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콰이강의 다리’ 1부
제1부, 영국군 포로와 콰이-마치 최 건 차
‘미친 짓이다! 미친 짓이다!’라는 표현은 영화‘콰이강의 다리’가 끝날 때의 말이다.
‘콰이강의 다리’는 일본군과 영국군의 내면을 다룬 전쟁영화다. 아라비아로렌스, 닥터지바고와 같은 대작을 만들어 낸 거장 데이비드 린의 1957년 작품이다. 국가관과 군인들의 자질을 드러낸 전쟁영화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수상한 명작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이 동남아를 한창 점령하던 1943년 초였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영국군 1개 공병대대가 미얀마의 정글에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사령부의 보급지원과 구출작전이 불가능 해 투항의 길을 택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대대장 니콜슨 중령은 일본군에게 무장을 해제당한 부대를 인솔한다. 헤진 군복에 신발이 찢겨지고 벗겨진 채로 부상병들을 들것에 실고 가는 행렬이다. 일본군 수용소를 바로 앞두고 영국군의 기상을 잃지 않으려고 휘파람행진곡에 보폭을 맞추며 중대별 대열을 유지한다.
이 영화가 상영되면서부터 휘파람과 허밍으로 ‘♬랄∼랄 라 라 랄∼랄 라’하는 <콰이-마치>가 대 유행의 바람을 탔다. 당시 부산의 중심거리에서는 출근 시간대 <콰이-마치>가 자연스럽게 울려 퍼질 정도여서 지금도 그 여운이 귀전에 아련하다.
일본군은 방곡과 랭군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면서 태국과 미얀마 사이에 흐르는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할 참이었다. 여기에 투입된 인력은 일부 연합군이 포함된 영국군포로들이었다. 포로가 된 영국군 공병부대에는 인도의 뱅골과 마드라스에서 교량공사를 여러 차례 해봤던 장교들과 하사관들로 편성되었다. 아마도 일본군은 토목기술이 우수한 영국공병대를 계획적으로 노렸던 것 같다.
수용소에 도착한 영국군은 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령의 엄한 훈시를 받는다. “조국을 배신하고 항복한 너희들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니므로 시키는 대로 장교들도 똑같이 일을 해야 한다. 일본군은 일을 하지 않는 포로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 라고 강조한다. 이에 니콜슨 중령은 제네바 협약 27조에 ‘신체 건강한 전쟁포로는 노동자로 고용하되 장교는 제외다’라고 적힌 문서를 꺼내 보이면서 부대는 자신의 지휘로 영국군 장교들이 맡아 할 것과 장교들은 노역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이토 대령은 니콜슨 중령의 따귀를 치면서 제네바 협약이 적힌 문서를 빼앗아 던져버린다. 니콜슨 중령은 코피를 흘리면서 격분해 웅성거리는 부하들을 자제시키고 나서 문서를 집어넣고 문명을 거부하는 야만적 행위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사이토 대령은 기관총을 거치한 차량을 대기시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리고 열을 셀 때까지 장교들이 연장을 들지 않으면 기관총을 발포하겠다고 한 후
하나, 둘, 셋. 넷하며 숫자를 센다. 아홉까지 세어도 니콜슨 중령과 9명의 장교들이 움직이지 않자 드디어 열을 세고 발포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이다. 사태를 지켜보던 군의관 크립톤 소령이 사이토 대령 앞으로 뛰쳐나와 “비무장 한 포로들을 한 사람이라도 총살한다면 나는 당신을 전쟁범죄자로 연합군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한다.
살벌한 침묵이 흐른 후 총살은 일단 보류되고 사병들은 작업장으로 나갔다. 장교들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그대로 서 있다가 한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이토 대령은 분을 삭이지 못해 니콜슨 중령과 장교들을 야전의 감방에 가두어버린다.
지배자인 일본군과 포로가 된 영국군은 야만적인 무력과 원칙으로 대결한다. 먼저 투입된 600여명의 포로중 상당수가 영양실조와 질병 등 사고와 총살로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영국군특유의 지휘계통과 의사소통 없이 강행하는 작업은 진척이 어려웠다. 영국유학파였던 엘리트 사이토 대령은 평소 영국에 대한 열등감을 무력으로 만회해 보려다가 실패를 자초해 자괴감에 빠져든다. 자신과 일본군의 한계를 깨닫게 되자 공사를 마친 후 할복하려고 미리 머리털을 잘라 둔다.
한편 먼저 잡혀와 있는 미군포로의 선동으로 일부장교들이 탈출을 시도하려 한다. 니콜슨 대대장은 “포로가 된 군인의 임무는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지만 우리부대는 상부의 명령에 의해 항복한 것이다. 탈출은 불법이므로 군법에 회부된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니콜슨 대대장은 부대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서도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전쟁이 끝난 후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누가 이 다리를 건설했는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더불어 대영제국의 위상을 심어 부디 좋은 추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명령이 아닌 설득으로 장교들과 부하들의 호응을 받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든 데이비드 린은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나는 ‘콰이강의 다리’에서 왕을 신격화하는 일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국의 이상理想을 보게 되었다.
201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