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뭐하며 보내는지 시간이 후딱 지나가던 군요.
여지껏 한 편 쓰고 민기적거리던 저한테 화가 나 뭔가를 하려고 꿈틀대봅니다.
글 올리고 님들의 말을 들으면 좀더 부지런해지지 않을까싶어 타인에게 기대려합니다.
부족하지만 비평해주세요.
- 만물상회 서춘구
시키는 데로만 했던 서춘구는 마누라가 죽고 난 뒤에서야 ‘장사를 진작에 배워둘 것을’하며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코딱지만한 가게라도 할 일이 원체 많았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가격대로 파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가끔 겉 포장지에 가격이 없으면 되는 데로 팔기도 했다. 손님들이 누구는 백 원이고, 누구는 백 오십 원이냐고 따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일이 물건 가격을 적어 놓기 시작했다. 무려 공책 열 장을 넘게 필기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에 필기했는지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질 지경이었다. 가게라는 게 물건 주고 돈 받는 일이 전부라고만 생각했던 서춘구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격도 문제였지만 물건이 어디에 놓였는지도 골칫거리였다. 라면은 진열대 오른쪽 하단에, 과자는 반대편 중간에 있는지를 주인보다 손님들이 더 잘 알았다. 하물며 있었는지도 몰랐던 양초를 턱하니 찾아든 손님이 오백 원을 냈을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할머니가 있었을 때는 검정 고무줄이 있었는데, 왜 없어요?”
물건이 나날이 줄어들면서부터 손님들은 마누라의 빈틈을 무능한 서춘구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까짓 거 이것 하나 못해 먹겠어하는 심정으로 마누라가 매일 끼고 앉았던 너덜해진 전화번호부를 찾아 들었을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많은 상점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있어서 뭘 어디다, 얼마만큼을 주문해야하는지 몰랐다. 양초를 세 상자나 주문하는 바람에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기도 했고, 과자류는 찔끔찔끔 주문한다고 대한상회 광민이한테 한 소리 얻어듣기도 했다. 갖다 놓기가 바쁘게 새로운 것들을 주문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설탕이나 소금 따위만이 아니라 다시다의 종류가 멸치, 쇠고기에서 회사마다 이름이 틀리다는 것도 가게를 이십 년 동안 하면서 처음 알았다. 하물며 바늘쌈지와 옷핀, 실타래, 면도날, 성냥, 라이터, 못, 알전구, 건전지도 크기별로 다양한 것들이 가게에 모두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시골에 덜렁 하나밖에 없는 가게여도 그야말로 만물상회였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계속 가게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러고 보면 마누라는 이십 년 간을 잘도 꾸려왔다. 억척스럽게 모아온 돈으로 가게를 하자고 했던 건 어머니였다. 다들 장에서 사오는데 이런 벽촌 끄트머리에 가게는 열어서 뭐하느냐고 서춘구는 우겼었다. ‘늙으막이 아들자석이 있기를 허냐, 어쩌냐. 자석 호강 받기는 틀려먹었고, 늙어서까지 농사지어 어치께 목에 풀칠을 헐 것이여. 니 나이가 벌세 오십 줄이여. 그라고 영미년 맥일라면 어차피 장에 나다녀야 된께 이참 저참 좋제 뭘그려.’했던 어머니. 사내자식이 할 짓이 못된다고 가게는 얼씬 거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장사가 쏠쏠하니 잘 되었다. 그런 것이 서춘구는 못마땅해 시덥잖은 가게하면서 유세한다고 얼마나 핀잔을 줬던가. 막상 마누라가 죽고 나니 서춘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넉넉하게 살게 된 것은 마누라가 매일 늦게 까지 일하던 가게 덕분이었다.
“임자가 가게 해서 이만큼 살게 된 중 알어? 다 내가 뼈골 빠지게 농사지어서 일으킨 거여. 알긴 알어?”
오금 박히도록 공치사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럴 때마다 마누라는 ‘그려.’하고 쉽게 인정했다.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보다 더 배알이 꼴리는 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가게에 이홉들이 소주가 두 개는 작살났었다. 이장한다고 설쳐댈 때에도 마누라는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하곤 했는데 어떻게 많은 일들을 혼자서 해냈었는지.
오기는 남보다 많지만 정작 오기를 받아줬던 사람은 마누라뿐이었다는 걸 서춘구도 알고 있었다. ‘형수한테 잘 하란께. 돌아가시면 형님만 손핸디, 와 그래쌌소. 구 십 넘은 시어매 모시고 그만큼 사는 사람이 어디 흔하간디?’하던 윗집 용달이 말이 생각나 쓰게 웃었다. 서춘구는 혼자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 지나간 일이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사십 구제를 지내자마자 마누라는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노환이라고만 했다. 기껏해야 링거만 꽂아 주는 것이 병원에서 하는 일이 다였다. 마누라는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한사코 우겼다.
집에 데려다 놓으니 심난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하루 요에 실수하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챙피해 하면서 자신이 빨겠다고 우기기도 했지만 점점 일어나지도 못했다. 누워서 지내는 날들이 많아져 저러다 저 세상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틈만 나면 누워있는 마누라 옆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똥기저귀 다 빨아서 수발해 줄텐께 지발 오래오래 옆에 있으소. 알것는가?”
자기 자신한테 다짐을 받아두듯이 꾹꾹 눌러 말을 했다. 하지만 마누라는 그런 자신이 싫었나 보았다. 아무리 남편이어도 자신의 밑을 닦아준다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했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지만 조심스럽게 하얀 속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서 쳐다보니 눈가에 물기가 축축했다. 깊이 패인 주름 사이에 눈물은 흐르지도 않고 그득하니 채워져 있기만 했다. 처음 시집올 때는 박꽃같이 예뻤다. 보조개가 샐쭉하니 들어가서 어서 웃어보라고, 보조개 한번 만들어 보라고 장난질을 해댔다. 모심다가도 멀리서 마누라가 참을 이고 오면 물이 뒷꽁지까지 튀도록 뛰어나갔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마누라의 보조개는 사라지고 거죽만 남은 이 다 빠진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나직히 옥분아하고 불러보며 마누라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파마기가 없어 머리가 부스스해 뒤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마음대로 써보지 못한 바보 같은 마누라였다.
마누라를 두고 욕실에 나와 속옷을 빨면서 서춘구의 주름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주책스럽다고 생각했다. 아직 못해준 게 너무 많았다. 호강시켜준다고 이것만, 이번만 하면서 보낸 시간이 오 십년 세월이었다. 엄한 시어머니 만나서 시집살이 한 것도 보상해줘야 하는데…. 서춘구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둘러 결혼했지만 결국은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한수를 떠놓고 매일 백팔 배를 해야 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어머니 등살에 마누라는 그 고초를 참아냈다고 했다. 살아 돌아온 서춘구는 ‘자네 땜시 내가 살았는 갑소’하며 껴안아 준 것이 다였다. 시집 와서 삼 년 만에 낳은 것이 딸이었다. ‘이것도 자식이라고 미역국 먹을 생각을 허냐’했던 어머니는 간신히 얻은 아들 명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이름 모를 병으로 죽고 나자 충격으로 한쪽 눈을 잃었다. 어머니가 ‘저년 땜에 내 눈이 이리 되얏어. 손자도 죽이는 이런 각박한 년.’하며 억지를 부릴 때에도 편 한 번 들어주지 못한 서춘구였다. 마누라의 충격도 어머니 못지않았는지 달거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집안에 대를 끊어 논 년’이라고 마누라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서춘구는 무심히 보고만 있었다. 모진 세월만 살다 아파 버린 마누라가 마냥 불쌍하기만 했다.
“엄니, 지발 저 사람은 데리고 가지 마씨요. 나가 좀이라도 호강 시켜 줄라요.”
속옷을 빨아 널면서 혼잣소리를 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마누라는 다소곳이 누워서 자고 있었다. 혹여 서춘구를 부를까 싶어 방문을 반쯤 열어놓았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거실 유리문 사이로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보였다. 오 년 전에 큰 맘 먹고 입식으로 고쳐서 거실에 앉아 유리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면 손님이 들고 나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창호지문 한 칸을 유리로 달아서 망원경 바라보듯이 빼꼼이 바라봐야만 했었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라면 손님 오는 것도 달갑지 않았을 것이었다. 대문을 따로 내자는 것을 마누라는 집안의 문은 하나여야 한다고 한사코 가게 문이 대문이 되어버렸다. 이문 없는 장사한다고 없는 소리를 해대던 어머니가 먼저 집을 고치자고 돈을 내놓았을 때 서춘구도 마누라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 고치고 난 뒤에서야 어머니는 살기 편한 세상이 되었다고 좋아했었다. 새삼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돈을 움켜쥔다고 원망했던 때를 후회하고 있었다. 고치기를 잘했다고 느끼며 거실 유리문을 열었다.
마누라가 아파서 가게를 닫았으면 했는데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가게이다보니 사람이 있으면서도 열지 않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닫으나, 열어 놓나 매 한가지였다. 거실 유리문을 열자 가게 중간에 있는 연탄난로가 식어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연탄을 갈아줬어야 했다. 을씨년스러운 가게 공기가 방에까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서춘구는 허둥댔다. 마누라가 추울듯하여 얼른 번개탄이라도 찾아서 지펴야하는데 몸이 뻣뻣한 것이 생각처럼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도통 어디 쑤셔 박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가게 안을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한쪽 귀퉁이에서 번개탄을 찾아 연탄집게에 꼽았다. 선반에서 팔각 성냥 통을 꺼내 불을 붙였다. 파지직하며 불붙는 소리가 요란했다. 밖에 나가서 붙일 것을 급한 마음에 가게 안에서 붙였더니 연기가 자욱했다. 환기를 시키려면 가게 문을 열어 놔야 했다. 그렇잖아도 썰렁한 가게가 이월 한 겨울바람에 시려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번개탄을 식은 연탄 위에 놓고 검은 연탄을 얼른 올려놓았다. 공기구멍을 맞추느라 콜록이며 난로 안을 바라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돋보기라도 쓸 것을 하며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늙은 것이 죄였다.
연기가 빠질 때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고 거실로 들어왔다. 혹시나 추울 새라 구부정한 허리로 냉큼 들어와서는 문을 얼른 닫았다. 마누라는 서춘구가 눕혀 놓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추워졌는 갑소.”
나가보지 못하는 마누라가 안쓰러워 바깥 날씨를 전했다. 자고 있는지 말대꾸가 없었다.
“자네 추운가? 그래도 잠 참소. 문을 열어 놔야 내맴이 편해. 알겄는가? 지금은 연탄을 피우느라 문을 닫았네. 방바닥은 따뜻한디 외풍이 쎄서. 공사를 다시 해야되는 갑소. 자네 내 말 듣는가?”
다른 날과 틀렸다. 마누라가 너무 오래 자고 있었다. 서춘구는 갑자기 불안했다. 말수가 없던 서춘구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도 마누라는 말대꾸도 없이 누워만 있었다. 다시 방문을 빼꼼히 쳐다봤다. 가슴 쪽에 이불이 움직이질 않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할 이불이 조용한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앞에 있던 재떨이를 발로 차고는 문지방에 발가락이 걸려 아플 새도 없이 마누라가 덮고 있는 이불을 젖혔다.
“이 사람! 이 사람아! 어이!”
마누라를 흔들어도 보고, 뺨을 때려보아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불 속에 누워있는 마누라는 입술이 파래서 얼굴빛이 새하앴다. 싸리 꽃 같이 그렇게 하얄 수가 없었다.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띤 것도 같았다. 서춘구는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고서는 허망하게 마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말해야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에이, 모진 사람! 어찌 그렇게 간당가. 말도 없이. 허어…”
길게 한숨을 쉬고 앉아서 바지가랑이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늙으면 눈물도 안 나올 줄 알았다. 살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어서 인가. 죽은 마누라의 눈가에 채워진 눈물은 말라가는데 서춘구의 눈물은 뜨겁게 떨어지고 있었다.
칠월의 매미는 지독스럽게 시끄러워 사람을 더 덥게 만들었다. 마을사람들은 새벽 참에 논이며 밭들을 한번 휘 둘러보고는 집으로 들어가 쥐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서춘구는 탱크보이 복숭아 맛 하나를 입에 물고 가게 앞 단풍나무 그늘 정자에 앉았다. 달콤한 것이 입에 착 붙었다. 아이스크림 종류 중에 하나인데 동네 꼬마들이 자주 사먹는 것이었다. 어떤 맛이 길래 아이들이 그리도 좋아하나 싶어 하나 들고 빨아보니 달디 단 것이 시원하기 까지 했다. 비록 이는 시렸지만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어 보는 일이 즐거웠다.
빙과 총각 병섭이가 왔길래 파란 비닐 포장지에 담긴 탱크보이를 들어서 ‘이놈으루다 많이 갖다놔. 아그들이 이놈만 찾아 댄께.’ 발음하기 요상스러워 봉지만 흔들어 댔다. 병섭이는 언제나 새 물건을 들이기 전에 깨끗이 청소를 했다. 다 그렇게 해주는 줄 알았다가 대한상회 광민이가 와서 ‘이 가게만 특별히 해주는 거예요. 할아버지 혼자 하시는 게 힘들어보여서 그런다는 대요.’ 그때서야 알았다. 사실을 알고 난 후에 고맙다고 사이다라도 하나 따서 줄라치면 손을 내젖고는 물 한 사발 들이키고 가기가 예사였다. 병섭이를 보면 저런 아들 하나만 있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아들 없다고 마누라를 구박하면서도 농으로라도 밖에서 씨 하라는 소리는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아들을 간절히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도 가끔 라면상자나 술 상자를 쌓아주는 병섭이를 볼 때나, 용달이가 아들을 앞세워 외출을 할 때면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럴 때면 죽고 없는 마누라를 빙충이 같다고 속으로 욕했다. 어머니 몰래 다른 곳에서 아들이나 만들 것을 하며 서춘구는 심통 맞게 탱크보이를 쭉쭉 빨아댔다.
예전엔 가게물건 축내는 거라고는 소주에 과자 한 봉지가 다였는데 요즘엔 하는 일이 가게를 둘러보는 일이라 신기하다 싶으면 뜯어서 먹어보는 게 일이다. 상자 안에 봉지가 또 들어있어서 뜯어보는 것도 일이었지만 하루에 몇 개씩만 뜯어서 먹어보고 하면 시간도 잘 가고 지루한 줄 몰랐다. 광민이가 셋째 주 목요일마다 들러서 새로운 과자며 사탕류를 진열했다. 마누라는 손님이 찾는 물건만을 갖다달라고 주문했다는데 서춘구는 그냥 광민이나 거래처 사장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처음엔 갖다 놓는 데로 내버려뒀더니 물건만 쌓이고 팔리지를 않았다. 두어 달 보내다보니 돈만 들어가고 먼지만 수북히 쌓였다. 그 뒤로는 셋째주 목요일만 되면 하루가 바빴다. 광민이가 오기 전에 많이 나가는 것과 안 나가는 것을 골라 구별해 놓고서 받을 것과 돌려보낼 것을 미리 챙겨야 했던 것이다. ‘새로 나와서 애들이 좋아한다니까요.’ 우겨대면 ‘내가 봐도 맛없게 생겼는데 뭐시가 좋아. 가져가. 고건 좋구먼 그거나 놓고가.’하고 실랑이를 했다. 그러면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데로 하고 돌아갔다. 둘째 주에 라면을 대주는 사장 꽁무니나 첫째 주에 술을 대주는 사장을 쫓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니 한 달이 잘도 갔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빙과 병섭이만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갔다. 그래서 요즘엔 더욱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서춘구였다.
탱크보이를 다 먹어 갈 때쯤 용달이가 버스에서 내렸다. 하루에 네 시간 간격으로 다섯 번 오는 버스를 오전 열 시에 타고 들어오는 것 보니 아침 일찍도 나갔다 오는 모양이었다.
“성님도 서명하씨요, … 용지를 복사 … 아따 발써 덥구만.”
숨가쁘게 얘기하고는 냉장고를 열어 이리저리 손을 내저어 탱크보이 하나를 뜯으며 의자에 앉았다. 마석골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마석골 사람들은 땅값이 올랐다고 좋아들 했다. 하지만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우리들은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었다. 공장폐수를 해결하라는 요구사항 중에 보상을 받는 일이 중하다고 생각하는 용달은 보상이 없으면 산업단지를 짓지 말아야한다고 침 튀기며 얘기해대곤 했다. 서춘구가 보기에는 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들이었다. 산업단지가 조그만 구멍가게도 아니겠고, 시위한다고 나라에서 하는 일이 쉽게 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농사는 나몰라라하고 시위하러 나갈 사람도 없을 텐데 괜시리 이장아들 둔 용달이가 설치는 꼴이었다.
“성님도 불똥 … 산업단지가 조성되믄 큰 마트가 … 그랑께 사람들이 핏켓… 서울사람들이 … 시위 … 산 너머 불구경 …”
우물우물 빨아대면서 용달은 끊임없이 말을 해대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쫑끗이 세워가며 간신히 들은 얘기가 마트였다. 생각해 보니 용달이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마석골이라봐야 걸어서 이십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아이들이 뛰면 십 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마트가 생겨버린다면 만물상회는 필요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폐수가 흘러나오네, 소음이 심해지네해서 보상을 요구하겠지만 서춘구로써는 보상은 고사하고 당장 밥줄이 끊길 문제였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용달이 쥐고 있는 갈색봉투에서 인쇄된 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탱크보이 빈 깝대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볼펜을 찾아 들었다.
“아들이 이장한다고 자네가 솔찬히 고상하네이. 이거 하믄 공장이 안 들어선당가?”
이름 석자 쓰고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용달은 다 먹은 깝대기를 버리고 갈 태새였다. 얘기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다 쓴 종이를 받아들더니 ‘가요’하고 휭 가버렸다. ‘저 놈도 귀가 쳐 먹은 거여, 뭐여.’하고 불퉁스럽게 쳐다봤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는 말이 용달을 두고 한 말인 듯싶었다. 머리꼭지까지 반쯤 벗겨진 훤한 이마에 머리숱까지 없어 끝없이 욕심 사나운 늙은이로 보였다. 서춘구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봤다. 아직은 봐줄만 하다고 느꼈다. 대머리 집안이 아니기도 하지만 일흔을 넘긴 노인네로 보이지 않는다고 스스로 위로 삼았다. 새장가가란 얘기까지 들었으니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고민이 또 하나 생겼다. 그렇잖아도 손주년 영미 결혼식에 갈까 말까하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공장을 반대한다는 시위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시위 핑계를 대고 서울을 가지 말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그렇잖아도 모신다고 난리인데 그 얘기까지 꺼내면 잘됐다고 설레발을 칠게 분명했다. 변변히 해준 것이 없는데 한사코 명숙은 서춘구를 모시겠다고 성화였다.
서춘구는 아무래도 사위인 김 서방이 어려웠다. 김 서방을 열 번이나 봤을까. 사위를 손에 꼽을 정도밖에 대면하지 못했으니 어렵기가 말 안 통하는 세 살 꼬마 대하는 것과 같았다. 명숙에게도 면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공부도 못시키고 열일곱 살부터 공장에 보낸 것도 그렇고, 스무 살 간신히 넘어서 시집을 보내면서도 살림에 보태라고 돈 한 푼 쥐어 보내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가슴 칠 일이다. 더군다나 사돈을 뵐 면목도 없었다. 명숙도 영미 하나만 달랑 낳고 더 이상 자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돈을 대하기가 얼굴을 대면할 수 없을 만큼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마음고생이 오죽했을까싶어 서춘구는 못내 명숙이 안쓰러웠다. 명숙은 마누라를 많이 닮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마누라와 똑같아져갔다. 어려서부터 말수도 없고 투정을 부릴 줄도 몰랐다. 그 모든 업이 며느리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해왔었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던 서춘구였는데도 사위가 자신과 똑같이 명숙에게 대하는 것은 군불에 장작 넣고 입으로 불어대는 것보다 더 얼굴에 열이 오르는 일이었다. 괴씸하기가 이만 원 외상값 안 갚는 용달이보다 더했다.
살림이 어려워 돌이 간신히 넘은 영미를 친정에 맡기러 오면서도 명숙이 혼자 왔다.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김 서방은 바빠서 못 왔다고 애써 변명을 해댔다. ‘지 애미 닮아 딸만 낳았구먼.’하는 어머니였지만 영미는 제법 옹알거리며 예쁜 짓을 많이 했더랬다. 그 즈음에 어머니는 가게를 하자고 했다. 과자, 사탕, 공책, 연필… 주로 아이들 위주의 물건들을 갖다 놓고 팔았다. 점방이라봐야 있는 집 마루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파는 것이 전부였다. 한 자 되는 철판 네 모퉁이에 각목을 빙 둘러 박고 철판에는 하얀 페인트칠을 했다. 검정 페인트로 서춘구가 직접 ‘만물상회’라고 적은 간판을 지붕 위에 올린 것이 가게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영미에게 과자며, 사탕을 주는 것이 낙이었다. 영미는 노상 어머니 무릎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영미는 노래를 불렀다. 일 년 만이라고 했던 기간은 훌쩍 지나 영미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서울로 갔다. 어머니는 죽기 전까지 어린 영미 얘기를 했다.
치매로 삼년을 지내면서도 영미는 용케 잊지 않고 찾았다. ‘영미야, 까까 먹자. 이리 온나.’ 어머니는 영미가 죽은 명진이 같다고 했다. 명진이에게 못 다 해준 것들을 영미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서춘구는 생각했다. 그래 그런지 영미와 명진을 번갈아 찾아 댈 때도 있었다. 그런 영미가 어느새 커서 시집을 간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세월이란 것이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지는 낙엽인 줄 알았는데 잘 익은 감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명숙이가 찾아왔다. 가게 집을 하는 데도 명숙은 양손에 잔뜩 검정비닐봉지들을 주렁주렁 들고 오후 두 시 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영미를 시집보내고 허전했던지 결혼식 때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다. ‘김 서방은 어쩌고 혼자냐? … 어쩐 일로 왔다냐? … 니 여그 온 줄 아냐? … 밥은 묵었냐? …’ 오랜만에 온 딸이라 음료수를 하나 따서 마시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뒤통수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청소를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버리고, 채우고 하면서 재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싱크대며 찬장들을 열어 물건들을 다 끄집어내서 다시 정리를 하고 씻고 정신이 없었다. ‘아야 그만 해야. 안해도 된당께 그러냐.’ 서춘구는 설핏 명숙의 눈가에 눈물을 본 듯해서 조용히 정자에 나와 매미소리만 듣고 앉았다. 치익하는 매미 오줌을 맞으며 서춘구는 괜스레 보이지도 않는 매미를 향해 욕지거리를 했다.
영미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춘구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지 못한 할머니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울지 말아야. 좋은 날 뭔 짓거리냐. 그러는 거 아니다. 아따 울 손주년 이삐다’ 그러고 나서 서춘구도 눈물을 손수건에 조금 찍었다.
명숙이가 미리 보내준 양복을 입었는데 양복이 컸다. 서춘구도 자신이 아직 백 사이즈를 입는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작아져 이제는 구십오도 크다는 사실을 자신도 몰랐던 것이었다. 구두는 직접 사 신으라고 돈을 부쳐왔는데도 한번 신을 구두를 뭐하러 사나 싶어 그 돈에 조금 더 보태서 부주를 했다. 명숙이때 못했으니 영미 때라도 많이 할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여전히 못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있는 구두를 깨끗이 닦아 신고 왔는데도 구두코가 밑창이 벌어져 덜렁 거렸다. 읍내 신발집이 일찍 문을 열지 않아 고치지 못한 게 명숙이 보기가 민망했다. 사돈 체면을 깎는 일 같아 한쪽 구석에 얌전히 앉았다가 일찌감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와 버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크더라도 용달이 신발을 하루 빌려 신을 것을 하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빨래를 잔뜩 가지고 나와 빨래 줄에 널었다. 나중에 하려고 모닥모닥 해놓은 것을 어떻게 찾았는지 그새 빨래까지 한 모양이었다. 명숙은 빨래를 널어놓고 나서 정자에 와 앉았다. 서춘구는 얼른 들어가 시원한 오렌지 쥬스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서 명숙 앞으로 내밀었다.
“간판이 낡았네. 옛날 꺼 그대로 달았나봐. 집 고치면서 새로 하지 그랬어요?”
딸애는 가까이서 크게 얘기했다.
“오래됐다고 버리면 돼간디. 니도 나이 들어가면서 알거이다. 정 준 시간보다 정 들 시간이 더 짧다는 것을. 새 간판 정들 시간보다 저 낡은 간판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기니라.”
명숙이는 이해했을까. 만물상회 간판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춘구는 마누라를 생각했다. 입식으로 고치면서 간판을 바꾸자고 말했던 서춘구에게 마누라가 했던 말이었다. ‘새것이 좋제 뭐시가 좋아’했던 자신이 이제야 딸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며 마누라 말이 천 번 맞다고 되 뇌이고 있었다. 서춘구는 사십대의 마누라를 명숙을 통해 보고 있었다. 귀밑머리가 벌써 희끗해져 나이보다 많아 보였다. 눈가에 주름은 검버섯 같은 기미에 가려 진하게 그어져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다른 데가 없어 보였다.
파마기 없는 단발머리에 목이 늘어날 때로 늘어난 주굴주굴한 흰 면 티셔츠를 마누라는 즐겨 입었다. 누렇게 바랠 새가 없이 하얗게 삶아 빤 티셔츠는 낡으면 행주로도 쓰였고, 걸레로도 쓰였다. 명숙이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싶어 서춘구는 마른 가래를 커억하고 올려 정자 밑으로 퉤 뱉었다. 명숙이도 세월을 먹고 있었다.
“니 애미 닮아서 그러냐? 흰 티가 뭐여. 나이도 젊은 것이 이삐게 좀 입어. 한나 사주랴?”
모시 반바지 아래로 털이 다 빠진 허연 다리를 긁적이며 퉁명스럽게 쏴 질렀다. 젊은 시절 고생했으면 이제는 호강할 법도 하건만. 마누라에게는 하지 못한 말을 딸에게는 금방이라도 사줄 듯이 말했다. 자신은 치장할 줄 모르면서도 마누라는 어머니를 위해 모시옷 하나 해주지 못해 죄송스러워 했고, 명숙은 서춘구를 위해 보청기를 사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명숙은 서춘구를 보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서춘구가 보기에는 아직도 명숙은 예뻤다.
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초저녁에는 왜 그리 졸음이 쏟아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요새 것들은 꼭 여덟, 아홉 시에 술이며, 과자들을 사러 왔다. 예전 같으면 다들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인데도 술 사러 오는 손님은 열 두 시에도 종종 있었다. 주로 매상이 술을 파는 것에서 이문이 제일 많이 남으니 일찍 문 걸고 잘 수도 없고 벽에 기댄 채 코를 곯더라도 문은 열어 놔야했다. 그럴 때는 마누라가 못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한 번도 가게를 봐주지 않았던 자신이 마누라는 얼마나 원망스러웠을 것인가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했다. 그렇게 밤잠을 못자도 새벽 네 시가 되면 잠기가 사라지고 또랑또랑 정신이 드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지난밤에 비몽사몽 받은 돈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일이었다.
어젯밤에는 윗집 용달이가 찾아와 술을 먹고 갔다. 용달이 막내아들 손자가 홍역을 앓아서 병원에 보내고 술이 생각나 왔다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어김없이 새벽 네 시에 눈을 떴다. 뭘 팔고 돈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만원 지폐 한 장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철제 금고에 있었다. 용달이가 준 돈은 아닌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손님 몇이 왔다 갔다 했는데 만 원 지폐 달랑 한 장만 있을 턱이 없었다. 거스르고 받고 한 돈이 만 원이겠거니 하며 금고를 찰그랑땡 소리 나게 닫았다.
“지 손주 아픈데 왜 내 술을 마신 거여.”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들어 씽크대로 가며 궁얼거렸다. 손자 걱정은 핑계고 산업단지가 확정이 됐는데 보상금은 일체 없고 대신에 환경보호차원에서 무슨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선다고 밤새 떠들고 갔던 기억이 떠올라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컵에 신경질적으로 받았다. 미적지근한 물이 목구멍에서 장까지 뜨끈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 마셔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이것도 이제 끓여 마셔야 되는가 싶은 생각에 컵에 받은 물을 새삼 바라봤다. 물을 싱크대에 버리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날계란 하나를 꺼내 쪽쪽 빨아먹었다. 서춘구는 마트가 들어선다는 정확한 얘기도 없었고, 산업단지가 다 조성되기까지는 앞으로 오 년은 있어야 되는데, 그때까지 살아있으란 법도 없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칫솔질 안하고 틀니를 다시 끼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명숙은 지난번에 왔을 때 산업단지가 확정이 되면 꼭 모셔가겠다고 다짐을 하고 돌아갔다. 김 서방 눈치 볼 것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 땅 설은 서울에서 사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사는 게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늙은 홀아비 혼자 가게 보면서 고추장, 된장에 밥 먹는다고 사람들이 자식을 욕할 것 같기도 했다. 어쩐다. 서춘구는 매일 새벽이면 똑같은 고민을 수 십 번 해도 답을 얻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아직 ‘고향은 지금’은 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노래자랑 겸 동내 홍보를 한다고 방송국에서 취재진들이 온다고 했다. 부녀회에서나 청년부에서는 돈을 걷어 마을회관에다 손님 맞을 음식 준비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떠들썩했다. 산업단지 쪽에서도 돈을 좀 낸 모양이었다. 용달이는 노래자랑서 타향살이를 부른다고 어제저녁에 다섯 번도 더 불렀다. 딱히 노래자랑에 나가는 것보다 자식들에게 한마디 하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기에 남모르게 서춘구도 노래를 연습했다. 예전에는 노래 한 자락 뽑았던 실력이라 눈을 지그시 감고 두만강을 불러보았다. 예선에 붙어야 선별해서 방송에 나간다고 했다. 체면에 대놓고 연습은 못하겠고, 날계란을 지성스럽게 먹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노래연습보다는 명숙에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영미 몸 건강히 잘 지내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딸이 아버지를 안 모시는 게 아니라, 자신이 혼자 살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남들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누라는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늙으니 자식들 옆에 끼고 손자들 커가는 모습 보면서 사는 게 소원이 돼버렸다. 딸자식 하나 낳고 일찍부터 시집보내 그런지 자식 키우는 기쁨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용달이는 아들만 셋을 둬서 큰 아들은 같이 살면서 이장하고, 둘째 아들은 서울서 장사를 해 잘산다고 했다. 막내아들은 지척에 살면서 자주 오고가며 손자들이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을 보고 살았다. 다른 게 복이 아니었다. 마누라가 살았을 적엔 종친회다, 친목회다 어울려 다니며 술도 마시고 농사 얘기며, 시국 얘기에 마을회관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런 게 재미였다면 재미였을 것이다. 가게를 하니 빼도, 박도 못하고 꼼짝없이 가게에 붙박혀서 세월을 좀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칠십 넘은 나이에 자신이 이런 마음인데 오십 갓 넘어 가게를 시작했던 마누라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챙피해하지 마소.”
마누라에게 길게도 말하지 못한 마지막 말이었다. 마지막 말일 줄 알았으면 따뜻이 ‘괜찮다고, 당신이 살아만 있어도 좋다’고 한마디만 말해 줄 것을 지난 후에야 서춘구는 후회했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누라는 떠나기 전날 유난히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운 없어하면서도 쉬었다 말하기를 반복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이야기를 해 본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가물가물 거리는 옛 이야기를 했었다. 서춘구는 듣다가 잠이 들어 마지막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더 유심히 들어 둘 것을 후회가 되었다. 마누라 말 중에서 서춘구는 보고 싶다는 말만 생각이 났다. 마누라가 뭘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지 말한 것도 같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들판과 댕기머리와 쪽두리였던가…
“보고 잡으요. 갈 날이 다 되어 그런가. 요즘엔 보고 잡은 사람이 자꾸 생각 난당께. 소실 적에 친정동네에 흐드러지게 피던 진달래도 보고 잡고, 삼삼오오 또래들과 나물 캐던 것도 가물거리고. 지금은 뭘 하는지 고것들의 이름이 뭐였는지 면상은 생각도 안나지만 드라마 연속극마냥 댕기머리 땋고 물동이던 모습만은 어렴풋해라. 시집올 때 쪽두리 올리던 것도, 명숙이년 낳았던 것도 생각나고라. 우리 아들. 고것만 생각하믄 가슴이 미어져라. 고것이 혹여 영미로 태어났을랑가. 영미 보고 있으면 아들이 살아 온 것 맨키로 좋더만. 엄니도 그랬다고 하더만요. 영미년은 연락도 없고. 보고 잡구만. 제일 보고 잡은 게 엄니요. 엄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도 죽은거 맨키로 힘이 쭉 빠지고 살 낙이 없어라. 난 엄니땜시 살았는 갑소. 당신이 서운해 할랑가 모르겄지만서도. 남정네는 모를 것이요. 엄니가 딸만 있다고 소박 안 치고 나 데불고 산 것을. 제삿때마다 사촌들이 음식하면서 어디서 씨하란 소릴 많이 들었당께. 그때마당 엄니가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냅다 소릴 질러서 혼냈당께. 당신은 모를 것이여. 남정네들이란 모르는 것이 많은께. 엄니가 날 데불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엄니를 쫓아가는 것이여. 나야 엄니 쫓아가면 되지만 영감 혼자 있어야할 남은 세월이 걱정되야 내가 어찌 갈랑가 모르겄소. 그래도 영감은 엄니 제삿밥 올려야할 사람이요. 날랑은 엄니 동무하고, 영감일랑은 제사상 차리고 모시고… 엄니가 참말로 보고 잡소. 얼렁 나도 쫓아가야 한당께. 더 멀리 가기 전에…….”
잠에서 깨보니 전화벨 소리가 텔레비전 소리에 뭍혀 따르릉 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텔레비전만 혼자서 시끄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전화를 받았다.
“어. 영미냐? 응. 밥 묵었다. 산사람은 어떡하든 살아지는 거이다. 괜찮다. 다 살기 폭폭해서 그런 것이제. 너도 결혼했으니 알 거시다. 니가 보내준 꿀 받았다. 비쌀틴디 뭐 그런 걸 다 보냈다냐. 시집 보낸께 서운해서 그런 것이여. 니 애미를 이해하고 그래야 하는 거시다이. 알것냐? 전화해줘서 고맙다. 그게 아니다. 그래도 살아서 챙겨주고 그런 것이 살아있는 정이니라. 손주라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고. 니 할미가 그랬어야. 니가 제일 보구 잡다고. 니 결혼은 꼭 보고 잡아했니라. 니도 알지야? 잘 살아야 쓴다이. 고맙다.”
전화 속이라 무장 안들렸다. 영미가 뭐라 했는지는 모르지만 서춘구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산업단지가 조성되든 마트가 들어서든 서춘구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영미의 안부전화를 받고, 명숙이가 찾아와 주고, 용달이가 외상을 먹고, 꼬마 손님들이 탱크 보이를 먹는 한 서춘구는 가게를 떠날 수 없었다.
아침부터 푹푹 찌기 시작하는지 부채도 소용이 없었다. 등으로 땀이 방울져 흐르는 것 같아 농협광고가 붙은 십년 된 부채를 들고 정자로 나왔다. 오른쪽 무릎을 세워 오른쪽 팔꿈치를 대고 부채를 부치며 만물상회 간판을 보았다. 낡은 것이 정감있게 보였다. 간판을 동여맨 철사 줄이 녹슬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해 보였다. 내일모레 병섭이가 오면 철사를 사다 다시 매달아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시큰하던 무릎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벼워 벌떡 일어났다. 서춘구는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있나 싶어 두만강을 콧노래로 부르며 냉장고로 걸어갔다.
첫댓글정감있으면서도 심도가 깊군요. 보일듯 말듯한 서춘구의 감정도 은근히 묻어 있고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단 마누라 라고 나오는 분에 대한 애뜻함이랄까요. 그런 것이 조금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같이 살아 놓고 장례식도 다 치룬 할아버지 케릭터가 가지는 감정이
가게 일을 하면서 마누라가 없는 허전함에 대해 거의 없이 '마누라가 이걸 어찌 했을꼬' 라는 안타까움만 나타난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마누라의 관계가 조금 더 정감적이었다면 시어머니가 죽고 마누라가 죽은 것에 대해 연결고리가 컸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온 것은 마누라가 시어머니에게 가지는 고마움
의 사건이 단 하나 씨내리를 해보란 다른 사람들의 말에 무지 화냈다 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뒤로 돌아 '괜찮다 아들래미 나아봤자 고생이다' 이런 소리라도 해줬다거나 몰래 마누라에게 문 바꾸라고 돈을 줬다거나(문좀 바꾸라고 하다가 서춘구 케릭터와 마누라가 다 있는 자리에서 주었지요.)한다는 것이 부각
첫댓글 정감있으면서도 심도가 깊군요. 보일듯 말듯한 서춘구의 감정도 은근히 묻어 있고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단 마누라 라고 나오는 분에 대한 애뜻함이랄까요. 그런 것이 조금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같이 살아 놓고 장례식도 다 치룬 할아버지 케릭터가 가지는 감정이
가게 일을 하면서 마누라가 없는 허전함에 대해 거의 없이 '마누라가 이걸 어찌 했을꼬' 라는 안타까움만 나타난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마누라의 관계가 조금 더 정감적이었다면 시어머니가 죽고 마누라가 죽은 것에 대해 연결고리가 컸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온 것은 마누라가 시어머니에게 가지는 고마움
의 사건이 단 하나 씨내리를 해보란 다른 사람들의 말에 무지 화냈다 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뒤로 돌아 '괜찮다 아들래미 나아봤자 고생이다' 이런 소리라도 해줬다거나 몰래 마누라에게 문 바꾸라고 돈을 줬다거나(문좀 바꾸라고 하다가 서춘구 케릭터와 마누라가 다 있는 자리에서 주었지요.)한다는 것이 부각
된다면 연결고리라는 것이 더 촘촘해 질 것 같습니다.
매우 훌륭하네요. 요즘 소설을 거의 읽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문체와 구성, 감각 어느 하나 크게 빠지는 건 없군요. 마지막 「마누라」의 「보고잡으요~」 부분에서는 조금 눈시울도 붉어졌다는. 살면서 늘어나는 것은 8할이 추억과 후회였던가 싶은 생각도 약간.
이렇게 재밌는 작품을 지금 읽었네요~ 잠시나마 서춘구라는 인물에 동화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