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토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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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토요일 강론>(2026. 4. 18. 토)(요한 6,16-21)
<예수님은 ‘만물의 주님, 온 세상의 임금님’이신 분입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요한 6,16-21).”
1)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에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4-15).”
‘기적의 빵’을 먹은 사람들은 그 기적에
‘열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기적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배불리 먹었다는 것만
생각해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 같습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신 다음에
군중을 해산시키셨습니다(마태 14,22; 마르 6,45).
제자들과 군중을 곧바로 ‘분리’시키신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군중 심리에 더 이상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즉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과 군중을 분리시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보내신 것과
그들이 호수에서 바람과 파도를 겪게 하신 것은,
정신을 차리라는 ‘사랑의 회초리’ 같은 것이었고, 그리고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메시아를 원하는지, 또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 무슨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면서 응답했는지를
다시 잘 성찰해 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2) ‘제자들이 호수에서 풍랑을 만나서 고생한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이야기는
분명히 상황도 다르고, 뜻도 다릅니다.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나서 고생할 때, 예수님께서는
바로 옆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마태 8,23-24).
그 이야기에서 ‘큰 풍랑’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는데도 안 계신다고 오해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겪은 맞바람과 파도는 그들 내면의 심리 상태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실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들도 예수님 옆에서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 등으로 들뜨고 흥분한 상태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옆에 안 계신 것은, 그들의 마음이,
또는 그들의 믿음이 참된 신앙에서 멀어져 있었고,
흔들리고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3)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가신 것은,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 일, 즉 당신이 ‘만물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계시하신 일입니다.
‘만물의 주님’이라는 말은, ‘온 세상의 임금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온 세상의 임금님이신 분께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만을 위한 임금이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음 없는 일이기도 하고, 무례한 일이기도 합니다.
20절의 “나다.”는, 원문으로는 탈출기 3장 14절에 있는
“나는 있는 나다.”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당신의 ‘신성’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무서워하지 말라는 단순한
말씀이 아니라,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말씀이고, 그래서 이 말씀도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말씀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는 제자들의 신앙고백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마태 14,33).
4) 메시아의 나라를 인간 세상의 왕국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8,36).
메시아의 나라는 이 세상에 건설되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식’으로 건설됩니다.
그 방식은 십자가 수난과 부활입니다.
메시아의 나라를 인간 세상의 왕국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현세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로 오해합니다.
그 오해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과 같습니다.
단식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을 사탄이 유혹할 때,
사탄은 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마태 4,9; 루카 4,6-7).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만 경배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 유혹을 간단하게 물리치셨지만, 신앙인들을 향한
사탄의 유혹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끊임없이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인가?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인가?”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부활 제2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