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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과 악인의 결과
잠 10:22-32
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23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잠 10:22-32 / 사람이 땀흘리며 애쓴다고 부자가 되겠느냐? 오직 여호와께서 복 주셔야 부자가 되는 법. 23) 어리석은 자는 남을 못살게 짓누르고 착취하지 않고는 잠을 못 이루나, 깨달은 사람은 슬기롭게 사는 일을 즐긴다. 24) 못된 짓만 일삼는 자에게는 혹시나 하고 염려하던 일이 갑자기 닥치겠지만,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리라. 25) 거센 폭풍이 불어닥치면 못된 짓만 일삼던 자는 그 바람에 휩쓸려 가지만,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끄덕없이 꿋꿋이 서리라. 26) 게을러 터진 사람에게 일을 시키자면 일을 시키는 사람이 이를 악물어야 하고 그 눈에 연기가 들어간 것처럼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 270 여호와 무서운 줄 알아 그분을 모시고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 못된 짓만 꾸미고 남 짓누르고 착취하며 사는 것들은 오래 살지 못하리라. 28)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일만을 간절히 바라나 못된 짓만 꾸미고 남 짓누르고 착취하며 사는 것들이 바라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9) 여호와의 길은 온전히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산성처럼 든든한 길이지만 못된 짓만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멸망만이 기다릴 뿐이다. 300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든든하게 뿌리 내리겠지만, 못된 짓만 일삼아 남 짓누르고 착취하며 못살게 구는 것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으리라. 31) 바르게 사는 사람은 하는 말마다 슬기로우나, 거짓말 내뱉는 사람의 혀는 잘리고야 말리라. 32) 바르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줄 알지만 못된 것들은 하는 말마다 악담만 늘어놓는다.
본문은 지혜로운 의인과 미련한 악인의 다른 궁극적 결과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부와 근심과 즐거움(22-26) 세상이 주는 재물은 얻는 데나 지키는 데에 불안과 근심이 있기 마련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는다’는 말씀은 사람의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즐거움이 다릅니다. 미련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것을 즐깁니다. 악은 파렴치한 행위로서 살인, 간음, 근친상간 등에 해당하며 미련한 사람들은 이런 죄들에 웃고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지혜를 즐거워합니다. 이는 지식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행동과 삶을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악인은 악행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은 심판으로 반드시 임하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는 그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의인의 소망은 주님의 은혜로 열심히 일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며, 여기에는 교만함이나 불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게으름도 일종의 악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좋지 않은 이에 식초와 같고, 눈에 연기같이 사람의 신경을 고도로 거슬리게 하여, 아픔과 상처와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과는 현실에서부터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며’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 후 악인은 완전하게 없어지지만, 의인은 영원히 굳게 설 것입니다.
의인의 항구성과 악인의 일시성(27-32) 여호와를 경외함은 의인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장수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27).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심적, 영적 고통 속에서 짧아질 것입니다. 의인의 소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성취되기 때문에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는 가끔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창조사역’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과 율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는 견고한 산성이 되어서 정직한 자는 ‘폭풍 속에서도’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지만, 악한 자에게는 두려움과 멸망이 될 것입니다. 의인은 입에서 지혜를 내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그 지혜는 항상 열매를 맺고, 자라고,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입으로 ‘패역’ 곧 마음의 악한 꾀를 말하는 자입니다.
적용 ‘열심히’ 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하고 올바르게’입니다. 당신의 의는 무엇입니까?
오래전 내전으로 황폐해진 한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고 어른들은 물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마을 곳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움과 울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때 잔뜩 겁을 집어먹은 동생을 감싼 오빠가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 오빠가 있잖아!" 오빠의 그 손은 비록 작고 여리지만 어떠한 무서움과 위험으로부터 가려줄 것처럼 위대해 보였습니다. 계속되는 전쟁, 공포, 죽음... 같은 지구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는 전쟁은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 설 교 >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잠 10:22
A. 부요, 풍부에 대하여
1. 부요, 풍부 / 가난, 결핍
요즘 인터넷에 ‘부자 되세요’ 하는 열풍이 불어 그와 관련된 수십 개의 동호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5년 안에 5억 원을 벌고 10년 안에 10억 원을 벌자’ 등의 목표를 가지고 젊은 사람들이 모여 ‘부자 되기’, ‘짠돌이’,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모임’, ‘부자카페’ 등을 만들었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감명 받은 사람들이 모여 ‘부자 아빠의 가르침’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부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로또 복권을 통해서 부자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국민의 52%가 로또 복권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성별로 분류하면 남자가 62%, 여자는 42%로 남자가 더 많이 구입하였고,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많이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이 40대이고, 20대, 50대 순이라고 합니다. 직업별로 분류하면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이 60% 이상 로또 복권을 구입한다고 합니다. 농·임·어업 종사자들은 33%, 가정주부와 학생은 40%라고 합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상적인 방법보다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 오래가고 영원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의 발표에 의하면 그 곳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대박을 터트리겠다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한 사람이 2백30억 원까지 잃었다고 합니다. 한 파출소 순경은 서울에서 여관업을 하는 30대 남자가 40억 원을 잃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고한읍에서는 1인당 2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 2만원은 고한읍에서 청량리까지의 기차비, 우동 한 그릇, 서울에서의 지하철비를 계산해서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고한읍에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70여개의 전당포가 늘어서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그곳으로 몰리는 것일까요? 한 대학교 교수가 말하기를 한국에서는 정상적으로 돈을 못번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탕주의로 인해 도박에 빠져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 10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대 문화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생들에게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1위가 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엄마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잔소리와 선생님의 체벌 때문에 못 살겠답니다. 그래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만화 보는 재미, TV 보는 재미, 쇼핑하는 재미로 산다고 했습니다.
청소년들조차도 돈을 제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지 그 과정이 중요한데,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부정부패하고 도둑질을 하는 등 죄악과 탐욕스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본인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식 대에 가서 멸망하고 불행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 1615~1691) 목사님은 “이 세상의 모든 재물과 재산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7절 말씀에도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열심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진정한 부자, 존경받는 부자, 더 나아가서 망하지 않는 부자, 사소한데까지 번창하는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말씀은 솔로몬 왕의 금언으로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적인 교훈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을 받은 사람은 근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재물과 부요는 근심과 걱정, 불안을 안겨주고 마지막에는 파멸을 가져오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재물을 얻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부하게 하신다는 내용의 본문말씀을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B.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1.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 복을 주시는 하나님 / 저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잠 10:22a)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복은 히브리어로 ‘베라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선물로 주시고 축복하시고 번성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베라카의 어원은 ‘바라크’로 ‘무릎 꿇다’, ‘축복하다’, ‘풍성하게 하다’, ‘찬양하다’, ‘송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축복과 풍족함을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들, 민족들의 나라는 부강하여지고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회사가 부강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개인도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창세기 1장 27~28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삶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복을 주셨는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하므로 쫓겨나서 그 때부터 땅이 저주를 받아 종신토록 수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 말씀을 보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이 다시 임하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시편 128편 1절 말씀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고 따르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하고 죄악에 빠지면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며 번성케 하시고(창 1:28), 그 이름이 창대케 하시고(12:2), 범사가 잘 되며(창 24:1), 재물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창 26:2, 12~13). 건강의 축복을 주시고(출 23:25),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고(신 6:18),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사함을 주시고(시 32:1), 자녀들이 잘되게 해주시고(시 147:13), 지혜를 주시고(잠 3:18), 더 나아가서 성령충만을 받는 역사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벧전 4:14).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요즘은 미용성형보다 운명성형이 더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팔자를 고치려는 의미에서 관상을 본 후 이마를 넓히기도 하고 얼굴의 점을 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씨란 여성은 31세가 되도록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시집도 못갔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관상을 봤는데 관상쟁이는 코가 너무 높아서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뻐지려고 코를 세우는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남자를 사귀지 못한다는 말에 코에 넣은 실리콘을 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자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소문이 나면서 점차 운명성형을 많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한 성형외과 의사는 수술을 했기 때문에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라기보다 얼굴을 바꿈으로 마음의 자세가 달라져서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얼굴을 고친다고 팔자가 달라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굴이 잘생기고 관상이 좋아도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많고 그런 불행함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얼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면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 1835~195 5)는 세계적인 미국의 저술가로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에 관한 책을 무려 100권이나 저술했는데, 모두 책을 읽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쓴 것입니다. 세계 각국에 그의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저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비결을 가르쳐주는 수많은 강연과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데일 카네기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너무 가난해서 하루에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녁에 잠을 잘 때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카네기야,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고, 어머니가 반복해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동안 그는 잠이 들곤 했습니다. 어린 카네기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이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안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책을 무려 100권이나 써서 저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카네기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받아 믿음의 부자가 되어서 명성도 얻고 재물도 얻게 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 부요, 풍부 / 가난, 결핍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잠 10:22b)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을 부하게 하기 원하십니다. 부하게 하신다는 것은 재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풍족한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재물과 부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과 세상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얻을만한 능력을 주신다고 합니다. 또 재물을 얻을 수 있도록 부지런함을 주시고 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고 부요하게 하는 것은 능력을 주시고 부지런하게 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부자들은 도둑질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불의합니다. 탐욕과 욕심을 갖습니다. 죄악된 방법으로는 아무리 재물을 많이 모아도 죗값을 모두 치르게 됩니다. 결국 자손 대까지 가서 그 재물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은 근심이 없지만 세상적인 재물은 근심이 늘 떠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부요케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축복을 받는 종교입니다. 기독교 국가는 다 부강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가정도 잘 되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조셉 화이트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물질로 상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서 가난하게 만듭니까? 풍족한 삶과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축복받고 형통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대부(大富)는 재천(在天)이고 소부(小富)는 재근(在勤)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큰 부자는 하늘이 만들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해서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케네디가(家)의 말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케네디의 아버지는 시카고에서 수십 년간 양조장을 하여 돈을 엄청나게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손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버드 등의 유명한 대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냈습니다. 그래서 케네디의 후손들은 자동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일류대학에 다니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성공을 시켰지만 말년에, 하나씩 불행과 죽음과 질병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하나는 중풍에 걸렸고, 또 한 아들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고, 케네디 대통령은 총에 맞아 암살당했고, 또 로버트 케네디도 총에 맞아 암살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하나씩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자 노인이 된 케네디가 탄식하며 고백하기를 “내가 수십 년 동안 술을 만들어 팔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하고 파멸시켰더니 이제 그 보응을 받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불행합니다. 총을 쓰는 사람은 총으로 망하고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고 돈을 쓰는 사람은 돈으로 망합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선을 행하여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불법, 탈법, 비리, 부정부패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정명준 씨는 미원그룹에서 12년 간 성실하게 근무하여 덴마크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유산균 연구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1995년 ‘(주)셀바이오텍’이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하나님, 앞으로 회사를 성경말씀대로 운영할테니 하나님께서 이 회사를 책임져주시고 복 되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매일 직원들과 아침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과 예배를 드리는 일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 직원을 뽑을 때부터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얘기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직원을 뽑을 때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윤이 생기면 선교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에 썼습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바이오벤처 기업 국내 1호가 되었고, 유산균을 생산하는 전문회사가 되고, 고농도 유산균을 개발해서 우량기술 보유기업이 되고, 수출유망 중소기업이 되고, 지금은 30여명의 석·박사 연구원과 40여명의 직원을 두고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2002년 4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인증을 받았고, 12월에는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작년 매출도 수십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백억 원의 매출도 무난할 것이라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백억 원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경기 핑계대지 마십시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서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불경기인데 백만장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무려 2~3% 씩 증가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통계에 의하면 부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 ; 1848~1923)는 영국에 대해 연구하여 하나의 이론을 발표했는데, 항상 인구의 20%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 80%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운동선수도 20%는 부자, 사업가도 20%는 부자, 무엇을 하든지 20%는 부자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불경기, 불황이 와도 잘되는 사람은 계속 잘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도 잘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하게 하시므로 세상적인 정욕,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지 마시고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더욱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 기쁨, 만족 / 근심, 걱정, 염려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c)
근심은 고통이요, 슬픔이요, 수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는 근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잘된 사람들은 걱정과 근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근심이나 걱정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지 근심은 하지 않습니다. 망할까봐, 안될까봐, 없어질까봐, 이런 두려움과 걱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맙시다.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근심하십니까? 근심은 하나님께 맡겨버리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 앞으로 근심은 끝내고 인내하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배반을 당해 애굽에 종살이를 하러가면서 자신의 나이 30에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미리 알고 끌려가는 발걸음이 축복의 발걸음인줄을 알았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춤을 추면서 갔을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여러분이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을 것을 미리 알고 믿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환해질 것입니다.
관상을 보고 운명성형수술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 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 ; 1873~1944)이라는 프랑스의 외과의사는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도 그 방법을 몰라 자살을 했습니다. 유명한 미국의 갑부들도 자살을 했고, 또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도 인기 절정일 때에 자살을 했고, 홍콩의 영화배우 장국영도 자살을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재벌 회장도 자살을 했습니다. 그들은 근심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자살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부자가 된 후에 혹시 근심 때문에 자살하지는 마십시오. 지금은 비록 내가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면 부자가 될 것을 믿으십시오. 풍족한 삶을 누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꾸지 않고 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수많은 걱정과 근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성공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 ; 1883~1970)은 현대인에게 일곱 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가난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실패할까봐 걱정하는 것이고, 셋째는 질병에 대한 불안, 넷째는 사랑을 잃어버릴까봐, 다섯째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 여섯째는 자유를 빼앗길까봐 불안해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죽음은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죽음은 제 2의 인생이요, 지옥인지 천국인지의 결정인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 근심으로 인생을 병들게 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걱정, 근심할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겸손하게 만들어 주시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감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부요한 재물과
근심 없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오늘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라는 제목으로 본문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부하게 하시되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셋째는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간증입니다. 김순희 집사님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결혼을 하고보니 시댁이 얼마나 불교에 심취한 가정인지 아예 집에 불상을 차려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집으로 시집을 간 날부터 밤마다 불안하여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남편이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친구들과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뜻밖에 사업이 잘 되어 수억 원대의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돈을 잘 버니 경제적으로는 넉넉한데 집사님의 몸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2남 1녀를 두고 부유하여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었지만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몸이 아프니 그도 괴롭고 식구들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 결과 ‘선천성 심장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니 몸은 점점 말라갔습니다. 손이 떨려 커피잔 하나도 제대로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동업자의 배신으로 사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모두 잃었고, 그 충격으로 병이 악화되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만 감으면 검은 망토를 쓴 저승사자들이 온 집안 가득 서성거리는 환영이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업 실패 후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 함께 교회에 나가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평안해지는데 교회에 가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 생각하고 작정기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절에 다녔던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 전에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앉아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새로 갈아입은 옷이 다 젖을 때까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한지 3개월이 지나자 눈만 감으면 보였던 저승사자들이 도망을 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두머리 같아 보이는 저승사자가 나가는 것을 보고 이제는 병마가 물러가고 저주가 물러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여 기도를 드렸는데, 그 때부터 머리 아픈 것도 없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것도 없어지고 심장병이 나아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사업도 잘 되고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집사가 되고 그도 집사가 되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서 예전같이 행복한 가정이 되었고 집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저를 하나님께서 살려서 축복주심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되게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으면 부자가 됩니다.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합니까?’ 하는 사람들은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과 물질을 올바르게 바쳐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모두 영적인 부자, 물질적인 부자, 재물의 부자, 자손이 잘 되는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오리 바람
잠 10:22-32
말이 많으면 (잠 10:13-21) +++ 공평한 추는 모두가 기뻐합니다 (잠 11:1)
오늘 본문의 말씀도 한 가지 주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주제들이 섞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한 주제씩 한 주제씩 분석해 가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22절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매혹적인 말씀입니다. 부하게 되는 것만 해도 매혹적인 말씀인데, 부하게 되는 것이, 부가 따라오는 것이 아무런 근심이 없는, 그런 부가 오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니까, 정말 매력적인 것이죠.
항상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같이 따라오게 되고, 항상 모든 게 다 완벽하게 100% 다 좋은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좋고 또 그 가운데는 나쁜 것까지 같이 따라오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오늘 22절 말씀에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근심이 겸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복입니까? 완벽한 복이죠. 80점짜리 복이 아니라, 100점짜리 복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 것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졌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온전히 좋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이 많으면 (잠 10:13-21) +++ 공평한 추는 모두가 기뻐합니다 (잠 11:1)
오늘 본문의 말씀도 한 가지 주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주제들이 섞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한 주제씩 한 주제씩 분석해 가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22절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매혹적인 말씀입니다. 부하게 되는 것만 해도 매혹적인 말씀인데, 부하게 되는 것이, 부가 따라오는 것이 아무런 근심이 없는, 그런 부가 오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니까, 정말 매력적인 것이죠.
항상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같이 따라오게 되고, 항상 모든 게 다 완벽하게 100% 다 좋은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좋고 또 그 가운데는 나쁜 것까지 같이 따라오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오늘 22절 말씀에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근심이 겸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복입니까? 완벽한 복이죠. 80점짜리 복이 아니라, 100점짜리 복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 것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졌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온전히 좋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100점짜리 복, 80점은 좋지만 20점이 안 좋은, 70점은 좋지만 30점이 안 좋은, 그런 불완전한 복이 아니라, 그런 나쁜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 무결한, 정말 아무런 흠도 없는, 그런 완벽한 복이 우리들에게 주어진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좋을 것인데, 오늘 22절 말씀에서 해 주시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런 복은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그 복은 누가 주신다고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그런 복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자, 그러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떤 복을 가리켜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게, 도대체 무슨 복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만일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는 그런 복도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는 그런 복도 있다는 말입니까?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완전한데,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는 다른 복들은 불완전하다고 하는 그런 말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받는 복이 하나님에게서 받는 복도 있는 반면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받는 그런 복, 예를 들면 사탄에게서 받는 그런 복도 있다고 하는 말입니까? 도대체 여호와께 받는 복이 무엇이고, 여호와께로부터 받지 않는 복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게 아니고, 도대체 이 말씀이 무엇을 가르키고 있는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한번 던져보아야 하는 것이죠. 도대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떤 복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이 그냥 저절로 우리들에게 굴러 들어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오는 것입니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다고 한다면, 어느 것이 우리에게 오든, 그 무엇이 우리에게 오든 그 모든 것들이 다 누구로부터 온다고 고백할 수가 있나요?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 있다고, 온다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야, 그래야 우리들의 이 삶 가운데서 모든 것들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사실은 우리가 가지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누가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에게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누가 주신 거예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냐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음 부를 주시고, 부하게 하시고, 그리고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니까, 이 말씀이 조금 어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좋아 보이는 것이든, 나빠 보이는 것이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여기서 그렇다고 한다면 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이 표현이 단순히 출처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닐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출처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된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우리가 가지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께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이 표현이 복의 출처를 의미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얻게 되는 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의로운 방법이고, 또 하나의 방법은 악한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의로운 방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것, 그러한 것을 가리켜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복을 구하는데, 우리가 정말 좋은 것을 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삶을 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아니라, 의롭지 않은 악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악한 방법을 쓰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도둑질하거나 속여 빼앗거나 여러 가지 악한 방법으로,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베풀어주실 것을 의지하면서 얻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내가 내 힘으로 내 악날한 방법을 통해서 나의 사악한 방법을 통해서 내가 원하고자 하는 그것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호와께서 오시는 복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대로 얻는 복, 내가 악한 방법으로 얻는 복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것은 출처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복을 얻느냐의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악한 방법으로 얻는 복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은 파멸로 결국은 근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소득이 되는 것이죠. 의로운 방법,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대로 순종하며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신실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가 부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 부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이고, 그 여호와께서 주시는 부에는, 근심과 걱정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속이고 빼고 악한 방법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법칙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내 능력으로, 내가 마음대로 갈취하는 그런 사악한 재물들은 지금 당장은 힘이 있어 보이고, 지금 당장은 좋아 보이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그 물질로 인해서 우리가 파멸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 그 물질 때문에 우리가 더욱더 근심하는 결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오늘 이 22절의 말씀 가운데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입니까? 버킹검이죠. 결론이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면서 부를 축적하라라고 하는 것이, 결론의 말씀인 거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가운데, 신실한 방법으로 얻을 모든 부를 축적해 나가고 재물을 축적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근심이 없을 것이지만 정직하지 못한 방법, 불의한 방법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결국은 근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 성도들이 깊이 기 기억하고,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들에게 결단의 순간들이 오게 될 텐데, 그 결단의 순간에서 믿음의 결단들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22절의 말씀이, 오늘 읽은 성경 다른 구절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절의 말씀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23절부터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데요. 23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삶느니라.” 24절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절의 말씀에, “회오리 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8절의 말씀에,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절의 말씀에,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자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절 말씀에,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가 아니고,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고, 의롭게 행하는 자인 것이고, 그렇게 의롭게 행동한다고 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고, 그 의로운 자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소망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것이 금방 읽은 말씀의 그런 의미입니다.
반대로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 누가 미련한 자인가?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미련한 자요. 어리석은 자이고,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것이며, 악을 따라 행하다 보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두려워하는 그것이 임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은 의인의 길이나, 지금은 악인의 길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이것이 우리들을 늘 유혹하는 것이죠. 의롭게 살아보았자 별거 없네. 악하게 살아도 괜찮네. 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겁니다. 의롭게 살아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이 보이고, 악하게 살아도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의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로 미련한 길로 가게 될 터인데,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지금 당장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 결국 무엇이 다가올 수 있습니까? 회오리 바람이 다가오면, 어떻게 돼요? 악인은 어떻게 된다? 없어져 버린다 이거예요.
회오리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회오리 바람이 불어닥치면, 결국 산성이 아닌, 그 산성이 아닌 그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는 거예요. 기초가 튼실하지 못하면, 결국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인데, 바로 이 잠언서의 말씀을 읽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부터 27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주를 반석 위에 지어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 예수님께서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집을 지었는데, 그 두 집이 똑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요. 지혜로운 사람이 지은 집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지은 집이나 괜찮아요. 때로는 때로는 이 어리석은 사람이 지은 집이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언제 문제가 되는 겁니까? 우기가 되어 창수가 나기 시작하면, 비가 내려서 물길이 쫙 다가오게 되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인의 길은 곧 쓰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결론은 뭡니까? 결론은 악인의 길을 걸어갈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의 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 말씀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 좀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27절의 말씀입니다. 27절의 말씀에 뭐라고 표현하고 있냐면 여호와를 경외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어떻게 된다고요? 짧아지느니라. 정말 그렇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정말 오랫동안 장수하는 것 맞습니까? 악인의 수명이 짧은 것 맞습니까? 정말 그래요? 안 그래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는데, 안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 보면, 정말 믿음의 사람인데,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시는 그런 안타까운 그런 경우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어떤 사람도 있어요? 귀신은 저 사람 안 잡아가고 뭐 하나 싶을 정도의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성경 말씀이 틀린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장수할 것이다. 이야기하고 있고, 악인은 단명할 것이라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만나는 현실에서는 그런 것 같이 보이지 않아 보이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물어보니까, 고개를 다들 절레절레 흔드셨는데, 성경이 틀렸습니까? 우리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악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생명과의 관계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요? 아예 없는 것인가요?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장수하는 것이 의인이냐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정말 단명한 사람들은 악인들이어서 단명했을까요? 정말 지금도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 말씀이 잘못된 것일까요? 성경이 오류가 있는 것일까요? 왜 성경은 이런 별로 납득이 안 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 말씀에만 여기에 이렇게 써 있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 가운데 제5계명에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너희의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을 신약 성경인 에베소서 6장에서도 반복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외갓집 식구들은 다 90세, 100세 막 이렇게 사시는데, 부모를 공경해서 그런 건가요? 왜 그렇죠?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과 생명의 길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이 틀렸나요?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는 이 말씀이 저는 담배와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담배가 뭐냐? 담배라고 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면 건강이 나빠지게 돼 있고, 담배를 피면 암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질병을 걸릴 수가 있겠고, 더 나아가서 수명이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담배가 그런 좋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것 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까? 다 동의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과학적인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실제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예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외가 많아요. 골초들이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골초들이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요. 희한하단 말이에요. 담배 하나도 안 피운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질병에 걸리고 그러는데, 담배 핀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요. 그런 예외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그러니까 담배와 건강은 상관이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을까요? 옳지 않을까요? 옳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담배곽에다가 심각한 경고 문구를 적어놓는 겁니다. 흡연을 하게 되면 이런 이런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경고 문구를 적어놓기도 하고, 환자의 그 아주 끔찍한 사진을 그 담배곽에다가 사진을 붙여놓기도 하고, 그래서 피우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겁니다. 담배 피우지 않는 게 좋으니까요. 담배 피우는 분 계시면 끊으십시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 주변에 장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 주변에 담배 피워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면서 피우는 겁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담배와 담배를 피우느냐 피우지 않느냐가 사람의 수명을 완벽하게 결정하는 요인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피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 것처럼, 오늘 성경 말씀은 어쩌면 우리들에게 실감이 되지 않는 말씀처럼 느껴질 거예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장수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장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보면 반대되는 얘를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건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시키면서 하나님 안 믿어도 괜찮아, 의롭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 문제가 없어. 괜찮아, 오래 살 수 있어. 그렇게 해봤자 소용 없어라고 우리 자신을 설득시키려고 하는 그런 악한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지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개인의 생명이 길고 짧은 것은 개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에 따라서 달라질 겁니다.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단순히 이 사람이 부모를 공격했느냐의 한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이 한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에 미치는 그 영향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정말 천차만별의 이유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단명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장수할 수도 있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아무튼 그 요인들이 많기 때문에 무엇이 이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경외하지 않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바른 길이고, 생명의 길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담배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되겠구나. 뿐만 아니라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며 사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이 장수의 그런 약속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언서 10장 31절과 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배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배역을 말하느니라.” 의인의 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혜 있는 자인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는 그 입술도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들을 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은, 패역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은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술에도 주님께서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정말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인의 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생명의 길이고, 또한 악인의 혀를 가지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그것이 망하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우리들의 입술 가운데서 선하고 의로운 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늘 넘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이런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늘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주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나아가야 될 것이고, 또한 주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간구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해달라고 날마다 날마다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인은 결국 그 소원을 이루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잠언 10:18~32 / 안창국 목사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성경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의인은 복을 누리고, 악인은 멸망에 이르는 징계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이러한 원칙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더하여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두십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자를 의인으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자를 악인이나 게으른 자로 표현할 때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의인과 악인으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결말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의인은 끝까지 견고하겠지만 악인은 결국 끊어지고 말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25절, 27절, 29절, 30절). 그 과정에서는 결말을 알 수 없이 혼란스러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25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회오리바람이 지나갈 때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그 회오림바람 속에서의 거센 풍파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지나갔을 때에는 의인만 견고하게 서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은 끝까지 장수하고(27절, 장수한다는 것은 그저 오래 산다는 것만이 아니라 건강하고 복된 삶을 오랫동안 누린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산성처럼 듬직하고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견고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 의인은 지혜를 즐깁니다(23절). 반면 미련한 자들은 행악으로 낙을 삼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행악으로 낙을 삼는 이유는 그 행악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먼 미래를 보지 못하고, 눈앞에 누릴 즐거움에만 집착합니다. 우리는 길게, 멀리 바라보면서 즐거워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가을의 추수로 인해 누릴 즐거움을 지금 마음 속에 담고 있기에 농사를 즐기며 땀을 흘릴 수 있습니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은 멋진 몸매, 건강한 육체를 마음 속에 담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 당장 누릴 즐거움에만 집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에게 베푸는 복은 근심이 없는 복입니다(22절). 물질이 많아도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학식이 좋아도 근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자들은 부(富)해도, 가난해도 근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미련한 자들)은 자기의 즐거움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거치는 자가 됩니다(26절). 이러한 자들을 게으른 자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이런 자들은 함께 일하는 자들에게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다고 표현합니다. 한 공동체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방해 요소가 되기까지 합니다. 자기에게만 집중되어 있기에 “함께 함”의 의미를 모르고, 자기 즐거움이 아닌 다른 일에는 게으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말(혀, 입술)과 관련된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17절, 19절, 20절, 21절, 31절, 32절).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이 말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말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어 바르게 살아가게 하고,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의 말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19절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합니다. 말할 때 기도하며 말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여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살피며 말을 해야 합니다. 잠언 25:11에서도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 의인은 결국 그 소망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4절, 28절).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지혜(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결국 그 소망을 이루어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 소원을 이룰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원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그 소원을 이루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주어진 하루를 견고한 미래를 위해, 다가올 즐거움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는 지금 내가 하나님의 지혜를 잘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입술을 제어하는 자
잠언 10:17-32 / 선한목자교회
오늘 말씀에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19절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어제 말씀가운데서도 11절의 말씀을 잠깐 나누었습니다. “의인은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혀와 입술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1절에서, 의인의 혀, 의인의 입술이라고 하였고, 31-32절에서도, 의인의 입과 패역한 혀, 악인의 입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였습니다. 그만큼 잠언 10장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입술을 제어하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시편39편 1절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악인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입을 열면 독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욕이 나오고 저주하는 말이 나오고 악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고 합니다. ‘재갈’이라는 말은 영어로 ‘muzzle’이라는 단어인데, 코와 주둥이 부분에 씌우는 입마개를 말합니다. 개에게 씌울 때는 사람을 물지 목하도록 하기 위해서 씌우는 것이고, 소한테 씌울 때는 일하다가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씌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는 것은 다윗은 입으로 범죄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입술로 범죄치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억울함과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나 자신의 죄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말로서 상처받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나 자신의 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로서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그렇게 한 일이 있다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내 입술로 죄 짖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입술을 제어해야 하는 이유중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19편14절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말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말이 주 앞에 기쁨으로 드려질 수 있는 말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남을 해치는 말이 아니라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짐승은 기껏해 봐야 육체에 상처를 주거나 해칠 뿐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해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이라도 인간의 명예와 고귀한 정신을 끌어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에서 나오는 모함이나 비난이나 정죄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쓰라린 상처를 내고 산산조각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3장8절에서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입술을 제어 하는 지혜
잠언 10장 19절
오늘 잠언 10장 19절을 보면 말을 사용하는 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허물이란 단어는 범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반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면하기 어렵다는 말은 중단하거나 멈출 수 없다는 의미로 말이 많은 사람은 죄를 멈추지 않으며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는 자라고 합니다. 제어하는 말은 억제하다, 저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입술을 막아서며 억제하며 저지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로 현명하며 지각이 있다고 합니다.
잠언 10장 19절의 핵심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입 닫아라 라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제하며 제어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말을 단순히 줄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하되 해야 될 말을 하고 필요한 말을 하라는 것이며 잘못된 말이나 죄를 짓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7절을 봅시다. 이 구절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뜻은 제한하는 것입니다. 자제하는 것입니다. 말을 자제하며 억누르는 자는 지식이 있고 라고 합니다. 이 말이 말을 자제하고 억누르는 자는 지식이 생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지식이 있는 자는 말을 아낀 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지식이 있는 자 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경험이 쌓인 자 라고 번역했는데 이유는 지식이라는 단어가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 지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번역하면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게 된 자는 말을 자제하며 억누르며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아끼는 것이 옳구나 내 인생에 문제를 만들지 않게 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27절 하반절에서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한 자인 것입니다. 이 말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내뱉지 말아야 될 말은 내뱉지 않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의 감정을 건드리거나 관계를 틀게 되는 말은 입에 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에 있어서 통제력과 조절력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허물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말하기를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8절을 봅시다. 말하기를 좋아 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다고 합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말은 한 단어인데 속삭이는 사람, 고자질쟁이, 험담하며 비방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돌아 다니며 남에 대하여 비밀스럽게 험담하며 비방하며 나쁜 말을 퍼뜨리는 자입니다.
공개적으로 타인에 대하여 큰 소리로 비난하거나 험담하거나 비방하며 중상 모략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의 말이 별식 같은가 하면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남에 대한 험담과 중상모략이 별식이 된다는 것은 남에 대한 험담은 탐욕스럽게 삼킬만한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흘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뱃속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 들은 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는 자의 말을 들어도 나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험담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휩쓸리게 되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적대감과 적의를 가지게 합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바로 이러한 결과를 얻게 하기 위해서 남의 말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남의 험담에 듣기만 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를 부추기며 동조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며 둘째는 자신의 마음이 더러워지도록 방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에 있어서 소극적인 자세가 자신의 입술을 제어하며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적극적인 자세는 죄짓는 일에 가담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남의 말을 듣게 되면 자신 또한 동일하게 그 말을 전달하려는 욕구와 또 다시 싸워야 됨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부패한 마음은 듣는대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자리를 떠나야 하며 그러한 자와 함께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을 보면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바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할 것은 더러운 말인데 이 말은 상대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하는 험담이나 비난과 비방이며 악의에 찬 독설입니다. 이것을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는데 이 말은 입으로부터 퍼뜨리거나 퍼져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말에 있어서 남에게 해가 되며 남을 무너뜨리며 쓰러뜨리고 상처를 주며 아픔을 주기 위한 모든 악의에 찬 말을 너희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는 것이 아니며 마음을 더럽히며 부정하게 하며 썩어 냄새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것은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선한 말은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입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집을 건축한다는 의미로 사람을 세워 온전하게 하는 일에 필요로 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남을 무너뜨리며 쓰러뜨리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더러운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부정하게 하며 더럽게 하며 부패하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말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형제를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금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해야 할 것은 형제를 세우고자 그들이 필요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기쁨이 되며 유익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능력은 입술을 제어하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더러운 말 남을 험담하며 비방하며 쓰러뜨리며 무너뜨리는 말을 입에 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또 다른 능력은 성도를 세우는 필요한 선한 말들입니다. 격려와 위로의 말이며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도 절제가 필요하며 조절과 통제가 필요합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을 제어하는 능력과 힘을 길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