척 반갑게 웃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안산 반월저수지 자락 수리산 오르는 길목에 있는 절친의 음식점 "수리골"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시요일 맴버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곁에 객원 멤버 "박항률" 화백이 조용히 앉아계심을 발견하는 순간
아, 화백님도 오셨구나...웬 횡재란 말이더냐, 시간 낭비하며 찾아든 억울함이 풀리는 듯 하더라.
사실 개인적으로는 "박항률" 화백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다.
지면을 통해, 전시장을 통해 화백의 작품을 접하고 그의 그림세계에 들어가 보기는 하였어도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라 매체를 통한 이미지와 실제가 다르지 않음에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때로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싶어 안팎이 다른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도 허다해서 혹시나 싶은 우려가 있었지만
박항률 화백은 그림에서 보여지듯 단아한 모습 그 자체요 조용히 사색하며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넘나드는 듯 하였다.
그러니까 익숙과 낯섬의 시요일 식구들과 어색할 만남의 자리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리 한 켠에서 시요일 식구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올지 가늠하며 그저 빙긋이 웃고만 계시더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대화에 끼어들지도 아니하시고 다른 이들의 수다발 넘치는 이야기를 그냥 듣고만 있으니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분위기 잡겠다고 대화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도 넘치는 쥔장 수다발이 미안할 지경이긴 했다.
그래도 오랫만에 만났으니 누군가는 분위기 주도를 해야 하는 법이요 그 자리에서 쥔장이 머뭇거릴 일은 없을 터.
그렇게 긴 이야기와 짧은 식사가 끝나고 자리이동을 하여 커피를 마시면서도 4년 동안 밀린 이야기는 온 공간을 떠돌아다니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박항률 화백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만 머금을 뿐 여타 할 말씀이 없으시다.
하여 갑자기 각자의 MBTI 소개 시간이 등장하고 보니 웬 세상에 시요일 식구들은 I가 많더라고.
그러니까 다들 한때 직업이 그림을 그리고 건축 디자인을 하고 국어 선생님에 출판사 편집장에 사진작가에...등등등
그러면서 각자의 성향대로 글을 쓰고 시인이 되고 문단을 향해 손짓하고 블로거를 하고 카페지기가 되었고...등등등
그렇게 다음 블로거로 만나져 인연을 이어온지 이십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 좋은 글선생이 되어가고
인생 동행자가 되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를 공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을 하고 밤새도록 진지한 토론을 벌이다가 날밤을 새우고도 다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도 한다.
어디서 이런 남사친 여사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더란 말이더냐 싶도록 초창기 시작된 블로거로서 만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서로 나누고 받고 드디어 1세대 어른이 되어 인생 후반부 시작도 함께 지나가는 중이겠지만
여전히 청춘월담을 꿈꾸고 있는 중이겠다.
그런 시요일 멤버들의 면면을 쭈욱 지켜보던 박항률 화백은 자신의 책 "별들의 놀이터"를 챙겨왔노라면서
한권씩 하사를 하니 시요일 멤버들 모둔 기껍게 책을 받아들고 마냥 좋아들 한다.
하지만 화백에게 사인 요청은 하지 못했다.....어쩐지 민폐일 듯 하였지만 아쉽기는 하다.
어쨋거나 집으로 돌아와 화백의 책을 들여다 보며 미처 다 알지 못한 그의 그림 세계와
그가 추구하는 시공간의 이상형과 시인이기도 한 화백의 시어적 표현에 대해 열공하였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는 순간의 경건함과 영원함을 언어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탐닉하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매체를 통해 길게 알아온 박항률 화백에 대한 애정도는 여기까지.
그의 말을 덧붙이면서 오랜 가족같은 시요일 식구들과의 5월의 해후도 기대하면서
언제나 어제 만난듯한 그들, 시요일 식구들이 있어 행복하다...라고 되뇌인다.
*******************************************박항률 화백으로 부터 듣게 된 말을 요약했다.
“새가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 나의 머릿속으로 날아들 때 이미 상상의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주고
그 씨앗들이 발아할 때는 신선한 새로운 형태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 위에 새’는 잠자리로 변신하면서,
나비, 비어, 인면조, 정자와 소나무, 꽃, 나룻배로 거듭나게 되고,
더불어 그 이미지들은 자아를 스스로 들여다보며 미명에서 깨어남이나
홀로 고요 속에 침잠되어 있는 그리움을 지니는 뜻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베네치아의 바다 안개를 헤치고 날아온 비둘기는
나의 머리 위에 화려한 영혼의 향기를 뿌려주었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여행은 분명 나에게 꿈의 무대였고,
그 꿈은 너울너울 나의 그림 속으로 작은 참새가 되어 날아와 앉은 것이다.”
"“오늘도 붓끝으로 시를 그린다.
간혹 그림이 시가 되기를 혹은 시가 그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린 시절 나에게 시적 감성을 일깨워주고 하얀 나라로 떠나버린 꿈 많던 사촌 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특정한 대상을 보고 그리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같이 지내던 사촌 누이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지금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 이라며
궁금함을 못참고 질문한 우리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하던 장면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첫댓글 ㅋㅋㅋ 괜히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거의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러녀니 하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봄이 되고 코로나가 사그러지니 나갈 일도 많네요ㅡㅡㅡ
그러니까요.
편히 가려나 했다가
된통 역풍...스케줄은 계속 쭈욱.
안봐도 보이는듯 재담들의
설왕설래가 얼마나 즐거웠
을지 보이는듯 합니다. ㅎ
맞사옵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던지.
다음 5월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