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최지인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걸 알까요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깜깜한 방 안에서
나는 나를 속이고 역사까지 속이고
부러 암막 걷지 않고
버섯처럼 천연하게 자랍니다
살아 있음은 서러운 것입니다
깨진 석고상처럼
묵연히
나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소중한 것에 대해 그저 소중하다고 하는 건 무책임합니다
시절이 뒤숭숭하지만
할 줄 아는 노래 없지만
생활을 이룰 것입니다
참말로 좋은 시를 쓸 것입니다
좁은 골목 막다른 길
눈이 옵니다
눈이 와서
양말 뒤꿈치가 터졌습니다
이상합니다
아까는 멀쩡했습니다
두고 온 것도 잃어버린 것도 없습니다
플래시
강둑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이들은 작년 겨울 국경을 넘었다. 그들의 가족은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했다.
–저기가 미얀마예요.
강가에서 숲을 바라본다.
바람을 등지고 있다.
*
아버지 모시고 임진각에 가면서 나는
–저기가 북이에요.
자랑처럼 떠들다 문득
함경도 경성鏡城에서 왔다는 어르신 생각이 나
입을 다물었다.
그 해 겨울, 노리치
노리치에 오기 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떠도 일어나지 않았다. 암막을 친 방에서 잠이 더는 오지 않을 때까지 누워 있었다. 우리 집 개는 내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내 곁에 있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아파트 단지 앞 작은 숲을 한 바퀴 돌았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개에게는 뭐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제대로 살고 싶다고.
산문집 마감이 있었지만, 내일로 다음 주로 미루며 몇 달을 보냈다. 이러다 영영 못 쓰는 게 아닐까. 생각이 점점 나를 집어삼켰다. 무엇 하나 제대로 몰두할 수 없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쓸데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국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 대화는 할 수 있을까. 떠밀려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거기서는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천공항에서 히스로공항까지는 열네 시간 정도 걸렸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호텔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길을 헤맸다. 표지판을 보고도 엉뚱한 쪽으로 갔다. 날이 쌀쌀했는데도 땀이 났다. 호텔에 도착해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배가 계속 불편했다.
노리치역은 종점이었다. 열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축구 경기장 캐로 로드 옆 호텔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창문으로 경기장이 보였다.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오후 네 시면 어두워졌다. 도시는 작고 조용했다.
레지던시 첫날, 루시는 날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드래곤홀 건물 안에 있었다. 2층 구조였다. 계단을 오르면 양쪽에 잠자는 방이 두 개 있었다. 1층에는 주방과 작은 응접실이 있었다. 사스티 고타마는 이미 와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소설가, 2주 동안 함께 지낼 룸메이트였다.
처음 며칠은 라디에이터를 제대로 못 켜서 난방에 애먹었다. 나는 추위에 익숙해서 괜찮았지만 사스티는 힘들어했다. 그에게 영국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어느 저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창문이 덜컹거렸다. 숙소에서 가장 따듯한 곳은 응접실이었다. 그는 소파에, 나는 책상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문학과 서로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말이 막히면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검색했다. 그사이 침묵이 흘렀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기다렸다. 이해하려고 했다.
셰링엄에 가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사스티가 우산을 펼치자마자 바람에 뒤집혀 망가졌다. “이래서 영국 사람들이 우산을 안 쓰는구나.” 하며 웃었다. 노리치역에 도착해 열차를 탔다. 창밖으로 시골 풍경이 지나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바라봤다. 해변에는 까만 몽돌이 가득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 때마다 몽돌 구르는 소리가 났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수복도 아닌, 여름 수영복 차림이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지켜봤다.
사스티와 함께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영어 학원에 다녔다. 살렘은 거기서 만났다. 쿠웨이트에서 군인으로 5년, 경찰로 25년을 일하고 은퇴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대학생 두 딸과 노리치에서 지내고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그는 모르는 게 있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물었다.
어느 날 그와 학원 근처 할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쩌다 내 이야기를 하게 됐다. 오래 삼킨 말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그는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수업 마지막 날, 살렘은 내게 편지를 건넸다. “어떤 사람은 바람처럼 지나가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비처럼 와서 꽃을 피운다”고 적혀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노리치 시내를 정처 없이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돌바닥을 비췄다.
드래곤홀에서 열린 낭독 행사에 갔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여러 시인이 차례로 사람들 앞에 섰다. 한 시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시를 읽었다.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소리만으로도 진심이 전해졌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블라인드 사이로 빨간 벽돌집과 마당이 보였다. 한 문장, 한 문장. 나아지고 있었다. 노리치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곳에서 한 권의 책을 끝냈다. 이제 삶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