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성 또는 한성문제, 한강과 한수 문제 등..관련 지명에 대한 이해문제에 대해서 아마 수년전에 글을 정리해놓은 듯 한데 찾을 수가 없어가지고...ㅎㅎ
지금 제가 예전처럼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아서 아마도 충분한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는 글은 안될것 같지만 예전에 생각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문제점은 몇가지로 정리하자면
**위례성 / 하남위례성 / 한성 / 한산 / 북한산 / 남한산 등의 구분여부와 위치문제
**한수와 한강 / 아리수 문제
대강 요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물론 백제의 도읍지가 공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한성시대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한강유역일대에서 몇차례 도읍지 이동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리자면 다시 까페에 들리기 시작한게 얼마 되지 않아 사료나 자료를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먼저 현재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을 구분하고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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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제삼을 것은 온조가 처음 남하하여 도읍한 것은 강북인가..강남인가..??
백제본기에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삼는다고 되어 있지만 온조 13년인가? 도읍을 옮기게 되지요. 그 명분적인 이유 말고 실질적인 이유로는 북쪽의 낙랑과 동쪽의 말갈때문에 옮기게 되는데 위례성에 대한 표기 중에 [하남위례성]이라는 언급이 나오죠. 이것은 河 또는 江의 구분은 둘째치고 그때 언급한 위례성은 강남에 있다는 의미고 낙랑과 말갈의 위협을 고려한 도읍지정임을 알 수가 있지요.
따라서 사실 강남에서 강남으로 옮기기 보다 외부의 위협으로 인해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게 됨을 정황상 알 수가 있는데 최초의 남하나 도읍지정 관련 약술기록은 십수년에 걸친 도읍이동을 축약한 것이고 실질적인 도읍이동은 13년 소서노의 죽음을 명분으로, 낙랑과 말갈의 군사위협을 실질적인 이유로 해서 이루어지게 된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위례]라는 말이 오늘날의 돼지우리..소우리 등의 [우리]의 어원이라고 하여 성곽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위례성이 사실 몇차례 사서에 등장하지않기 때문에 한수/한강 또는 아리수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봐야하겟죠
저는 지명과 인명 등에서 나타나는 삼국시대 언어 또는 단어들의 어원에 대해서도 조사한 적도 있는데...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삼국시대 한자표기는 한자의 뜻을 고려해서 나타내기 보다는 우리말을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하는 이두식 표현이 많다는 거지요. 적어도 신라의 통일이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위례라는 말 역시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테고..
한강..또는 한수라는 말도 결국에는 고대표기상 [한]이 크다는 大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인만큼..(한내마=대내마 등..) 한수는 큰강..한성은 큰성...한산은 큰산..의 의미겠지만..아마도 온조 당대부터 그리 쓰이지 않았을 겁니다.
한=큰(대)의 상관관계는 주로 남한지역에서 보이는 언어인만큼 고구려계인들의 남하 당시에는 초기고구려식의 도읍 지정방식 또는 언어적 특징..군사적패턴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성시대 도읍지에 [한]계열 언어가 수록되기 시작한 것은 조금 후대의 일일것입니다.
적어도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무너졌을때 일본서기 기록에서는 [대성]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만큼 ..다음을 보죠
--->>백제기(百濟紀)에서 이르기를, 개로왕 을묘년(475년) 겨울, 맥(貊·고구려)의 대군이 와서 대성을 공격한 지 7일 7야에 성(王城)이 함락돼 드디어 위례(尉禮)를 잃었다.
대성을 공격하다...왕성이 합락되다...위례를 잃다...
대성은 한성과 동의어이고 수도이기 때문에 왕성이고...이로써 위례를 잃었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서기의 대성= 삼국사기의 한성 = 위례성
곧..초기의 위례성이 후대에 남한계열 언어가 반영되면서 한성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봐야할 것인데..한동안 위례와 한성이 혼용되었다고도 볼수 있고..
암튼
최초의 수도는 강북의 위례 그리고 온조 13년경에는 강남의 위례....
이후 강남의 위례가 점차 수도로 모습을 갖춰가면서 한성으로 불리었지만,.
위례라는 고구려말 역시 어느정도 혼용되는 모습...
왕성을 위례라고 함으로써 위례 역시 王, 최고, 큰 의의미를 가진 언어로 살필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위나암성의 위나, 아리수의 아리, 욱리하의 욱리 등과 연관지어야 할 부분이죠
백제수도가 한성으로 고정되어가면서 그 앞의 큰강 역시 한수 또는 한강으로 고정되어 갔을 겁니다.
한산은 본래 1차적으로 진짜 산의 이름을 말할 것이고 2차적으로는 지역명, 한산에 딸린 성곽도시 정도를 언급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기 고구려인들은 아무래도 평지성과 산성의 셋트형식의 도읍을 구성했기 때문에 최초 목책성을 많이 지었던 백제인들도 온조시기에는 험한 산세에 의지해 평소 생활지역과 유사시 활용할 군사보호시설을 동시에 구축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그래서 최초 강북의 위례성도 아마도 산세에 의지했어야 했겠지만 낙랑과 말갈로 인해 큰강의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물의 도움을 받아야 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에서도 배후에 의지할 산악군사시설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강남에도 한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강북과 강남의 이원적인 도읍경험으로 북한성-북한산 그리고 남한성-남한산 의 남북 셋트구조를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물론 초기의 한성은 하남 위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백제의 국세가 커지고 고구려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러서는 백제의 세력이 한강이북으로 크게 신장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북한과 남한의 용어 구분이 생기기시작했을 겁니다. 그 이전까지는 한성은 강남을 의미할 가능성이 클 것이고...근초고왕대에 북쪽으로 진출한 이후 옮기게 된 한산은 북한산(꼭 오늘날의 북한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강북의 한산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정시기 이후에 한산을 언급할 때는 이것이 정황상 강북일까 강남일까를 염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산에 대해서 일부 기록에서는 고구려의 남평양이라고 할 정도면 강북 한산..즉 북한산이 백제 수도방위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고 핵심적인 지역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행정적 의미보다는 군사적인 의미가 클 것이라고 보이고..고구려에서나 백제에서나... 따라서 강북의 한성..(최초 도읍지??)의 위상보다 군사지역인 강북의 한산이 더욱 중요시 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강남의 한성은 상당기간 수도로서 기능과 면모를 갖춰가게 되면서 행정적 기능과 수도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어 강남쪽은 한산보다 한성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록에서 말하는 한산은 강북한산..한성은 수도인 강남 한성을 말하는 경우가많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록처럼 아예 북한산이라고 말하기도 할 겁니다. 강남 한성의 배후지일 남한산 또는 남한산성은 군사적으로 큰 의미는 없게 되겠지만, 강북의 한산성은 강북진출의 중요한 거점이자 방어작전의 중요지인만큼 백제 역사상 내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겠죠
첫댓글 위례성과 한성의 관계, 위치 에 대해 백랑수님이나 다른 분들의 이견 또는 제 글에 대한 견해 등을 듣고 싶었는데 아무런 반응들이 없네요..;;;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긴 읽었는데, 아직 심층적인 토론을 할 정도로 내공의 깊이가 없기에...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