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정강부성방도석각 铁器时代 · 静江府城防图石刻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송정강 부성도비각 남송 이종 함순 8년(1272) 석각. 송보우 6년(1258)부터 정강부(靜江府, 지금의 계림시)가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4차례에 걸쳐 수성방공사를 한 평면도. 기존 광시성 구이린시 앵무새 절벽에 있습니다.
중국 고대 도시의 방어사와 계림시의 발전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도면은 높이 2.82m, 폭 2.93m로 제목이 없습니다. 함순 8년 장 때 《정강부수축성지기》를 쓴 석각에 의하면, 해로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상단에는 높이 0.3m의 난간, 도시 보수 작업 및 자재 비용, 총 113개의 행이 있습니다. 난 아래는 단선으로 음각한 성도입니다.
그림에 따르면 당 이정시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는 자성은 평면이 직사각형으로 동쪽, 남쪽, 서쪽 3면에 각각 문이 열려 있고 간선도로는 정자형입니다. 궁은 횡가의 북쪽에 있고, 정문인 초루는 두 개의 문이 있는 '쌍문'입니다.
송지화 2년(1055)에 여정이 쌓은 외성의 평면도 직사각형으로, 동쪽 성벽은 자성의 동쪽 성벽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나머지 삼면의 성벽은 자성을 감싸고 있습니다.
외성은 동서 각 2문, 남북 각 1문. 1253년 몽골군이 윈난성을 점령하고 광시는 남송의 남서쪽 전선이 되어 도시 방어선을 적극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위 글을 보면 1258년 이증백이 성 북쪽 첩채산 일선에 새 성을 쌓고 개성호(開城壕)를 포위하여 독수봉(獨秀峰)을 성안에 포위하였고, 이후 주禩손이 서성에 중성과 참호를 쌓고 조여 霦가 강을 따라 돌담을 쌓았으며, 함순 5~8년 후잉(胡颖)이 새로 쌓은 북성 밖에는 보적산, 보화산, 속가산 등의 제고점으로 다시 성을 쌓고 성안에 주둔군을 두었다고 합니다.
▲ 앵무산 남산 허리정리의 산벽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강부성지도'가 새겨져 있고, 정강부에는 북쪽의 제산(諸山)과 동쪽의 이강(漓江)에 면하여 성호, 양마장, 월성, 중성으로 이루어진 종심방어시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림의 성벽은 모두 벽돌로 덮인 벽돌 벽, 더미 입구와 여자 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도시 몸체에 돌출된 말이 있는 경우 '단루'라고 표시된 적루 위에 적루를 건설하고 일정 간격으로 또는 모퉁이에 '단루'라고 표시된 호 모양의 적루를 건설합니다.
성문은 모두 전석권동을 만들고 문루를 지었습니다. 옹성은 사각형으로 정면에 적루를 세우고 명후전루의 전신인 만인적(萬人敵)이라고 이름붙여놓았고, 옹성의 각 문을 두지 않고 문밖에는 영벽 모양의 옹벽을 두었습니다.
참호를 따라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양마장. 문밖호에는 작은 보루와 작은 보루, 앞뒤에 현수교라는 두 개의 다리를 놓았고, 다리 앞 기슭에는 반원형의 교두보, 즉 월성(月城)을 놓았습니다.
송나라의 도시 방어 시설은 크게 발전하여 '무경총요', '수성기요' 및 기타 사료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그림은 다양한 시설의 모양과 용법을 이해하기 위해 책과 상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문용 권동과 옹성용 전루가 이 그림에 나타난 것이 가장 빠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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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태그: 정강부 석각 남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