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을 커다랗게 내려다보고 있으면 요즘은 그리 평화롭지 못합니다. 공부방 길 건너 무허가 마을은 재개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건설회사에서 무허가 집들을 하나둘씩 사서 철거를 하고 있습니다. 투기꾼들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서 좋을지 몰라도 (방이 한 개당 400만원에 거래가 된다고 합니다) 정작 방 한 칸에 식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가정들은 오갈 데가 없습니다. 400만원을 받고 어디로 나갈 수 있는 처지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무허가 공장과 무허가 집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거의 팔고 나갔지만 정작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찾을 걱정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을 구할 수도, 적은 돈을 받아 나갈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저냥 한숨과 눈치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다시 내몰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만약(그랬으면 좋겠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에게 아파트 분양권이 쥐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조금의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조금의 돈을 더 얻는다고 이들이 행복할까요? 아파트에 들어간들 이들이 매달 청구되는 관리비와 집세를 낼 수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은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서있는 그들을 보게 될 때 제 가슴 속은 울렁거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가격에 집을 팔고 이사할 곳을 알아보라고 할까요? 아님 끝까지 버티면서 임대 아파트 분양권이라도 얻으라고 할까요? 모든 것은 그들의 또 다른 선택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에 판자집을 짓고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줄 생각만 해도 알 것입니다. 남들은 수세식 변기에 용변을 보고, 도시가스를 이용하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때, 이들은 공동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아까워 틀지 못하는 비싼 기름보일러나 그것도 없으면 연탄에 의지하며 부엌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고무다라이에 물을 받아 씻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이들은 최상의 보금자리라 여기며 십수 년간 생활했습니다.
정부와 시에서는 이곳이 더럽고 지저분해 보여 깨끗하게 새 곳으로 만들어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재개발은 30년 넘게 똑같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들은 꼭 군인을 연상시킵니다. 제복을 잘 차려 입고 줄맞추어 똑바로 선 군인들, 교복 입혀 놓은 학생들… 이아무개, 김아무개가 아닌 또 다른 물건들처럼 여겨집니다.
미관상 좋지 않은 기준이 무엇인지, 친환경이 무엇인지, 집 없고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그럴듯한 건물의 반지하 월세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21세기를 달리며 국민소득 2만불을 향해 나아간다는 우리정부가 판자로 지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것인지, 물도 펑펑 쓰지 못하고, 전기도 마음껏 쓸 수 없는 가전제품도 없는 이들이 친환경적으로 살지 못 한다는 것인지, 무엇이 발전이고 무엇이 오염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발전은 누구 때문에 이루어야 하는 것일까요? 가장 힘없고 소외당한 국민이 배고파하고 있고, 갈 곳이 없어 쫓겨다니고 있는 지금, 누구를 위해서 발전을 한다고 외쳐대고 누구를 위해서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는 것일까요? 좀 다른 모습으로 살면, 겉보기 좀 불편한 집에서 가난한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 안 되는 것인가요? 국민소득 2만불이 되도록 발전을 하려면 얼마만큼 가난한 이들이 내몰리고 밟히고 살아야 하는지 너무나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 땅이 얼마나 병들어야 하는지,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오염된 공간에서 숨도 제대로 못쉬며 살아야 하는지 눈에 선합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란 비가 새더라도, 춥더라도, 허름한 집일지라도, 방 한 칸일지라도, 온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꿈을 만들며 사는 것이 평화입니다.
공부방 아이들과 5.29 반전평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우리 아이들은 천막에서 자는 잠자리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간이 화장실 이용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김치통에 여러 명이 숟가락만 들고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았습니다. 잠잘 천막이 엄청 커서 감탄했고, 그곳에서 공부방 식구들, 다른 이웃들이 모두 모여 잠을 자는 것을 즐거워했고, 자동차를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했습니다. 아이들은 몸으로 작은 평화를 느끼고 돌아왔고, 그곳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평화라고, 미국의 끝없는 전쟁 욕심을 반대하는 것이 평화라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힘없고 가난하게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안전을 위해 대비하는 위장된 평화가 아닌 무기를 버려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사실들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재개발로 일부의 공부방 아이와 가족이 갈 곳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전쟁과 무기와 아파트는 발전을 가져다주지만, 우리와 가난한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심어주고 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첫댓글이 글을 쓴 분이 바끼통에서 '도로시'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세요. 요사이 바끼통에는 조금 뜸한가 봐요. / '… 평화란 비가 새더라도, 춥더라도, 허름한 집일지라도, 방 한 칸일지라도, 온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꿈을 만들며 사는 것… ' 좋은 글 읽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첫댓글 이 글을 쓴 분이 바끼통에서 '도로시'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세요. 요사이 바끼통에는 조금 뜸한가 봐요. / '… 평화란 비가 새더라도, 춥더라도, 허름한 집일지라도, 방 한 칸일지라도, 온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꿈을 만들며 사는 것… ' 좋은 글 읽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