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본명 김병연(金炳淵)(1807~1863)
김삿갓이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고 이듬해 처형당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후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살았는데 김병연은 조부 김익순金益淳)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져 왔던 집안 내력을 들은 김삿갓은 자신이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아내와 아이 그리고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 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 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 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
漂浪一生嘆(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굴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내 평생을 회고해 보니 나는 스스로 상처뿐이니
짚신 신고 죽장 짚고 천리 길에 구름 같은 마음과 물 같은 성질은 사방이 내 집일세
김삿갓이 여러 고을을 방랑하던 중 한 서당에 도착하게 되어 물이나 한 모금 얻어 마실까 하였는데 훈장이 김삿갓의 용모를 보고 대꾸도 안 하자 김삿갓은 그 즉석에서 지은 한시를 보면 얼마나 한문을 자유로이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서당에 당도했으나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는구나, 배우는 아이들이 모두 열이 채 안 되고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존귀한데 훈장이 나와서 내다보지도 않는다. 각박한 인심을 풍자하며 파격적인 한자를 쓴 그의 시는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스무(二十) 나무 아래 서러운(←설흔) 나그네,
망할(←마흔)놈의 집에서 쉰(五十)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 일이 있는가.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 밥을 먹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