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8.
딴지논설우원 파토
빌보드 차트.
열분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팝 키드, 록 키드였던 우원에게 이넘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원이 첨 팝을 듣던80년대 당시에 이 빌보드 차트란 거는, 머랄까, 음악 세계의 진정한 중심에 있는 어떤 것, 우리는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거대한 영광, 그래서 울나라를 특히나 변방의 소국으로 느끼게 만드는 무엇이었다. 옳던 그르던 어린 우원의 느낌은 그랬다는 말인데, 할리우드 키드에게 아카데미상이 가진 의미나 대략 비슷했을 거다.
이 빌보드 차트는 판매량이나 방송 횟수 등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종합해서 매주 빌보드라는 잡지를 통해 발표가 되는 건데, 여러 종목이 있지만 아무래도 대표적인 것은 핫 100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였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나 디지털 싱글이 보편화돼 있어서 차트도 그걸로 매기지만 당시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싱글은 7인치 레코드 형태로 발매되고 있었다. 앞에 '미는 곡' 하나, 뒤에 다른 곡 하나 수록하는 건데 지금의 CD크기와 같다고 보면 되고, 12인치의 LP 레코드가 1분에 33과 1/3 회전하는데 비해 45회전으로 빨리 돈다(그만큼 음질이 좋다).
요로코롬 생겨먹은 것이다. 한 면에 한 곡, 3~5분 정도 녹음된다.
근데 울 나라에는 외국 곡이던 국내 가요던 이 싱글 음반이 나온 적이 없다. 이유는 8곡 남짓 들어 있는 LP 앨범의 가격 자체가 너무 쌌기 때문이다. 80년대 LP의 가격이 대략 2~3천원 정도였으니 두 곡 들어 있는 싱글을 내려면 천원 이하로 떨어져야 팔 수가 있는데, 이래가지고는 제작, 유통비등 채산성이 전혀 안 맞는 거다. 미국에서는 엘피 레코드가 10달러 정도 했기 때문에 그 중 미는 곡을 싱글 커트해서 2천원 정도에 파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었다.
머 요런 게 빌보드 핫 100차트가 다루던 싱글 개념이었다는 말이고, 여튼 우원의 이런 빌보드 싱글 차트 섭렵은 중학교 2학년때쯤부터 시작됐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마돈나가 '라잌어 버진'으로 막 히트를 시작했을 무렵이지 싶다. 그 때의 빌보드 핫 100 인기 곡들이란 것은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 내 기억으로 1위는 못하고 4위쯤 올랐다 – 존 웨이트라는 양반의 '미싱 유', 그리고 프린스의 '웬 더브스 크라이' 나 '퍼플 레인', 포리너의 '아이 워너 노우 왓 러브 이즈', 컬처클럽의 '카마 카멜레온', 듀란듀란의 '리플렉스' 같은 것들이었다. 대부분 국내에서도 유명했으니 우원 또래라면 기억나는 넘들도 많지 싶다.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만들고 기타도 잘치던 프린스.
80년대 중반의 대표적인 빌보드 랭커
당시에는 국내에서 해외 팝의 인기나 지명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만큼 국내 가요의 수준이 떨어지고 – 인정하자. 사실 아니었냐 ? 쟝르 분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음악적 갈증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월간팝송이라는 팝 전문 잡지가 절찬리에 팔렸고 팝만 전문으로 트는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은 물론 티비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국내에 알려지는 곡들의 기준도 바로 빌보드 핫 100 차트였다.
유별나게 특이한 곡이 아닌 한 빌보드에서의 인기 곡은 곧 한국에서의 인기 팝이었다. 가끔씩 독일이나 이태리, 프랑스 등의 유로 팝이 수입돼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 모던 토킹이나 조이, FR 데이비드 같은 이름들 기억하시는가 – 기조는 항상 빌보드 차트였다. 그런데 당시는 설사 빌보드 인기 곡이라고 해도 전부 국내에서 레코드로 발매되던 때가 아니었고 금지곡도 많아서 우원은 청계천의 소위 빽판가게를 뒤져가며 히트차트의 모든 곡들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가 록, 메탈 쪽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아무래도 주간 싱글차트 쪽은 좀 소원해졌지만, 여하튼 꿈 많은 소년이던 우원의 한 시대의 열정을 바친 것이 바로 이 빌보드 차트와 그 실질적 권위였고, 우원에게 빌보드라는 이름은 아직도 그런 의미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튠즈 차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빌보드의 전통과 권위를 따라올 수는 없다.
이렇게 되다 보면 이제, 과연 우리는 언제나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곡을 배출할까, 머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문화적 사대주의 같은 소릴 할 지도 모르지만, 빌보드 차트라는 게 세계에서 가장 큰 대중음악 시장을 가진 미국의 인기 차트이자, 실제로는 단지 미국내 차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할 건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빌보드에서 뜨면 전세계에서 뜨는 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제적인 히트, 즉 음악세계의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입하는 의미인 거다.
그런데 그런 실제적인 기대를 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았다. 일단은 우리나라 음악을 그쪽에 알릴 기회나 루트 자체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본질적인 한계로서 언어문제가 있다. 하지만 더 큰 장벽은 다름아닌 '실력'이었다. 마이클 잭슨 춤을 대충 카피하면서 뽕댄스를 부르던 박남정 시대나 표절곡이 즐비하던 90년대, 걸밴드와 보이밴드로 점철된 2천년대 우리 대중음악은 '본토'에 명함을 들이밀기에는 기본적으로 함량부족이었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가? 인구 3억에 뮤지션의 수도 그만큼 많다. 우원이 기타업계에서 일해봐서 아는데 1년에 기타가 3백만대 팔린다. 새 기타의 수요만 이럴진대 중고 매매 같은 것까지 따지면 훨씬 더 크고, 악기가 머 기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음악 연주가 대중화되어 있고 저변이 엄청나게 넓으며, 어릴 때부터 아빠 삼촌 형님들의 연주를 보고 듣고 또 스스로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
예전 기타회사에서 일할 때 캘리포니아의 세계 최대 악기쇼인 남 NAMM 쇼에 부스를 만들고 참여했던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여기에 상담하러 오는 악기 도, 소매상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질릴 지경이었다면 이해가 될런지 모르겠다. 양복입고 비지니스 하러 온 양반들이 기타잡고 치는데 너무 말도 안되게 잘하는 거다. 다들 알다시피 악기 업계는 '실패한 뮤지션'들의 세계다. 그럼 성공한 뮤지션들은 대체 어떤 수준이란 말이냐.
그러니 이런 곳에서 아티스트로 두각을 나타내려면 기본 실력은 물론이고 개성과 매력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월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죽도록 노력만 해서 되는 세계도 아니요, 돈을 있는 대로 퍼부어 홍보하고 마케팅한다고 통하는 바닥도 아니며, 누구처럼 바닥부터 기면서 곡 한번만 틀어달라, 한번만 만나달라고 사정해서 되는 판도 아니다. 말 그대로 플러스 알파, 엑스 팩터가 있어야만 진입할 수 있는 세계인 거다.
이번 싸이의 빌보드 진입 2위가 가능했던 이유로 유튜브가 주로 이야기된다. 아 물론 일등공신이고 유튜브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많은 우리나라 가수들 비디오가 유튜브에 올라있음에도 싸이만 이렇게 뜬 이유는 뭐냐. 웃겨서 그렇다고도 하고 싸이 본인도 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일단 사람들의 눈을 끄는 데는 분명 일조했지만 실은 부수적인 부분이다.
싸이가 통한 것은 다름아니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재밌게 만드는 감각부터 시작해서 곡을 직접 만들고 노래를 하는 능력 – 우원은 싸이의 작곡이나 퍼포먼스 능력에 대해 오래 전부터 높이 평가해 왔다 -, 그리고 새롭고 남다른 것을 다른 넘 눈치 안보고 내뱉듯 드러내는 개성까지가 다 실력이다. 유머 코드와 좋은 음악과 새로움이 전부 합쳐져서 세계인을 사로잡은 거다. 제 아무리 춤이 재밌고 비디오가 포복절도 웃긴다 한들 노래가 별로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를 리 만무하고 쿨함과 멋짐에 목숨 거는 서양 젊은 애들이 클럽에서 춤출 리가 없고 미국 최대 권위와 인기의 티비 쇼들에 초대 받을 리 없다. 세계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모씨와는 달리 싸이는 미국 프로그램에 나가서 그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Dress classy, dance cheesy' 같은 센스 좋은 말을 – 아는 넘은 알겠지만 이거 나름 운율도 생기고 굉장히 좋은 표현이다 – 할 정도로 '본의 아니게' 이미 세계 시장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것도 실력이다.
이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비디오나 춤이 재밌다 한들 유튜브 스타, 반짝 인기에 끝나고 마는 거고 미국 유수의 프로듀서와 계약을 맺는다거나 SNL 나 엘렌 쇼 등에 출현하거나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는 거는 절대, 절대 안되는 일이다.
자, 이래서 우원은 지금 이 상황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언감생심 넘겨다 보지도 못하던 어떤 세계.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아무리 많이 팔고 한류라면서 아시아를 휩쓸고 다녀도 차마 근접하지 못하던, 박진영이 돈 수억 깨져가면서 바리바리 짐 싸들고 어떻게든 들어가보려던 그 세계. 바로 그 빌보드, 그리고 세계 대중음악계에 이렇게 기분 좋게 쳐들어가 버렸으니.
그것도 토종 외모에 토종 음악, 한국어 가사 노래로 말이다. 이건 소위 마케팅적 관점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접근이다. 한국어 가사 노래로 빌보드에 덤빈다는 것부터 기획의 관점에서는 미친 짓이다. 그러니 기획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영국 가디언이 싸이가 뚱뚱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킬 거라고 지적했던데, 우원도 외국 살면서 그런 편견 있다는 거 잘 알고 그게 희화된다는 것도 알지만, 이번엔 가디언이 잘못 짚었다. 지금 서구인에게 있어서 싸이와 강남스타일의 이미지는 뚱뚱하고 어눌한 기존의 동양인 남자가 아니라 같이 춤추고 싶은 신선한 쿨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싸이가 실제로 좀 뚱뚱하고 웃길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창조적 생산자이며, 방송을 보면서 그들도 느끼겠지만 기본적으로 똑똑한 친구라는 점에서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초기 우원의 우려와는 달리 국제 엔터테인먼트계에 제대로 진입해서 안정된 롱런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싸이라는 사람이 가진 퀄리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세계인들이 알아보게 된 거다.
오늘 아침에 우원은 영국의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지금 런던 중심가의 댄스클럽들에서 강남스타일이 디제이가 곡을 틀면 환호성이 나오는 메인 테마곡이 되었으며, 심지어 한국인을 한때 친구로 뒀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클럽에서 자기 옆의 영국인 여자가 강남스타일이 나오자 안 되는 한국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며 댄스를 완벽하게 소화하더라는 것. 젊은 사람이라면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나 이미지가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원과 4년동안 대학을 같이 다닌 이 친구가 '내가 한국인 절친을 갖고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고 말을 할 정도였다. 지금 이런 현상은 런던뿐 아니라 파리, 로마, 뉴욕, 엘에이, 베를린 등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건 뭘 말하는 거냐. 1000억을 쏟아 부었어도 불가능했을 일이 일어난 거고, 이게 가져다 주는 울나라에 대한 이미지 재고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보다더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올림픽 월드컵 다 했으니 세계인들이 울나라를 다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캐나다와 영국생활 도합 6년과 중국에서 그리스까지의 배낭여행을 하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살았던 우원이지만 매번 한국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부딪혀 왔고, 우리가 왜 머나먼 빈국이 아니라 그럭저럭 갠찮는 나라인지 매번 설명해야 했다. 국위선양이니 하는 말을 쓰기엔 좀 그렇지만, 여하튼 세계인이 관심과 호감을 갖는 나라가 된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인데 싸이와 강남스타일이 지금 그걸 해내고 있다.
울나라에서만 호들갑 떨면서 머 월드스타 어쩌고 하던 말들에 절라 시니컬한 우원이지만, 지금 싸이 관련해서 국제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여기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나다는 점, 이 반전이 우원은 통쾌하다. 그 과정과 상황들이 찌질함이라곤 없이 절라 쿨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담주에 1위 가면 더 멋지겠지만, 안 그래도 상관은 없다.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이 저 멀리 어딘가 떠 있는 것 같던 빌보드 싱글 차트에 2위까지 올라갔다. 우리 가수의 우리 말 노래로. 우원은 빌보드 키드로, 한국에서 잠시나마 음악을 했던 뮤지션으로, 울나라 대중음악판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했던 사람으로서 그저 이 상황이 너무 즐겁고 놀라울 뿐이다.
…그래도 1위 가자. 씨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
제게도 빌보드는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1977년 중학 입학하고 월간팝송을 정기 구독하며 알게된 빌보드챠트.
그때 월간팝송에 빌보드 순위 1위~100위까지 매달 끼워져 있었거든요.
그때 모은 빌보드지중 몇장은 아직 갖고 있는데 ㅎㅎㅎ
하여튼 가수 싸이는 대단합니다.
문화애국자입니다.
내 어릴때 말로는 빌보드 차트 1위만 해도 평생 놀고 먹을 돈을 번다는...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러겠지....
어쩌건, 박진영 지못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