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그룹의 전자 관련 계열사들은 최근 ‘우리 회사에선 내가 최고’라는 이색 선발대회를 열었다. 각 부문에서 11명이 ‘최고 직원’으로 뽑혔는데 전기기사자격증 설계사면허증 교사자격증 등 18개 자격증을 보유한 LG전자 모니터설계실의 정석화씨는 자격증부문 1위를 차지했고, LG정밀의 임병철씨는 지난 21년간의 월급명세서와 창간호 이후의 LG그룹 사보 전부, 우표 5만장 등을 모아 수집부문 최고에 올랐다. LG전자 광주 고객서비스센터에 근무하는 김육영씨는 92년 입사 이래 51만5304명의 고객과 접촉 (하루 평균 260명), 이 분야 최고가 됐다. LG정보통신 응용기술팀의 최고(崔高)씨는 이렇다 할 재주는 없지만 이름 덕분에 엉겁결에 ‘최고 직원’으로 선발됐다.
이들 ‘별난 최고’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었으니, 무려 14개 외국어(한국어를 포함하면 15개)를 구사, 어학부문의 내로라하는 경쟁자들마저 한없이 질리게 만든 LG정보통신 수출팀 강수형 (姜修亨·32) 대리가 그 주인공이다. 강대리가 구사하는 외국어를 나열하려면 반드시 쉼표를 찍어 읽는 이의 호흡을 조절해줘야 한다.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불가리아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현대 그리스어, 고대 히브리어, 현대 히브리어, 이디시, 중국어, 일본어…. 기인 (奇人)이라 불러 지나침이 없다.
본인은 “불편없이 구사하는 언어는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정도이고, 나머지는 사전 찾아가며 책이나 읽는 수준”이라고 깎아내리지만, 그렇다 해도 ‘3개국어 유창, 11개국어 독서 가능’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게다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도 조금 집적거린 눈치지만, 이런 건 치지도 않았다!). 14개나 되는 외국어에 도전한 용기만도 높이 살 만하지 않은가.
도대체 그는 무슨 까닭으로, 어떤 필요에서 외국어 순례에 청춘을 몽땅 바쳤을까. 강대리의 외국어 순례기를 듣다 보면 마치 성경의 마태복음 첫 구절(‘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운명과도 같은 그의 외국어 기행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그 전에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고등학교도 일반고를 나왔다. 당시(86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노력이 다방면에서 시도되고 있던 터라 조만간 러시아어 수요가 늘 것 같아 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지원했다. 대학 4년 내내 열심히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그 결과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때까지 러시아와 수교가 없어 유학지는 러시아가 아닌 독일로 정해졌다. 90년 독일 서부의 트리어 시(Trier, 칼 마르크스의 고향)에 있는 트리어대학 슬라브어문학부에서 6년에 걸친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전공은 슬라브어였지만, 독일에서 살고 독일 교수 밑에서 독일 학생들과 독일어로 이뤄지는 수업을 받으려니 무엇보다 독일어 공부가 급했다. 1년간 어학과정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전공수업에 들어갔다.
이 대학 슬라브어문학부에서는 동슬라브어 계통인 러시아어 외에도 다른 계통의 슬라브어 1∼2개를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했다. 그래서 서슬라브어인 폴란드어와 남슬라브어인 불가리아어를 배웠는데, 졸업자격을 얻기 위해 억지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쏠쏠해 기왕 하는 김에 또 다른 남슬라브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까지 공부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외국어 팔자’가 사납게 얽히고 설켜 갔다.
독일 대학에서 어문학부를 졸업하려면 ‘유럽대륙의 모국어’인 라틴어도 교양필수로 학점을 따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남들 같으면 한숨부터 나올 일이었지만, 그는 역시 기인이었다. 짜릿짜릿 호기심부터 발동했다. 그가 살던 2000년 고도(古都) 트리어시는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 지금도 원형경기장과 로마황제의 목욕탕이 유적으로 남아 있을 만큼 라틴문화의 자취가 짙어 그 자신 이국적인 라틴의 향취에 흠뻑 빠져들 꼬투리를 찾고 있던 터였다. 갖다 붙이자면 이것도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싶어 하늘의 뜻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 와중에도 ‘본업’인 러시아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루는 지도교수가 그를 연구실로 불러 올렸다.
“이제 그만하면 됐네. 하산하게.”
“어인 말씀을…아직 배움이 부족하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좀더 깊이 파보겠나?”
“….”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해보게. 러시아어는 그리스정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 그러니 러시아어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공부하려면 고대 그리스어 지식이 꼭 필요할 걸세.”
여기나 거기나 교수의 충고는 곧 명령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말은 지금 그리스 사람들이 쓰는 말과는 많이 달랐다. 내친 김에 ‘밑천’을 활용, 현대 그리스어 과목도 따로 수강신청해 두 학기 넘게 들었다.
외로운 유학생활 탓이었을까. 어디엔가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그러다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원전 성경을 읽기 위해 고대 히브리어를 배웠다. 옛날 ‘버릇’을 못 버려 얼마 후 현대 히브리어까지 아울렀다.
이 정도면 유럽땅에서 쓰이는 웬만한 언어와는 대충 다 수인사를 나눈 사이겠거니 했는데, 어느날 그의 눈앞에 희한하게 생겨먹은 알쏭달쏭한 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글자는 분명 히브리어 알파벳인데, 단어와 문법에서는 독일어 냄새가 물씬하고…. 유럽과 미국의 유태인들이 많이 쓰는 이디시(Yiddish)라는 말이었다. 독일어와 히브리어 밑천이 아까워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다.
영어는 ‘기본’이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부했지만, 슬라브어문학을 공부하는데도 영어실력은 필요했다. 이 분야에서도 영어로 씌어진 참고문헌과 자료가 워낙 많았기 때문. 영어 감각을 익히러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연수까지 다녀왔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LG에 입사한 뒤에는 사내 어학강좌를 통해 중국어에 도전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공짜로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그간 배운 말이 모두 인도-유럽어 계열이라 동양권 언어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석 달 동안 2개 과정을 끝냈는데, 계통이 달라서인지 중국어는 아직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고 있다. 몇 달 전부터는 동료사원들을 꼬드겨 아침마다 일본어 강사를 모셔다 수업을 듣고 있다. 수입선 다변화정책이 폐지되는 등 한-일간 경제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도 일본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강대리는 “언어에 특별한 소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하다 보니 재미있어 계속하게 됐다. 새로운 문자와 단어, 대화를 보고 들으면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면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상승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슬라브어 계통의 언어들은 어원이나 어순, 문법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하나를 배우면 셋, 넷을 절로 깨쳐 ‘오르가슴’에 가까운 학문적 희열감에 온몸을 부르르 떤다는 것. 그도 유학 초기에는 독일어로 얘기하다가도 러시아어나 히브리어가 툭툭 튀어나오는 혼란기를 겪었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니 각각의 언어들이 더 이상 아웅다웅하지 않고 언어중추 안에서 사이좋게 자리를 나눠 갖더라고 했다. 이만큼 관록이 쌓이면 어떤 언어든 2개 과정(2∼4학기) 정도만 배우고 나면 ‘감’이 잡혀 혼자 사전 하나 들고 말 깨치는 게 가능해진다. ‘계도할우(鷄刀割牛)’라 할까, 닭 잡는 칼만 쥐어주면 소를 잡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그 ‘경지’에 올라설 요행수는 없다. 강대리에게도 ‘비결’은 없었다. 그저 ‘습관’이 있었을 따름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예습 빼먹지 않기, 부지런함, 철저한 현지화’ 같은 상식선의 것들이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습을 했습니다. 처음엔 독일어 수업을 알아듣지 못해 예습을 안 하고는 수업을 못 따라갔으니까요. 저 하나 빼고는 다 독일 학생들이라 외국 유학생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더군요.”
책만 들여다본다고 말이 들릴 리 없었다. 테이프를 구해다 듣고 또 들었다. 그것도 밥 먹을 때나 운전할 때 그저 ‘배경음’으로 틀어놓는 게 아니라 따로 시간을 내 집중해서 듣고 따라 말하기를 반복했다. 그래야 효과가 나타났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 8시면 학교로 갔다. 도서관이 8시에 문을 열었기 때문인데, 그 시간에 도서관에 공부하러 오는 학생은 변호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들뿐이었다. 수업에 들어가는 시간 외에는 저녁 6시까지 한순간도 도서관을 뜨지 않았다. 나중엔 그가 앉는 도서관 자리가 지정석처럼 여겨져 다른 학생들은 아예 그 자리를 피해 다녔다. 저녁시간엔 독일 친구들과 어울려 밥 먹고 술 마시고 영화 보러 다니며 말을 익혔다. 못 알아들은 농담은 메모해뒀다가 나중에 ‘보충설명’을 청했다. 화장실 벽에 있는 낙서를 음담패설인 줄도 모르고 적어와 여학생에게 물었다가 낭패도 봤다.
그가 90년 트리어대학에 입학할 때 발급받은 학생증 사진을 보면 이마가 좀 넓긴 해도 머리숱이 꽤 짙었다. 그랬던 머리칼이 채 3년이 못 돼 죄다 빠져버렸다(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공부 스트레스에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유학을 떠날 때 밥솥도 가져가지 않았다. 하루에 서너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도 독일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느끼한 독일 음식을 아무 내색 않고 구겨넣었다.
언어감각을 전환시키기 위해 한국어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유학생활 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한국을 다녀간 적이 없고, 독일에서도 한국인과는 가급적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 트리어대 학생 1만2000명 중에 한국 학생이 110명이나 됐지만, 이들과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목례나 건넬 뿐, “안녕하세요”란 말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외국 유학 가서 그 나라 말 제대로 배우려면 자국인들과 접촉하지 않는 게 상책이죠. 끼리끼리 몰려 다니다 보면 10년을 살아도 말이 안 늘어요.”
그렇게 2년쯤 지나니 강의가 막힘없이 귀에 들어왔다. 얼마 안 가 세미나 수업에서 자신의 논리를 펴 독일 학생들의 주목을 끄는 일이 가능해졌다. 농담도 썰렁하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독일 대학에서는 강좌마다 수료증을 취득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과정 이수를 인정해주는데, 이걸 얼마 만에 인정받느냐는 전적으로 학생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는 독일 학생들도 잘해야 6∼7년이 걸리는 정규과정(석사)을 4년 6개월 만에 마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악’과 ‘깡’의 승리였다. 그런 ‘땀의 역사’를 거쳐온 그에게 대뜸 “거, 외국어 좀 잘하는 비결이 뭐요?”라고 한가로운 질문부터 던졌으니 그런 실례가 없었다.
96년 LG전자에 입사, 올해 초 LG정보통신으로 옮긴 강대리는 전공을 살려 대(對)독립국가연합(CIS) 수출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지역에 유무선 전화기를 파는 게 본업이지만, 현지 바이어나 정치인이 회사를 방문하면 상담과 통역, 브리핑, 공장견학에서 관광과 술자리 수행까지 책임진다. 계열사 여기저기서 외국어 업무와 관련해 그에게 도움을 청해오는 일이 많은데, 그는 귀찮아하기보다는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다. 같은 나라 말이라도 ‘강의실 언어’와 ‘비즈니스 언어’ 사이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서 이래저래 배우는 게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160일 동안 러시아 카자흐스탄 리투아니아 캄차카반도 일대를 혼자 돌아다니며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 수염을 기른 것은 그때부터였다. 예의 그 ‘현지화’ 때문이었는데, 대부분 수염을 기른 현지인들이 자신에게 친밀감을 느껴 정 때문에라도 전화기 한 대 더 팔아주기를 바라는 심정에서였다. 치안이 불안한 이 지역에서 동양인이 너무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간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쉬웠다. 귀국해서 이 모습 그대로 출근했더니 그의 눈물겨운 현지화 의지를 읽은 이사가 “자네는 윗머리가 없으니 밑털이라도 기르게” 해서 지금껏 ‘상시 현지화 태세’를 갖추고 있다.
강대리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한다. 입사 이후 거의 써먹을 기회가 없는 희귀 언어들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업무 시작 전에 책을 뒤적이고 좋은 문장을 골라 외운다. 퇴근시간은 7시지만, 이때 CIS 지역은 한창 일하는 시간이라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10시가 다 돼서야 퇴근하는데다, 바이어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일도 잦아 퇴근 후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렵다. 방 한구석에 10종류나 되는 손때 묻은 사전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른 아침을 ‘깨어 있는 시간’으로 바꿨다.
여건이 되면 영어와 독일어,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서로 비교해가면 공부할 수 있는 대학교재를 쓰고 싶다. 이들은 같은 계통의 언어라 중-고급 이상의 수준에서는 서로 비교하며 공부할 때 학습효과가 높다는 것.
“루틴한 일과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면 잠을 줄여서라도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죠. 요즘은 아무리 피곤해도 잊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저절로 눈이 떠집니다.”
첫댓글 선비아우의 다양한 글은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게 하네그려.
난 고대 국어도 못깨우쳤는디........고대 히브리어까정.....
탄관형과의 논쟁에서는 깨우친바 큽니다...짧고 그러면서 다양성을 내포하는 글, 상념으로 해서 계속 올리겠습니다...구벅.선비가 단, 이글은 아님당.히히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겠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단한 사람이군요!!! 근데 이 사람 결혼은 했나요???
설마 결혼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