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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25. 큐티
이사야 14:3 ~ 20
바벨론 왕에 대한 조소의 노래
관찰 :
1) 너는 바벨론 왕을 향하여 이 노래를 지어라
- 3절.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a.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된 포로 생활을 마치게 하시고 안식을 얻게 하실 것임을 예언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식을 주시는”이라는 의미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여 안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b.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당했던 고난을 상기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지를 엿보게 하는 표현입니다. 이사야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놀랍도록 정확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 4절.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a.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날에 바벨론을 조롱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제가 완료형 동사를 사용함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b. 여기서 “노래”는 격언, 교훈, 금언, 속담, 노래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본문에서는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게 될 이 노래가 노래를 부르는 자나 듣는 모든 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지은 노래라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교훈은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망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c. 바벨론 왕에 대한 조소의 노래는 20절까지 이어집니다. 4 ~ 8절은 바벨론의 압제에서 놓여지게 된 자들이 해방을 기뻐하며 바벨론 왕을 조롱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9 ~ 15절은 열국의 왕들이 음부에서 몰락한 바벨론 왕을 맞으면서 부르게 될 노래입니다. 16 ~ 20절은 바벨론 왕의 최후를 목격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조롱하여 부르게 될 노래입니다.
d. 하나님의 백성은 사악한 죄인의 멸망에 대해 즐거워하게 될 것이고, 그 비참한 운명을 조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대상은 특정한 어떤 인물이 아니라 악의 세력, 하나님의 뜻을 적대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의 세력을 표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같은 사악한 세력이 맞이할 비참한 결과와 파멸의 결론은 의로운 세상의 도래와 정의의 구현을 함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만한 악인들의 패망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노래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 5절.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a. 여기서 “악인”과 “통치자”는 구체적 인물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지도층 인사들의 악한 성향을 가리키고 있는 표현입니다.
b. "몽둥이"와 “규”는 세상의 주권자들이 임의로 휘두르는 권세와 그에 따르는 온갖 포악할 행실과 압제를 상징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주권자로서 교만한 자들이 휘두르는 권세와 폭압을 완전히 박살내 버리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6절.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자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a. 바벨론 제국의 위세는 막을 세력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여러 민족들을 쳐 무너뜨렸고, 그 때 마다 무자비함으로 여러 민족들을 쳐서 복종시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고대 문명 사회의 대부분을 제패했던 바벨론은 자신들을 적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매우 가혹했습니다. 유다가 멸망할 당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붙잡아 그가 마지막으로 보는 장면이 그의 아들들의 죽음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뽑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까지 끌고 갔습니다. 이러한 일은 당시 정복국이 피정복국에 가하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바벨론이 그렇게 하는 상황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위세를 떨칠 때, 그 어떤 인간의 세력도 그들의 만행에 제동을 걸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c. 바벨론은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함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만군의 주이신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징계하실 때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7절.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a.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자 억압적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 온 땅이 안식하고 쉬는 것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쟁취한 결과로 온 것도 아니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땅 고레스 대왕을 통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면서 중근동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고레스 왕은 바벨론의 여러 왕들과 매우 다른 정책을 취했습니다. 고레스는 자신이 지배한 제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관대한 정책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러한 관용정책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서 당했던 압제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되게 했습니다.
- 8절.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
a. 바벨론 제국의 패망으로 인하여 사람들만 기뻐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까지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 노래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앗수르와 바벨론의 왕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벌목하고 짐승들을 사냥했느냐는 것으로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곤 했습니다. 특별히 향나무와 백향목 등은 건축물의 재료로 애용된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성읍이 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는 품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국가의 향나무와 백향목을 무수히 많이 작벌하고 바벨론으로 가져옴으로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웅장한 건물들을 짓고자 했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함으로 향나무와 백향목이 기뻐한다는 것은 이제 바벨론이 파멸을 당하여 더 이상 작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 9절.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며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a. 바벨론 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열국의 왕들이 스올에서 바벨론 왕을 맞이하며 조롱하는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절은 바벨론 왕이 스올에 들어갈 때 그곳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바벨론 왕이 죽어 스올에 떨어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잔인한 살육자인 바벨론 왕도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하여 음부인 스올이 놀라운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b. "스올"은 무덤이라는 의미를 넘어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세계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스올에 가는 자들은 살아 있었을 때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하여 그 설명을 요구하며 책임을 묻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땅에서 온갖 잔악한 행위를 일삼고, 무수한 생명을 죽이고 그 피 위에 위대한 바벨론을 세웠던 자가 동일하게 파멸의 자리에 떨어지게 된 것을 이와 같이 희화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올은 바벨론 왕이 저지른 온갖 행위, 바벨론 왕이 내뱉은 온갖 교만한 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며 한 가지도 빠짐없이 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c. "스올"은 바벨론 왕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기 위하여 맞이하는 것입니다. 스올을 의인화하여 바벨론 왕의 죽음에 대해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d. 이 세상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던 자들, 각국의 왕들이 다 바벨론 왕의 파멸과 죽음을 접하고 크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바벨론 왕이 스올로 입장하는 모습에 주목할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10절.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a. 세상에서 큰 권세를 누리다가 죽어 스올에 먼저 가 있던 자들이 그곳에 들어오는 바벨론 왕을 보고 조롱하는 질문입니다.
b.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는 너무나 강력하여 영원히 권세를 휘두를 것 같았던 바벨론의 왕이라 할지라도 결국 스올에 들어오는 부족할뿐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위대한 존재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음부에 떨어지면 그 어떤 영화와 권세도 누릴 수 없는 존재가 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11절.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a. 스올에 있는 왕의 영혼들이 바벨론 왕의 영혼을 대상으로 하여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그토록 화려하고 큰 권세를 누리던 바벨론 왕도 죽으면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구더기와 벌레 등에 그 살점이 다 먹히고 처참한 몰골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다 다스리는 왕이라 할지라도 보잘 것 없는 벌레에 먹힌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b. 화려한 비파 소리가 끊이지 않던 바벨론 왕이 스올의 처참한 상황에서 구더기와 뒹굴며 고통을 당하게 되는 상황을 무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 교만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의 추락
- 12절.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a. 스올의 왕들이 바벨론 왕의 교만과 위세가 몰락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b. 초대 교회 시대의 많은 교부들이 이 본문을 사탄과 관련하여 해석했습니다. 교부들의 해석은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을 영적 측면에서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을 형상화할 때 빗대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이 사탄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 왕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 그 교만함의 실태를 현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계명성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c. "계명성"은 밤 하늘에서 사람의 육안으로 분별하기에 가장 밝은 금성을 의미합니다. KJV와 NKJV는 이를 "루시퍼"(Lucifer)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라틴어 벌게이트 역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루시퍼는 ‘빛을 내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전통적으로 ‘사탄’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대교의 사탄에 대한 전승에서 루시퍼는 원래 일곱 천사장들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던 가장 영화롭고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루시퍼가 자신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1/3의 천사들을 데리고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천사장인 미카엘에게 대패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일차적으로 사탄 타락의 기원을 설명하는 내용이 아니라 바벨론 왕, 즉 인간의 교만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계명성, 곧 빛나는 금성은 가장 교만한 자를 비유하기 위해 도입한 상징적 표현인 것입니다.
d. 계명성은 해가 뜨기 직전 새벽녘에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지만, 아침에 동이 트면 순식간에 그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표현인 것입니다.
- 13절.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a. 바벨론 왕이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의 제왕이었지만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 왕권을 얻은 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느부갓네살일지라도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헛된 야망을 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b. 교만의 극치를 달린 바벨론 왕의 교만함을 실증하는 내용으로 그가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얼마나 높인지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c. "하나님의 뭇 별“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적 수종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이 뭇 별들은 하나님의 최측근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d. 바벨론 왕은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게 되자 하늘의 권세까지 정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야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 14절.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놓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a. 본문을 직역하면 “나는 구름의 가장 높은 곳 위에 올라갈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마치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있는 가장 높은 산 가운데 위치한 우상 숭배의 처소인 산당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하는 바벨론 왕의 교만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이곳에 올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는 헛된 욕망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바벨론 왕의 그릇된 욕망은 스스로와 바벨론 제국 전체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 15절. “그러나 이제 내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a. 바벨론 왕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오만함의 결과는 가장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형벌을 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구덩이 맨 밑“은 바벨론 왕이 오르고자 했던 ‘북극 집회의 산’이나 ‘가장 높은 구름’의 자리와는 정반대의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게 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인간의 교만한 욕망은 도리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자리, 지극히 낮은 자리에 떨어지게 하며 결국은 죽음에 의해 조롱을 당하게 될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 처참하게 떨어진 바벨론 왕을 보며 그의 처량한 신세를 조롱하다
- 16절.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a. 처참하게 떨어진 바벨론 왕을 쳐다보는 자들이 다 놀라 그의 비참한 신세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b. 열왕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까지 비참하게 몰락한 바벨론 왕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 17절.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a. 바벨론 왕은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한 자였습니다. 자신의 제국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성읍들과 사람들을 파괴하는 악행을 저질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악행은 수많은 포로들을 끌고가서 집으로 보내지 않은 행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고통이었는지를 강제로 끌려간 이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이 피정복국의 수많은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가서 지독한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18절.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a. 열방의 여러 왕들은 죽은 후에 왕실의 묘실에 영광스럽게 묻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9절에 말하고자 하는 바벨론 왕의 비참한 죽음과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19절.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a. 가장 큰 권력을 누렸던 바벨론 왕이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그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질 것이라는 예언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무서운 내용이었습니다.
b.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바벨론의 왕이 고레스 침공 당시 그의 수하의 병사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왕들의 묘실에 묻힌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 시체가 되어 방치되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된 것이고, 그러한 바벨론 왕의 비참한 죽음은 조소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 20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러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a. 여호와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매장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바벨론 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매장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왕국을 망하게 하고 자신이 보호해야 할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대했고, 자기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지 않고 방치함으로 나라가 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바벨론 왕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우매한 통치로 말미암아 백성들에게서 왕에 대한 신망과 존중이 사라지게 되어 바벨론 왕이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시신을 안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c. 그 결과 바벨론 왕 때문에 바벨론의 후손들이 멸망하여 세상 역사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 자체를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한다는 의미입니다.
d. 바벨론이 멸망 당할 때 바벨론의 왕족들이 모두 숙청당했습니다. 바벨론에 대한 역사 기록이 말소되었고, 바벨론 왕족 전체가 몰살하여 그 씨가 말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모두 완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가르침 :
1) 이사야는 바벨론 왕의 교만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그의 교만으로 철저하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본인 뿐만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과 백성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 모두가 바벨론 왕의 교만으로 파멸하게 되었습니다.
2) 교만한 자의 멸망은 사탄의 교만과 동급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굳이 계명성을 루시퍼로, 그리고 사탄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사탄적인 것인가를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3) 바벨론 왕은 사실은 대단한 권세를 지녔고, 인간으로서는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권세를 지녔던 존재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해서 다니엘이 해석한 꿈에서 황금으로 묘사된 제국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묘사한 제국입니다. 그런 바벨론 제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견주는 것은 불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덥잖은 존재로서 교만을 떨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다 우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이사야는 바벨론 왕의 교만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스올에 가서 고통을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스올의 고통을 벗어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성도들의 특별함은 바벨론 왕을 넘어서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최고의 권세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사탄 마귀가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아담을 비롯해 모든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뽐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참으로 지혜의 근본임을 다시금 고백하게 됩니다.
2) 겸손함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으로도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무엇도 나의 자랑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더욱 찬양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