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로와 성대앞의 선술집에 앉아서
선배들과 친구들과 엄청 불러댔던 노래다.
또 한 때는 화양리의 구멍가게 같은 학사주점인 '가나다라'에서
선배언니와 그니와 여러 선배들과 합창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나중엔 내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참, 그러고 보니... 화양리에서 가나다라를 하며
공부를 했던 그 형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와 선배언니처럼 혹은, 그니처럼
누군가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가장으로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련다.
그 노래를 얼마전에...
양희씨와 촛불집회 50인만이 함께 불렀다 한다.
세종로 사거리 '6.10 촛불대항쟁' 무대. <오마이뉴스> 생중계 화면입니다.
가수 양희은씨와 50만 촛불시민이 한 목소리로 '아침이슬'을 불렀습니다.
이보다 멋진 광경이 또 있을까요. 정말 가슴 뭉클했습니다.
작은 촛불이 모이고 모여 바다를 이루고,
그 바다는 좌우로 넘실대며 어두운 밤을 밝혔습니다.
새벽을 알 수 없는 '긴 밤'입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든 촛불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든 촛불,
또 그 옆 촛불이 긴 밤을 이기게 해줄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컨테이너도 훈훈하게 만들 수 있는 따뜻한 촛불입니다.
촛불 너머 촛불입니다.
"나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에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이제 가노라"
오늘도 눈을 감고 불러봅니다.
아침이슬은 언제부터 불렸나
1970년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노래하였다.
양희은의 가수 데뷔곡으로, 트로트 중심의 식상된 한국의 가요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높여 놓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학생이던 김민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한 곡이다.
1970년대 초반에 통기타 선풍을 일으키며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정치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시절이던 1975년에 금지 사유 없이 금지곡이 되어
대학가에서는 저항 가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 곡으로 인해 김민기는 1971년 독집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출처 : 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