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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화도 사랑
내가 처음 강화도에 대해 알게된 건 군대생활을 할 때였다
나 바로 위의 고참이 있었는데 강화도 출신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강화도 길상면 선두리가 그 고참의 고향이었다
입대 전에는 친척이 하는 설계사무소에서 설계업무를 배웠다고 했다
우리 정비과의 총무일을 전담했었다.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1년 여 인천시 북구 계산동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때 서울로 출퇴근길이 무척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 반작용이었을까. 주말이면 외출을 나갔다.
연안부두에 회도 먹으러 가고, 김포쪽으로 해서 강화도엘 자주 갔다
최동욱인가 하는 DJ하던 양반이 지은 전국지도책을 사서 갖고 다녔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서 길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존의 지도책보다 수기처럼 그린 지도에 직접 다니며 써넣은 글이
아주 유용해서 길을 찾는데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지도책을 옆에 놓고 강화도를 이잡듯이 누비고 다녔다
아직 강화도가 개발되기 이전이라 무척 한산했고, 입장료 같은 것도 없었다
동막해수욕장 인근에 제대로 된 식당 하나가 없던 시절이었다
민가에 들어가 꽃게탕을 부탁해 먹던 생각이 난다
음식값을 얼마를 받을지 쩔쩔매던 주인 아주머니
재료값에 수공료 약간을 붙여서 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후 경제개발이 되면 마이카시대가 도래했고 강화도가 뜨기 시작했다
서울로 이사한 후에도 그 먼 강화도까지 드라이브겸해서 자주 다녔다
장모님께서 황해도 연백이 고향이신데 6.25때 강화도로 피난을 나오셨다고 한다
장모님을 모시고 교동도에도 여러번 다녀 왔었다
한번은 방송에서 교동도의 작은 시장을 소개하는 프로가 나왔다
그 길로 바로 처가로 달려가 장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적도 있다
아들래미 입시전에는 집사람의 불공을 위해 석모도엘 자주 갔었다
보문사 뒤 석불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면 소원성취를 해 준다는 설이 있었다
이후에는 고교동기산악회에서 갔던 산행으로 강화도 고려산, 혈구산
석모도의 삼산 등을 여러번 갔었던 기억이 난다
인근의 호룡곡산, 김포쪽의 문수산에도 여러번 갔었다
고려산과 혈구산은 연계산행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그런 산행도 여러번 했었다
고려산의 백련사, 청련사를 거치면 산상음악회도 하고 그랬다
나중에는 집사람과 고인돌을 보러 또 새로 생긴 자연사박물관에도 갔다
썩 잘 지어진 건물에 알친 전시물 들로 꽉 채워진 훌륭한 박물관이다
한번 가 보실 것을 권한다
요즘에는 강화도로 귀촌한 고교동기들이 여러명 있다
전에 무슨 방송에 소개된 멋진 집을 짓고 사는 친구
간단한 집을 짓고 이런저런 농사를 짓고 사는 친구
이래저래 강화도에 연고가 있는 사람도 늘고
날로 좋은 시설과 관광자원이 늘고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언제 한번 다시 가봐야 하겠다
강화도
행정구역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위치 : (위도)37도 44분 47.50초N, (경도)126도 29분 16.20초E1997년 연륙
총면적 : 303.32㎢
인구수 : 약 64,130명(2023.1.기준)
특산물 : 강화순무, 속노랑 고구마, 강화약쑥, 강화섬 쌀, 새우젓, 강화 인삼
접근성 : 강화대교, 초지대교
강화도는 우리나라 4대 섬으로 강을 끼고 있는 좋은 고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해안 한강 어귀에 위치한 강화도는 지리적으로 고려의 서울인 개성과
조선의 서울인 한양과 가까이에 있어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강화도를 본도로 주위에는 석모도, 교동도, 볼음도, 주문도 등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18개가 있다.
어디에 그 섬들이 있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강화도에서 간척사업이 있기 전까지는
더 많은 섬이 있었으며, 마니산도 원래는 고가도라는 섬이었다고 한다.
강화도는 북한이 바로 보이는 접적지역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 섬. 강화군의 본섬이다.
원래 경기도의 섬이었지만, 19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그럼에도 인천광역시 본토보다는 경기도 김포시와 가깝고,
육로를 통해 가려면 무조건 김포시를 거쳐야 한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면적이 큰 섬이다.
원래 제주도, 거제도, 진도, 남해도에 이어 5번째 섬이었고 면적이 300㎢가 안 되었으나,
장기간 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300㎢를 넘어,
원래 면적 차이가 적던 남해도보다 넓어져서 대한민국 제4의 섬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대곶면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황해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과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한강(휴전선) 건너 북한 개성시, 연안군, 배천군과 마주한다.
김포시와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4면이 바다 및 염하로 둘러싸여 있으며,
강화와 김포 사이에 강화대교와 초지대교의 2개의 다리가 있다.
내가 젊었던 30대 시절 1년 남짓 인천 계양산 아래 계산동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마침 프레스토 승용차를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바람에 가까운 강화도엘 자주 갔었다
전등사, 동막해수욕장, 함허동천, 보문사, 기타 등등
그 때는 지금처럼 개발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이어서 아주 한산한 섬이었다
강화도에는 고찰인 전등사와 보문사가 있다
사진을 보니 아마도 외국인 들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듯하다
어느해인가 방송을 보다가 바로 차를 빼서 대룡시장과 교동향교엘 다녀온 적이 있다
인근에 있었던 식당에서 먹었던 까만 색깔의 서리태 콩국수가 참 맛이 있었다
강화도에선 로마나 경주시, 풍납동처럼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있던 도자기 등 유물들이 발견돼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것이 이 좁은 강화도에 무신 집권기,
즉 강화도 천도 당시 30여 개의 궁궐을 지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강화도에서 출토된 유물이 국보가 되는 사례도 있고
팔만대장경을 만든 선원사도 부지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 성당
강화도 곳곳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역사적인 군사시설 들이 산재한다.
근현대에 와서도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침공해와서 벌어진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인한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했고,
우리나라가 일본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 등 하여튼 일이 많다.
강화도의 역사를 공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농담이 존재할 정도.
6.25 전쟁에는 개성의 실향민들이 이 곳에 거주하면서 개성의 문화를 이었다고 한다.
좌측 상단의 온정이라고 쓰인 곳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고향이신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 있는 온천이다
그 아래 황의산은 장인어른이 고향분들과 어울리시던 황의산친목회의 그 황의산이다
덤으로 크고 작은 고인돌이 은근히 도처에 깔려 있다.
얼마나 많은지 고창군, 화순군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며
관광지로 지정되어 얼굴이 자주 팔리는 큰 녀석 이외에도, 지나가다가 밭 한가운데나
산길 옆에 고인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걸 보면 충격과 공포.
그게 고인돌인지 모르고 보면 그냥 굴러다니는 돌덩이로 보일 정도의 위장이 되어 있다.
관심 있는 이라면 강화 북부와 서부에 몰려있으니 그 쪽을 뒤져보자.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일단 지리상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과
조선 및 대한민국의 수도인 한성(서울)과 가까우며, 양 지역의 주요 하천인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바다 쪽 출구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우선 몽골군에 항전하던 고려 무신정권이 수도(강도江都)로 삼았던 역사가 있고,
조선 인조가 즉위하던 시절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청나라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도피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이때 봉림대군 등이 인질이 되었는데, 인조로서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며
결국 얼마 못가서 남한산성에서 항복한다.
왜란·호란 이후에는 강화유수부로 지정, 한양의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의 중요성이 '나라의 심장'과 같다고 하여 강화도를 '심도
(沁都, 한자는 心이 아닌 沁을 썼다)'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강화도는 유배지의 상징이었다. 살려두기는 위험하지만
죽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은 인물들을 유배를 보낼 때 강화도로 보낸 일이 많았다.
고려의 희종에 이어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이 곳에 유배되었으며,
철종은 왕위에 오를 때까지 강화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여기에 유배시켰다가
자신도 인조반정으로 여기에 유배되었으니 인생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강화도 갯벌은 뉴질랜드로부터 시베리아까지 수천키로를 날아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다
강화갯벌의 풍부한 먹이자원이 이들을 불러 들인다. 발품도 쉬어가며 먹이사냥을 하는 철새들의 모습이다
여러 종류의 도요새, 저어새 등이 아주 많이 찾아든다
첫댓글 글과시진감사
감사
서울 사람들이 자동차로
언제라도 가 볼 수 있는 강화도~
전등사 보문사 등 유명 사찰..
천주교인들의 순교, 사적지도 많고...
석모도에서 바라 보는 노을이 넘 환상적이지요..
한 두 번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열 번 이상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듣는 이장희 노래
참 감미롭네요~~^^
네 강화도 좋은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솔님 대단하십니다
강화도 홍보대사 이십니다
옛날 강화도 두어 번 가 본 적 있는데
어느 돈대, 마니산 정도 였습니다
지금은 기회되면 교동도 한번 가보 싶지요
교동도 석모도 두 섬에 다리가 다 놓아져 있군요
많은 자료 올려주시니
멀리서 구경 잘합니다
고맙습니다
네 제가 홍보대사는 아니더라두
강화도에 아주 많이 다녔습니다
가을이면 김포 초지대교 앞에 있는
대명수산이라구 왕새우집에도 가구요
간 김에 강화도 한 바퀴 돌지요
교동도도 이제 육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석모도도 그렇구요
옛날 강화도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