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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스즈키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스즈키를 에워싼 채 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혹이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어딘데? 침이라도 발라두자.”
“아뇨, 괜찮아요.” 스즈키가 도망가자 선수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고작 혹이야?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화제의 신인선수가 시작부터 차질이 생기면 야구계 전체의 손실이다.
신이치는 다시 볼을 던졌다. 완전 악송구였다.
“야, 또 그러냐?”
후쿠하라가 공을 주우러 달려갔다.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사라져버렸다. 금방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사라졌다.
마음 한구석에 있는 초조함을 지금까지 애써 외면해 왔다. 그걸 의식하는 것조차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도망칠 수 없다. 인정해야만 한다.
스즈키가 입단했을 때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스즈키가 감독과 악수하는 뉴스 영상과, 여자 아나운서들이 애교를 부리며 스즈키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좀 속이 탔다. 매스컴은 ‘꽃미남’ 루키에게 몰려들었다. 신이치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질투가 났다. 사실을 말하자면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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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근사하지?”
이라부가 진찰실에서 야구 유니폼을 펴보이며 말했다. 가슴에는 ‘DOCTORS’라는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무슨 허세인지 소매에는 ‘루이뷔통’ 마크가 있었다.
“우리 병원에 아마추어 야구팀이 있어 가입했어. 유니폼은 내것만 특별 주문했고.”
“아, 그래요? 잘됐네요.” 신이치가 성의 없이 대답했다.
“병원 경비로 야구용품 한 세트를 기부하는 대신 3루수로 시합에 나가기로 했어.”
“와, 좋은 팀에 들어가셨네요.”
비아냥거리며 말했으나 이라부는 이해를 못 했는지 기뻐했다.
“왜 그래? 반도 씨. 기운이 없어 보이ㄴ.”
“있을 리가 없죠.” 신이치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저는 입스 때문에 실의의 구렁텅이에 빠졌단 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신이치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런 소리 하다가는 못 걷게 돼.”
“…무슨 뜻입니까?”
“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환자. 오른발을 내밀면 오른손이 같이 나가는 거야. 로봇처럼 걸어서 갔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