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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예공원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대안리 197-4
보오저수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지오리 78
보옥리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자연마을
보옥항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보우재골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
보은군(報恩郡)
대한민국 충청북도 남부에 있는 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특히 동쪽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여 높은 산들이 솟아있고 산세가 수려하다. 삼국시대 신라에 의해 축조된 삼년산성은 보은군의 대표 유적이다. 지역 특산물로는 대추가 유명하다.
동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서쪽은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 남쪽은 옥천군, 북쪽은 청주시와 괴산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1′∼127°54′, 북위 36°22′∼36°36′에 위치한다. 면적은 584.25㎢이고, 인구는 3만 429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47개 행정리(17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이평리에 있다.
자연환경
군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며, 동쪽은 소백산맥이 뻗어내려 높고 험준하다. 서쪽은 노령산맥이 뻗어 있으나 동쪽보다 비교적 낮은 지세를 보이며, 중앙에는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지층은 하부로부터 시대 미상의 하부 변성암층과 옥천층군을 이루는 변성퇴적암류, 고생대 초기의 해성퇴적암층과 이를 관입한 쥐라기의 화강암류 및 시대 미상의 맥암류로 분류되고 이를 부정합으로 덮는 충적층이 현 하천의 연변을 따라 발달되어 있다.
동쪽에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속리산(俗離山)의 천황봉(天皇峰:1,058m)·비로봉(毘盧峰:1,032m)·관음봉(觀音峰:985m)·구병산(九屛山:877m) 등의 험준한 봉우리가 있고, 서쪽에 노령산맥이 가로막으면서 차츰 얕아져 국사봉(國師峰:552m)·샘봉산(462m)·환산(環山:581m)·시루봉(505m) 등이 솟아 있다. 천황봉·구병산과 함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적산(金積山:652m)을 보은군의 3산이라 한다. 험준한 산지 사이에 있는 말티고개·수리티재·화엄이재 등의 주요고개는 교통로로 이용된다.
그 사이에는 음성의 부용산(芙蓉山, 644m)에서 차령산맥과 분기하여 500∼600m의 고도를 갖는 구릉성 산지들이 남북 방향으로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중앙부에는 동쪽에 학림산(鶴林山, 400m)·수철령(水鐵嶺, 536m)·구룡치(九龍峙, 506m)·새목이재(589m) 등 소백산맥의 험준한 영봉이 연이어 솟아 있고 서쪽에 노령산맥이 가로막아 보은분지를 이루고 있다.
삼승면 금적산(金積山, 652m)의 남동사면·동사면·동북사면에는 고도 200m 정도의 경사변환점 아래에 산록면이 발달하고 있다. 경계선보다 높은 곳에는 동파작용에 의한 단애사면이 발달하였고, 솔리플럭션(solifluction) 작용에 의하여 경계선 아래의 산록면에는 단애물질이 운반되어 퇴적되어 있다. 산록면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은 기반암·기반풍화암, 하단은 측방침식에 의한 개석곡인 동시에 퇴적곡, 말단은 보청천(報靑川)의 범람원이 되고 있다.
군내를 흐르는 소하천들은 남서쪽 또는 북동쪽으로 흘러 대부분 금강으로 유입하는데, 구룡산에서 발원한 보청천(報靑川)은 보은읍을 관류하며 불로천(佛老川)과 합류하여 보은분지와 삼승분지를 형성하고, 삼가천(三街川)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외속리면 중심부를 관통해서 보청천에 유입한다. 그밖에도 용천·죽천(竹川)·구암천(九岩川)·태암천(態岩川)·풍강(楓江) 등이 금강에 유입하는 하천이고, 내북면에 흐르는 봉황천(鳳凰川)은 미원천(米院川)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유입한다.
속리산은 동류하는 낙동강, 남류하는 금강, 북류하는 남한강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금강수계의 보청천은 내북면 하궁리에서 발원하여 서북류하다가 동류하여 보은읍을 관통하면서 군내 최대 곡창지역인 고승들을 형성하고 남류하여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금강에 흘러들고 있다.
보청천의 주요 지류로는 삼가천(三街川)과 항건천(恒乾川)이 있다. 삼가천의 지류로는 적암천(赤巖川)·한중천(閑中川)·종곡천(種谷川)·오덕천(五德川)이 있고, 항건천의 지류로는 불로천(佛老川)·거현천(巨峴川) 등이 있어 여름철 집중호우 때는 홍수의 피해가 크다.
연평균 기온은 10.4℃, 1월 평균기온 -3.9℃, 7월 평균기온 24.1℃로서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연 강수량은 1,167㎜이며, 속리산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지형성 강우가 많아 수해를 입기도 한다. 산간분지 지역으로 겨울철 다른 곳보다 혹한이고 강설량과 적설일수·맑음일수 등이 많다. 겨울에도 5cm 이상의 적설일수가 30.8일로 눈이 많이 내린다. 사향노루 등 포유류 24종, 큰잣새·딱따구리 등 조류 160종, 곤충 150종이 있고, 식물은 천연기념물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영지·금당화 등 670여 종이 분포한다.
속리산국립공원이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연혁
군내에서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들도 발견되어 일찍부터 사람의 거주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남면 법수리와 사탄리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도 마로면을 비롯, 군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분쟁지가 되었다. 신라는 470년(자비마립간 13)에 성을 축조하고 북진기지로 삼아 백제와의 국경을 이루었다. 산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다 하여 삼년산성(三年山城: 오정산에 있다 하여 일명 烏頂山城이라고도 함)이라고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였다. 470년(자비왕 13)에 신라는 이곳에 삼년산성을 쌓아 국경 지대의 방어를 강화했다. 502년(지증왕 3)에는 주현제(州縣制)를 실시하면서 삼년산군(三年山郡)이라 하였다. 553년(진흥왕 14) 국경지대인 속리산에 의신조사(義信祖師)로 하여금 대사찰인 법주사를 창건하게 하여 국력을 과시하였다. 742년(경덕왕 1) 군의 명칭을 삼년군(三年郡)으로, 미곡현을 매곡현(眛谷縣)으로 각각 개칭했고, 연산군(燕山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통일신라 때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한때 지배한 일이 있으며, 뒤에 후백제의 땅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삼년군으로 개칭하고 청천·기산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가 통일하자 보령(保齡)으로 고쳐졌고, 뒤에 잘못 전해져 보령(保令)이라 칭하였다. 928년(태조 11)에 후백제가 고려의 경계를 넘어 침입해 오자 태조는 여러 장수를 시켜 막게 하고, 자신은 후백제의 삼년산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여 청주로 후퇴하였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보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018년(현종 9)에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940년에 매곡현을 회인(현재의 지명)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보령은 경상도 상주목에, 회인은 청주목에 속하였다. 1172년(명종 2) 보령에 감무가 설치되고, 회인은 회덕감무가 겸무하다가 1383년(우왕 9) 별도의 감무가 설치되었다.
조선에 들어 1406년(태종 6) 충청우도의 보령과 음이 같아 혼동이 온다 하여 군의 명칭을 보은으로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413년 보은은 경상도 상주목 소속에서 충청도에 편입되었고, 회인에는 현감이 설치되었다. 세조대의 진관체제 하에서는 청주진관에 소속되었으며 현감이 절제도위를 겸임하였다. 별호는 삼산이었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병으로 명산대찰에 기도하기 위해 충청도와 경상도에 행차하던 중, 보은현을 지나 병풍송(屛風松)에서 하루를 지냈다 하여 이곳에 대궐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다음 날 왕이 말티고개를 넘어 속리산에 들어갈 때 가마가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 가지가 스스로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하였다. 이에 감격한 왕이 소나무에 정이품을 제수했으며, 이곳에서 왕의 병이 치유되자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보은(報恩)이라는 지명을 새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549년(명종 4) 삼년산성 내에 세워진 삼년성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상현(象賢)’이라는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2년(철종 13) 가혹한 징세와 관리들의 횡포 때문에 나라 안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회인에서도 농민의 항거가 일어났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대항하다가 순절한 김가기(金可幾),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경세(金景世) 등이 있다.
-1893년(고종 30)에 2만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보은장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이전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의 성격에서 벗어나 탐관오리의 숙청, 외세 배격 등 정치적인 내용을 주장, 즉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걸고 집회를 가졌으나 정부의 무력진압과 위무로 실패하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보은과 회인이 각각 군이 되어,
-1895년에 공주부 보은군,
-1896년에 충청북도 보은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로 청산군의 비입지인 주성면이 보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회인군과 대덕군의 일부를 병합, 보은군에 편입시켜 오늘날의 행정구역과 같아졌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보은군 읍내면·산내면·서니면·사각면이 읍내면으로, 내북면·주성면이 내북면으로, 삼승면·서니면이 삼승면으로, 탄부면·마로면·사각면이 탄부면으로, 마로면·왕래면이 마로면으로 통합되고, 산외면과 속리면·수한면은 그대로, 그리고 회인군이 폐지되고 읍내면·서면·동면이 회북면으로, 남면·강외면·서면이 회남면으로 통합되어 보은군에 흡수되었다.
-1947.1.31 속리면이 내속리면과 외속리면으로 나누어졌고,
-1970년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3.7.1 보은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2년 군청 소재지가 현 위치인 보은읍 이평리로 이전되었다.
-1983.2.15 회북면 율산리가 수한면에, 세촌리가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1987.1.1에 내북면 중초리·산성리·노티리·용암리·봉평리·장곡리가 보은읍에, 회남면 노성리가 수한면에 편입되었고, 보은읍 누저리가 누청리로, 내속리면 묘막리가 만수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9.1.1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삼승면 원남리에, 회북면 마동리·마구리·묘암리 및 회남면 염티리가 청원군 문의면(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89.1.1에 대통령령 제12557호(1988.12.31공포)로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삼승면 원남리로 편입되었다.
-2007년 8월 내속리면을 속리산면으로, 외속리면을 장안면으로, 회북면을 회인면으로, 대목리를 도화리로, 하개리를 개안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인구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인구가 증가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1965년의 인구 11만 3,825명을 정점으로 1975년에는 9만 7,679명으로 감소해 1965~75년 10년 동안 14%의 감소율을 보였으며, 1975~85년에도 30%의 감소율을 보이고 있어 인구유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1996년 인구 이동상황은 전입이 3,547명, 전출이 4,630명으로 전출이 전입의 1.3배 정도 많으며, 전출자 모두가 도외지역으로 이주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인구감소는 지속되어 2000년 인구 4만 3,326명, 2005년 3만 7,466명, 2010년 3만 5,328명, 2015년 3만 4,296명을 기록했다.
2020년 기준 인구는 3만 2,456명이며 가구수는 1만 6,954가구, 가구당 인구는 1.91명이다. 읍면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보은읍(1만 4,920명)에 군 전체 인구의 44%가 분포되어 있으며, 면 단위에서는 삼승면(2,311명)·마로면(2,202명)·속리산면(1,915명) 순으로 거주인구가 많다. 인구유출이 심한 회남면과 산간지역인 장안면에 인구분포가 적다. 회남면(759명)에는 군내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인구는 3만 2,456명이다.
산업과 교통
이 군의 총면적은 584.25㎢이다. 그중 임야가 400.23㎢이며, 총경지면적은 103.01㎢로 경지율은 17.6%이며, 논이 60.13㎢로 밭이 51.56㎢를 나타내고 있어 논이 밭보다 약간 우세하다. 논과 밭의 비율은 54:46으로 거의 비슷하다. 논은 주로 보청천의 언저리인 보은읍과 수한면·탄부면에 몰려 있다. 이곳에는 속리산면의 삼가저수지, 내북면의 상궁저수지, 보은읍의 종곡저수지 등이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내륙고원지대로서 한랭하고 논 면적이 협소하여 식량 증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보은읍·삼승면·탄부면에 대단위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미곡 증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서류·두류·잡곡, 채소류는 참외·배추·수박·무·고추,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와 과실류로 사과·복숭아·포도·감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특히, 회인면과 회남면 일대는 기후가 온화하고 바람이 약하여 감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한 곳으로서 예로부터 감을 많이 생산하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회인월하감은 껍질이 얇고 살이 많아 옛날에 궁중의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가축으로는 한우·돼지·개·젖소·닭·꿀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임산물로는 대추·밤·표고버섯·약초·산나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보은대추는 이 고장의 특산물로 유명하고, 매년 대추아가씨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주요농산물은 쌀을 비롯한 고추·마늘 등이며, 특용작물인 연초·인삼 등이 생산된다. 고추는 내북면·내속리면·회북면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마늘은 회북면·회남면·마로면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예로부터 보은의 감과 대추가 유명하다. 산간지방에서는 양잠도 행해지고 있으며, 고사리·버섯 등이 생산되어 관광토산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가행되는 것은 20개의 광구 중 8개이다. 고령토 1,239M/T, 석탄 7만 7304M/T을 생산하고 있다. 마로면에서는 1개의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석탄 6만 6601M/T, 토상흑연 4,300M/T을 생산하고 있다. 가행중인 3개 광산은 모두 석탄광이며, 주로 마로면, 삼승면, 내북면을 중심으로 연간 약 8만2,149t이 채굴되고 있다.
보은읍 금굴리에 조성된 2만 평의 공장부지에는 진미식품·양성유산업·대양인터내셔셜 등이 입지하여 있어 식품과 산업용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외속농공단지는 1990년 12월 장안면, 보은읍에 조성된 농공단지이나 삼승면과 내북면에 업체가 비교적 많은 것은 입지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이다.
공업은 2006년 현재 공장 61개소, 종업원 1,930명으로 대부분 영세하다.
수한면의 새마을공장에서는 천연 슬레이트 가공과 양곡포장용 팩이 생산되고 있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충청도와 경상도 일원의 문물이 교환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청주와의 교통이 편리해져 시장이 매우 영세하다. 보은읍·마로면·삼승면·회북면에 모두 4개의 정기시장이 있다. 철도는 없으나 강원도 원주시에서 출발해 충주시·괴산군·청원군을 거쳐 이곳의 내북면을 지나는 국도가 옥천군·영동군으로 이어지고, 청주-상주를 잇는 국도가 군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그밖에 보은-옥천, 보은-법주사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나 있다. 도로총길이 402km, 도로포장률 72%이며(2006), 지방도와 시·군도의 포장이 시급하다.
속리산면 사내리는 숙박시설과 각종 토산품점·음식점 등을 갖춘 관광취락지구로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관광은 주로 석가탄신일을 전후한 4·5월과 단풍계절인 10·11월에 집중되고 있으나 여름철에도 많은 피서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다. 보은읍에도 많은 숙박시설·음식점·상가·환경업소 등이 있어 속리산 관광객은 물론, 주변 지역의 주민에게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조선 말기 보은 관내에는 보은읍에 5·10일의 보은 읍내장, 삼승면에 2·7일의 원남장, 마도면에 4·9일의 신기장, 회인에 2·7일의 회인 읍내장, 북면에 3·8일의 두산장, 강외면에 4·9일의 풍암장 등이 열렸다. 그러나 1926년 말에는 5·10일의 보은 읍내장, 4·9일의 관기장, 1·6일의 원남장, 4·9일의 회인장만 개시되었다. 그 뒤 창리·구티·영당·장안·상판 등에 정기시장이 증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재래시장이 서서히 쇠퇴하면서 슈퍼마켓 등의 상설시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보은 읍내장은 도내에서도 큰 시장이었으나 경부선의 개통으로 상권을 옥천과 대전에 빼앗기면서 1986년 개시일도 6·11일로 변경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원남장도 3·8일로 개시일을 변경하게 되었다.
1992년 말에는 보은장·관기장·원남장·회인장, 내북면 창리의 창리장만 남게 되었으며, 현재는 이들 시장이 일반시장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보은읍 삼산리의 중앙시장은 1978년에 개장되어 읍내는 물론 인근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여 중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도로는 보은읍을 중심으로 국도 19호, 37호, 25호선과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군내를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유물·유적
회남면 법수리와 사탄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었고, 탄부면 고승리와 삼승면 선곡리에서는 돌화살촉·돌도끼·돌칼 등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 3, 보물 12, 사적 2, 천연기념물 3, 중요민속자료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4, 기념물 6, 민속자료 2, 무형문화재 2), 문화재자료 4가 있다.
산성으로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보은읍 어암리의 보은 삼년산성(사적 제235호)이 가장 오래된 산성이다. 그 밖에 회인면 중앙리에 매곡산성(昧谷山城)의 터와 회남면 남대문리의 호점산성(虎岾山城)의 터가 남아 있고, 내북면 창리의 주성산성(酒城山城), 마로면의 관기리 산성, 보은읍 산성리의 함림산성(含林山城), 속리산면 백현리의 잣재산성[柏峴山城] 등이 모두 석축으로 된 옛 산성들이다.
주요 불교문화재는 속리산면 사내리의 속리산 법주사 일원(俗離山法住寺一圓, 사적 제4호 및 명승 제61호)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 목조건축물로는 법주사 팔상전(法住寺捌相殿, 국보 제55호)·법주사 원통보전(法住寺圓通寶殿, 보물 제916호)·법주사 대웅보전(보물 제915호)·법주사 사천왕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조사각·능인전 등이 있다.
불상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法住寺磨崖如來倚座像, 보물 제216호)·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 제1417호)·법주사 괘불탱(보물 제1259호) 등이 대표적이다.
석조물로는 법주사 쌍사자 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법주사 사천왕 석등(法住寺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법주사 석련지(法住寺石蓮池, 국보 제64호)·법주사 세존사리탑(法住寺世尊舍利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법주사 석조(法住寺石槽,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법주사 철솥(보물 제1413호)·법주사 벽암대사비(法住寺碧巖大師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법주사 자정국존비(法住寺慈淨國尊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法住寺福泉庵秀庵和尙塔, 보물 제1416호)·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福泉庵學祖和尙塔, 보물 제1418호)·속리산사실기비(俗離山事實記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마로면의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등의 석조물과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新法天文圖屛風, 보물 제848호), 순조 태실(純祖胎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 등 다수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보은읍 교사리의 보은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회인면 눌곡리의 보은 풍림정사(報恩楓林精舍, 충청북도 기념물 제28호), 수한면 차정리의 보은 후율사(後栗祠, 충청북도 기념물 제15호), 마로면 관기리의 고봉정사(孤峰精舍, 충청북도 기념물 제51호), 장안면 서원리의 상현서원(象賢書院, 충청북도 기념물 제43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또 회인향교·조중봉후율사(趙重峰後栗詞)·고봉정사 등이 있다. 그밖에 익재영정(益齋影幀), 김수온부조묘(金守溫不眺廟) 등이 있다.
또한, 보은읍 종곡리에 모현암(慕賢庵), 산성리에 백봉사(柏峯祠), 회인면 애곡리에 상현사(尙賢祠), 회남면 신추리에 추양사(秋陽祠)가 있다. 모현암은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성운(成運)·김천부(金天富)가 을사사화를 계기로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건물로, 1887년(고종 24) 후학들이 양현(兩賢)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암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백봉사는 이천계(李天啓)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며, 상현사는 1549년(명종 4)에 우탁(禹倬)·우길생(禹吉生)·우현보(禹玄寶) 등 3대의 위패를 봉안하여 창건한 것이다. 추양사는 조선 말의 학자 이상수(李象秀) 등 7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12년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편, 관아건물로는 보은읍 삼산리의 보은동헌(報恩東軒,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과 회인면 중앙리의 회인 인산객사(懷仁仁山客舍,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6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고가옥으로는 삼승면 선곡리의 보은 최태하 가옥(報恩崔台夏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39호), 99칸 집으로 유명한 장안면 개안리의 보은 선병국 가옥(報恩宣炳國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34호)과 선병묵 고가(宣炳默古家,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호)·선병우 고가(宣炳禹古家,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호) 등이 있다.
이 밖에 탄부면 하장리의 익재영당(益齋影堂)에 이제현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이 보존되어 있고, 장안면 불목리에 광국지경록 목판(光國志慶錄木板,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4호)이 있다.
보은읍 성족리에 성운(成運) 묘소 및 묘갈(충청북도 기념물 제70호), 지산리에 김수온 부조묘(金守溫不祧廟, 충청북도 기념물 제48호) 등이 있다.
한편, 속리산면 구병리에는 보은 송로주(報恩松露酒,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가 전승되고 있다.
천황봉 지역에는 순조대왕태실(純祖大王胎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속리산면 상판리에 속리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과 사내리에 보은속리산의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가 있으며, 보은읍의 보은 백송(천연기념물 제104호), 장안면 속리서원리의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2호)는 수령이 600년으로 정이품송과는 내외간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관광
속리산은 보은군·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우리나라 팔경(八景)의 하나로서 법주사를 비롯한 관광자원이 보은군에 집중되어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 부르고 있다. 속리산은 수려한 경치와 법주사, 다양한 동식물 등을 포함하고 있어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70.3.24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관광자원과 속리산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자연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다. 속리산은 좁은 지역내에 사적·자연·인공자원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산세가 웅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경관이 빼어나 국제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그밖의 관광지로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삼년산성과 조선시대 동헌 등이 있으며, 화남면에 대청호가 있어 호반관광지가 조성되고 있다.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비로봉·관음봉·길상봉(吉祥峰)·문수봉(文殊峰)·보현봉(普賢峰)·묘봉(妙峰)·수정봉(水晶峰) 등의 8개 봉우리와 문장대(文藏臺)·입석대(立石臺)·경업대(慶業臺)·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신선대(神仙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湖臺) 등 8대가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 신라의 의신조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경내에 국보 3점, 보물 5점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속리산과 더불어 명산대찰로 꼽히고 있다. 속리산면 사내리 일대에는 이곳을 찾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대단위 관광취락이 조성되어 있다.
한편, 어암리의 삼년산성은 470년에 축성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산성으로서 현재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며, 산성 아래에는 천연기념물인 백송이 있어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1962년에 농업용 저수지로 준공된 속리산면 삼가리의 삼가저수지는 규모가 크고 호반 좌우로 속리산과 구병산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물이 깊고 맑아 빙어가 많이 서식하여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속리산면 만수리에서 남쪽의 구병산에 이르는 만수계곡과 서원계곡(書院溪谷)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가 어울려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어 제2의 화양계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밖에 속리산면의 오리숲, 장안면의 말티고개·개안리 고분군, 마도면의 구병산과 서당골 관광농원, 회남면의 회남대교 등은 훌륭한 관광지가 되고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보은읍 교사리에 세종 연간에 창건된 보은향교와 회인면(회북면) 부수리의 회인향교(懷仁鄕校)가 대표적이다. 장안면 서원리에는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상현서원(象賢書院)이 있다. 삼승면에 금화서원이 있다.
상현서원은 1549년에 성제원(成悌元)이 삼년산성 내에 김정독형원(金淨獨亨院)을 건립하고 삼년성서원이라 한 뒤 1610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672년(현종 13)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6년 김문희(金文熙)·송근수(宋近洙) 등이 재건했고, 1919년 어윤원(魚允元)·정호섭(鄭浩燮) 등이 중수하였다.
삼승면 선곡리의 금화서원(金華書院)은 1758년(영조 34)에 설립되었다가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1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 밖에 1872년 박문호(朴文鎬)가 세운 풍림정사가 회인면 눌곡리에 있는데, 그는 이곳에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많은 저술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사립으로 1906년 설립된 진명학교(進明學校, 지금의 회인초등학교)와 1909년에 설립된 사립 완명학교(完明學校, 지금의 삼산초등학교)가 있다. 진명학교는 1906년 회인 지방 유지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다가 폐교된 것을 1909년 회인군수 권병필(權丙弼)이 회인향교 명륜당에 진명학교를 재설치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이전하여 사립 회인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학교는 1912년 3월 회인공립보통학교가 되었으며, 현재는 회인초등학교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1909년에 설립된 완명학교는 1911년 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삼산초등학교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6년 기준 유치원 16개소,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사회·문화 기관으로는 군립도서관이 군민들의 독서와 문화 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1967년에 설립된 보은문화원은 향토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군민축제인 속리축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군립도서관은 군민들의 독서와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보은문화원은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 보은군의 향토예술제인 속리축제를 1979년 이래 매년 개최하고 있다.
민속
이 지방의 대표적인 집단놀이 로는 줄다리기와 물다리기가 있다.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초순에 윗마을·아랫마을 또는 개울을 중심으로 양쪽 마을에서 새끼줄을 꼬아 한 마을은 암줄을, 다른 마을은 수줄을 20∼30m 길이로 만든 다음 들판이나 개울가에서 수줄 끝을 암줄 끝에 넣고 기다란 말뚝을 끼워 빠지지 않게 한 뒤 마을사람들이 줄을 당긴다.
이 줄다리기는 부녀자와 농악대의 응원 속에 남자들이 세 번 당겨 두 번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때 이기는 마을은 풍년이 들고 지는 마을은 흉년이 든다고 하여 줄다리기로 농점(農占)을 쳐서, 이긴 마을은 기뻐하고 진 마을은 슬퍼한다.
물다리기는 산을 사이에 둔 속리산면 백현마을과 산외면 백석마을 사람들이 하는 놀이이다. 백현마을에서는 자기 마을에 있는 우물의 수원(水源)이 백석마을의 우물에 있다 하여 정월보름에 백석마을로 물을 길러 간다. 백석마을의 우물물을 길어다 백현마을의 우물에 넣어야 물이 잘 솟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백석마을에서는 백현마을에서 물을 길어 가면 백석마을의 우물물이 귀해진다 하여 이를 막으니 자연히 물을 훔치려는 쪽과 물을 지키려는 쪽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백현마을에서 물을 훔쳐 가면 백석마을에서는 우물 옆의 땅을 파서 물줄기를 끊는다.
그러면 백현마을에서는 농악대를 앞세우고 백석마을 앞에 와서 농기를 숙이고 화해를 청한다. 그리고 백석마을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두 마을의 농악대와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며 하루를 즐겁게 놀고 끊었던 물줄기를 다시 메운 뒤 헤어진다.
본래 이 물다리기는 ‘복토(福土)훔치기’와 같은 주술행위가 후대에 놀이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농군들이 낫을 던져 낫 끝이 땅에 꽂히는 내기를 하는 ‘낫치기’가 있는데, 이 때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대신 풀이나 나무를 해준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산신제·탑신제·서낭제·거리제 등이 행해진다. 산신제는 산 위에 있는 나무나 바위, 당집에서 지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 산중사람들이 매년 10월 인일에 속리산 봉우리에 있는 대자재천왕사에서 신을 법주사로 모셔다가 제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대자재천왕제가 바로 속리산신제이다.
옛날 속리산신제에서는 나무로 남근을 깎아 붉은 칠을 하여 속리산 여신에게 공물로 바쳤는데 법주사 승려들이 이것을 인도의 남근 신앙인 대자재천(大自在天) 신앙으로 잘못 이해해서 와전된 것이다.
조선 말기에 법주사 승려들은 속리산신제가 끝나면 남근공의(男根供儀)를 연희화한 ‘송이(松茸)놀이’를 행했는데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지금은 속리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유교식으로 제사하고 있다.
탑신제는 마을 입구에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놓은 탑에 제를 지내고, 서낭제는 마을 입구의 서낭나무나 서낭당집에서 지내며, 거리제는 마을 골목에서 지내고 있다.
이러한 동제는 정월 초순 또는 10월에 일정한 날이나 택일한 날, 생기복덕한 제관이 제물을 차려놓고 유교식으로 제의를 행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제물에 수수팥떡이나 돈을 놓기도 하고 제의가 끝난 다음에는 폭약을 터뜨려 잡귀를 쫓기도 한다. 제기(祭期) 동안에는 제관과 동민 모두가 근신하며 지낸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내속리면 백현마을과 산외면 백석마을 간에 벌어지는 물다리기가 있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담, 역사적 인물이나 자연물에 얽힌 전설, 오누이힘내기 설화 등이 주류를 이루어 전해 오고 있다. 속리산 수정봉에는 「거북바위전설(龜巖傳說)」이 유래한다.
당태종이 어느 날 세숫물 속에서 거북형상을 보고 이상히 여겨 술사에게 물으니 그는 이 거북 때문에 당나라의 재화가 동국으로 빠져나가고 국운도 쇠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당태종은 사람을 보내 이 거북바위를 찾아내고 그 목을 자르게 하니 바위에서 피가 솟았고, 등에 석탑을 세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마로면의 「속곳바위전설」은 청렴한 관리 장현광(張顯光)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는 보은현감으로 잠시 재직하는 동안 학문과 덕이 높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전별의 선물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는 모두 물리치고 부임할 때와 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길을 떠났다.
보은군의 경계지역까지 왔을 때 길가에서 쉬다가 문득 그는 아내의 치마 밑으로 나온 비단 속곳을 보았다. 연유를 물으니 보은 백성들이 선물로 준 것이라 하므로, 그는 “청빈을 낙으로 살아왔는데 남에게 폐를 끼쳤다.”고 탄식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속곳을 벗어 바위에 걸쳐놓으며, “보은에서 받은 물건을 보은에 돌려준다.”고 하고는 길을 떠났다. 그 뒤 이 바위를 ‘속곳바위’ 혹은 ‘치마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장현광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조선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속리산 지역으로 피접(避接)을 왔는데, 이 때 많은 설화를 남겼다. 세조의 행렬이 보은읍을 지나 속리 쪽의 고개로 올라섰을 때 노승이 나타나 “오봉산 아래 행궁(行宮)을 짓고 쉬어가시오.”라고 이르고는 사라졌다.
세조는 노승의 말대로 행궁을 짓고 북을 달아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게 하였다. 그 뒤 노승이 나타났던 고개를 미륵불이 변신하여 나타난 곳이라고 하여 ‘미륵댕이고개’, 행궁을 지었던 곳을 ‘대궐터’, 북을 달았던 곳을 ‘북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말티고개를 넘은 세조 일행이 상판리에 당도하니 길가에 우산 모양의 소나무가 있었다. 세조가 연이 걸릴까 염려하자 늘어져 있던 소나무 가지가 하늘로 들려 길을 열어주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이 소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는 정이품의 품계를 소나무에 하사하였다. 그 뒤 ‘연거랑이소나무[輦掛松]’또는 ‘정이품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세조는 법주사와 복천암 사이에 있는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치료했는데, 이 웅덩이는 ‘목욕소’라 불리게 되었다. 그 밖에 속리산면 상판리 진터와 가마골에는 세조의 딸과 김종서(金宗瑞)의 손자가 부부가 되어 살았다는 이야기, 오누이 힘내기의 결과로 남게 되었다는 「삼년산성전설」이 전해 온다.
또, 국사봉의 「좌월대전설(坐月臺傳說)」과 욕심 부리다 쌀 나오는 구멍을 망쳤다는 「쌀바위전설」, 임경업(林慶業)이 무예를 닦았다는 「경업대전설」, 금돼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최치원설화(崔致遠說話)」, 한 효자가 겨울에 잉어를 잡아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효자연못설화」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요로는 이곳 특산물을 노래한 「대추노래」가 있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대추꽃이 떨어지면/ 보은청산 시악시들/시집못가 눈물난다.”라며 타령조로 부르는 것이다. 또한, 농요도 발달했는데, 대체로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논농사에서 「모찌는 노래」는 “들어내세 들어내세/ 이 모짜리를 들어내세/ 차고가세 차고가세/ 이 모판을 차고가세.”라고 선소리꾼이 두 장단 길이로 메기면 뒷소리가 따로 없이 일꾼 모두가 따라 제창한다.
「모심는 노래」도 “담상담상 닷마지기/ 해지기전에 빨리심세/ 빨리빨리 심드래도/ 모포기는 잘심구세.”, 또는 경상도와 인접한 영향으로 “상주함광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처녀야/ 이내품에 놀다가게.”를 역시 두 장단 길이로 메기면 일꾼이 따라 부른다.
그러나 「논매는 노래」는 먼저 선소리꾼이 “일락서산 해떨어지고/ 월출동녘 달돋아온다.”라고 메기면 일꾼들이 뒷소리로 “잘허고 잘헌다 얼카 산이가 잘헌다.”는 사설로 받는다.
그리고 의식요로 「상여소리」는 느린 중중모리로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저승길이 멀다해도/ 죽고나니 저승일세.”라고 두 장단으로 메기면, 상여꾼들은 “오호오호”를 한 장단으로 받는다. 그러나 갈 길이 멀면 자진가락으로 바꾸기도 한다.
여성요로 「베틀가」·「물레질노래」·「방아노래」 등이 있지만 현재 구연하는 사람이 적다. 민요라면 흔히 「노랫가락」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는 메나리목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잡가로는 「천자풀이」·「화투놀이」등이 불리고, 단가로는 「만고강산」·「백발가」 등이 불리고 있다.
전래되는 설화로는 〈거북바위전설〉·〈삼년산성전설〉·〈쌀바위전설〉 등이 있으며, 민요로는 〈대추노래〉·〈모찌기노래〉·〈모심는 노래〉 등이 있다.
의료. 복지
2016년 기준 의료기관은 병원 2개소, 요양병원 2개소, 치과병원 5개소, 한의원 7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283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1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5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6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2개소, 보육시설 9개소가 있다.
행정구역은 1개 읍, 10개 면, 247개 행정리(174개 법정리)가 있다. 보은읍·속리산면·장안면·마로면·탄부면·삼승면·수한면·회남면·회인면·내북면·산외면 등 1개읍 10개면 246개 동리로 되어 있다(행정리 기준, 법정리 기준 174개리). 군청소재지는 보은읍 군청길(보은읍 이평리)이다. 면적은 584.25㎢이고, 인구는 3만 4296명(2015년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