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실리안(The Sicilian Clan)
최용현(수필가)
‘시실리안(Le Clan Des Siciliens)’은 ‘25시’(1967년)를 연출한 앙리 베르누이 감독이 1969년에 만든 프랑스의 마피아 범죄영화이다. 흥미진진한 플롯에 캐릭터가 뚜렷한 세 주연배우의 열연이 뒷받침되어 러닝 타임 116분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범행의 전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케이퍼무비(caper movie)로서의 특징도 잘 드러나 있다.
시칠리아 출신의 마피아 보스인 비토리오(장 가뱅 扮)는 파리에서 자신의 성을 딴 ‘마나레제’라는 전자게임기 판매사업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두 아들과 며느리, 사위로 구성된 가족범죄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경관 2명을 죽인 죄로 수감된 보석전문 강도 로저(알랭 드롱 扮)가 호송될 때 아들과 부하들을 보내 탈출을 도와준다.
로저는 재판정에 들어가기 전에 비토리오의 부하가 호주머니에 넣어준 조그만 전동커터로 호송 중에 차 바닥을 뚫는다. 그리고 비토리오의 부하들이 차가 고장 난 척하며 호송차를 가로막고 있는 사이 탈출에 성공한다. 비토리오는 로저의 숙소를 마련해주고 큰 아들 알도의 아내 잔느에게 먹거리 등을 챙겨주게 한다.
한편, 로저의 검거에 혈안이 된 프랑스 경찰청의 수사국장 르 고프(리노 벤추라 扮)는 로저의 누나가 일하는 가게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해놓고 근처에 잠복하면서 로저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로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누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숙소에 콜걸을 부른 로저는 룸서비스를 가장한 르 고프 팀에게 거의 잡힐 뻔했으나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
로저는 교도소 동료로부터 입수한 사상 최대의 보석들을 전시중인 로마 건물의 경비시스템 도면을 비토리오에게 제공한다. 비토리오는 미국 뉴욕에 있는 죽마고우 마피아인 보안전문가 토니를 로마로 불러 함께 현장을 방문한 결과 보안시스템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2주 후 뉴욕 전시를 위해 보석들을 비행기로 수송할 때, 하이재킹(hijacking)으로 탈취하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잔느는 로저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전라(全裸)로 일광욕을 하며 로저를 유혹하는데, 로저가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뜨겁게 키스하며 애욕을 불태운다. 그러다가 공놀이를 하던 시누이의 7살짜리 아들에게 들키고 마는데, 잔느는 어린 조카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보석들을 실은 비행기가 파리를 경유할 때, 비토리오 가족들은 모두 가짜여권으로 탑승한다. 보험회사 직원을 다른 데로 빼돌리고 그 여권으로 탑승한 로저는 남편을 만나러 온 보험회사 직원의 아내 때문에 그 비행기에 탑승한 사실이 발각된다. 13년간 담배를 끊었던 르 고프 국장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뉴욕공항에는 경찰들이 쫙 깔린다.
비행기가 뉴욕 상공에 접어들자, 로저와 비토리오는 조종사를 협박하여 비행기를 탈취한다. 잔느는 재빨리 스튜어디스로 변신하고, 아들과 사위는 승무원들을 통제한다. 비행기는 공사 중인 고속도로에 착륙한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토니와 뉴욕의 마피아들이 비행기에서 보석들을 꺼내 차에 싣고, 비토리오의 가족들은 흩어져서 다시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로저는 뉴욕의 은신처에서 자신의 몫을 기다리고 있다.
파리로 돌아온 비토리오의 가족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거사 성공을 자축한다. 그때 TV에서 젊은 남녀의 키스 장면이 나오자, 비토리오의 어린 외손자가 ‘잔느 외숙모와 로저 아저씨가 저렇게 했어.’ 하고 소리친다. 당황한 잔느가 아니라고 부인을 하지만….
비토리오는 배당금을 주겠다며 로저에게 속히 귀국하라고 연락한다. 로저의 귀국시간을 알게 된 잔느가 로저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기 도착시간을 알려준다. 이를 도청한 르 고프 팀이 공항으로 가고, 로저의 누나도 공항으로 향한다. 비토리오는 아들과 사위에게 공항에 가서 로저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앞 비행기로 귀국한 로저는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로저의 누나, 비토리오의 두 아들과 사위가 모두 공항대합실에서 르 고프 팀에게 체포된다.
로저의 전화를 받고 잔느를 차에 태워 온 비토리아가 교외에서 로저를 만난다. 비토리오가 돈 가방을 던져주자, ‘조심해요!’ 하면서 로저에게 뛰어가던 잔느와 돈 가방을 확인하던 로저는 비토리오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마나레제’로 돌아온 비토리오가 기다리고 있던 르 고프 국장을 따라나서면서 영화가 끝난다.
큰돈을 벌어 고향 시칠리아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던 비토리오의 노후계획은 거의 성공했으나 며느리의 치정(癡情)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영화제목에 붙어있는 ‘clan’은 한 가족 혹은 씨족을 의미하는데, 이 범죄가 가족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음악을 맡은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울한 주제곡의 선율이 주요 장면마다 낮게 깔린다.
‘시실리안’ 등 여러 범죄영화에서 무표정한 얼굴과 꽉 다문 입술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장 가뱅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지금도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배우로 추앙받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리노 벤추라는 프랑스로 건너와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다가 장 가뱅의 추천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여 선 굵은 연기를 해왔다.
20세기 최고의 미남배우 알랭 드롱은 주로 범죄영화에서 악역을 맡았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출연한 ‘시실리안’(1969년)을 비롯한 ‘볼사리노’(1970년) ‘미망인’(1971년) ‘레드 선’(1971년) ‘암흑가의 두 사람’(1973) 등은 모두 그의 죽음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사실이다. 비장미(悲壯美)라고나 할까.
알랭 드롱은 2021년 한 인터뷰에서 ‘안락사에 찬성한다. 우리는 특정시점부터는 생명유지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그는 결국 안락사로 세상을 떴다. 87세였다.
첫댓글 시시리안이 국내 개봉될때만 해도, 프랑스 영화가 꽤 들어 왔든 걸로 알고 있는데,
볼사리노, 암흑가의 두사람, 아듀 라미, 지하실의멜로디, 태양은 가득히,다시한번 그대품에등,
빠트리지 않고 보았든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이 허망 합니다, 늙은 노인의 코트 호주머니
속에서 날아온 총탄에 저렇게, 대응도 못하고, 맥없이 쓰러지다니! 쟝가방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수 있는,
"굳게 다문 입술'은, 실재 입술의 피부면적이 얇은 탓 때문이기도 하다고 봅니다.ㅎㅎㅎ
네, 아랑 드롱은 마지막 장면에서 거의 죽죠. 범죄영화의 악역을 맡았으니...ㅎㅎ
프랑스 영화 많이도 보셨네요.
저는 '지하실의 멜로디'는 못 본 거 같고, 나머지는 다 본 거 같아요.
저는 중학교 때 남보극장에 몰래 들어가서 본 영화,
상하의가 붙은 검은색 가죽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아랑 드롱과 정사를 벌이는 '그대품에 다시한번' 이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