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링을 숨을 곳 없는 '사각의 정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로프로 두른, 가로 세로 약 5미터가 조금 넘는 좁은 공간에서 오직 두 주먹으로만 치고받으며 승부를 가리는 복싱 경기는 냉혹합니다. 안면을 가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경기라서, 간혹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각의 정글 위에서 수많은 명승부들이 펼쳐졌고,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그 많은 스타들 중에서 무함마드 알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역대 '최고의 복서'란 명예로운 수식어가 붙는, 설명이 필요 없는 복싱계의 전설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으로 인해서 존경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상대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링 주변을 돌며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했고,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불필요한 부상을 입히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가 제리 쿼리(Jerry Quarry)와의 1972년 경기입니다. 복싱 헤비급은 주로 흑인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어서 당시 인종차별이 심했던 백인 사회 일각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백인인 제리 쿼리가 승승장구하여 흑인들을 꺾어가자 그들은 쿼리를 "백인의 희망"이라고 부르며 광적으로 응원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알리는 인종차별에 저항하고 기독교 기반의 사회의 부조리에 반항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알리는 인종주의자들이 응원하는 "백인의 희망"을 때려눕히는 것으로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링 밖에서의 설전을 즐기고 그것에 능했던 알리는 쿼리를 지칭하여 "백인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깎아내리고 조롱하며 인종주의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백인들은 열광적으로 쿼리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쿼리는 알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3회가 지나며 알리의 우세가 뚜렷해지면서 관중석의 기대감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방송 중계 해설자로부터 '이제는 알리가 쿼리를 언제 때려눕히고 경기를 끝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라는 멘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계속되고 6라운드가 오자 쿼리는 분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계속되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마지막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쿼리의 계속되는 공격에 백인들로 가득 찬 관중석은 기립 박수를 치며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7라운드가 시작되자 전 라운드에서 힘을 많이 소진한 데다가 그동안 너무 많이 맞은 쿼리는 알리의 가벼운 펀치에 힘없이 밀려 가까스로 로프에 기대어 지탱합니다. 그 순간 복싱의 링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알리는 심판을 힐끗 보더니 주먹으로 손짓하며 쿼리의 상태를 보라는 듯 제스처를 합니다. 심판이 다가오는 동안 마지못해 하는 듯이 또 가벼운 펀치를 날리자 맞은 쿼리는 뒤로 쓰러질 것처럼 밀려 납니다. 그러자 심판이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과 동시에 알리도 심판에게 다시 경기를 그만 중지시켜라는 듯 손짓을 하지요. 그렇게 경기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해설자는 '저는 심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쿼리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거든요'라고 덧붙입니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살아남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알리가 일관되게 보여준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그의 화려한 승전의 기록들에 가려져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리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받은 선수로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끊임없이 남보다 앞서려고 애씁니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합니다. 인생도 복싱처럼 승부의 연속입니다. 내가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우며 살아갑니다. 자식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경쟁을 강조하며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패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좋은 차를 타고 명품 옷과 구두로 치장하고 다니며 자랑할 때, 그것을 지켜보며 가슴 한 구석에 멍이 들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삽니다. 자식이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을 자랑할 때, 그것을 듣는 사람들 중에 재수한 자식이 또 입시에 실패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냉혹한 링에서의 승부와도 같은 우리의 인생의 싸움터에서, 마치 알리가 때로 했던 것처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시가 한 편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벽난로 시인(Fireside Poets)’ 가운데 한 사람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 1807~1892)의 '학창시절에(In Schooldays)'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인생이란 학교의 수업에서 '남보다 앞서는 법이 아니라, 나의 승리 때문에 누군가가 아파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대방을 배려하며 손을 내밀어 주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잠든 듯 낡은 학교 건물은
여전히 길 옆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붉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블랙베리 넝쿨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안으로 회초리로 자주 두드려
깊게 파인 선생님의 책상과
낡아서 휘어진 나무 바닥 위에 상처 투성이의 의자들
그리고 주머니칼로 책상에 새겨 놓은 이니셜들도 보였다.
벽에는 숯으로 그린 낙서들....
닳아빠진 문턱은
등굣길에서는 기듯이 억지로 왔다가
놀러 나갈 때는 폭풍처럼 재빠르게 달려 나가던 발걸음들을 기억하게 했다
오랜 옛날, 저녁 햇살은
학교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서쪽 창문들과 낮은 처마의
고드름들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햇살은 헝클어진 금발의 고수머리와
슬픔으로 가득 찬 갈색 눈동자를 어루만졌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학교에 남은 소녀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어린 마음에 선택한
작은 소년이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랑스러움과 수줍음이 뒤섞인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발로 계속해서
눈을 이리저리 밀치며 쭈뼛거리고 있었고
그녀의 작은 손은
푸른 체크무늬의 앞치마를 계속 만작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을 때
소년은 부드러운 손길이 자신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는 무슨 잘못을 고백하는 것 같은
떨리는 음성이 들렸다.
"내가 그 단어의 스펠링을 맞추어서 미안해.
나는 너보다 더 잘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그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왜냐하면, 너도 알잖아..... 나는 너를 사랑해!"
백발의 노인에게는
그 달콤했던 소녀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사랑스럽던 소녀여!
그녀의 무덤에 풀이 자라기 시작한 게
벌써 사십 년이 되었다.
그는 인생이란 고된 학교에서 살아가며 배울 수 있었다.
그를 앞질러 간 사람들 중에서
그녀처럼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승리와 그의 패배로 인해서
가슴 아파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적었던가를
In School-days
By John Greenleaf Whittier (1807-1892)
Still sits the school-house by the road,
A ragged beggar sleeping;
Around it still the sumachs grow,
And blackberry-vines are creeping.
Within, the master’s desk is seen,
Deep scarred by raps official;
The warping floor, the battered seats,
The jack-knife’s carved initial;
The charcoal frescos on its wall;
Its door’s worn sill, betraying
The feet that, creeping slow to school,
Went storming out to playing!
Long years ago a winter sun
Shone over it at setting;
Lit up its western window-panes,
And low eaves’ icy fretting.
It touched the tangled golden curls,
And brown eyes full of grieving,
Of one who still her steps delayed
When all the school were leaving.
For near her stood the little boy
Her childish favor singled:
His cap pulled low upon a face
Where pride and shame were mingled.
Pushing with restless feet the snow
To right and left, he lingered;—
As restlessly her tiny hands
The blue-checked apron fingered.
He saw her lift her eyes; he felt
The soft hand’s light caressing,
And heard the tremble of her voice,
As if a fault confessing.
“I’m sorry that I spelt the word:
I hate to go above you,
Because,”—the brown eyes lower fell,—
“Because, you see, I love you!”
Still memory to a gray-haired man
That sweet child-face is showing.
Dear girl! the grasses on her grave
Have forty years been growing!
He lives to learn, in life’s hard school,
How few who pass above him
Lament their triumph and his loss,
Like her,—because they love him.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