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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率獸食人(솔수식인) / 率(거느릴솔) 獸(짐승 수) 食(먹을 식) 人(사람 인)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의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는 그에게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이 칼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양혜왕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라는 맹자의 물음에 양혜왕이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말을 계속
하였다.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 먹이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不免於率獸而食人) 백성의 부모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率獸食人이란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이 주석직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당장 먹을 식량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쩍 마른 인민들의 살찐 어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백성들을 잡아먹는 것 뿐 이리라.
156 分道揚 (분도양표) / 分(나눌 분) 道(길 도) 揚(오를 양) (재갈 표)
취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을 감 을 뜻한다.
북사(北史) 하간공제전(河間公齊傳)의 이야기. 남북조의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다스리던 시기, 원지(元志)라는 사람이 도읍인 낙양의 경조윤(京兆尹)을 맡고 있었다. 원지는 뛰어난 문재(文才)와 능숙한 일처리, 그리고 황제의 목숨을 구했던 그의 부친 덕분에, 효문제의 깊은 총애를 받으며, 조정 관리들을 무시하였다.
한번은, 원지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조정의 어사중위(御史中尉)인 이표(李彪)를 만나게 되었다. 원지는 관직으로 보아 마땅히 이표에게 길을 양보하여야 했으나, 오히려 그를 얕보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이 일을 효문제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난처해진 효문제는 그들의 시비에 말리고 싶지 않아서 낙양은 과인의 도읍이니, 마땅히 길을 나누어서 수레를 몰아야 하오(應分路揚 ). 이제부터 길을 달리하여 다니도록 하시오. 라고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分道揚이란 취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을 감 을 뜻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신한국당의 분란(紛亂). 역시 취향이 다른 구성원들의 갈 길은 이것뿐이리.
157 犬牙相錯(견아상착) / 犬(개 견) 牙(어금니 아) 相(서로 상) 錯(섞일 착)
많은 요인들이 얽혀 상황이 복잡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이야기.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건국 후, 각지의 이성(異姓) 제후(諸侯)들을 제거하고 같은 성씨(姓氏)의 인물들을 왕후로 봉하였다. 그러나 3번째 군주인 경제(景帝) 때에는 각 지역의 동성 제후들이 증대된 세력을 믿고 조정에 대항하며 제위를 다투었다.
오왕(吳王) 유비(劉 )의 반란이 평정된 후, 경제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봉하였다. 한무제가 제위를 계승한 후, 조정 대신들은 이러한 왕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며, 그들을 제거하도록 무제에게 건의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왕후들은 크게 노하여 우리는 모두 황실의 골육지친으로서 선왕께서 땅을 주시어 마치 개의 이빨처럼 서로 얽혀있으며(犬牙相交錯), 서로 도와 도읍을 지키며 종실을 반석처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를 무고하다니,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들 중 중산정왕은 무제의 앞에서 대성통곡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한무제는 그들을 위로하면서도, 비밀리에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였다. 犬牙相錯이란 많은 요인들이 얽혀 상황이 복잡함 을 비유한 말이다.
158 守株待 (수주대토) / 守(지킬 수) 株(그루 주) 待(기다릴 대) (토끼 토)
변통을 모르거나 노력 없이 요행만을 기대함 을 비유한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 )편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송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급히 달려오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는 게 아닌가. 이 농부는 토끼를 거저줍게 되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날 이후, 농부는 쟁기를 풀어 놓고 하루 종일 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다시 토끼가 달려와 나무에 부딪혀 죽기만을 기다렸다(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 하지만 몇 날이 지나도록 나무에 부딪혀 죽는 토끼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가 농사를 지었던 땅은 황폐해졌고, 나라 안의 사람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株 란 본시 나무의 그루터기를 뜻하지만, 지금은 증권시장의 핵심이 되었다. 홍콩, 동경, 뉴욕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주가(株價)가 폭락하고 있다. 나무와 기업 밑둥인 株(?) 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횡재를 꿈꾸었던 일부 투자가들은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그저 수주(守株)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守株待 (trust to chance and windfalls)란 변통을 모르거나 노력 없이 요행만을 기대함을 비유한 말이다.
160 四分五裂(사분오열) / 四(넉 사) 分(나눌 분) 五(다섯 오) 裂(찢을 열)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짐 을 뜻한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 전국시대,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衛) 진(秦) 등 7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 진나라는 상앙(商 )의 변법(變法)을 시행하여 국력이 증강되자 천하를 통일하고자 빈번히 주변 나라들을 침공하였다. 이에 6국은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으로 진나라의 계획을 저지하려하였으나, 진나라는 장의(張儀)의 연횡책(連橫策)을 채용하고 그를 재상(宰相)으로 임명하여 6국을 돌며 유세하도록 하였다. 장의는 먼저 위(魏)나라 왕을 설득하였다.
위나라는 남으로 초나라에, 동으로는 제나라, 서쪽으로는 한(韓)나라, 북으로는 조나라와 접해 있습니다. 만약 주위의 나라들과 관계가 나빠져서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사방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위나라는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사분오열될 것이니, 차리리 진나라에 의지하여 보장 받는 게 나을 것입니다.
장의는 6국에서 이해와 유혹, 협박 등으로 그들의 합종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다. 四分五裂이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짐 을 뜻한다. 신한국당의 한 의원이 탈당하였다. 드디어 사분오열의 막이 오른 것이다.
161 予取先與(여취선여) / 予(나 여) 取(취할 취) 先(먼저 선) 與(줄 여)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을 뜻한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 진(晋)나라에 지백(知伯)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귀족인 위환자(魏桓子)에게 영토를 강요하였다. 위환자는 후에 위나라의 선조(先祖)가 된 사람인데, 그도 당시에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차지하려 하였으므로, 지백의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에 임장(任章)이라는 사람이 위환자에게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떼어 주도록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백에게 땅을 떼어준다면, 지백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자만하여 적을 얕보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도 이러한 피해를 입게 될까봐 단결하여 공동으로 지백을 상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백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주서(周書)에서는 상대를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키워주고,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게 미리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故予之) 라고 했습니다.
위환자는 임장의 말대로 하였다. 지백은 과연 교만과 횡포, 그리고 탐욕 때문에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불렀다. 予取先與란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을 뜻하며, 사회생활의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162 鶴立鷄 (학립계군) / 鶴(학 학) 立(설 립) 鷄(닭 계) (무리 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 康)의 아들 혜연조( 延祖)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延祖卓卓如野鶴之在鷄 ). 鶴立鷄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정신없는 정치판과 경제판을 장악할 인물이 나타난다면, 바로 그는 한 마리의 학이 되는 것이다.
163 舟中敵國(주중적국) / 舟(배 주) 中(가운데 중) 敵(원수 적) 國(나라 국)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 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위(魏)나라 장군인 오기(吳起)는 문후가 죽자 그의 아들인 무후(武侯)를 계속 섬기게 되었다. 어느 날, 무후가 서하(西河)에 배를 타고 가다 중간쯤에 이르자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라고 했다.
그러자 오기는 이처럼 대답하였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 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彭 湖)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난함에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우리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 을 비유한 말이다. 대통령과 총재의 대립, 그리고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좌초된 신한국호. 이제는 배 안에 적들이 가득한 유령선(?)으로 변할 판이다.
164 竭澤而漁(갈택이어) / 竭(다할 갈) 澤(못 택) 而(말 이을 이) 漁(고기 잡을 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꾀함 을 비유한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 문공(文公)은 기원전 632년, 성복(城 )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당시 진나라는 병력이 열세였으므로,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호언(狐偃)이라는 자가 속임수를 써보자는 의견을 냈다.
진문공은 호언의 계책을 옹계(雍季)에게 알려주며, 그의 견해를 물었다. 옹계도 하는 수없이 동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연못의 물을 말려서 고기를 잡고, 숲을 태워서 사냥을 한다면 못잡을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듬해에는 잡을 고기나 짐승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이는 계책도 이러합니다. 비록 어쩌다 한번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계책이 아닙니다.
내신 성적에 집착한 나머지 시험 문제 유출과 집단 부정행위 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일선 학교나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만, 2-3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교육 정책의 책임이 더 크다. 인성교육을 외치면서도, 사실은 막고 품으면(?) 올라가는 점수에 더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竭澤而漁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꾀함 을 비유한 말이다.
165 一枕黃粱(일침황량) / 一(한 일) 枕(베개 침) 黃(누를 황) 粱(기장 량)
환상적이고 허황된 일 을 비유하기도 한다.
당(唐)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노생(盧生)이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만난 여옹(呂翁)이라는 도사에게 고단한 처지를 이야기했다. 도사는 그에게 베개 하나를 꺼내주면서 그걸 베고 자보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여관 주인은 기장을 삶고 있었다. 노생은 잠이 들자 곧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노생은 부잣집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하여, 재상(宰相)이 되었다가, 다시 조국공(趙國公)에 봉하여졌다. 노생은 여든이 넘도록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꿈에서 깨어난 노생은 여관 주인이 아직도 기장을 삶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곁에서 이를 보고 있던 도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생이란 본시 이런 것이오. 라고 말했다.
취업과 수능을 앞두고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장원급제 셔츠에 도깨비나 부적이 그려진 팬티, 족집게 점쟁이, 사주관상 등등.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노력이지, 부질없는 짓에 혼(?)을 뺄 일이 아니다. 一枕黃粱이란 황량일몽(黃粱一夢)이고도 한다. 이는 본시 부귀의 무상함 을 뜻하지만, 지금은 환상적이고 허황된 일을 비유하기도 한다.
166 中原逐鹿(중원축록) / 中(가운데 중) 原(근원 원) 逐(쫓을 축) 鹿(사슴 록)
치열한 정권 쟁탈을 비유한 말이다.
한서(漢書) 괴오강식부( 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 通)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 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이합집산이 진행중인 정치권. 각종 비밀병기로 무장한 각 문파(門派)의 고수(?)들이 한 마리의 사슴을 놓고 중원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中原逐鹿이란 치열한 정권 쟁탈을 비유한 말이다.
167 己飢己溺(기기기익) / 己(자기 기) 飢(굶주릴 기) 溺(물에 빠질 닉)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먼 옛날 대홍수(大洪水)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요(堯)임금은 곤( )에게 치수(治水)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가 없자, 요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舜)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이 일을 맡겼는데, 우는 13년후 치수에 성공하였다. 또한 직(稷)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농업을 좋아하여 항상 곡식의 종자를 모아 땅에 심었다. 후에는 간단한 농기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전국(戰國)시대, 맹자(孟子)는 우와 직을 칭송하여 우는 천하의 사람들이 물속에 빠진 것을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직은 천하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고통을 받게 되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굶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餓者, 由己餓之也) 라고 말했다. 이는 맹자(孟子) 이루상(離樓上)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己飢己溺은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라고도 하며, 지금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68 喪心病狂(상심병광) / 喪(죽을 상) 心(마음 심) 病(병 병) 狂(미칠 광)
이성을 잃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사(宋史) 범여규(范如圭)전의 이야기. 송나라 때, 비서성(秘書省)의 관리인 범여규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금(金)나라의 남침에 사람들은 항전을 주장하였으나, 대신(大臣) 진회(秦檜)는 투항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나라의 사신(使臣)이 송나라에 오게 되었는데, 그들을 묵게 할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진회는 그들을 비서성에 묵게 하려고 했다.
범여규는 이 사실을 알고 극력 반대하였다. 범여규는 재상인 조정(趙鼎)에게 기밀상 중요한 비서성에 어떻게 적국의 사신들을 묵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송나라에 도착한 금나라 사신들은 그 언행이 오만하여 송나라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범여규는 진회에게 글을 써서 그의 편견과 굴욕적 행동을 비난하였다. 이성을 잃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일할 수 있겠소(公不喪心病狂, 奈何爲此)? 라며. 喪心病狂 이란 이성을 잃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독도의 접안 시설이 완공되자 일본 관리들이 다시 망언을 하였다. 남의 집수리에 자기네가 신경 쓸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독도에 망언치료전문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169 佛頭著糞(불두저분) / 佛(부처 불) 頭(머리 두) 著(붙을 저) 糞(똥 분)
경멸이나 모욕을 당함을 비유한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여회선사(如會禪師)편의 이야기. 송(宋)나라 때, 최(崔)씨 성을 가진 한 사나이가 하루는 절에 갔다가, 참새들이 불상의 머리에 똥 싸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鳥雀于佛頭上放糞). 그는 절의 주지가 너무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화를 내며 주지에게 말했다.
이런 참새들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소? 주지는 이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대답했다. 물론 있지요. 최씨 사나이는 주지의 이런 대답을 듣고, 그가 어떤 식으로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여 다시 질문을 하였다.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떻게 부처의 머리에 똥을 쌀 수 있겠소? 주지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참새가 불상에 똥을 싼 것은 바로 부처가 자비하여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새들이 수리의 머리에 가서 똥을 싸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나이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佛頭著糞이란 경멸이나 모욕을 당함을 비유한 말이다. 비방과 폭로가 난무하는 대선 정국. 머리에 새똥 맞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신당지원설로 내쫓기듯 탈당한 대통령의 머리에는 엄청난 양이 쏟아졌다.
170 呑棗(홀륜탄조) / (온전할 홀) (완전할 륜) 呑(삼킬 탄) 棗(대추 조)
꼼꼼하게 이해하지 않고 뭉뚱그려 넘어감을 비유한 말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論語) 16편에는 도리란 조리가 분명한 일이지 뭉뚱그린 것이 아니다(不是 一物) 라는 말이 있다.
옛날, 한의원이 사람들에게 배를 생으로 먹으면 치아에는 좋지만 비장(脾臟)에는 좋지 않고, 반대로 대추는 비장에는 좋지만 치아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스스로 총명하다는 한 사나이가 이 말을 듣고, 의원에게 말을 하였다.
저에게 배와 대추의 좋은 점만을 취하고, 그것들의 나쁜 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의원은 이제껏 이런 방법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에 찬 말투로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 사나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배를 먹을 때는 씹기만 하고 삼키지는 않으며, 대추를 먹을 때는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呑棗란 꼼꼼하게 이해하지 않고 뭉뚱그려 넘어감을 비유한 말이다. TV토론회에 나온 대선 후보들. 어려운 질문은 대추를 통째로 삼키듯 답변했다. 문제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그들의 기본 자질이다. 통째로 삼키려다 목에 걸리면 대통령이고 뭐고 끝나게 된다.
171 羊頭狗肉(양두구육) / 羊(양 양) 頭(머리 두) 狗(개 구) 肉(고기 육)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의 이야기.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어리석고 무능한 국왕이었다. 그는 궁안의 여자들로 하여금 남장(男裝)을 하게하고, 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궁궐 밖의 여자들도 이 소문을 듣고 남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경공은 이 사실을 알고 관리를 보내 이러한 유행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승상(丞相)인 안영(晏 )에게 그 까닭을 묻자, 안영은 이처럼 대답하였다. 궁안에서는 여자들에게 남장을 시키면서 궁밖에서는 이를 금지시키시는데, 이는 마치 문에다 소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猶懸牛首于門而 賣馬肉于內也). 만약 왕께서 궁안의 남장을 금지시키신다면, 궁밖의 여자들도 남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시 소머리와 말고기였던 것이 후에는 양머리(羊頭)와 개고기(狗肉)로 바뀌었다. 羊頭狗肉이란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며, 영어로는 Cry up wine and sell vinegar(포도주 대신 식초 팔기)라고 한다. 가짜 한우고기와 가짜 양주 판매업자, 그리고 풀려난 권력형 비리관련자들. 이들은 모두 개(?) 수준이다.
172 怒髮衝冠(노발충관) / 怒(성낼 노) 髮(터럭 발) 衝(찌를 충) 冠(갓 관)
분노가 극에 달함을 묘사한 말이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유명한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수중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소양왕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 한 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온 인상여는 소양왕이 15성과 화씨벽을 교환하려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소양왕을 속여 다시 화씨벽을 돌려 받았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손에 넣자마자 궁전의 기둥에다 깨뜨려버릴 기세로 나섰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의 머리털은 관을 밀어 올릴 정도였다(怒髮上衝冠). 이렇듯 怒髮衝冠이란 분노가 극에 달함을 묘사한 말이다.
특정 후보 지원설 등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노발대발하였다. 폭로 당사자들을 고발하는 한편, 대통령은 신한국당은 탈당하였다. 정말 열(?)을 받긴 받았던 모양이다.
173 風雨同舟(풍우동주) / 風(바람 풍) 雨(비 우) 同(같을 동) 舟(배 주)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도 한다. 이는 원수 같은 사람들이 공동의 난관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합심함을 비유한 말이다.
손자(孫子) 구지(九地)편에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미워하나, 배를 같이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구함이 좌우의 손과 같다(當其同舟而濟, 遇風, 其相救也) 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중국의 남쪽에 오(吳)와 월(越)이라는 두 개의 제후국이 있었다. 두 나라는 영토가 인접하고 산수(山水)가 서로 이어져 있었지만, 항상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양국 백성들은 서로 원수 대하듯 하였다.
이러한 양국 관계 때문에, 백성들은 서로 마주 치기라도 하면 가볍게는 말다툼이나 욕지거리, 심하게는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였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는데, 마침 폭풍우가 몰아쳤다. 두 나라 사람들은 합심협력하여 난관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고,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도왔던 것이다.
風雨同舟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도 한다. 이는 원수 같은 사람들이 공동의 난관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합심함을 비유한 말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권. 급한 김에 합당(合黨)이라는 조각배에 올라 탓지만, 풍랑이 가라앉은 다음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174 餘桃啖君(여도담군) / 餘(남을 여) 桃(복숭아 도) 啖(먹을 담) 君(임금 군)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가 늘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彌子瑕)는 어느 날 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몰래 국왕 전용 수레를 타고 황궁을 빠져 나왔다. 당시 위나라의 법에는 함부로 국왕의 수레를 탄 사람은 발목을 자르는 월형( 刑)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지극한 효성이라며 칭찬하였다.
그 후, 어느 날 미자하는 국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가, 먹다만 복숭아 반쪽을 국왕에게 건넸다. 국왕은 반쪽 복숭아를 먹으면서도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이 맛을 참고 나에게 먹도록 해주다니. 라고 칭찬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국왕은 미자하의 모든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미자하가 죄를 범하게 되자, 국왕은 그녀를 꾸짖었다.
이 천한 것아!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지난 날 국왕의 명이라면서 과인의 수레를 훔쳐타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감히 나에게 먹이다니. 餘桃啖君이란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가 늘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175 吳牛喘月(오우천월) / 吳(오나라 오) 牛(소 우) 喘(헐떡거릴 천) 月(달 월)
지레짐작으로 공연한 일에 겁을 내고 걱정함을 비유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편의 이야기. 서진(西晉) 초, 진나라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의 상서령(尙書令)으로 만분(滿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만분이 진무제를 알현하러 갔을 때, 진무제는 그에게 북쪽 창 옆에 앉도록 하였다. 그 쪽 창문에는 종이 대신 투명한 유리 병풍이 놓여 있었다. 바람을 두려워하는 만분은 이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그 창가에 앉기를 꺼려했다. 진무제가 이를 보고 웃자, 만분은 얼른 창 가에 가서 앉으며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
남쪽 오(吳)나라의 물소들은 더위를 매우 싫어하여, 여름이 되면 물속에 들어가 놀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쩌다 밤에 밝은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태양인줄 알고 곧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저도 오나라의 소가 달 보고 숨을 헐떡이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吳牛喘月이란 지레짐작으로 공연한 일에 겁을 내고 걱정함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걱정스런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건강의 적(敵). 희망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176 脫穎而出(탈영이출) / 脫(벗을 탈) 穎(이삭 영) 而(말 이을 이) 出(날 출)
모든 재능이 완전하게 드러남 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우경(平原君虞卿)열전의 이야기. 전국시기,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 모수(毛遂)는 3년여를 묵으면서, 이제껏 어떠한 재능을 발휘해 본적이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의 공격으로 조(趙)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평원군은 효왕(孝王)의 명으로 초(楚)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가게 되었다.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모수가 나서서, 초나라까지 수행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모수는 군께서 저에게 좀더 일찍 기회를 주셨더라면, 저의 모든 재능이 일찍 드러났을 것입니다(乃穎脫而出). 라고 했다.
이에 평원군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초나라로 떠났다. 평원군은 초왕과의 협상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때, 모수가 한 손에는 칼을 뽑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초왕의 옷깃을 잡은채, 초왕을 설복시켜 동의를 얻어 내게 되었다.
脫穎而出이란 모든 재능이 완전하게 드러남 을 비유한 말이다. 오늘 80여만
명의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들의 재능과 실력이 충분히 발휘되었
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177 酒酸不 (주산불수) / 酒(술 주) 酸(실 산) 不(아닐 불) (팔 수)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도 않고 손님에게도 매우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술집임을 알리는 깃발까지 높이 세워 두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서 언제나 쉬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양천(楊 )이라는 유식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의 답은 이러했다. 바로 당신 집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오. 장씨는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양천이라는 노인은 다시 설명하였다. 사나운 개가 술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고, 특히 아이들이 술심부름을 왔다가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감히 술을 사러 오겠소? 그러니 술이 시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酒酸不이란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금융시장과 정치권에서 술 썩은 냄새가 난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나서서 책임지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술장사는 술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개를 없애고 손님을 맞아야 하는 법인데도 말이다.
178 方 圓鑿(방예원조) / 方(모 방) (자루 예) 圓(둥글 원) 鑿(구멍 조)
양자가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전국시기, 진(秦)나라는 장의(張儀)의 연횡책 을 채용하여 소진(蘇秦)의 합종책으로 대항하는 6국을 상대하였다.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진나라는 빈번하게 6국을 침범하고 남쪽 대국인 초(楚)나라에 위협을 가하였다.
초나라 회왕(懷王) 때, 굴원(屈原)은 동쪽의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의 공격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초회왕의 어린 자식과 총희 등이 방해하였다. 결국 굴원은 관직마저 박탈당한 채 멀리 유배당하게 되었다.
굴원의 제자인 송옥(宋玉)은 스승에게 닥친 이러한 일에 대해 비분(悲憤)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송옥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구변(九辯) 이라는 시로 그려냈는데, 이 시 중에는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圓鑿而方 兮) 라는 대목이 있다. 이 표현은 굴원의 원대한 정치적 이상이 간신배들의 어두운 눈과 달라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方 圓鑿 또는 圓鑿方는 양자가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막판 세 불리기에 열중인 각 당(黨). 질(質)보다 양(量)에 치중한 탓인지, 둥근 사람을 네모난 곳에 앉히고, 네모난 사람을 둥근 자리에 쑤셔 넣으려고 들 하는 것 같다.
179 人面桃花(인면도화) / 人(사람 인) 面(낯 면) 桃(복숭아 도) 花(꽃 화)
한눈에 반한 뒤, 다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는 여인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 맹계(孟棨)의 정감(情感) 이라는 시에 얽힌 이야기. 당나라 때, 최호(崔護)라는 매우 잘 생긴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해 청명(淸明)이던 날, 그는 혼자서 장안(長安)을 여행하다 성(城)의 남쪽에 이르렀다.
그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에 집 한 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을 얻어 마시기 위해 대문을 두드렸다. 한 여인이 나와서 그에게 물 한 잔을 주었다.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 아래에 선 여인은 마치 복숭아꽃 같았다. 최호와 그 여인은 상대의 뛰어난 모습과 아름다운 자태에 서로 반하였다.
이듬해 같은 날, 최호는 다시 그 곳에 가서 그 여인을 찾았다. 집과 담은 옛모습 그대로였지만, 문은 이미 굳게 잠긴채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에 최호는 시 한 수를 지어 사모하는 마음을 달랬으니...
지난해 오늘 이 문안엔, 고운 얼굴 복숭화꽃 서로 붉게 비추었지(人面桃花相暎紅). 고운 그 얼굴은 어디 가고, 복숭아꽃만 봄바람에 웃고 있네.
人面桃花란 한눈에 반한 뒤, 다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는 여인을 비유한 말이다.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마지막 가는 가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들이다.
180 內憂外患(내우외환) / 內(안 내) 憂(근심할 우) 外(밖 외) 患(근심 환)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어렵고 걱정스러운 사태를 뜻한다.
관자(管子) 계(戒)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음식을 들지도 않으며 외전(外殿)에서 지내고 있었다. 궁녀들을 관장하는 여관(女官)이 궁녀들에게 임금이 곧 거동하실거라며 외전에 나가서 임금을 모시도록 지시하였다. 궁녀들이 모시겠다고 몰려오자, 환공은 화를 내며 내가 곧 거동하리라는 소리를 누가 하더냐? 라고 물었다.
궁녀들의 말을 들은 환공이 곧 여관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여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임금께서 내우(內憂)가 있거나 외환(外患)이 있으면 외전에서 주무시고 음식을 들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임금께서 외전에서 지내시는 것은 다른 내우는 없으나, 필시 외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非有內憂, 必有外患). 그래서 저는 임금께서 곧 거동하시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낸 여관에게 환공은 감동하였다. 內憂外患이란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어렵고 걱정스러운 사태를 뜻한다. 안으로는 표류하는 국정(國政), 밖으로는 치솟는 달러화. 바로 외환(外換)이 외환(外患)인 것이다.
181 功虧一 (공휴일궤) / 功(공 공) 虧(이지러질 휴) 一(한 일) (삼태기 궤)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함을 비유한 말이다.
상서(尙書) 주서(周書)의 여오(旅獒)에 나오는 기록이다. 주(周)나라가 상(商)나라를 물리치자, 서쪽에 살던 여족(旅族)들이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獒(오) 라는 큰 개를 공물로 바쳐왔다. 이때 태보(太保)였던 소공(召公)은 여오(旅獒) 라는 글을 지었다. 그는 이 글에서 오랑캐들이 바친 개 같은 공물은 임금의 위신과 관련이 있으므로 받지 말기를 충고했다.
개나 말은 그 풍토에 맞지 않으면 기르지 마십시오.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부지런하지 않음이 있게 하지 마십시오. 자질구레한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니,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음에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면 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爲山九 , 功虧一 ). 진정 이렇게 산다면 백성들은 사는 곳을 보전할 수 있고, 당신은 대대로 임금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功虧一 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함을 비유한 말이다. 세계화의 구호 아래 국민 소득 1만 불을 환호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폭등하는 환율 덕분에 늘어나도 시원찮을 소득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불과 선진국을 향한 꿈이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182 債臺高築(채대고축) / 債(빚 채) 臺(돈대 대) 高(높을 고) 築(쌓을 축)
빚이 너무 많아 갚을 방법이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한서(漢書)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의 이야기. 전국시대, 주(周)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난왕(周 王)은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명목상 군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각 제후들은 그의 통치에 따르지 않았다. 그들 중 진(秦)나라는 국력이 강해지자 자주 다른 나라를 침공하였으며, 초(楚)나라 효열왕(孝烈王)은 각국과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그는 주나라의 난왕에게 진나라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주난왕은 전쟁이 끝나면 이자까지 갚겠다고 설득하며 부호(富豪)들에게서 돈을 빌려 출전(出戰)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자, 돈을 빌려줬던 부호들이 궁으로 몰려와 난왕에게 빚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소란스런 소리가 궁궐 깊은 곳까지 들려왔다. 주난왕은 빚쟁이들을 피해, 하루 종일 궁 안의 높은 누대에 숨어서 근심과 두려움으로 지냈다(有逃債之臺). 債臺高築이란 빚이 너무 많아 갚을 방법이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외채(外債)도 채 갚지 못한 판국에 다시 IMF의 급전(急錢)을 꾸어 쓰게 되었다. 빚쟁이한테 쫓겨 골방으로 몰리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183 傾箱倒 (경상도협) / 傾(기울 경) 箱(상자 상) 倒(넘어질 도) (상자 협)
가진 것을 모두 다 꺼내놓음을 비유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 鑑)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과 사만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箱倒 )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傾箱倒 이란 가진 것을 모두 다 꺼내놓음을 비유한 말이다. 어려운 나라 살림을 위해 달러 동전이라도 다 내놓아야 할 때이다.
184 叱石成羊(질석성양) / 叱(꾸짖을 질) 石(돌 석) 成(이룰 성) 羊(양 양)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을 치러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세상이 갈수록 답답해진다. 돌맹이를 금덩이로 바꾸는 기술이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
185 妄自尊大(망자존대) / 妄(허망할 망) 自(스스로 자) 尊(높을 존) 大(큰 대)
교만을 부리며 잘난 체 함을 뜻한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의 이야기. 동한(東漢) 초, 유수(劉秀)는 동한을 건국하고 광무제(光武帝)가 되었지만, 전국은 여전히 군웅들이 날뛰는 상태였다. 당시 최대의 세력 중의 하나인 공손술(公孫述)은 사천지방에서 황제가 되었다. 한편 감숙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외효( )는 정치적인 출로(出路)를 찾기 위해, 마원을 공손술에게 보냈다. 마원은 공손술과 동향이었으므로, 그가 자신을 환영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마원은 공손술의 의례적인 접견에 매우 실망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 왔다. 그는 외효에게 말하길 공손술은 진지한 마음으로 인재들을 받아들여 함께 일을 하려고 하기는커녕 스스로 잘난 체 교만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견이 얕은 사람으로서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을 뿐이며, 스스로 잘난 체 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있었습니다(井底蛙耳, 妄自尊大). 우리의 뜻을 동쪽의 유수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妄自尊大란 교만을 부리며 잘난 체 함을 뜻한다. 역대 대선 후보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국정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모두들 妄自尊大했을 뿐이었다.
186 狼狽爲奸(낭패위간) / 狼(이리 랑{낭}) 狽(이리 패) 爲(할 위) 奸(범할 간)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의 이야기. 狼 과 狽 는 모두 이리를 뜻하는 말이만, 狼은 앞 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 이리이고, 狽는 앞 다리가 짧고 뒷 다리가 긴 이리이다. 狼 은 狽 없이 혼자서 일어설 수 없고, 狽는 狼 없이 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狼과 狽는 항상 한 몸이 되다시피 하여 양을 훔치러 다녔으나, 울타리가 높고 단단하면 그들은 그걸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럴 때면 狼 은 狽 의 목에 올라타고 狽는 긴 두 다리를 이용해 일어섰다. 그런 후 狼은 울타리 너머로 긴 앞 다리로 뻗쳐 양을 잡아챘던 것이다.
이리(狼)의 다리는 사실 앞뒤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나 狽는 가공의 동물인 것 같다. 실패나 사고, 또는 아주 난처한 상황 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이는 낭패(狼狽) 라는 말은, 다리의 길이가 다른 두 이리를 묶어 걷게 하면 기우뚱거리며 넘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
유령회사를 차려 4 천억 원에 가까운 돈을 사취한 일당이 적발되었다. 모두들 狼과 狽처럼 서로 손발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던 모양이다. 이렇듯 狼狽爲奸이란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187 酒囊飯袋(주낭반대) / 酒(술 주) 囊(주머니 낭) 飯(밥 반) 袋(자루 대)
1먹고 마실 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 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 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 은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라고 하며 얕보았다.
마시고 노는데 귀한 달러를 뿌리는 일부 졸부들과 유학생들. 그들은 아직도 국가의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밥통에다 술자루같은 존재들이다. 이렇듯 酒囊飯袋 란 먹고 마실 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며, 한마디로 식충이(?)를 뜻한다.
188 鐵杵成針(철저성침) / 鐵(쇠 철) 杵(공이 저) 成(이룰 성) 針(바늘 침)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함을 비유한 말이다.
명(明)나라 진인석(陳仁錫)의 잠확류서(潛確類書)의 이야기. 당(唐)나라의 위대한 시인 이백(李白)은, 어렸을 때 공부를 싫어하고 놀기만을 좋아하였다. 어느 날 어린 이백은 들에서 백발이 성성한 한 노파가 손에 큰 쇠막대를 들고 돌에다 열심히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이백은 그 노파에게 할머니, 지금 무얼하고 계시죠? 라고 물었다. 그 노파는 이백을 쳐다보더니 이걸 갈아서 가는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 라고 말했다.
이백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굵은 쇠막대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어요? 그 노파는 이백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노력만 한다면 쇠막대를 갈아서 틀림없이 바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백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노파의 말은 도리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이백은 노파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곧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렇게 하여 훗날 이백은 대시인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새마을 운동이나 국채보상 운동을 전개하자는 말이 들린다. 이는 어려운 경제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鐵杵成針이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함을 비유한 말이다.
189 衆志成城(중지성성) / 衆(무리 중) 志(뜻 지) 成(이룰 성) 城(성 성)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단결하면 그 역량이 커짐을 비유한 말이다.
국어(國語) 주어(周語)의 이야기.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시장에서 유통되던 소액의 돈을 없애고 고액의 돈을 주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의 원성(怨聲)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2년 후, 경왕은 민간에 남은 동전(銅錢)들을 수집하여 엄청나게 큰 종(鐘)을 만들었다. 경왕은 악관(樂官)을 불러 그 소리가 어떤지 물었다.
악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백성들에게 부담과 재물상의 손해를 주며 종을 만들었으니, 그 소리가 다른 악기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백성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백성들 모두가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옛말에 많은 사람들의 뜻은 견고한 성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말은 쇠를 녹인다(衆心成城, 衆口煉金) 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하신 일은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주나라의 경제 위기. 굳이 따지자면 실정의 책임은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경왕에게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위기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단결일 것이다. 衆志成城 란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단결하면 그 역량이 커짐을 비유한 말이다.
190 對牛彈琴(대우탄금) / 對(대할 대) 牛(소 우) 彈(퉁길 탄) 琴(거문고 금)
어리석은 자에게 도리를 말함을 비유한 말이며, 곧 소귀에 경 읽기라는 뜻이다.
남조(南朝) 양(梁) 승우(僧祐)의 홍명집(弘明集)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공명의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어느 날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발견하였다. 그는 냇물 소리와 목동들의 피리 소리에 흥취가 돋자, 소를 향해 거문고를 퉁기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에 화를 내는 공명의에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연주가 나쁜 게 아니고, 소가 당신의 음악을 모르는 것이오. 공명의는 이를 믿지 않고, 아무렇게나 거문고의 줄을 세게 그었다.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소가 머리를 들고 꼬리를 저었다. 공명의는 다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거문고로 소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보았다. 소는 다시 머리를 들고 공명의를 향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고명의는 소가 고상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의 형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아무개의 잘못이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이지만,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야간 골프장과 향락업소가 여전히 붐빈다니 하는 말이다. 對牛彈琴이란 어리석은 자에게 도리를 말함을 비유한 말이며, 곧 소귀에 경 읽기라는 뜻이다.
191 合浦珠還(합포주환) / 合(합할 합) 浦(개 포) 珠(구슬 주) 還(돌아올 환)
잃었던 것을 찾거나 떠난 것이 돌아옴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합포주(合浦珠)라는 진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탐관오리들은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진주를 캐냈다. 이 바람에, 진주조개가 자취를 감추고, 상인들의 내왕도 끊겼다. 백성들의 생활이 날로 궁핍해지고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자, 사람들은 진주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 땅으로 달아났네. 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 왔네(去珠復還). 라고 말했다.
合浦珠還이란 잃었던 것을 찾거나 떠난 것이 돌아옴을 비유한 말이다. 사라져버린 번영, 그리고 한때 근면으로 상징되었던 국민성. 이것들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지의 여부는 오직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192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바랄 행) 災(재앙 재) 樂(즐길 락) 禍(재화 화)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쁨을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晋)나라에 가뭄이 들었다. 진혜왕은 지난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 진(秦)나라는 기근이 들자 진(晋)나라에서 곡식을 사오려 했으나, 진혜공은 곡식을 팔지 않았다. 대부 경정은 진혜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는다면, 이는 무친(無親)입니다. 또한 남의 어려움을 즐기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물건을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은 불상(不祥)이며, 이 일로 이웃 나라에게 죄를 짓는 것은 불의(不義)입니다. 진혜공은 이를 틈타 진(秦)나라를 기습하였다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일본이 IMF지원과 독도문제를 함께 거론하려는 눈치다. 돈으로 독도를 사겠다는 발상이며, 제 2의 임진왜란(?)을 일으키려는 저의다. 이렇듯 幸災樂禍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쁨을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193 買 還珠(매독환주) / 買(살 매) (궤 독) 還(돌아올 환) 珠(구슬 주)
본연의 일은 잊고 지엽적인 일만을 추구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어떤 초(楚)나라 사람이 진주(珍珠)를 얻게 되었다. 그는 진주를 높은 값에 팔기 위해, 향내 나는 목란(木蘭)으로 작은 상자를 만들고, 다시 계초(桂椒) 등으로 향기를 물씬 풍기게 하였다. 그런 뒤 진주를 상자 안에 넣고, 다시 여러 가지 보석으로 상자의 겉을 장식했다.
초나라 사람이 진주 상자를 들고 시장에 나타나자, 정(鄭)나라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진주 상자에 마음이 끌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진주상자를 샀다. 그는 진주 상자를 반나절 동안이나 살펴보고 비로소 상자를 열었다. 초나라 사람은 이 정나라 사람이 진주를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정나라 사람은 진주를 초나라 사람에게 돌려주고는 빈 상자만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떠나버렸다. 초나라 사람은 상자 파는 솜씨는 훌륭했지만, 진주를 파는 데는 실패하였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선후(先後)가 있는 법이다. 허세 때문에 내실(內實)을 망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買 還珠란 본연의 일은 잊고 지엽적인 일만을 추구함을 비유한 말이다.
194 負荊請罪(부형청죄) / 負(질 부) 荊(가시나무 형) 請(청할 청) 罪(허물 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함을 뜻한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수하에는 인상여와 염파라는 두 인물이 있었다. 이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279년, 진나라 소왕(昭王)이 혜문왕을 면지( 池)의 연회석상에서 만났을 때, 인상여는 혜문왕의 기선을 꺾으려던 진나라 왕의 계책을 무산시켰다. 이에 앞서 인상여는 진나라로부터 화씨벽을 되찾아온 바 있는터라 명성이 염파를 능가하였다.
장군인 염파는 이러한 인상여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염파를 피하는 까닭을 묻는 부하들에게 인상여는 지금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위급을 뒤로하고 사사로운 원한만을 따진다면, 이는 진나라가 바라는 일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염파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웃옷을 벗은 채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와서 크게 사죄하였다.
負荊請罪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함을 뜻한다. 이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인책론이 일고 있다. 이는 회초리를 꺾어 들고 스스로 매 맞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리라.
195 梁上君子(양상군자) / 梁(들보 량{양}) 上(위 상) 君(임금 군) 子(아들 자)
좀도둑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진식전(陳寔傳)의 이야기. 동한(東漢) 시기, 태구현에 진식이라는 현령(縣令)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정직하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웠던 어느 해, 진식의 집에 도둑이 들어 대들보에 숨었다. 진식은 이를 모르는 척하며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나쁜 사람들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평소에 배우지 아니하고, 자신을 엄하게 다스리지 아니하여, 차츰 나쁜 성품이 자라게 된 것이다. 지금은 대들보 위에 올라가 계신 군자가 바로 그러하니라. 이 말을 듣고 있던 도둑은 얼른 대들보에서 내려와 진식에게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에게 모습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구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느냐. 했다.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며, 그것을 본전으로 하여 장사를 하라고 하였다.
梁上君子란 곧 좀도둑을 비유한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이 도둑은 그래도 군자다운 편이다. 뻔뻔스런 나라 도둑(?)과는 달리 배 고품 때문에 남의 집 담을 넘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사죄했으니 말이다.
196 雪中送炭(설중송탄) / 雪(눈 설) 中(가운데 중) 送(보낼 송) 炭(숯 탄)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비유한 말이다.
송사(宋史) 태종기(太宗紀)의 이야기. 북송(北宋) 초, 토지 겸병을 둘러싼 귀족들의 분란이 심해짐에 따라, 일반 백성들의 삶도 몹시 궁핍해졌다. 서기 993년, 즉 북송 태종 순화(淳化) 4년 봄, 빈곤을 참지 못한 농민 왕소파(王小波)와 이순(李順)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사천(四川)에서 봉기하였다.
그 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날씨 또한 매우 추웠다. 태종인 조광의(趙光義)는 왕소파와 이순 등의 농민 봉기에 두려움을 느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다시 봉기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사람을 시켜 몇몇 어려운 노인들과 가난한 백성들의 집에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민심을 수습하려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부를 잘하는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이 일을 역사에 기록하게 하였다.
외환대란이 일어난 우리나라에 드디어 달러 공급이 시작되었다. 영락없이 밀가루나 담요 따위의 구호물자(?)를 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급한 판국이니 그저 받아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雪中送炭이란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비유한 말이다.
197 夜郞自大(야랑자대) / 夜(밤 야) 郞(사나이 랑) 自(스스로 자) 大(큰 대)
좁은 식견에 제 잘났다고 뽐냄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서남이(西南夷)열전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중국의 귀주(貴州)와 운남(雲南) 지방은 지리적인 조건으로 한나라 조정과의 내왕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지방의 사람들은 한나라의 정치적 상황에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당시 귀주에는 야랑국(夜郞國)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운남에는 전국( 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서기 122년, 한무제는 왕연우라는 사신을 두 나라에 파견하였다. 먼저 전국에 도착한 사신들에게 전국의 왕은 세상 넓은 것을 모르고 한나라와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라고 물었다. 왕연우는 전국의 국왕이 오만하고 무지한 사람으로서 내왕 할만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야랑국을 방문하였는데, 뜻밖에 양랑국의 국왕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들은 중원과 단절되어 외국의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경제 관료들. 이 상황에서 아이 키재기(?)에만 열올리는 후보들. 이들은 모두 다른 나라 사람들인 것 같다. 夜郞自大란 좁은 식견에 제 잘났다고 뽐냄을 비유한 말이다.
198 矯枉過正(교왕과정) / 矯(바로잡을 교) 枉(굽을 왕) 過(지날 과) 正(바를 정)
잘못을 바로 잡음에 그 정도가 지나침을 뜻한다.
후한서 중장통(仲長統)전의 이야기. 중장통은 동한(東漢) 영제(靈帝) 때의 유명한 문인이다. 그는 이란편(理亂篇)이라는 글에서, 당시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제왕(帝王)들 중 어떤 이는 썩 총명하지 못하여, 나라 안에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만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라 안의 모든 업적을 모두 자기의 공로로 돌리며 아무도 자신을 뒤엎지 못하리라 믿게 된다. 그 결과, 온 나라가 분란에 휘말리게 되고, 이민족들은 이 틈을 노려 침범해 오며, 마침내 나라는 무너지고 왕조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하길 정치가 잘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부정한 기풍과 혼란을 바로 잡고자 하나, 굽은 것을 바로 잡으면서 마땅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기도 한다(復入于矯枉過正之檢). 때문에, 효과를 얻으려다 도리어 예상한 목적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라고 하였다.
정부의 금융 증권 안정대책이 발표되었다. 비상 처방이라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된다. 矯枉過正은 교왕과직(矯枉過直)이라고도 하며, 잘못을 바로 잡음에 그 정도가 지나침을 뜻한다.
199 流芳百世(유방백세) / 流(흐를 유{류}) 芳(향기 방) 百(일백 백) 世(대 세)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영원히 전함을 뜻한다.
진서(晋書) 환온전(桓溫傳)의 이야기. 동진(東晋) 시기, 진(晋)나라와 북방 이민족들은 서로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서기 354년, 환온은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 전진(前秦)을 공격했다. 환온의 세차례에 걸친 북벌은 저족( 族), 강족(羌族), 선비족(鮮卑族) 등 북방 이민족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서기 363년, 환온은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으며, 조정에서는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여 그의 지위는 제후들보다 더 높았다. 환온은 군사대권을 장악하고 중원(中原)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여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환온은 일찍이 대장부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죽은 뒤 나쁜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한다. 라는 말을 하였다. 서기 373년, 61세의 환온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야망을 버리지 않았으나, 재상 사안(謝安)의 저지로 야심을 이루지는 못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야망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러운 이름으로 역사에 전해지는 것은 악취만년(惡臭萬年)일 뿐이다. 流芳百世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영원히 전함을 뜻한다.
200 諱疾忌醫(휘질기의) / 諱(꺼릴 휘) 疾(병 질) 忌(꺼릴 기) 醫(치료할 의)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송나라 주돈이(周敦 )의 주자통서(周子通書)에 나오는 이야기.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諱疾忌醫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TV토론회에 참석했던 대선 후보들. 상대의 결점을 찾아내는 데는 편작의 뺨을 칠 정도였지만, 정작 자신들의 결점을 시인하는 데는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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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