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부활 제3주일>(2023. 4. 23.)
(루카 24,13-35)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 24,19-24).”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사도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33절-35절),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현장에서 모든 일을 직접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성모 마리아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한 19,25), 엠마오의 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클레오파스’와 요한복음에 있는 ‘클로파스’는
동일 인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엠마오의 두 제자는 클레오파스와 그의 아내입니다.>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간 때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천사가 전해 준 예수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아직 신자들과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지는 않은 때였습니다.
당시에 사도들과 신자들의 분위기는
몹시 어수선하고 술렁거리는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아직은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 입장에서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던 상황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일을 사도들에게 전한
때는 엠마오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난 뒤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와 사람들의 심정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면,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엠마오로 가는 길을 ‘그릇된 길’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집에 가자고 생각하고서
집으로 돌아간 일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 했던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뿐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때 사도들은 모두 달아났고,
공동체도 흩어졌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마태 26,31).”
그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일은,
흩어진 공동체를 ‘복구’하기 위한 일,
즉 원래의 인생으로 되돌아갔거나 되돌아가려는 신앙인들을
하나씩 불러 모으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도’
나타나셨다고 증언했습니다(1코린 15,5-6).
따라서 엠마오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일은,
두 제자만 체험한 일이 아니라,
당시의 신자들이 모두 체험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인데, 교회가 교회로서
본격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과 그 체험을 통해서 확신을 갖게 된 때부터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 체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한 종교입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0-32)”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25절-27절)
메시아의 수난, 죽음, 부활을 이해했고,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것과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마자
예수님께서 사라지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눈에 보이면 좋고
안 보여도 상관없는 신앙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예수님의 부활을,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증언하게 됩니다.
그 체험과 확신과 증언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각자 나름대로 어떤 체험을 하고, 확신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체험과 확신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좀 서툴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 자체가 훌륭한 증언이 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25절-27절)
메시아의 수난, 죽음, 부활을 이해했고,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