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눈물 / 한준수
내 나이 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골로 내려가 산지 일 년 된 때였다.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여러모로 고생하셨다.
서울서 숙부 두 분이 내려오셨다. 사 형제분이 돈을 모아 집을 사놓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에서 이엉과 짚을 얻어 모았다. 사놓은 집 지붕을 새로 이기 위해서였다. 숙부들이 읍내로 가서 소달구지를 불러왔다. 세간이라야 물 한 지게들이 두멍과 솥 한 개와 바가지 몇 개, 그리고 식기가 몇 가지였다. 그것들을 달구지 바닥에 얹고, 그 위에 이엉과 짚을 싣고 동네를 떠났다.
당진읍내를 지나 송산면 산 갈에 들어섰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산길은 아직까지 얼어 있었고, 그 위에 눈이 덮이니 더욱 미끄러웠다. 소는 달구지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지 못했다. 어른들은 뒤에서 밀었다. 그러나 달구지는 자꾸만 뒤로 미끄러졌다. 어른들은 소를 모질게 후려치면서 달구지 바퀴살도 위로 채 보았다.
그래도 못 올라가니까 돌덩이를 바퀴 뒤에 괴어 놓고 잠시 쉬었다. 소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어른들은 또 다시 소를 다그쳐 몰았다.
그럴 때마다 소는 앞발로 땅을 파 가슴 앞으로 끌어들이는 듯이 기를 쓰며 뒷발로는 버티었다. 그러나 점점 힘에 부쳤다. 뒤로 더는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두 무릎을 언 땅 위에 푹 꿇었다. 그 순간 홉뜬 소의 두 눈은 처절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어른들은 짚단을 반 정도 내렸다. 그 제서야 달구지는 겨우 재빼기에 올라섰다. 소 몸에선 김이 났고, 무릎에선 피가 났다. 입에서는 끈끈한 침이 흘러 흰 눈雪 위에 떨어졌다. 붉게 충혈 된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 양 볼에 기다란 검은 줄을 긋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 소는 울고 있었다. 힘이 약한 암소는 송아지가 영양분을 다 빨아먹어서인지 바싹 마른 몸에 양쪽 엉덩이엔 두 개의 주걱 같은 뼈가 불거져 있었다.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모진 매만 맞은 것이었다. 그 소에게서 우리 어머니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
(1944년
**소년기 시리즈 중에서 빼낸 글어서 마치 꼬리 없는 닭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