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여:이 글은 한겨레신문 2월 19일(화)자 30쪽에 있는 고정 칼럼난인 [유레카]에 오태규님이 "레슬링 퇴출"이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좋은 글이라 여겨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았읍니다.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오태규의 [유레카]
레슬링 퇴출
오태규(한겨레신문 논설위원)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올림픽은 육상, 수영, 체조, 역도, 레슬링, 펜싱, 사격, 사이클, 테니스 등 9개 종목으로
시작했다. 메달을 주는 세부경기는 육상 12개를 비롯해 모두 43개였다. 이것이 지난해 열린 제30회 런던올림픽 때는 26개 종목에 302개
세부경기로 크게 늘었다.
그동안 올림픽 종목에 들어갔다가 퇴출당한 종목은 모두 44개. 이 중 시범경기 단계에서 쫓겨난 종목이
20개, 정식종목에 포함되었다가 빠진 게 14개다.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한 종목 가운데는 야구, 골프, 크리켓, 럭비, 소프트볼처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스포츠도 있지만, 줄다리기, 워터모터스포츠와 같은 희귀 종목도 있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퇴출당한 야구에선 우리나라가 최후의
금메달을 목에 건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에서 초대 대회부터 자리잡았던 레슬링이 퇴출당했다. 올림픽위원회는
2020년 대회부터 25개 핵심종목 체제로 대회를 운영할 계획인데, 터줏대감 레슬링이 25위 안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레슬링은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는 등 메달밭 노릇을 톡톡히 해온 효자종목이어서 우리나라도 충격이 크다. 반면, 꾸준히
퇴출 후보 명단에 오르내리던 우리나라 국기 태권도는 겨우 턱걸이에 성공했다.
레슬링이 서리를 맞은 결정적 이유는 ‘인기가 없다’는 것이라는데,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했던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의 심경이 어떨지 궁금하다. 레슬링의 퇴출과 함께, “올림픽대회의 의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이다”라는 올림픽 강령도 동반 퇴출의 운명을 맞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