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째로 삶방의 이야기와 거리가 먼 고전문학의 내용을 써 볼까합니다 나도 모르게 고전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안동의 낙동강가에 도산서원을 세워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하고 나라에 동량을 키운 조선의 최대의 학자 퇴게(退溪)이 황선생의 도산12곡의 일부와 율곡 이이 고산구곡가를 제시하고져 한다. 깊은 양해를 바람니다.
李 滉 ---- 陶山十二曲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草野愚生(초야 우생)이 이러타 어떠하리 하물며 泉石膏肓(천석고황)을 고쳐 무엇하리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않니하는고 우리도 그치지말아 만고상청 하리라 ◈ 草野愚生(초야우생)----퇴계 이황선생은 조선의 대학자이면서 초야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자기자신을 극도로 낮추었다 泉石膏肓(천석고황) --- 자연을 좋아하고 그리는 마음에서 고황은 우리몸의신장부분에 병이 들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음
나는 하두 안동을 좋아하여 여러번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그리고 농암의 종택들을 답사를하며 고전문학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즐겨하였다. 안동은 지금도 조선사회의 유교문화속에 사는 도시 같다. 아직도 종가집들이 70 여 곳이 있다하니 가히 알아 줄만하다.
안동땜이 수몰되어 원래의 그 모습을 찾을수는 없지만 자연 그대로 복원을 하여 옛 유교문화의 향수를 느낄수가 있다. 조선의 대학자가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의 조그마한 산을 배경으로하여 도산서당을 지어 영남의 수제자들을 가르쳐 국가발전의 동량을 키웠다고 하니 ,그의 수제자는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이다 두분의 종가를 다답사를 한 바 있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시 영의정으로 7년간의 대 전쟁을 진두지휘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전란을 막아야 하였다 육군으 권률장군, 수군의 이순신을 등용하여 명나라의 도움과 특히 호남의 의병들이 일어나서서 일본과 싸워야 하였다. 일본은 유독 남해를 거쳐 진주성에서 전투가 치열하였다.서애 류성룡은 후에 '징비록'이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진주성에서 많은 의병들이 아들들과 순직을 하게 되는 가슴아픈 역사의 질곡을 우리는 받아 들어아만 하였다 나주의 김천일 의병장은 아들 김상건을 안고 삼장사라는 시문을 남기고 남강의 흐르는 물결에 잠겨야 하였다. 또한 고경명 선생은 두 아들 종후 인후의 아들을 안고 진주의 촉석류 아래의 남강에 몸을 던지고 ,여기 화순의 최경회 의병장은 형제들과 조카들과 함께 진주성에 함락으로 남강의 물길에 몸을 던졌다.
이미 일본의 침략은 호남을 공략하여 호남의 곡창지대를 확보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일본은 중국의 본토를 점령하여 중국에 대 일본 제국을 세울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니 조선은 안중에도 없고 길이나 비켜주라는 식이다
조선의 대선비 율곡 이이는 십만 양병설을 할 것을 건의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방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왕권 세습제의 왕의 능력의 한계 ,우물안의 개구리로 조그마한 조선의 정보와 힘은 미약 하기 짝이 었었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제시하며 글을 마치고져 한다.
李 珥의 高山九曲歌에서
高山九曲潭을 사람들이 몰려드니 誅茅卜居하니 벗님네 다오신다. 어즙어 주이를 상상하고 學朱子를 하리라
율곡 이이는 황해도 해주의 고산구곡담의 계곡이나 봄니다 띠집을 베고 주거집을 지으니 벗님네들이 다오고 있다는 내용이며 주이의 학문을 하겟다는 내용입니다 |
첫댓글 동구리님이 뜨셔야 고전의 향기를 맡습니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않니하는고
우리도 그치지말아 만고상청 하리라' 오랫만에 한번 고시조를 읊어봅니다.
임진왜란때 유성룡이 있어 이순신이 살아서 활약할 수 있음을...
사람의 인연이 이리 중요한 것을요
낭만 선배님 감사합니다
카페는 취미와 건강 그리고 정보 지식 다양한 재능으로 회원들간의 활동공간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상호 교류로써 서로가 나의 우정이요 서로의 존재감을 알아주는 작은 공간속에 무한한
인간관계를 느껴 봅니다 화순에 자그마한 영화관이 있어 영화 '노량' 이순신 장군의 남해 노량에서의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보고 나니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였습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자그마한 중국의 대륙지대에 아래에 있는 나라 같습니다
모든 문화가 중국의 영향으로 항상 사대주의에 능해야 존재하며 남으로는 항상 기회만 있으면 조선을 손아귀에 집어
너을려는 야심을 품은 일본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아~~~ 36년간의 치욕의 역사
과거가 존재 하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겠죠
선배 님의 말씀처럼 사대주의의 사상 그것은 의존 하는 나약한
사상이며 일본의 38년 간 그 치욕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힘이 없기에 당한 치욕도 있지만 위정자들이 국가 보다 당리 당략에 의한
정치에 의하여 일어난 치욕이 더 많답니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 정말 가슴에 담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