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에 따른 공격작전 형태는
제7편 8장부터 19장까지는 도하 공격부터 숙영지 공격 등 다양한 공격작전 형태를 서술하고 있다. ‘하천선 공격과 방어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방어진지 공격은 진지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보루 진지는 적이 견고하게 방어하고 있으므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산악 지역은 측·후방 우회 공격보다 적 퇴로 차단을 실질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초병선은 적 주력이 배치되지 않으므로 작은 성과에 집착해 전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이다. 그리고 기동작전은 오늘날 소규모 정찰대, 우회 습격조에 대한 내용으로 이해하면 된다. ‘늪·침수지에 대한 공격은 동계 기간이 적절하며, 숲에 대한 공격은 기동로를 확보해 유리한 지역에 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어 결전을 치르거나 치르지 않은 전쟁터에 대한 공격을 언급한 후 계속해서 기타 공격작전 형태를 서술하고 있다. ‘요새 공격 효과는 제한된 목표에 대한 소규모 점령으로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요새 손실은 적 방어력을 약하게 만든다. 수송대에 대한 공격은 성공 확률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이다.
또한 사영하는 적군에 대한 공격에서는 공격 방법과 효과를 언급하고 있다. ‘분산해 있는 적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우회 공격을 통해 적을 분리하고 퇴로를 차단해야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한 지점으로 전투력을 집중해 단호하고 대담하게 공격해야 한다’이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공격작전 형태가 발전했듯이 아시아인의 스포츠도 태권도와 함께 공수도·우슈 등 여러 형태로 변화됐다.
공수도와 우슈는 어떻게 변화됐는가
공수도(空手道) 또는 가라테는 아주 부드러운 힘을 겹쳐 신체 각 부위를 활용해 상대방과 겨루는 일본의 무술이다.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략에 의해 무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쿠 무인들이 당시 당나라 무술인 당수(唐手)를 수련하게 된 것이 시작이다. 가라테가 일본 무술로 정착되면서 ‘당’ 자가 중국 당나라를 연상시킨다고 해 ‘空手(공수)’로 변했다. 여기에서 ‘가라(から)’는 ‘비어 있다(空)’, ‘데(て)’는 ‘손’으로, 곧 맨손 무술을 의미한다. 또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공(空)은 빈 것은 차 있고, 차 있는 것은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수도는 선제공격보다는 반격 위주의 무술이다. 방어는 곧 공격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우슈는 중국의 전통무술로 무술(武術)의 중국 발음이다. 인도 스님인 달마선사는 서기 520년께 중국에 건너와 소림사에서 9년 동안 참선했다. 이때 고대 인도무술을 응용해 승려들의 신체 단련을 목적으로 쿵후를 발전시켰다. 그 후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가 우슈다. 장권과 도술·곤술, 창·검, 남권 등 세부 종목에서 개인 자세를 평가하는 품새와 대련으로 나뉜다. 스포츠 연마 후 적절한 한 모금의 술은 기운을 돋운다. 중국 고유의 술 가운데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마오타이주가 있다.
마오타이주가 중국 대표 酒 자리로
마오타이주는 수수(고량)를 주원료로 하고 밀로 만든 누룩으로 발효해서 만든다. 누룩을 원료인 고량보다 더 많이 사용하며 여러 차례 발효 과정을 거쳐 3년 이상 숙성한다. 이 술은 중국 구이저우 성 마오타이진에서 생산된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이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남부 장시 성에서 산시 성까지 9600㎞를 걸어서 탈출하는 역사적인 대장정(1934∼1936)을 감행했다. 홍군이 마오타이진이 있는 츠수이 강을 건널 때 주민들이 마오타이주를 들고 나와 행군에 지친 병사들을 위로했다. 국민당군에 쫓기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도 주민들을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이런 주민들의 정성과 술기운에 크게 고무됐다. 이런 인연으로 훗날 중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됐을 때 마오타이주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명주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마오타이주는 베트남전쟁을 끝내는 계기가 된 사건에서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6·25전쟁에 뒤이은 동서 냉전의 열전인 베트남전쟁은 프랑스·미국과 30년 이상 지속됐다. 지금은 남중국해 일대의 난사군도 등 영토분쟁으로 베트남과 중국은 긴장관계이지만, 당시에는 중국군이 북베트남 일대에 공병부대 등을 지원했다. 1972년 2월 닉슨의 중국 방문 시 만찬장에 등장한 술이 곧 마오타이주였다. 닉슨과 저우언라이의 건배주는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는 빗물이었다. 술 한 잔이 한 사람 또는 국가 존망에도 영향을 끼친다. 신중히 마셔야 한다.
<오홍국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