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광풍이 몰아닥쳤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다.
진우너은 특전사 중대장 유시진을 연기하는 송중기, 화면 안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에게 이 땅 여인네들의 영혼이 사로 잡혔다.
신학기를 맞아 서먹함과 눈치보기에 피곤하던 젊은 엄마들의 거리감은 이내 사라졌고,
찜질방 옆자리에 누운 생팜 모르는 남에게서조차 든든한 유대감이 느껴진다.
송중기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인터넷에는 '금요병(드라마가 수.목요일 방송도니다)이 생겼다는 하소연부터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남편 뒤통수만 봐도 괜한 부아가 치민다는 고민글까지 올라온다.
허상인 드라마 캐릭터에 뭐 그리 유난을 떠냐고?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도 방송되는데 거긴 더한 것 같다.
송씨부인을 뜻하는 '송타이타이'를 자처하는 처자들이 넘쳐난단다.
오죽했으면 당국이 나서서 주의보를 내렸을까.
드라마와 특정 캐릭터가 신드룸급 인기를 누렸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전만 해도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을 연기한 김수현에 열광했고,
'시크릿 가든'의 현빈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
'겨울연가'의 배용준, 그리고 20여년 전 '사랑을 품은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까지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드라마는 늘 대중의 꿈과 판타지 충족에 복무해 왔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대중의 마음과 영혼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달콤함에 빠져 잠시 현실을 잊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허구를 실제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힘도 지녔다.
대중의 욕망이나 무의식과 상호작용하기 떄문일 터이다.
그래서인지 미풍양속저해니, 역사왜곡이니, 재벌미화니 등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폭ㅂ잘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태양의 후예'를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군주주의 냄새가 난다.
군대를 미화한다.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애국심을 조롱해 일컫는 말)을 부추긴다.
리얼리티와 개연성이 없다'''''''.1970~1980년대 유행했던 '배달의 기수'나 '전우',
'3840유격대' 뺨치는 국책프로그램이라는 농담 섞인 비아냥도 있는데 그건 과도한 우려 같다.
재난이 벌어진 가상의 국가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다보니
군대라는 배경은 로맨스의 순도를 극대화하는 장치일 뿐이다.
또 투철한 사명감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새기고 실천하는 군인을 칭송하는 게 뭐가 큰 문제겠는가.
극중 유시진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다.
군인은 나에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다'고 설파하는 장면에서
울컥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는 고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쏟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며칠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애국심과 국가관을 고취시켜 준다며 이 드라마를 극찬했다고 한다.
이상적인 국가와 군인의 모습으로 판타지의 정점을 찍은 이 드라마 어느 부분에서 그리 흐뭇함을 느끼셨을지 자뭇 궁금하다.
아마 앞으로 전국의 학교나 군부대, 공공기관에서 이 드라마 다시보기 운동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 덕에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군이 신바람 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떻게 생각하든 다 좋다.
참을 수 없는 건 애먼 유시진에게 숟가락 얹는 것이다.
완벽남 유시진은 금수저가 아니다.
원사로 명예전역한 직업군인의, 평범한 이웃의 아들이다.
그는 숭고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군의 이미지도 한껏 높였으니 할 만큼 했다.
이제 나랏일 하는 분들이 나서 주시면 좋겠다.
분단 국가에서 태어난 남자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던 의무를 용케 피하며 애국을 말씀하시던 분들.
금쪽같은 자식 동참하시라.
생때같은 남의 귀한 자식 목숨으로 대리 애국 그만하시고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