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된 독주를 영어로 'spirit'이라고 부른다.
'영혼'을 뜻하는 바로 그 단어다.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에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증류주를 말한다.
최근엔 알코올 도수 20도 이상의 증류주도 포함시킨다.
알코올 증류 기술은 술의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술을 크게 둘로 나누면 발효주와 증류주인데,
포도주,맥주,청주 등 발효주는 인류가 역사 이전부터 마셨다.
아랍에서 시작된 알코올 증류기술이 11세기 이후 세계로 퍼지면서 술의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유럽에선 포도주를 증류시켜 브랜디를 만들었고, 중국에선 청주를 증류해 백주를 마셨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에선 맥주로 위스키를 만들었다.
신대륙도 마찬가지이다.
사탕수수를 발효시킨 중남미의 아구아디엔테에 증류 기술이 보태져 럼이 탄생했고,
용설란을 담가 마셨던 멕시코의 풀케는 증류기를 통과하면서 테킬라가 되었다.
그럼 왜 증류된 독주만을 'spirit'이라고 부를까?
증류과정에서 기화하는 모습이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 같아서,
또는 술 취하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기 때문에,
더 나아가 중세에서는 술 취한 이가 악마처럼 변하는 걸 두고 그렇게들 불렀다고 한다.
그럼 이제 그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럼
달큰하면서 비릿한 알코올 향이 여느 독주보다 강한 럼이 처음 만들어진 게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 섬인데,
이 섬에서 나온 17세기 중반의 한 문건은
럼이 "독하고, 지옥 같고, 끔찍한 술"이어서 그 별명이 '악마를 죽인다'는 뜻의 'kill devil'이라 전하고 있다.
실제로 좀더 정제된 럼이 나오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는 조금이라도 분위기 잡는 카페에서는 내놓지 않을 만큼
싸구려 술로 취급됐다고 한다. 럼의 어원이라는 'rumbullion'이라는 말도 소동,난동을 뜻한다.
지금 카리브해에선 럼전쟁이 진행 중이다.
럼의 대표적 상표 바카디와 미국이 그 한편에 있고, 반대편엔 쿠바와 프랑스가 있다.
'파쿤도 바카디'가 19세기 중반 쿠바에 세운 바카디사는 럼의 품질을 한단계 상승시키며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한 세기가 지나 카스트로의 좌파정권이 들어서 모든 시설을 국유화하자 바카디사는 푸에르토리코로 회사를 옮겨
럼을 생산하면서 카스트로정부를 와해시키려는 CIA의 공작을 열렬히 지원했다.
심지어 쿠바의 정유시설을 폭격하기 위해 회사가 직접 폭격기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그 사이 쿠바 정부는 '하바나 클럽'이라는 기존의 럼 브랜드를 국유화하고 프랑스의 한 주류회사와 합작 생산해
매출이 급증했다. 그러자 바카디사는 미국으로 망명해 있던, 하바나 클럽 상표의 원래 소유자로부터 사용권을 매입했고,
이로 인해 하바나 클럽 상표의 사용권을 둘러싼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쿠바산 하바나 클럽이,
미국 안에서는 바카디사가 만드는 푸에르토리코산 하바나 클럽이 팔리고 있다.
럼은 당밀에 물과 효모를 넣고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든다.
(당밀은 사탕수수를 짜낸 즙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것이다)
색이 짙고 향이 강한 다크럼과, 무색에 향도 약한 라이트럼, 둘의 중간인 골드럼으로 분류된다.
통상 다크럼은 발효를 천천히 시키고 단식증류기를 쓰며, 라이트럼은 발효를 빨리 시키고 연식증류기를 사용한다.
라이트럼은 칵테일의 베이스로 많이 쓰이는 반면 다크럼,골드럼은 주로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을 넣어 마신다.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럼도 증류한 뒤 통상 1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치는데, 위스키나 브랜디에 비해 훨씬 짧다.
대개는 미국 버번 위스키를 숙성시킨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며 이 경우 색이 진해진다.
무색투명한 라이트럼의 경우는 스테인레스 탱크 안에 저장한다.
럼은 탄생하자마자 곧 북미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해 스테이튼 섬과 보스턴,메사추세츠 등지에
이미 1660년대에 럼 증류소가 들어섰다. 마침 유럽에서 설탕 수요가 늘고 있는 마당에 럼의 수요까지 급증하자
카리브해 연안 섬의 사탕수수 경작을 늘리기 위해, 북미의 럼주를 주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서 카리브 해로 데려가
사탕수수를 경작케 하고, 여기서 생긴 당밀을 미국의 증류소로 가져다주고 다시 거기서 럼을 받아 노예를 사오는 삼각무역이 번성했다.
럼을 두고 '킬 데블' '해적의 술' 등의 별칭 외에 '넬슨 제독의 피'라고도 부른다.
이는 영국의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하자 그 시체를 썩지 않게 하려고 럼 통에 넣어 본국으로 이송했는데,
선원들이 술통에 구멍을 내 술을 빼먹는 바람에 본국에 와서 술통을 열어보니 술이 하나도 없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전해지는 럼 이야기는 여기서 시마이하고,
다음 편에선 보드카,테킬라 그리고 고량주 등으로 이어가려 한다....
힘!(...뭐냐...-.,-)
첫댓글 이제부터 신문 연재소설처럼 매일 읽어야 하루를... 힘!~
이양이모 글도 쓰시고 맛도보시고 어떤게 까빡 넘어가고 뒤가 엄는지, 싸고 배부른거는 어느놈인지,,,두루 섭렵하시고 팽가도 쩜 해주소^^*
증류주가 지금은 술도 마시지 않는 이슬람문화권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하니 거 참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