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 시원하여 다른 사물 없으니(泠然心眼無他物)
물소리 귀에 가득하니 세속 잡음 사라지고 / 水聲盈耳世音息
산빛 옷깃에 비끼니 속된 생각 없어지네 / 山色橫襟塵相空
눈과 마음 시원하여 다른 사물 없으니 / 泠然心眼無他物
맑고 찬 기운 거두어 배 속 가득 채우리 / 收取淸寒滿腹中
위는 서하 이민서 선생이 금강산 유람 중 지은 ‘금강 12절[金剛十二絶]’ 중 백천동(百川洞)에 들러 지은 시(詩)로 우리가 자연을 대할 때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운용하시는 섭리와 이치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하는 듯하여 청결하고 경건한 마음을 기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연고로 예전에 우리 조상님들은 자연경관을 그토록 사랑하였으니 특별히 뛰어난 절경의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더욱 간절히 염원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금강산을 가볼 수는 없지만 선조님들이 유람하시고 좋은 시들을 남기셨으니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생각건대 하나님이 금강산 백천동을 창조하시며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바는 바로 우리가 속세의 어지러운 탐욕을 극복하고 맑고 차갑도록 깨끗한 마음을 길러서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니 우리가 그렇게 살면 현세와 내세에서 복(福)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8절).
2024. 1.24. 素淡
금강 12절[金剛十二絶]
·············································· 서하 이민서 선생
수많은 산이 둘러싼 한 봉우리 우뚝한데 / 萬山環擁一峯孤
골짝에는 가을 깊어 분위기 다르네 / 澗壑秋深氣色殊
십이폭포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는데 / 十二飛泉遙在眼
북풍이 얼굴 스치며 물방울 날리네 / 北風吹面送跳珠
이상은 은선대에서 십이폭포를 보면서 지은 시이다.
물소리 귀에 가득하니 세속 잡음 사라지고 / 水聲盈耳世音息
산빛 옷깃에 비끼니 속된 생각 없어지네 / 山色橫襟塵相空
눈과 마음 시원하여 다른 사물 없으니 / 泠然心眼無他物
맑고 찬 기운 거두어 배 속 가득 채우리 / 收取淸寒滿腹中
이상은 백천동을 읊은 시이다.
만 길의 푸른 벼랑 전혀 티끌 없는데 / 蒼崖萬丈迥無塵
하늘 높이 새겨 놓은 관세음보살 / 刻畫彌天大士身
깊은 산 청정한 경계에 홀로 서서 / 獨立空山淸淨界
천추토록 오가는 사람들 지나 보내네 / 千秋度過去來人
이상은 관음석상을 읊은 시이다.
약관에 동쪽 유람하다 이 암자 들렀을 때 / 弱冠東遊過此菴
저녁 종 새벽 풍경 소리에 원숭이 울음 섞였었지 / 暮鍾晨磬雜猿吟
지금은 폐찰되어 청소하는 사람 없으니 / 今來廢院無人掃
문밖에는 이끼 끼고 낙엽만 가득 / 門外蒼苔落葉深
이상은 마하연을 읊은 시이다.
절이 높이 기둥 하나에 매달려 버티는데 / 蘭若高懸一柱撑
골짜기 바람 종일 기둥을 뒤흔드네 / 谷風終日撼仙楹
우객(羽客)이 때때로 찾는 곳일 뿐이니 / 秖應羽客時相過
세속 사람 찾아오도록 하겠는가 / 肯遣人間俗子行
이상은 보덕굴을 읊은 시이다.
여러 갈래 흐르는 냇물 골짝 냉기 내뿜고 / 百道奔川噴壑涼
기이한 봉우리 우뚝 솟아 석문이 맑도다 / 奇峯突兀石門淸
연못과 폭포 많아 셀 수 없거늘 / 潭淵澗瀑紛無數
어떤 사람이 하나하나 억지로 이름 붙였나 / 一一何人強指名
이상은 만폭동을 읊은 시이다.
골짝의 서늘한 바람 얼굴을 스치는데 / 谷口涼風拂面來
상서로운 노을과 향기로운 안개 선대(仙臺)를 감싸네 / 瑞霞香霧擁仙臺
누대 주변 늙은 나무에 가을 저물어 가고 / 臺邊樹老秋光暮
생학(笙鶴)은 떠나 천년토록 돌아오지 않네 / 笙鶴千年去不廻
이상은 학대를 읊은 시이다.
걸음마다 아름다운 못에 맑은 물 흐르는데 / 步步瓊潭帶玉流
한 줄기 냇가 따라가니 골짜기 어귀 깊구나 / 沿溪一道洞門幽
이 속의 원통사 오래전부터 알았건만 / 此中久識圓通寺
낙엽 쌓인 가을이라 좁은 길 찾기 어려워라 / 微逕難尋落木秋
이상은 원통사를 바라보다가 도착하지 못하고 지은 시이다.
절의 옛 전각 대낮에도 컴컴한데 / 招提古殿晝冥冥
눈 아래 일천 봉우리 채색 병풍 두른 듯 / 眼底千峯遶綵屛
벽에는 오생(吳生)이 그림 남겼는데 / 壁上吳生留繪畫
스산한 그 기운 선령(仙靈)을 모았네 / 陰威颯爽集仙靈
이상은 정양사 약사전을 읊은 시이다.
빈산의 밤은 고요하고 불등(佛燈)은 외로운데 / 空山夜靜佛燈孤
스산한 골짝에서 때로 괴이한 새소리 들리네 / 哀壑時聞怪鳥呼
창밖에 우뚝한 독수리 머리 보이기에 / 窓外鷲頭看突兀
어둠 속에서 더듬어 보고 향로임을 알았네 / 暗中摸索認香爐
이상은 정양사 선방에서 밤에 유숙하며 지은 시이다.
한 줄기 시내 따라 깊이 들어가 송라암 찾으니 / 一溪深入訪松蘿
찬비 쓸쓸하고 낙엽 수북하구나 / 寒雨蕭蕭落葉多
서글퍼라 시왕천(十王川) 가의 길이여 / 惆悵十王川畔路
구름 깊은 곳에서 높은 산봉우리 바라보노라 / 亂雲深處望嵯峨
이상은 망고대를 찾아가다가 비를 만나 도착하지 못하고 지은 시이다.
수많은 산천에 자유로운 몸이요 / 萬水千山自在身
흰 구름과 붉은 단풍 좋아하는 사람이라오 / 白雲紅葉好隨人
오늘 아침 또 절을 떠나니 / 今朝又出招提境
신선 찾아 상안(商顔) 향하려 하네 / 欲向商顔訪隱淪
이상은 장안사를 떠나면서 지은 시이다.
[주-1] 약관에 …… 때 :
이민서가 22세이던 1654년(효종5)에 부친 이경여가 청나라의 질책을 피해 충주에 우거하자, 부친을 찾아 나선 길에 금강산을 먼저 유람하였다. 《屛山集 卷10 先府君行狀》
[주-2] 생학(笙鶴)은 …… 않네 :
생학은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왕자교(王子喬)가 탔다는 선학(仙鶴)을 말한다. 왕자교가 생(笙)을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냈는데, 숭산(嵩山)에서 도술을 배운 지 30여 년 후 백학을 타고 구씨산(緱氏山) 마루에 올라가 며칠을 있다가 떠나 버렸다고 한다. 《補注杜詩 卷25 玉臺觀 2首》
[주-3] 벽에는 …… 남겼는데 :
오생(吳生)은 당대(唐代)의 유명한 화가인 오도현(吳道玄)으로, 자는 도자(道子)이다. 특히 산수(山水)와 불상(佛像)에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김창협은 정양사를 유람하고 지은 〈동유기(東遊記)〉에서 “이른바 팔각전(八角殿)이란 곳은 제도가 매우 기이하고 사방의 벽에 모두 불화(佛畫)가 그려져 있는데, 채색이 상당히 벗겨졌는데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정기(精氣)가 넘쳐흘렀다. 세상에서는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이라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라고 하여 오도현이 그렸다는 설을 부인하였다. 《農巖集 卷23 東遊記》
[주-4] 송라암(松蘿菴) :
만폭동에 있다. 두 개의 암자가 마주 보고 있으니, 큰 송라암ㆍ작은 송라암이라고 한다. 암자 아래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장양(長楊)의 수령이 난을 피해 여기로 들어왔다.” 하고 어떤 이는 “그 수령이 반란을 꾀하여 여기에 의거하였다.”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암자 동쪽에 큰 골짜기가 있으니, 백 갈래의 나는 듯한 샘물이 쏟아져 내려와서 가지처럼 나뉘고 팔다리처럼 갈라지는데, 아득히 멀어서 흰 무지개같이 보인다. 봉우리들은 높고 험하여 바윗돌들이 우뚝우뚝 솟았으니, 우뚝한 것은 칼과 같고 예리한 것은 송곳 같다. 솟아오른 것은 손과 같고, 나란히 된 것은 치아와 같다. 굽은 것은 팔꿈치 같고 가로지른 것은 팔과 같은데, 푸르름이 여기저기 퍼져서 군데군데 나타나고 첩첩이 드러난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7권 강원도 회양도호부 산천》
[주-5] 시왕천(十王川) :
시왕백천동(十王百川洞)을 말한다. 《속동문선(續東文選)》 권21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 “동북쪽에 안문봉(雁門峯)이 있어 비로봉에 다음가고 안문봉 뒤에 대장(大藏), 상개심(上開心)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다만 뾰족한 머리가 붓끝처럼 보일 뿐이며 여러 뾰족한 봉우리 남쪽에 두 봉우리가 있어 여러 뾰족한 봉우리에 비하면 2, 3등급이 나직하게 보이는데, 이름은 시왕봉(十王峯)이다. 봉우리 뒤에 시왕백천동이 있고 냇가에 영원암(寧原菴)이 있다.” 하였다.
[주-6] 망고대(望高臺) :
망고봉(望高峯)이라고도 한다. 금강산의 동쪽 봉우리이다. 송라암(松蘿菴)에서 막혀 있는 벼랑을 지나가려면 벼랑이 돌난간과 같아서 쇠줄을 수직으로 드리우고 사람들이 그것을 붙잡고 올라간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만약 떠들썩하게 지껄이면 갠 날에도 반드시 비가 온다.” 하였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7권 강원도 회양도호부 산천》
[주-7] 신선 …… 하네 :
원문의 ‘상안(商顔)’은 사람의 얼굴 형태와 비슷한 모양의 상산(商山)이라는 뜻으로, 보통 상산의 별칭으로 쓰인다. 진(秦)나라 말기에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자지(紫芝), 즉 영지(靈芝)를 캐 먹으며 살았던 곳으로 은거지를 말한다.
[주-8] 장안사(長安寺) :
금강산 제일의 사찰이다. 《임하필기(林下筆記)》 권37 〈봉래비서(蓬萊秘書)〉에 “재에서 30리를 가는 동안에 한 물을 무려 아홉 번이나 건너서 장안동(長安洞) 어귀에 이른 다음 일조문(日照門)으로 들어가서 만천교를 건너는데, 만천교는 바로 금강산의 문이다. 그 다리는 비홍교(飛虹橋)라고도 한다. 다리 안에는 산영루(山暎樓)가 있었는데, 정유년의 홍수에 다리는 떠내려가고 누각은 무너졌다. 다리가 옛날에는 돌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로 만들었다. 다리 곁에는 기적비(紀蹟碑)가 서 있고, 동쪽에는 송월(松月)과 응상(應祥) 두 승려의 비석이 있다. 처음에 절에 들어가면 문 위에 ‘장안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또 ‘해동제일명산대찰(海東第一名山大刹)’이란 여덟 글자가 걸려 있는데, 소고(嘯皐) 윤사국(尹師國)의 글씨이다. 누각은 범종루(泛鍾樓)와 신선루(神仙樓)이고 불전(佛殿)들이 한 골짜기에 가득하다. 석가봉(釋迦峯), 지장봉(地藏峯), 관음봉(觀音峯)이 가장 높고 장경봉(長慶峯)이 안대(案對)가 되며, 서쪽에는 토산(土山)이 있어 주진(主鎭)이 된다. 절은 신라의 율사(律師)인 진표(眞表)에 의해 창건되었고 회정(懷正)에 의해 중건되었다. 부처 앞에 진열된 오래된 동기(銅器) 및 금은서장경(金銀書藏經)은 모두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하사한 것이고, 지정(至正) 연간에 기황후(奇皇后)가 돈을 내어 중수 자금으로 써서 황자(皇子)를 위해 복을 빌게 했다고 한다.” 하였다.
<출처 : 서하집(西河集) 제3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유영봉 장성덕 (공역)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