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 금남루(堤川 淸風 錦南樓.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물태리))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출처 : 문화재청)
조선 현종의 부인이자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은 청풍(淸風)이다. 이 때문에 현종은 즉위한 1659년 청풍군(郡)을 청풍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킨다.
제천 청풍 금병헌(堤川 淸風 錦屛軒.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물태리))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이라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명월정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년(1726)에 다시 옮겨 짓고 이름을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광무 4년(1900)에 전체적으로 보수하였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오른쪽은 대청이고 왼쪽은 온돌방이다. 죄인을 가두어두던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에 없어졌다.(출처 : 문화재청)
금병헌 주위의 경관
제천 청풍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물태리))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는데,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으며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단청이나 다른 색칠을 하지 않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으로 비교적 소박한 누각이다.(출처 : 문화재청)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보물 제528호.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읍리))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수몰전 연풍면 풍경
첫댓글 소중한 문화재 소개...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청풍명월은 이제 유명 명소가로서 관장지로 이름 났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