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교회(金山敎會) 이야기
전북 김제, 금산사 가는 길목에 금산교회가 있다.
인삼의 고장 충남 금산(錦山)이 아닌
전북의 금산(金山)으로, 한자(漢字)도 다르다.
이곳 금산교회가 유명한 것은 한옥 건물 단면이 "ㄱ"자 형이다.
이러한 건축 구조는 남,여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남여유별" 이라는 전통사회의 습관을 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단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선교사 테이트(Lews Boyd Tate)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 교회를 설립하는 데는 데이트가 이곳에 와서 전도한
조 덕삼, 이 자익, 박 화서, 왕 순칠 등의 도움이 컸다, 이들은 훗 날
우리나라 교회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금산교회는 이곳 교회 옆에
새로 짓고 이 건물은 영구 보존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다.
이 건물은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 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단다.
이 예배당의 외부 출입문은 세 개가 있는데 남자가 출입할 수 있는 남쪽 출입문과
여자가 출입할 수 있는 동쪽 출입문, 설교자가 출입할 수 있는 문은 북쪽에 있다.
출입문 모두 세살문이다. 특히 목사의 출입문을 작게 만든 것은 강단 높이가 있어
구조작인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보통 사람의 신체보다 작고, 낮게
만들어 졌다. 목사가 출입하기 위해서 자신의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출입할 수 는 구조로 겸손을 배우는 "겸손의 문"이라고도 하였단다.
그리고 도로 맞은편에 전시관도 신축,각종 사료 및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ㄱ"자 모양의 교회 단면도를 크게 만들어 남, 여 신도의 모습을
작은 인형으로 표현, 남, 여가 구분된 장소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당시 엄격히 지켜지던 남녀유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전시관에는 한국 선교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는 자료도 있었다.
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1년 안식년 늘 맞아 미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보고와 강의를 하였는데, 1891년 10월에는 테네시 주 내쉬빌에서
개최한 전국신학교 해외 선교연합회 주최의 집회에서 유학생 윤치호와 함께
강사로 나와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증거 하였고
1892년 2월에는 교회잡지 "선교"에
"왜 우리는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 가"라는 논문을 투고한다.
언더우드의 강의에 감명을 받고
한국선교를 결심한 사람은 루이스 테이트 선교사 외
미국 북장로회 선교위원인 언더우드 선교사형 언더우드가
3천달러를 후원함으로써 남장로교 한국선교가 시작되었다.
미 남장로회 7인의 선발대는 1892년 7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일본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1892년 10월 17일 제물포항에 상륙한다.
그리고 그 후 일제 강점기의 금산교회 모습의 자료도 볼 수 있었다.
옛 건물은 잘 유지되고 있었으며 앞마당 종각도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고
실제 옛 건물과 새 교회가 한 마당에 공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다.
일요일 교회 안에선 예배를 마치고 성가대원들이
찬송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전북, 김제 금산에 이런 소중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이곳을 지나면서 처음 알았다.☆
♬-개여울, 노래-김상은
첫댓글
교회의 소식
주일 아침에 평화를 배달 하셨군요
잘 못 한 것...
거짓말 한것...
교회 애기에서 부터
회계해야 하는 것은 아시지요
비 많이 오나요
거기엔요...?
네 교안은 아니지만
성경책은 요즘애도
가끔씩 앍는답니다요
@행운
저는 교회의 성전엔 발을 디디고 하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이방인으로서...
가끔은 하나님 주여 하기도 하지요
오늘은 뭐 하시나요
@양떼 네 저는 성경책 65권을 많이 읽었고
무신론자인데 엊그제
모악산행후 다녀온곳이랍니다.
교회하면
옛날에 그 어린 순진한 시절엔
기침도 크게 하면 안되는 줄로...ㅎ
금산의 이렇게 교회의 역사이군요
구한말시절에 깨우쳐준 서양문물에
요즘에는 경의를 표해본답니다요
복많이 받는 휴일 보내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