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
편해문초심자의 마음으로 주는 사랑
어린이가 세상에 온 까닭은 사랑을 퍼트리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셔터스톡
색동어머니회에서 그림책 명상을 했습니다. 오늘 읽은 작품은 <영이의 비닐우산>입니다. 시도 따뜻하지만 그림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림이 화려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글은 최소한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 그림은 소박하지만 깊이가 있어 우리는 그림이 말하지 않고 남겨둔 것을 찾느라 상상을 많이도 발동시켰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것은 그림이고 글이었지만 사실은 우리의 마음이었고 우리의 기억이었으며 우리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비닐우산을 보고 과거를 떠올렸고 가난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영이를 보고 외로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가진 마음은 그 누구보다 풍요로웠으니 영이만이 거지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비오는 날 비닐우산을 쓰고 학교에 간 영이는 문방구 담벼락에 기대어 잠든 거지 할아버지를 봅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도 할아버지는 거적을 덮어 쓰고 잠들어 있었지요. 문방구 아주머니는 거지할아버지에게 악담을 합니다.
교실로 들어간 영이는 자습시간에 살짝 나옵니다. 그리곤 거지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교실로 돌아오지요.학교가 끝난 후 거지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영이가 할아버지에게 씌워주었던 녹색 비닐 우산이 반듯하게 접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져가도 괜찮은데 하고 영이는 중얼거리지요.
우리는 한페이지 한페이지 그림과 색채를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림이 보여주지 않은 것들도 살폈습니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놓고 간 우산에서 의미를 찾아냈지요.
영이가 할아버지를 생각했듯 할아버지도 영이를 생각했다고요. 녹색은 연대의 의미,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르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던 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서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일. 그처럼 소중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찾아냈고 깨달았고 마침내 부분이 아닌 전체를 모으기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었지만 그림책을 읽었지만 나의 기억을 읽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을 가지고 읽으면 그림과 글이 주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편견을 갖고 있을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지요.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압니다. 시간과 공간을 비우고 주의를 쏟는 만큼 그 순간에 집중하며 과거와 미래를 밀어놓습니다. 그렇기에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충실히 겪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며 그리하여 변화하고 성장 할 수 있게 되지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구닥다리라고 평만 하는 이는 그 그림이 전하는 바를 읽지 못합니다. 평론가가 실수하는 것은 그 자신의 시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지요. 그 자신의 지식에 황홀해 하기 때문이지요. 그의 세계는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론으로 무장한 평은 단조로워 경이로움을 잃습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첫 눈을 보는 마음으로 샅샅이 살펴보고 상상력을 발동시켜, 그리하여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명상이고 그것이 지혜입니다.
좋은 글, 좋은 그림은 우리를 고양되게 합니다.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살아갈 힘을 주며 어려움을 버텨낼 힘을 키워줍니다.
편해문의 시는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은 웃고 놀기 위해 온 것이라고 노래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덧붙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은 사랑을 퍼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편해문
별은
캄캄한 밤이라도
환한 낮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반짝인다네
꽃들이 피는 것은
웃음을 퍼뜨리기 위해서지
바람이 불어오는 까닭은
먼 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부지런히 일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기 위해서라네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은 뭘까
꽃들은 말한다네
웃기 위해서라고
별들은 말하지
꿈꾸기 위해서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바람같은
아이 하나가 뛰놀고 있는 어른들은
말해 주어야 하네
‘얘들아,
너희들은 웃고 꿈꾸고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단다’라고…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