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우리를 돌아본다.
1). 아시다(한반도) 역사와 문화는 일제가 이동 조작한 일제 품이다.
조선실록과 조선지리지는 일제가 한반도로 조작했지만 한반도에는 없고 중국에만 있는 수많은 지명과 명칭들이 있는 것은 역사의 이동조작을 증명하는 것이다. 정신문화는 민족의 양식(糧食)이다. 그런데 현재 아시다(한반도)에는 역사, 문화, 언어, 지명, 도로명, 산천명, 기타 모든 것이 일제가 만든 것뿐이다. 진짜 이 땅의 토박이 것은 세계언어의 기층언어인 우리 옛날 토박이말, 토기, 고인돌 이 3가지만 내세워도 과거에 이 땅이 세계의 종주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우리역사를 말살시키고 중국사를 둘로 쪼개서 그중 하나를 이동 조작한 일제 품을 모두 우리 것이라고 하므로 한국인은 뿌리깊은 일제의 식민사상에서 누구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완전한 일제의 식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3.1절과 독립투사를 찬양하고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일본을 규탄한다. 무엇인가 맞지 않고 크게 잘못된 나라다. 외국의 지식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병자들의 나라처럼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다.
2). 3.1 독립운동사의 재정리 필요.
일제가 중국의 역사를 아시다(한반도)로 이동 조작하여 현대사는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도 한국의 역사가 되고, 아시다(한반도)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가 되어 있다. 이렇게 혼합된 엉터리역사가 현재 한국사다.
독립운동사도 일본에서의 독립운동가, 아시다(한반도)에서의 독립운동가, 중국의 대한제국에서의 독립운동가로 세분하여 다시 정리해야 한다.
아시다(한반도)는 동일본(현재의 일본열도) 군대가 1880년 전후에 진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중국의 이씨조선은 서일본(현재의 월남북부지역) 군대가 점령했다. 한반도는 약 1900년까지 역사조작준비를 하고, 1900년∼ 1910년 사이에 중국의 지명을 한반도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911년부터 중국의 대한제국 백성들을 한반도로 이주시키면서 중국이씨조선의 전라도 사람들은 한반도 전라도로 배치하고, 중국이씨조선 경상도 사람들은 한반도 경상도로 배치하고, 중국이씨조선의 평안도 사람들은 한반도 평안도로 배치하는 등 중국의 행정편제대로 이민들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제의 뒷배로 각 지방의 호족으로 군림하면서 일제에 아부나 협력하여 위안부, 광산, 탄광,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간 일이 없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중국의 대한제국 백성을 한반도로 이주시키기 위해 일제는 한반도의 기후, 농업상황, 인구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이민자들에게 배포했는데 1910년 한반도 토박이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3,1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2천만동포“란 토박이 1300만 명에 이민자 400만 명을 합쳐 1700만 명이므로 2천만 명이란 표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선사편수회는 1910년 일한합방 이후에 역사조작을 위해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시켜서 중국 땅의 대한제국백성 약 400만 명을 1911년부터 1920년경까지 대대적으로 한반도로 이주시킨 다음에 1921년 12월에 발족한 조선사편찬위원회에서 주도하다 1925년에 한층 강화된 조선사편수회로 발족한 조선총독부 산하기구다.
현재 신만주 동북3성의 지명들은 1905∼1927년에 중국에서 옮겨다 설치한 것들인데 한반도만 가지고는 역사전체를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만주에도 역사조작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반도 지명들을 먼저 이동조작한 후에 신만주 지명들을 이동 조작하여 역사무대를 완성시킨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이 한반도역사라고 하는 것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가짜라는 이야기다.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이 한반도냐? 아니냐? 에 대한 검토방법 중에 한국의 양반성씨, 평민성씨, 귀화성씨 들의 5대조, 6대조, 7대조 의 무덤 수백기를 파서 현재의 자손들과 DNA를 대조해보는 과학적 검사방법이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 중국에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중국의 대한제국 사람들이다. 그런데 3.1운동 이후에 한반도로 건너온 독림운동가들은 모조리 한반도 토박이들로 변조되어 있다. 물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추모는 우리가 전체를 다 할 수 있지만 역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일제가 이동조작한 역사 즉 식민사학 안에서 대한제국과 3,1운동을 조명하는 것이므로 자의든 타의든 일제의 식민사학을 수호하고 강화시키는 일제의 하수인들이 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3,1운동에 대해 말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국은 부자격자, 가짜가 진짜노릇을 하는 가짜나라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것은 중국대륙의 이씨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신생국가는 어디까지나 1945년 이승만정부이다. 즉 중국의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진보그룹에서 중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한반도로 끌어온다면 일제가 조작해놓은 대로 삼국사기에서 대한제국까지의 가짜역사를 그대로 계속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된다. 결국 식민사학을 철저히 수호하여 온 보수그룹과 똑같은 것이 되는데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가끔 노인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지 별수 있겠어?!”, “사람만 바꾼다고 뭣이 잘 되나? 생각을 바꿔야지!”
우리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재검토를 하여 진부(眞否)에 대한 규명을 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 예를 들면 “만주“는 원래 중국 땅에 원래의 만주 즉 ”구만주”가 있는데 1905년 이후의 청나라 말기에 요동반도에 지명을 옮기기 시작하여 중화민국 때 구만주에서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만들어서 1927년에 구만주의 지명들과 함께 이동해서 설치한 “신만주(동북3성)”가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구만주가 있는지도 모르므로 구만주 역사인지 신만주 역사인지를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우리역사라고 주장만 한다.
1919년 3.1 독립운동의 촉발지라고 하는 “길림“은 중국 땅에 있는 구만주 ”길림“이다. 그런데 마치 1927년에 설치된 신만주 ”길림“인 것처럼 되어있다. 김죄진의 청산리 전투는 중국 땅에 있는 구만주의 역사인데 전부 신만주로 둔갑되어 있다. 청산리는 환웅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내몽고 태백산 동남쪽과 치우의 도읍지이며 평양기생 황진이의 시에 나오는 청산리는 감숙성 노룡지역으로서 두 곳이 있는데 1927년에 만든 신만주에는 1920년 10월 김좌진장군의 청산리 전투 당시에는 현(縣)단위가 아닌 청산리라는 작은 동네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인들은 일제가 하고자 했던 식민사학을 스스로 완성시킨 일제의 하수인으로 전락되어 있다.
필자는 한, 중, 일 3국에서 처음으로 역사의 진실을 추적했기 때문에 이러한 진실들을 알게 되었으나 아직 한국에는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본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제가 조작한 역사, 문화가 진짜라고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역사의 진실연구를 열심히 하여 빠른 기간 내에 우리도 “나”를 찾아 바로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여 주기를 희망한다.
우리역사를 올바로 정리하면 중국은 신만주나 북한 땅에 대한 연고권이 자동적으로 사라지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나 독도역유권주장이 자동적으로 소멸되어 중국과 일본의 주장에 휘둘릴 필요가 없는데 일제의 조작 품을 철저히 수호하면서 “만주는 중국 것이 아니다.” “독도도 일본 것이 아니다“하고 입으로만 외치고 있는 허무맹랑한 민족이다.
문제는 한국인중에서 지식이 많을수록 일제의 역사와 사상을 깊이 간직한 고정관념자이고, 또 관료들이나 정치인들도 지위가 높을수록 일제의 역사문화를 수호하는 수호자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다들 똑똑하고 잘났다고 뻐기면서도 자기가 100% 가짜 지식인이라는 것을 모르므로 민족과 역사에 대한 죄인이란 것을 모른다.
또 한 가지는 일제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부분을 장악했는데 교육부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교육을 일제의 조작 품을 그대로 전승해왔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역사학자들이나, 관료사회나, 정치사회는 계열이 존재하고, 그 계열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제 때부터 계승되어온 전통과 관행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또한 역사를 정부가 독점하여 역사연구의 다양성을 원천봉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학교들의 역사가 “100년이다, 또는 120년이다” 고 하며 자랑하는데 모두 일제의 뿌리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을 모르면서 무턱대고 자랑만 하는 것이 되고, 한국의 언론방송들이 한결같이 식민사학을 계속하는 것도 언론들의 발생 뿌리가 일제 때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역사의 진실을 모른 채 식민사학 안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를 집필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두 개의 예를 들면 하나는 2019년 2월 14일자 조선일보:
“日이 만든 경인선, 1888년 美와 먼저 추진했다“는 기사는 경인선이 한반도 경인선으로 집필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상황을 추정하면,
① 1880년 전후에 東日本軍이 진주했기 때문에 겨우 몇 년 만에 경인선 철도를 부설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②한반도에는 세계 강대국들의 외국공사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③한반도에는 아직 중국의 지명을 옮겨놓지 않은 상황이므로 京城이나 仁川이란 지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인선이란,
①경성: 이씨조선 도읍으로 지금 중국섬서성 서안이다.
②인천: 이씨조선 인천은 중국 호북성 북쪽에 거대한 호수 단강구가 있는데 단강구 북쪽 호수변이 인천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인천은 동남방향에 있고, 경성은 서북방향에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인천이 서남방향이고 서울은 동북방향이다. 정반대방향이다.
③중국의 이씨조선은 1875년 일본배가 조선의 강화도(양자강 동정호지역)에 나타나 조선과의 마찰이 발생하여 전쟁하게 되었는데 조선이 패하여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은 후 서구열강인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그래서 1876년에 이미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와 있었고 외국 공사들도 들어와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일본과 경인선 철도부설을 논의하고 계약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어 있었다. 한반도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서안의 진짜 이씨조선 황궁은 세계적인 도성이고,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의 궁전들은 일제가 역사조작을 위해 조작한 영화 세트장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2019년 2월 16일자 중앙일보:
“열도 곳곳엔 5세기 가야인 흔적”
이 부분은 필자의 저서 “가락국 이야기“에서 이미 설파했으므로 한마디로 언급하면 한반도남부와 일본열도의 기마민족 유물들은 약 3000년 전부터 지구기후가 추워져 시베리아 탁리족(퉁그스족)들이 남하하여 몽골에 있다가 약2500년 전부터 지구기후가 강추위로 변하니 몽골의 기마족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골(고리국)”을 건설하여 약 1000년간 존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 1500년 전(AD500년 전후)에 새로운 강자가 백제(伯濟: 장자의 나라)국을 건설하니 이들에 밀린 기마족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열도의 유물들은 이들의 유물로 추정되지만 일제가 중국의 가락국 유물들을 이동조작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반도에 삼국사기역사 즉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중국서부에 있던 가락국은 한반도에 올 이유도, 그러한 역사적 배경도 없었으며 하물며 일본 섬까지 이동했다는 것은 말이 아니 된다. 모두 일제의 이동조작 품인 것을 모른다.
이와 같이 일본이 만든 식민사학의 틀 안에서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춤추고 있는 것은 기자들도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국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겨우 영토만 독립했지 나머지 전부는 일제의 속국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정신문화는 식민문화 그대로이다. 해방70년이 되었는데도 한 가지도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 특히 한국은 일제의 군주제에서 이승만, 박정희의 독재로 이어지고, 군사정권으로 계속되었고, 다시 중앙집권과 독선정치로 계속되었기 때문에 상명하복(上命下伏)의 문화가 정착되어 지도자들이 엉터리면 국민도 모두 자동적으로 엉터리가 된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물론 지도자들이 역사문화의 진실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을 희망하며,
3.1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각성을 촉구한다.
2019. 2. 25.
한국상고사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